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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예멘 닮은점 10개, 과연 통일후 우린 결과가 다를까?
예멘통일후지옥화 0 463 2012-08-08 19:09:10

"흔해빠진 정신 질이 낮은 인간들은 자신과 모습이 쌍둥이처럼 닮아도 실패자(예멘)의 모습은 보기 싫어하고? 자신과 전혀 한군데도 비슷한 데도 없어도 성공자(독일)의 모습만 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독일만 예로 드는 겁니다. 착각마십시오. 절대로 한반도의 미래는 독일이 아니라 예멘입니다. 독일은 우리와 닮은 데가 오직 분단되어 있었다는 그 점 뿐, 어디에도 닮은 점이 없습니다. 에멘이 우리와 쌍둥이죠. 우리보다 한발 먼저 묻지마통일을 해서 지옥이 된 예멘을 보면서 닮은 점을 열거해볼까요?"

 

(예멘이 현재 얼마나 생지옥이 됐는지 알겠지? 바로 며칠전만 해도 백주에 공산반군이 관공서를 습격해 수십명이 죽고, 몇 년전에 이 나라 사람들이 단체로 몇 번이나 반군에 납치된 나라도 바로 이 예멘이다.)

 

 

 

1.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쪽이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려는 심보로 통일했다.

 

2. 공산주의 인간들 쪽이 무지막지하게 민도가 낮고, 물론 배운 것도 적지만 그나마 쓸데없는 지식(사상같은 거)만 많아 무능하다. 따라서, 통일시 거의 완전무결한 잉여노동력화된다.

 

3. 남북을 막론하고 지역감정이 끔찍했다.

 

4. 워낙 오랜 세월 갈라져 산 탓에, 말만 비슷하지 사실상 완전히 외계인보다 더 이질화되었다.

 

5. 공산측 지배계급이 하도 비인륜 비인도적인 만행을 저질러, 통일시 처벌과 인민들의 린치를 피하려면 반란을 내어 내전을 낼 수밖에 없다.

 

6. 양측 경제수준이 천문학적이라, 통일하려면 일방적으로 가진쪽이 무지막지한 희생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측의 사회적 반발 때문에 내전의 불씨가 된다.

 

7. 양측 인적자원 역시 격차가 천문학적이라 통일시 미개지역으로 자본주의 인력의 강제이주가 필요하다. 당연히 사회적 반발이 말도 못해 100% 사실상 실패한다.

 

8. 배운 것이 공산측 주민들이 하도 없어서, 교육비와 인력으로 끔찍한 출혈이 생긴다.

 

9. 위생적으로 하도 공산측 주민들이 엉망이라, 전염병을 자본주의측에 퍼뜨려 끔찍한 희생자가 생긴다.

 

10. 이로 인한 사회적갈등으로 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주민들끼리 막 동시다발적으로 수만건씩 총들고 싸우며 죽이는 바람에 내전은 거의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전쟁이 이 나라 안에서만 끝난 게 아니라? 공산반군들이 정부군(자본주의 군대)의 토벌과 공격을 피해 툭하면 이웃 사우디로 들어가 거기마저 막 약탈하고 난리를 피는 꼬장에 결국엔 참다못해 강대국 사우디가 직접 예멘내전에 개입해 들어와 공산반군을 토벌하게 되었음. 2010년 월드컵에서 우리와 맞먹던 사우디가 갑자기 축구에 약해진 것도 예멘내전 개입 때문에 선수들이 전쟁에 징집되어 전력공백이 커진 이유. 한국도 통일시 북한인들이 이웃 중국 일본에 들어가 비슷한 일을 벌여 강대국이 이 내전에 개입해 올 것으로 추산, 한반도가 예멘처럼 강대국 전쟁터가 되면 꼴 좋겠군.)

 

 

 

이슬람-사회주의 정책 갈등
통일 예멘, 친미로 고립탈피

예멘은 수에즈운하와 인도양을 잇는 세계무역 중심통로에 자유무역항인 아덴을 두고 있어 국제사회에 개방될 수밖에 없는 홍해의 흑진주다. 역사적으로 지난날 1600년간 시바왕국과 히므르왕국 등이 찬란한 제국을 건설했다. 종교적으로는 시아계의 자이드파 이맘이 통치하던 지역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니계 와하비 세력과 항상 경합하고 공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 외세에 의한 분단=예멘인들은 오스만튀르크와 영국의 영향권에서 독립하려고 노력해 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튀르크의 패배로 북예멘은 자이드파의 이맘이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됐으며, 남예멘은 지역 술탄과 부족장들이 영국과 개별적인 조약을 맺어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실질적인 예멘의 분단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962년 북예멘에선 나세르의 영향을 받은 일단의 자유장교단 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이맘 통치시대를 종결시켰다. 쿠데타 당시 사우디는 같은 군주체제인 이맘의 왕당파를 지지했으며, 이집트는 쿠데타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8년간의 대리전쟁인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가 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패하고 이집트군이 예멘에서 철수하면서 70년 북예멘은 예멘공화국이 됐다.

남예멘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독립투쟁 끝에 67년에 영국군이 아덴에서 철수하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다.

예멘은 자이드파의 이맘이 통치하는 이슬람의 정통성을 가진 정치문화권이었으나, 북예멘의 공화정 체제와 남예멘의 사회주의 체제로서 각각 세속화된 정치체제로 분단된 것이다. 1967년은 예멘 정치의 전환기였다. 이집트군·영국군의 철수로 외세의 직접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우디의 북예멘 지원과 소련의 남예멘 지원으로 예멘은 새로운 분쟁지역이 됐다. 사우디는 아라비아반도에서 공산세력인 남예멘을 가장 위험한 정치요소로 간주했다.

남-왕정국가, 북-영국 식민지로 분단
90년 통일뒤 테러지원국 분류 원조 끊겨
내전에 경제난 가중 개방외교로 선회


◇ 통일 뒤 분열과 재통합=남·북 예멘은 정치엘리트간의 권력투쟁과 국경충돌 등 수없는 내전을 겪다가 동-서 냉전체제 종식과 함께 1990년 마침내 합의방식을 통해 통일을 이룩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예멘은 이라크를 편들었다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됐다. 미국과 사우디는 경제원조를 끊었다. 사우디는 매년 4억달러의 경제원조를 중단했고 약 100만명의 예멘 노동자를 추방했다. 사우디는 성지순례(하지)에 나선 예멘인들에게까지 비자를 요구했다. 예멘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워 사우디 등 아랍국들의 경제원조와 해외노동자 송금이 생명줄이다.

예멘 경제에 또 하나의 장애물은 마약성분이 있는 독특한 식물 ‘카트’ 재배와 그에 따른 폐해다. 척박한 환경과 기후에서 카트는 이집트의 홍차처럼 생활에 매우 중요한 식물이다. 카트는 씹는 담배처럼 예멘의 장거리운전자·학생·노동자 등이 피로를 풀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애용한다. 예멘 당국은 카트의 남용을 막으려 애를 써왔지만, 남예멘의 사회주의 정권도 카트 애용을 막지 못하고 일주일에 수·목요일에만 카트를 씹도록 허용했다. 지금도 대학 도서관들은 수요일을 가족과 함께 카트를 애용하는 날로 정해 30분 일찍 문을 닫을 정도다.

예멘이 친이라크 정책을 취했던 것은 82년 레바논전쟁 당시 2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해 기지를 제공했던 일과도 관련이 있다. 예멘은 이라크와는 사우디 다음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었었다.

예멘이 합의를 통해 통일했지만, 총선거 결과에 불만을 품은 남예멘 정치지도자들의 분리주의 정책은 예멘을 군사충돌지역으로 만들어 내전상태가 되었다. 아랍연맹과 유엔이 중재했으나, 탱크와 항공기를 동원한 북예멘 살레 대통령의 군대가 결국 승리했다. 살레는 남예멘의 사회당 세력을 제거하고 힘으로 예멘을 재통합한 것이다.

◇ 과제로 남은 사회통합·경제·외세=북예멘의 이슬람 전통문화 환경과 남예멘의 사회주의 환경간의 갈등 해소는 앞으로도 예멘이 풀어가야 할 과제다. 남예멘 여성들은 여권 신장을 요구하며 시위도 벌인다. 그러나 통일 예멘의 이슬람 개혁당은 이슬람원리주의 정책을 강조하면서 여성 종교재판관을 남성 재판관으로 교체하는 등 적극적인 이슬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예멘은 남예멘의 불만세력인 분리주의자들의 폭동과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 더욱이 걸프전 이후 아랍의 이슬람근본주의 환경과 반미 정서 속에서 2000년 아덴항에서 발생한 미군 프리깃함 콜에 대한 폭탄보트 테러 사건은 다시 예멘을 국제테러리즘과 관련 있는 국가로 비치게 했다. 과거 예멘이 아랍의 급진세력인 수단·리비아·이라크에 가까웠기 때문에, 미국은 예멘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예멘은 국제사회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재빨리 개방외교 정책을 취해,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 때는 친미 성향의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로써 예멘과 미국·사우디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 예멘의 대테러정책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양국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었다. 미국은 수에즈운하와 함께 자유무역항 아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있으며, 이라크 침공을 위해 홍해의 예멘이 필요했다.

오늘날 예멘은 국민화합과 시장경제를 통한 민주국가 발전을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총선거에서 이슬람 개혁당이 제2당이 되면서 보수 이슬람세력의 정책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학교에선 사회주의 교육 대신 이슬람 쿠란 교육을 강화하고, 여성들은 히잡(머릿수건)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예멘 정부는 세속화된 근대국가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예멘의 가장 큰 고민은 부족주의 환경이다. 독립적인 자치환경을 가지고 있는 지역세력인 부족들에는 중앙정부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80년대 중엽에 발견된 석유가 이 나라 경제발전의 유일한 희망이다.

홍순남/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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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 ip1 2012-08-09 16:19:19
    이 자식은 몇십년 전에 엉아들이 가지고 놀던 내용 가지고 와서 새삼스레 꼴깝을 떨고 있으니..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이 초딩 넘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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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하등동물아 ip2 2012-08-10 00:46:51
    초딩은 누군데? 이 미친 놈은 제 맘에 안들면 무조건 초딩이고 틀렸대. 무식한 초딩놈은 너야. 그래 수십년 전이면 원리가 달라진다더냐? 무식한 놈이 꼴값떠네. 유식한 내가 질투나서 모함하는 데서 잘난척하고 싶은 모양이지? 불쌍타 초딩이 아닌 하등동물놈아. 질투쟁이야.내가 초딩이면 이 놈은 개만도 못한 하등동물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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