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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 뒤 자살하려 했다
United States 비공자필 0 252 2012-11-25 10:19:10

“노무현 당선 뒤 자살하려 했다”

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비공개 자필 시·메모 입수




김대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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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조선일보 DB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했음을 보여주는 편지와 자작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황 전 비서는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발표하자 줄곧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만든 이론가로 지난 1997년 북한 민주화를 위해 남한으로 망명했다. 그는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의 폭정을 공개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북한을 지원했던 DJ정부의 ‘햇볕정책’이 결국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며 비판했었다.
   
   황 전 비서의 측근들이 지난 10월 10일 황 전 비서의 서거 1주기를 맞아 공개한 자필 메모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황 전 비서가 고통의 나날을 보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자살을 암시한 황 전 비서의 자필 시(詩)와 편지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황 전 비서의 자필 시와 편지는 그의 일부 측근에게만 전달됐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참담한 심경을 남몰래 피력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두 달 뒤인 2003년 4월 23일 황 전 비서가 쓴 시에는 “어디선가 들려온다.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속삭임 소리.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보니 새벽 3시30분. 이대로야 죽을 권리가 없지”라는 구절이 나온다. 황 전 비서는 이날 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꿈을 꿨고 “이것은 그날 있었던 사실입니다”라는 부연 설명까지 달았다. 그는 또 “어떻게 나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길을 찾아보자”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삶의 의지를 되찾으려는 글귀도 적어 놓았다. 이 시는 황 전 비서가 망명 6주년(1997년 4월 망명)을 맞아 자신의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하며 적은 것이다.
   
   황 전 비서의 시를 주간조선에 공개한 황 전 비서의 한 측근은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뒤 황 선생님은 심한 좌절감에 빠지셨다. 당시 황 선생님은 자살까지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말했다. “황 선생님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계셨다. 2002년 대선에선 보수정권이 들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길 기대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황 선생님은 크게 실망하셨다. 앞으로 5년을 더 버텨야 한다는 절망감에 죽음을 염두에 둔 발언을 자주 하셨다.”
   
   2004년 12월 31일 작성한 자작시에는 “(모든)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원망의 대상도 나 자신, 복수의 대상도 나 자신, 스스로 양심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권한도 나밖에 없다.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날도 훨씬 지나쳤는데 파렴치한 미련의 귀신은 한 해만 더 마지막 기회를 달라네. 2004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심판 연장의 마지막 날임을 명심하라”라고 썼다. 시구 곳곳에서 황 전 비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절망했다.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며 죽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2005년 4월경 작성된 자작시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목까지 달았다. ‘마지막 용서의 날’이라는 제목에서 염세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 시에서 “날은 저물고 건너야 할 강은 아득하건만 배도 사람도 보이지 않네. 들려오는 건 원한에 찬 물귀신의 울부지즘(짖음)뿐…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을 희생으로 8년간 삶을 연장하였건만 죄만 더 무거워졌을 뿐”이라며 삶을 체념하는 듯한 글귀도 적었다.
   
   황 전 비서가 생전에 자살을 염두에 둔 것은 고령의 나이에 좌파정권 10년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망명을 선택한 대의(大義)였던 북한 민주화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황 전 비서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거부감도 강했다고 한다. 그는 친분이 두터운 일부 탈북 인사들에게 “탈북 당시 북한에 대한 판단은 옳았으나 남한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와 가까운 한 탈북자는 “좌파정권 10년은 고령의 황 선생님께 모진 인고의 시기였다. 특히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면서 여러 번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 당시 제한된 활동을 해야 했던 황 전 비서에게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좌파정권의 연장이었고, 이는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다. 2002년 자필 편지를 쓸 때까지만 해도 황 전 비서의 북한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강했다. 당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시기였다. 2002년 6월 29일 작성한 편지에는 “우리는 반드시 최악의 비인간적인 김정일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고 북한 동포들을 해방하여야 합니다” “(북한 민주화를 위해) 투쟁의 전진의 기차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황 전 비서는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남북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황 전 비서의 대북 비판기조에 대해 당시 정권은 부담을 느꼈다. 경호문제를 이유로 사실상 감금 수준의 생활을 해야 했다는 게 수양딸 김숙향씨와 그의 측근들의 주장이다. 미국과 일본을 돌며 북한의 실상을 전달하려던 황 전 비서의 계획도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 속앓이를 했다. 2003년 10월 미국을 방문했지만 철통 보안 속에 제한된 활동만 했고 일본 방문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인 지난 2010년에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황 선생님은 북한에 가족을 모두 남겨두고 망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만큼 자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북한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그러나 좌파정권에서 활동이 어려웠고 정권이 바뀐 뒤에는 너무 고령이 됐다”고 말했다.
   
   2005 년 12월 한 탈북자 단체의 결성식에 참석한 황 전 비서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작심하고 쏟아내기도 했다. 이날 황 전 비서는 “탈북자들이 북한의 실상을 말하고 친북세력의 기만술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었으며 고립무원의 역경에 빠져들었다”면서 노무현 정권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탈북자 단체의 처지를 한탄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인해 남북 양측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탈북자들의 현실에 울분을 토한 것이다.
   
   황 전 비서는 서거하기 전까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한때 황 전 비서의 주변 인물들은 미국으로 망명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북한 민주화의 최적지는 남한이어야 한다”면서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2009 년 12월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암살조’가 국내에 잠입해 공안당국에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앞서 2008년에는 황 전 비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간첩 원정화 사건이 불거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도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지금도 탈북자 가운데 거물 탈북자를 정탐하는 수상한 인물들이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북한 서열 13위에 오를 정도로 핵심 권력층에 있던 황 전 비서는 결국 2010년 10월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창건일이기도 하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77100021&ctcd=C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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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ip1 2012-12-12 01:51:27
    황장엽선생님
    가족비롯하여 모든걸 뒤로하고 남한내려오셔서
    대중이 친북때문에 얼마나 고뇌의 밤을 보내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아프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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