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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이 살아계셨으면...남북 분단없었을수도..
Korea, Republic o 같이살구잡다 0 1889 2013-05-30 12:07:15

이승만이 암살만 안했어도...

 

이글에대한건 제가 죄송합니다..확실한 근거도 없는 그랬을것이다 음모론 그런것에..유추된 이야기 이니....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께서..잘못하신거는 친일파까지 끌여들였다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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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만 ip1 2013-05-30 12:11:14
    김구를
    승만동무가 암살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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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살구잡다 ip2 2013-05-30 12:22:35
    이승만 정권의 국회프락치사건과 반민특위 습격은 제3막을 위한 서장의 성격이 짙다.
    두 사건으로 국회가 크게 위축되고 있을 즈음, 김구의 거처인 경교장에서 때 아닌 총성이 들렸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난 지 20일 뒤인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45분경, 포병소위 안두희는 주일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차가 없어 자택에서 <중국시선(中國詩選)>을 읽고 있던 김구를 권총으로 쏴 절명시켰다.

    김구는 남북협상이 좌절되고 단독정부가 수립되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시기에 하릴없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1949년 1월 백범학원, 3월에 청암학원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독서와 여가에는 휘호를 쓰면서 나날을 보냈다. 가끔 1947년 3월에 개소한 건국실천양성소에 나가 학생들에게 강연도 하였다.

    김구는 1938년 중국 장사에서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3당 합당을 논의하던 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심장 근처에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다. 죽을 때까지 그때 맞은 총탄이 오른쪽 갈비뼈 아래로 이동하여 남아 있었고, 이로 인해 수전증이 심해졌다. 이런 연유로 김구의 글씨는 ‘떨림체’가 되었으며, 스스로 ‘총알체’라고 농하기도 하였다.

    김구는 1932년 이봉창ㆍ윤봉길 의거를 지휘했다가 일제로부터 당시 쌀 한 가마에 2원,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20원일 때 60만 원(元)의 현상금이 붙고, 일제는 군경에게 ‘현지 사살’명령을 내렸지만 결코 잡히거나 사살되지 않았다. 그런데 해방된 조국 그것도 여운형 등이 암살당한 미 군정도 아닌 이승만 정권에서 백주 대낮에 암살되었다.

    김구는 정부가 수립되면서 특별히 정치활동을 할 공간이 없었다. 또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해 온 처지에서 단독정권에 이렇고 저렇고 비판하거나 훈수를 놓을 계제도 아니었다. 1948년 9월 23일 김규식 등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에게 유엔총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서한을 보내고, 11월 3일 미ㆍ소 양군 철수 뒤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담화를 발표한 것이 활동이라면 활동이었다.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친일ㆍ분단세력의 하수인이면서 주한미군방첩대 정보원ㆍ요원임을 미국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방선주ㆍ정병준 교수가 2001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김구-암살관련 배경정보>(1949.6.29.작성, 1949.7.1.보고)라는 제목으로 뉴욕주 제1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운영과장 조지 실리 소령이 작성한 것이다. 데터사이즈 4쪽 분량의 이 문서는 3급 비밀문서인데, 그 핵심 내용은 다음 세 가지였다.

    ① 안두희는 미군 방첩대(CIC)의 정보원(Informer) 및 요원(Agent)으로 활동했다.
    ② 안두희는 우익 테러조직인 백의사(白衣社)의 자살 특공 대원이었다.
    ③ 백의사 사령(司令) 염동진의 전언에 따르면 김구가 군부 내 반(反) 이승만파와 손잡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혐의가 있다. (주석 17)

    실리는 안두희와 미군방첩대, 백의사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조직(백의사) 내부에는 혁명단이라고 불리는 ‘특공대’가 존재한다.
    특공대는 모두 5개 소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소조는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소조의 구성원들은 민주한국과 한국민족주의의 갱생을 방해하는 자를 암살하라고 명령이 내려오면 애국자로 죽겠다는 피의 맹세를 한 사람들이다. 안두희(원문에는 Ann Tok Hi로 표기됨)는 청년으로 이 비밀조직의 구성원이자 이 혁명단 제1소조의 구성원이다. 나는 안두희가 정보원일 때부터 알았으며, 후에 그는 한국주재 CIC 요원이 되었다. 그 역시 염동진이 명령을 내리면 암살을 거행하겠다는 피의 맹세를 했다. 확인하거나 부인하는 어떤 보고서도 작성되지 않았지만, 두 명의 저명한 한국정치인 장덕수와 여운형 암살범들도 이 비밀조직의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구 : 암살배경정보>, 1949.7.1) (주석 18)

    김구의 암살 배후는 사건 이후 계속되어 온 추적자들과 연구가들에 의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암살 배후는 김창룡과 신성모 당시 국방장관을 잇는 군부세력과 해방 뒤 친일파 척결을 주장해온 김구 세력에게 위협을 느낀 친일파 세력, 그리고 단독정부 추진세력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정책을 반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바라는 김구의 정치노선을 비판해온 미국 정보기관의 개입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들 세력은 자발적으로 항일구국의 지도자 김구 제거에 나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지휘하는 배후가 있었는가?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나타난 관련자들의 증언과 자료,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이승만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양해’ 또는 ‘암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 암살세력은 하나같이 당시 이승만 정권을 떠받드는 기둥이었고, 이승만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김구가 이승만의 권력유지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김구 암살은 이승만의 핵심 측근들이 합동으로 이승만의 암시 또는 그의 의중을 헤아려서 꾸민 범행이었다. 따라서 초점은 당연히 이승만의 명시적 도는 묵시적인 교사나 암시(혹은 사전 감지)의 정도와 미국의 개입 여부에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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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공부제대로해라 ip3 2013-06-01 13:08:42
    국회프락치사건은 뒤에서 북한의 대남첩자 공산주의자 성시백(북한에서 붉은단풍잎에서 나오는 "정향명")이가 뒤에서 로비하고 조종한 것이라네...결국은 전쟁이 시작되기 몇일 전에 정향명은 간첩으로 잡혀서 처형당하지....장덕수암살의 배후는 김구였단다....정보력으로 막강한 미국의 cia가 그렇게 확인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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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 ip4 2013-05-30 12:41:40

    - 초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3-05-30 12: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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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생 ip4 2013-05-30 12:59:05
    이사람이 탈북자 어떻구 저쩌구하며 살살 밀고 들어 오시더니 점점 정체를 드러 내시는군요,

    분열주의 친일분자들 때문에 남한에 단독정부가 섰다구요???

    그러면 님은 김일성이 주장하던 북한식 독재민주주의 연합정부 즉 공산 정권이 이남한땅에도 서기를 지금도 바라는 거나요?

    김구는 김일성의 지령대로 남북연석회에 참가하고 그때부터,,,김일성을 추종했으며...북한과 같은 연합정부수립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생전에 했던 반일운동의 업적을 말아먹는 과오의 길을 가다가 운명을 달리한 사람입니다.

    뭘 좀 아는척 하면서 ......살금살금,,, 이승만을 비하 하고,,,
    이 나라에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을 마치도 친일분자들의 모략으로 몰아가시는군요,

    님은 분단된 조국을 가슴아파 하는척 하면서 이땅에 공산정권이 서지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시는 김일성의 족속인가보죠. 전라도에 가면 김일성 가문의 묘를 보살펴주는 인간들도 있다던데...혹시 님같은 분이세요?

    이봐요,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이땅에 공산정권이 섰을 것이고 그랬다면....당신은 우리같은 공산주의 희생물로 전락하여 지금쯤은 어느구석에서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있었을겁니다.

    이승만 때문에 자기들이 얼마나 복받은 세상에서 살아가는지를,,,,억지로 부정하려드는 천하에 더러운 인간들속에 속하지 마세요.

    이창에서 그런소리 논하려면 먼저 좀 배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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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살구잡다 ip2 2013-05-30 13:54:06
    1919년 고종황제의 장례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잊고 있는 1919년 양력 3.1일 입니다.
    3.1독립운동은 수개월간 지속된 최장기 평화시위이면서 구체적인 독립운동입니다. 일본제국은 자칫 3.1독립운동 때문에 한반도를 떠나야할 정도의 위기까지 맞이합니다. 수개월간 살인적 무력진압이 자행되었지만 그 여파는 오히려 더 확산되고 강해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열강들의 간섭과 조선독립의 압력이 보태어집니다.

    이것을 계기로 일제는 아주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선언합니다...

    드디어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하는 역사적 전환점입니다.



    ********************************************************************************

    1919년 3.1독립운동.....

    1919년 3.1독립운동이 터닝포인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지사들은 국내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1919년 이후 문화통치라는 통치방식을 천명하는데 겉으로는 동맹우호국을 표방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정적들을 검거소탕하는 이중적 통치방식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3.1독립운동의 가담자들과 주동자들을 색출해서 독립운동의 싹을 제거하는것이 목적이었는데 당시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라 셀수 없이 많은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지사들이 압록강너머 러시아 사할린과 만주/ 중국으로 달아납니다.

    해외망명과 피난의 그 혼란중에 김구는 중국으로 피신하고 이승만은 미국에서 이미 망명중이었답니다.

    상해임시정부를 발족한 백범김구는 범민족주의대한독립전선을 형성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해나가는 획기적인 연대/연합이라는 광범위 사상/이념 초월의 민족주의우선 노선을 견지합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군국주의민족주의민주주의무정부주의테러주의자본주의혁명주의등 모든 사상과 이념은 대한독립/민족해방에 우선할 수 없다는 단일목표로 흩어진 민족지도자/망명지식인/독립투사/의병/일본강제징병 탈영자/이민자/난민까지 (친일파를 제외하고) 한민족을 총망라한 민족연합전선운동을 펼칩니다.

    한편

    이승만은

    1914년 박용만(朴容萬)의 초청으로 하와이로 가 잡지 《한국태평양》을 창간, 한국이 독립하려면 서구(西歐) 열강 특히 미국정부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외교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펴며 교포사회에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주도권 싸움으로 국민회(國民會)를 분열시키고 따로 좌파세력을 규합, 동지회(同志會)를 결성함으로써 무장투쟁론을 주장하던 박용만 등과 대립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국내에서 조직된 한성(漢城)임시정부와 상하이[上海]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각각 최고책임자인 집정관 총재(執政官總裁)와 국무총리(國務總理)로 추대되자 미국 워싱턴에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설치하고 위원장이 되어 스스로 대통령으로 행세, 점차 카리스마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임시정부 내부의 무단파(武斷派)로부터 불신을 받아 1921년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불신임 결의가 있었다.

    도산안창호와 동지를 규합해 외교를 통한 대한독립의 합리성을 주창했을 만큼 미국 망명자로서 할 수 있는 외교노선을 독자적으로 전개해나가면서 상해임시정부와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두었다. 이승만박사는 평화적 정치외교가 자연스러운 독립운동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의 활동은 훗날 대한 광복의 날 미군정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정도의 유일무이한 친미성향을 견지하고 있었다. 친일파와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보다 미군정의 협조와 지원을 더 기대한 것이 치명적인 정치적 딜레마로 작용하였으며 친일파 처단보다는 친일파 재임용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우를 범한다.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이 해방조국의 주권을 일제로 부터 빼앗아 미군정에 갖다바친 해방후의 친일적 행보인데...이승만의 50년에 이르는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의 행보를 송두리째 의심받는 결정으로 남았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통정부로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항일독립투쟁의 중심조직인 상해임시정부는 이승만을 끌어안을 만큼 통큰 연합연대전선체였고 백범김구선생은 최고 대표자 정부 주석이었다.



    백범김구와 이승만박사는 모두 대한독립이라는 같은 이상을 가진 동지였지만

    한사람은 3천만겨레의 역동적인 힘을 믿었고

    한사람은 세계의 역사를 결정짓는 거대한 열강들의 힘겨루기를 이용하려했던 차이점이 있다.



    백범김구선생이

    한겨레의 유일무이한 민족지도자로 칭송받는 것은

    그분의 유명한 연설인

    <나의 소원은>...이라는 대한독립에 대한 진실된 마음과 열정 때문일 것이다..우리는 <나의 소원은>을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모범답안으로 한겨레가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



    중국상하이 망명정부

    <상해임시정부>

    로 본 백범김구선생의 <애국의 길>



    3.1독립운동의 처절한 교훈으로 무장항쟁의 필요성과 대외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산발적인 각양각색의 독립투쟁 방식보다는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흩어진 소모적 독립투쟁보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뭉친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단하나의 목표 <대한독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민족연합독립전선이었고 그 추진을 위한 결정체가 바로 <상해임시정부>입니다.



    <상해임시정부>는 시작부터 대대적인 검거작전과 수배령과 소탕전에 직면했지만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중국단체와 광범위 연대단체들의 지원과 엄호로 꺼지지않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지금처럼 청와대와 국회를 근사하게 만들어 운영했다는 것은 착각이고 독립투쟁의 긴박함과 위험함을 얕보는 처사입니다.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연대한 독립세력은 아나키스트 같은 무정부주의 테러단체와 개별적 망명인사및 이민자들을 총망라하였으며 민족학교건립과 소규모 독립부대창건 및 항일무장독립군까지 포용하고 전면지원하였던 독립투쟁 정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연합군을 결성하고 해외 외교를 지원하여 이승만박사와 같은 큰 인물을 포용하였습니다.

    1943년 태평양전쟁이후 미국의 전쟁개입으로 세계대전의 양상이 달라지는데 미연합군과 특수작전을 도모하고 광복군이 연합하여 1945년 8-9월 서울탈환작전을 준비합니다.

    일본이 핵무기에 항복하지 않았다면 한미연합 서울탈환작전이 실행되고 대한광복을 우리손으로 이룩하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을 겁니다...당시 백두대간을 근거지로한 무장항쟁의 독립군들이 포진해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 인천 부산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조합과 농민연합의 활동이 대단했음을 증명하는 자료도 많이 있답니다.

    서울만 탈환하면 성공할 정도로 일제의 세력이 약화 되어있었던 시기가 바로 태평양전쟁이후 1945년 한반도의 상황이었습니다.



    1920년 부터 모든 독립투쟁의 근간이었고 지도핵심이었던 <상해임시정부>의 핵심 지도자들은 1945년 8.15 조국해방을 맞이하는 그 순간 미소 군부정권과 친소친미해외파들에 의해 버림 받습니다.

    당시 <상해임시정부의 해심지도자인 김구 주석>은 중국에 고립되고 남북으로 갈린 과도정부에게 배척 받았지만 26년간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식민지 대한의 백성들에게 잘 알려진 김구주석은 구름떼같은 환호를 받으며 귀환합니다.

    해방후 그의 유일한 소원은 독립대한에서 <통일조국>으로 바뀌었으며 단일정부 수립을 위해 재야지도자들과 함께 두문불출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업적이 궁금하다구요?

    경부고속도로 놓지 않았구요. 한강의 기적 안하셨구요..경제개발 안하셨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켜내시고 정통정부로서 소임을 다하셨고 대한민국의 해방을 위해 전방위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식민지 백성의 소원을 대한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결집해내신 위업을 이루신 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독립투사와 의거는 <상해임시정부>가 있어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업적은 도랑에 다리 놓는 게 아닙니다.



    해방 후에도
    독립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지지한 최고의 지도자가 바로 백범김구선생님이셨습니다.
    3.8선으로 임시 분계선이 있었지만 남과 북의 진짜 지식인들과 유력인사/단위 지도자/대표자들은 김구선생님을 적극적으로 초대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쇼는 김일성과 이승만대통령이 따로이 벌이고 있었지만
    임시정부의 주석이셨던 김구선생님은 통일정부를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설득하고 다니셨다합니다. 김구선생님의 가시는 길에는 지지하는 국민들의 대열로 인사인해를 이루었음을 기억하고 진정한 민족지도자를 역사에 기록하여야겠습니다.

    진짜 업적은 한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하나의 민족으로 한몸뚱아리가 되어 세계만방에 우뚝설 것을 외치며 3천만겨레를 단하나의 소원으로 하나되게 만드시고 칭송받는 그 선구자적 애국의 길이 남기신 진짜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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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소리마세요 ip3 2013-05-30 14:53:38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장하는 카더라를 갖다고 사용하네...
    당시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은 당연히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구가 살아있었다면? 글쎄요. 끝까지 남한에 단독정부수립되는 것을 막았겠죠. 그렇게 되면 결국은 한반도에 한개국가만 존재해야 한다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후신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 존재하게 되었겠죠. 이미 한반도에 관심없는 미군은 애치슨라인 그어버리고 남한에서 철수하면 북쪽에서도 소련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채로 먹었겠죠...북한에 아무리 조만식선생같은 영향력있는 인사가 있었고, 최덕신, 최홍희, 장도영 같은 장군들이 있었어도 김일성을 못이겼는데...남한에 이승만 없이 김구만 있었다면 김구가 김일성의 졸개가 되던지 아니면 암살당하던지 둘 중 하나가 되겠죠...그 다음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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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소리마세요 ip3 2013-05-30 14:53:57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장하는 카더라를 갖다고 사용하네...
    당시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은 당연히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구가 살아있었다면? 글쎄요. 끝까지 남한에 단독정부수립되는 것을 막았겠죠. 그렇게 되면 결국은 한반도에 한개국가만 존재해야 한다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후신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 존재하게 되었겠죠. 이미 한반도에 관심없는 미군은 애치슨라인 그어버리고 남한에서 철수하면 북쪽에서도 소련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채로 먹었겠죠...북한에 아무리 조만식선생같은 영향력있는 인사가 있었고, 최덕신, 최홍희, 장도영 같은 장군들이 있었어도 김일성을 못이겼는데...남한에 이승만 없이 김구만 있었다면 김구가 김일성의 졸개가 되던지 아니면 암살당하던지 둘 중 하나가 되겠죠...그 다음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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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더 ip3 2013-05-30 14:55:56
    김구가 남북연석회 참석할 때 새파란 젊은 김일성한테 가서 상해임시정부 "인장"을 갖다 바치려고 한 것은 알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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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더 ip3 2013-05-30 14:59:09
    북한에서 "위대한 품"이라는 영화에도 나오지만, 연합뉴스 기사에도 나오네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07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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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살구잡다 ip2 2013-05-30 15:06:02
    더많은 공부를하고..오겠읍니다..
    이런 미디어 시대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사라진듯합니다..
    일본에서도 왜곡된역사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지요
    무엇이 진실인지..더이상 미디어에 너무 의존하지 않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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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개더 ip5 2013-05-30 15:02:34
    북한에서는 김구가 상해임정"인장"을
    김일성에게 가져다 바쳤다고 교육되고있습니다.
    소련이 속성으로 생산한 사기꾼 김일성에게 말입니다.

    정확한 표현을 빌리면
    김구는 김일성의 북한통치를 협조한 머저리일뿐이라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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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0 16:11:59
    성조기와 두개더야! 너희들은 김일성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일성이 말을 복창하는 구나? 일전에는 김일성이가 말했다면서 광주민주화 운동시 북한 특수부대를 투입해 남한을 전복하려고 했다더만 오늘은 일성이가 "카더라"면서 레파토리를 바꿔 상해임정 인장을 김구선생이 일성에게 갖다 바쳐다고? 에~이 망할 넘들아! 말같은 소리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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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동군새키야 ip3 2013-05-30 17:13:04
    아이고, 그래 남한의 적화를 피흘려 지켜낸 성조기가 정말 밉겠지? 씨벌 좆좌좀 새키야.
    성조기가 주장하는게 아니라 남한의 언론 연합뉴스와 그리고 니들이 좋아라 빨아대고 있는 한걸레가 기사에 실은거란다......미국까지 올것 없이 ...한걸레와 연합찌라시 당장 몽둥이들고 찾아가라. 무식한새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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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0 18:54:22
    임마! 일성이 손자넘이 할애비 심리전에 놀아나는 얼간이 같은 니넘들을 보고 얼마나 통쾌하게 생각하겠노? 이 섞어자빠질 넘들아! 김구선생님은 우리 민족이 반쪽으로 갈라지는 파국을 막기 위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돌대가리 일성이와 존심 강한 승만이 형이 결국 이를 거부했지,이놈들아! 안두희 처럼 몽둥이로 막아 죽기 싫으면 입닥치고 있어,

    지하에 계시는 김구선생님은 승만이 형을 야속하게 생각할 거야 그러나 나는 그래도 이땅에 민주주의 씨앗을 뿌린 승만이 형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 니놈들도 꿈을 깨고 김구선생님을 똥돼지 일가와 사잡아 욕할 것이 아니라 입이 삐뚜려질때까지 일성이 일가만 까발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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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석 ip7 2013-05-30 19:29:42
    거짓의 거짓이 진실을 외곡 하는 현실이 개탄 쓰럽읍니다,. 김구선생님의 굳건한의지는 통일된 단일국가로서의 대 한민국이였는데 이것을 가지고 종북 빨갱이라는 거짓된이 정치놀음에 그것을진실인것처럼 왜곡시키는 작태가 안타깝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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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머리김구 ip8 2013-05-31 05:48:58
    친일파가 아니면 김일성과도 손잡을 김구나 칭송하는 한심한놈. 민족대단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는 놈이 친일파 다 때려잡고 막강한 빨치산출신, 소련군출신, 중국 동북연군출신들이 포함된 김일성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었을까? 김일성도 초대 공군사령관 이하일과 같은 수많은 친일파들을 기용했단다. 1세대가 넘는 36년간 일제의 통치하에 있었는데...친일인사들 다 쳐내면 돌머리들끼리 나라를 건설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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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1 13:43:58
    이놈의 정체가 밝혀졌네 민주정부 시절 친일행위자들이 축적한 재산( 왜놈들에게 독립군을 밀고한 댓가로 받은 부동산과 금은보화)을 몰수할 수 있는 법률을 입법화 할 시기에 잽싸게 동산과 부동산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튄 놈이군? 과연 친일후손답구나!

    해방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를 처벌하고 친일의 잔재를 뿌리 뽑았다면 지금과 같이 일제의 잔재가 남아 정체성의 혼란과 비윤리과 판을 치는 사회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매국행위를 저질려도 우리 사회가 다 용인하는 선례를 남기다 보니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매국은 물론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법행위를 하는 것이다.

    예컨데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과 계급장 주고 총을 줬더니 지키라는 나라는 안지키고 돈과 권력을 탐하여 총부리를 국민들에게 겨누지 않나 기업의 기술정보를 경쟁국에 팔아 먹지 않나 당시 친일행위자를 쳐냈다면 나라를 건설할 수 없었다고 적반하장 겪으로 친일후손들이 큰소리를 치면서 독립군을 돌대가리로 매도하지 않나? 이것이 바로 친일잔재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겪는 진통이자 댓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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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utyourmouth ip3 2013-05-31 14:37:50
    뭔 개소리냐?? 민주정부인지 종북정부인지 무식한놈들이 그렇게 무식한 짓했다냐?? 정말 돌대가리들 따로 없구나. 결국은 국부유출을 가져오는 개대가리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환장할 노릇이지....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 어떻게 개인의 사유재산을 몰수하냐? 대한민국이 무상몰수 국유화하는 공산당이 집권한 북한이냐?? 그런게 좋으면 그냥 월북해라.. 삐라보내는 이민복단장님께 부탁하면 북한좋다는 종자들위해서 풍선하나씩 제공해주시겠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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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1 15:13:44
    일제시대에 왜놈의 하우스보이(몸종)하던 넘이 미국으로 건너가 사람 행세를 하려고 하네? 무식한 넘같으리라고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매도하지 못해 안달이난 놈, 역대 대한민국 민주정부를 종북이라고 매도하는 놈 미쳐도 한 참 미쳤군 이놈아! 아무리 무식해도 말 같은 소리를 좀 해라 민주인사가 뭐하려 세계최대의 세습독재국에 가겠냐 머리가 딸리니까 툭 하면 종북 친북이야 임마! 심심하면 거시기 잡고 예배당 모퉁이나 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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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돼중뇌물현 ip3 2013-05-31 17:01:34
    개돼중 뇌물현은 북괴에 달러뭉치 가져다줘서 북괴가 핵폭탄만들고, 미사일만들게 한 원흉이요. 이게 종북이 아니고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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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1 15:28:25
    짝퉁 코쟁이들아! 내가 7월 중순에 5박6일 휴가를 받아 텍사스와 워싱톤으로 갈 예정이다 그때 면담 신청하면 바쁘더라도 내가 니놈들의 병을 고쳐줄 용의가 있다,원한다면 메일로 신청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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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어디로오냐 ip3 2013-05-31 17:00:38
    너 이름 뭐냐? 이름 대면 당장 homeland security에 알려줘서 반미친북종자가 미국땅에 들어오면 테러연관성이 있으니 입국거부시키라고 연락넣으련다. 요즘 boston테러 때문에 너같은 반미분자들이 미국들어오는 것 엄격히 모니터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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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5-31 17:34:23
    멍청아 놈아! 내가 반미라고? 이놈 머리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눈까지 형편없군 수리할 것이 많아 견적서 두장은 필요하겠군. 임마! 워싱톤에 사는 조카는 회계사로서 미국무부에 비서 한명 데리고 회계책임자로 있고 또 한명은 텍사스주립대학에서 회계학 교수로 재직 하고 있어, 이런 집안을 반미라고? 니놈의 입은 제멋대로군? 함부로 종북 친북 찾더니 결국은 친미주의자를 반미주의자로 몰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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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사기꾼일까 ip8 2013-06-01 05:06:56
    텍사스 주립대학이라면 회계학과로 미국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근데 말야, 텍사스 주립대 회계학과에 한국인 교수는 한명도 없단다. 고로, 당신 지금 거짓말 하고 있다는거란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은 학과 홈페이지 들어가면 교수들 사진과 이름, 프로필 다 적혀있단다.
    http://www.mccombs.utexas.edu/Departments/Accounting/Faculty.aspx
    한번 봐라. 아니면 당신네 조카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텍사스 주립대 교수도 아니면서 교수라고 집에 들어와서 사기쳤을지도...ㅋㅋㅋ..
    그리고 미국에도 반미친북종자들이 많단다. 천안함 사건났을 때 "1번"글자가 타버려야 한다고 주장해서 유명해진 버지니아 대학 이승헌교수나 존스홉킨스대학 서재정교수들
    다 친북반미종자들이다.....국무부 (the State Department)에 조카가 있는지도 한번 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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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조기야 ip6 2013-06-01 18:06:26
    이놈아! 내가 이걸 안 봐겠냐 우리 조카는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니놈 같이 이상한 골통한테 조카애의 신분을 확인해 줄 수가 없다 얄마! 뻥칠 것이 없어 니놈한테 뻥치겠냐? 지금 국무부에 근무하는 애도 텍사스주립대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았었나 적성에 맞지 않아 거절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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