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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과 문화 대혁명
United States 강산 0 598 2012-10-12 01:14:37

조선족과 문화 대혁명


천안문광장에서 모태동 주석을 맞이하는 홍위병들.

1966년 8월18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모택동이 전국의 홍위병을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은 극에 달했다.

한편, 조선족 집단 거주지인 연길시 각 대학과 중학교에서 홍위병들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거리에서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의 4대 구습을 타파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생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인천 냉면옥, 평양 여관, 함흥 식당, 용정 음식점 같이

지방 이름을 단 간판은 공산주의 정신에 위배되어서

철저하게 타파해야할 민족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것이라며 모두 강제 철거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간첩으로 몰려서 모두 몰살 당하거나,

심각한 폭행을 받고, 사상 개조를 위한 농촌 불모지 개척으로 끌려가서 대부분 죽게되거나

자살하게 되었다.

연변의 조선족들이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의 4대 구습을 타파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 홍위병들은 가위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의 외태머리(머리를 꼬아서 한줄로 묶은 머리),

쌍태머리(두 가닥으로 꼬아서 묶은 머리)를 잘라버리고

소위 혁명적인 ‘운동머리(단발머리)’를 만들어주었다.

여자들이 혹여 치마를 입고 거리를 지나가면 무조건 다가가서 치마를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젊은 여자들이 신는 굽 높은 구두의 뒤축을 그 자리에서 떼어버리기까지 하였다.

장춘의 한 신발공장에서 만든 신발은 땅을 밟으면 ‘人’자형 비슷한 도안이 찍히게 되었다고,트집을 잡아

이것은 의식적으로 인민을 모욕하기 위해 조작한 부르주아 반혁명행위라고 하여서

공장 간부들은 사형을 당하고,수 만 켤레의 신발은 모두 모아서 불태워 버렸다.


연변1중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의 당 지부 서기와 교장 머리에 강철 가시로 된 고깔모자를 씌우고

얼굴에 먹칠 문신을 한 뒤 징을 치면서 거리를 걷게 하였다.

얼굴에 검은 먹칠을 한 것은 그들이 바로 검은 무리의 반혁명세력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홍위병들은 학교의 선생을 때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교문 앞에다 묶어서 며칠이고 벌세우는 것은 가벼운 처벌에 속한다고 여겼다.

어떤 중학교에서는 교장 선생을 하수도 구멍에 구겨서 밀어 넣어 죽이기도 했다.

농촌지역에 내려와 사상학습을 독려하는 문화선전대

1968 년 4월 처음으로 연변자치주 공안국, 자치주 검찰원, 자치주 법원에

계급대오 정리 학습반이 개설되었다.


이 학습반에서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시작되었다.

이 학습반에서는 수많은 조선족들이 소위 외국간첩이라는 이름으로

계급의 적으로 적발되어 각종 형벌을 받았다.


그 중 많은수는 형벌(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으며, 살아나도 대다수는 불구가 되었다.

일례로 한 지방읍내에서는 조선족 간부와 경찰 175명이 외국 간첩으로 지목되어

그 중에서 12명이 학습반 기간에 맞아 죽었으며 82명이 불구가 되었다.

그외 수 많은 조선족 간부와 지식인

그리고 일반인까지도 변절자, 특무(간첩), 반혁명분자, 불순분자로 지목받아 비판을 당하고

혹자는 감옥에 갇히고, 혹자는 반란파가 임시 설치한 이른바 ‘소 우리’에 갇혀

인신의 자유를 잃은 죄인이 되었다.


불법으로 고문실을 차려놓고 수 십 가지 형구로 형벌을 가하여

‘지하 국민당 파내기’ 운동을 전 자치주로 확산 연변에서만 국민당 지하당원을 1,453명을 색출했다.

그 가운데 148명이 심사 과정에서 맞아죽거나 자살했다.

30년대 초부터 중국의 공산 혁명에 참가하였고 모택동과 함께 팔로군에서 싸웟던

연변대학교를 운영해 온 조선족 임민호 총장도 이때 제자들에게 맞아서 끝내 사망했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모택동 어록을 들고 찍어야 했고,

지식인들은 농촌과 공장으로 내려보내져 노동을 통한 사상개조를 당했다.

1982 년 한 보고에 의하면 문화대혁명기간 동안 연변 지방에서만

4천여명이 처형되었고, 5천여명이 고문으로 불구가 되었으며,

수만명이 투옥, 격리되었거나 심문을 받고,불순분자,외국 간첩의 낙인이 찍혀져 강제 노동소에

끌려 가서 사라지게 되었다.

계급투쟁이 진행되던 이 시기는 현대인으로서는 이성과 지성이 상실된 시기였다.


그러기에 적지않은 이들이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다가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떤 이는 시달림 끝에 원한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간부와 지식인이 모택동 주석의 이른바 1966년 5.7지시에 의하여

농민으로부터 재교육을 받는다는 명분으로 농촌으로 쫓겨 갔다. 간부와 지식인에 대한 노동개조였다.

문화대혁명으로 말미암아 조선어 책. 신문. 잡지. 참고자료 문헌 등은 소각되었거나 압수당했고

출판이 중지되었다. 도서관에 있던 조선어로 된 책은 폐기되거나 열람할 수 없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공산주의 혁명에 방해되거나 구습을 옹호하는 구절이 있는 책은 모조리 폐기 소각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신문 잡지 등은 대부분 폐간되었으며 조선어 방송도 폐지됐다.

민족주의를 배척한 문화대혁명 지도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족 언론인들도 대거 투옥하거나 숙청(사형)을 했다.

조선어를 쓰는 행위를 수정주의 또는 투항주의라고 비판, 조선어 무용론을 내세웠다.

이로 인해 연변조선족자치주 공문서에서 조선글이 사라지고 학교의 조선어문교육도 폐지됐다.

1967년 중국군이 문화대혁명에 참여하면서

연변일보사에도 1개 중대 병력이 진주,군사관제가 실시됐다. 2월25일 마침내 연변일보는 폐간됐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내를 붉은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들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만 받은 것이 아니라

족보가 불태워지는 등 조선족의 민족 전통과 문화는 철저하게 폐기 처분되었고,

이후 조선족 사회는 모택동에 대한 개인 우상교육이 실시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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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마1 ip1 2012-10-14 19:27:36
    그래서 어쩌라고?

    미친 세월이 만들어 낸 미친 사람들 짓이였었지..
    부인 하지 않는다,
    네가 말한것보다 더 한심한 사건들이 많이도 벌어졋으니까,

    시아버지가 반혁명 분자라고 며느리가 고무신 바닥으로 시어버지의 귀쌈을 때린일,
    여조카의 반당행위를 감싸고 돈다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삼촌으로 하여금 억지로
    여조카를 강간하게 한일,
    부모자식간에 로선투쟁으로 피를 가른일,,
    등 ,,등 많고 많지....

    그런데 말이다,
    본글 제목이 심히 눈에 거슬리는구나,꼭 조선족을 의도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너의 저의가 훤히 비치는구나

    왜?조선족한테 무지 당햇냐?
    네가 한국인이든 탈북인이든 너희들의 비 인간적인 행태를 내가 아는많큼 좀만 올려 볼가?
    인간은 거기서 거긴거야,
    네가 감히 누구를 훈수둘 위인은 못되는줄 안다

    그러지 말거라,혹여 아픈 상처가 있더라도 한 민족이라는 개념하나만으로 너그럽게 덮어 두거라 ,
    그게 너와나,타인을 위해서도 다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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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있는동포 ip2 2012-10-16 20:13:01
    흑마선생의 글도 마음에 와 닿는군요.
    흑마선생 같은 조선족동포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문화대혁명이 어떤것인줄 알았고. 또 그것이 조선족동포에게도
    커다란 아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 이 문화대혁명 때문에 많은 조선족동포가 북한으로 이주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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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마1 ip3 2012-10-16 20:43:13
    네, 맞습니다
    좀만 잘못하면 조선특무로 누명을 씌유고 머리에 60cm정도의 고깔 모자를 쒸우고 거리 돌림을 시킵니다
    아참 ,봉건사회 때 회술레 라고 잇엇습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범죄자라고 락인 찍힌 사람을 산발머리를 하고 얼굴에 하얗게 회칠한다음 거리돌림시키느 것이지요,이것을 회술레 라고 합니다 ..

    조선(북한한)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 혐의 대상입니다
    남조선 (한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남조선 특무로 낙인 됩니다..

    심문 과정에 자살한 사람 부지 기수입니다
    심문과 고문을 병행하는데, 목에 가느다란 쇠줄을 걸고 양쪽에 자그마한 널판자를 달아 놓고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벽돌 한장씩 올려 놓습니다
    량쪽에 몇장씩만 올라가도 쇠줄에 목이 패우며 피가 줄줄 흐릅니다

    참고 참다가 몰래 지니고 있던 작은 손칼로 자기의 배를 갈라 자살합니다
    여러 가지 고문 방법이 있는데 ,,,,

    일명 양금 (악기이름)타기라는 방법
    남자의 경우 생식기에 질기고 가는 노끈을 단단히 맨다음 한끝은 문 손잡이에 연결합니다 그다음 심문과 더불에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굵직한 몽둥이로 그 노끈을 튕깁니다
    아주 죽기보다 못하죠,
    그다음 생식기 끝머리 뇨도구에 석냥가치를 꽂아넣고 담배불로 불을 붙힙니다

    여성의 경우에도 생식기 질안에 폭약 도화선을 꽂아 넣은 다음 도화선 끝에 불을 붙힙니다
    ....미친세월 미친 사람들한테 억울 하게 죽은 사람 얼마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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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러 ip4 2012-10-16 20:45:48
    흑마?
    원래 그는 그래도 머리에 들 것이 든 사람이다.

    한마디로 사리분별을 아는 사람이고...
    한마디로 자신의 체모를 지킬줄 아는 사람이고...
    할 것과..안할 것을 가릴줄 아는 사람이고...
    이해와 참을성을 가진 사람이다.

    흑마는 오래 전부터 이창을 드나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일구이언이나...구차한 변명이나.. 보복성글이나...비논리적이거나...
    이런 글을 쓰는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맨 처음에는 <새터민쉼터> 인간들의 편에서서 (지금으로부터 몇년전......)조금 변론적이며... 흥분하는 글들을 좀 쓴적은 있으나...
    그는확실히 <새터민 쉼터>의 남과북을 오고가는 저질 인간들 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저런 사람과는 이야기를 할 맛도 재미도.있거니와..뭣보다도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본다.

    흑마의 말대로 중국에서의 문화대혁명과 당시 조선족들의 움직임은 ..
    지금에와서 조선족들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그 어떤 요인으로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남한에서 60-70 년대에 박정희시대가 있었듯이...
    당시 중국에서의 그시대의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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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마1 ip3 2012-10-16 21:10:44
    킬러님,
    저에 대한 과분한 칭찬으로 너무 띄워 주시는것 같아 머리가 어지럽군요 ,

    지나친 겸손은 일종 방종이라 하였으나, 사실 이 사람은 님의 치하와 달리
    아주 촌스럽고 변덕이 많으며 사리 분별에 영특하지 못하여 주변에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사람입니다

    하여 이 사람의 아둔한 주변 머리와 그릇된 처사에 깨달음을 주시도록 님께 청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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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변 ip5 2012-10-16 21:36:56
    나에 대한 평가는 항상 남들이 하는 법입니다.

    대중을 무시하고 항상 자기가 똑똑하다고 자고자대하는 인간들은 언젠가는 꼭 함정으로 가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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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 ip6 2012-10-16 22:38:51
    한 지방읍내에서는 조선족 간부와 경찰 175명이 외국 간첩으로 지목되어
    그 중에서 12명이 학습반 기간에 맞아 죽었으며 82명이 불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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