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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 문화
칼거루 0 295 2014-07-02 22:01:27
[무예 사랑방] 태권도 사범이 전하는 미국의 총기 문화 <글. 이정규 사범 | 태권도의 과학 저자>  (2012-12-21 오전 10:41) ㅣ 추천수:34 ㅣ 인쇄수:36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9


이정규 사범

미국하면 한국과 가장 다른 문화 중 하나가 바로 민간인의 총기 휴대다. 미국은 국민개인이 무장 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다. 그중에서도 내가 있는 조지아 주의 총기 문화는 자유롭기로 세계 제일이다.

동네 월마트에 가면 스포츠 용품 코너에 라이플(Rifle,소총)과 샷건(Shotgun,산탄총) 그리고 실탄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총과 총알을 사서 식료품과 함께 카트에 던져 넣고 끌고 나오면 그만이다.

라이플은 18세 이상에 범죄경력, 정신 병력만 없으면 누구나 살 수 있다. 그 자리에서 경찰서에 전화해서 조회만하면 된다. 5분도 안 걸린다. 미국서 18세는 맥주도 못 산다. 그런데 총이나 총알은 살 수 있다. (권총은 술을 살 수 있는 21세가 되어야 살 수 있다.)

우리 카운티(county:행정구역상 군(?)에 해당)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바(Bar)가 없다. 지역의회에서 아예 허가를 안 내준다. 공공장소에서 주류 서비스를 금하기 때문에 큰 식당에 가도 반주로 마실 맥주도 없다.

마시고 싶다면 주유소 같은 곳에서 맥주나 사다가 집에 가 마셔야 한다. 길이나 공원 등 일체의 공공장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으며 뚜껑을 따지 않았다 하더라도 노출된 술병이나 캔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법이다. 그래서 속이 비치지 않는 종이봉투나 비닐봉지에 싸서 이동해야 한다. 위스키 같은 독한 술을 파는 곳은 차타고 다른 큰 동네로 가야한다.

이런 리쿼 스토어(Liquor store: 양주 파는 곳)에 갔다가 오려면 왕복 두 시간은 걸린다. 게다가 밤 12시가 되면 모든 주류는 일제히 판매 금지가 된다. 일요일엔 아예 술을 사고 팔 수가 없다. 먹고 싶다면 미리 사다가 냉장고에 재워두어야 한다. 술 떨어진 술꾼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닌 날이다.

그런데 총은 안 그렇다. 일요일에도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하다. 총알은 밤 열두시가 넘어서도 살 수 있다. 밤늦게 월마트를 갔다가 무심코 총알 한 박스랑 맥주 하나 들고 나왔다가 계산대에서 맥주는 뺏기고 총알만 달랑 들고 쫓겨났던 적도 있다. 자정이 막 지났다는 것이다.

개인끼리 총을 사고, 파는 것도 지역 신문 무료광고란에 총 삽니다, 팝니다. 광고 내고 서로 만나 돈 받고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사업으로 하는 것 아니면 정부에 신고할 일도 아니다.

다만 권총을 소지하고 다니고 싶다면 ‘총기소지면허’를 따야 한다. 법으로 총기 반입을 금한 학교, 관공서, 교회 등 몇 몇 특별한 곳 이외엔 권총을 항상 휴대할 수 있다. 이 총기소지면허도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쉽다.

21세 이상 범죄, 정신 병력이 없는 사람이면 그냥 총기에 대한 안전교육 8시간 코스를 앉아서 들으면 된다. 시간 없으면 주말에 두 번으로 나누어서 4시간씩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곤 5미터, 10미터 거리의 사람크기의 타겟을 자기가 가져온 권총으로 쏘아 맞추면 통과다. 손에 익은 놈으로 쏘니 떨어질 일도 없다. 그러고 나면 운전 면허증과 비슷하게 생긴 총기휴대면허가 나온다.

사격은 시티(City) 경계선 밖이면 어디나 가능하다. 시티 경계선 밖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집 뒷마당에서 총을 쏜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멤버제로 운영되는 사설 사격장에 가서 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우리 동네는 무료 야외 사격장이 있다. 도장서 5분 거리에 있다. 아주 오래전 카운티에서 땅을 내주었다.(언제부터인지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산의 한쪽 벽을 깎아 방벽을 만들어 놓고 불도저로 밀어 공터를 만들어 놓았다.

아무 때나 가서 총을 쏘게 해 놓았다. 십 여 명 이상이 나란히 서서 일제 사격이 가능하다. 일출 후부터 일몰 전까지 아무 때고 가서 쏘면 된다. 통제관도 없다. 총을 쏘고 있는 바로 뒤로 차들이 지나다닌다. 가끔씩 구경하느라 섰다 가기도 한다.

타겟은 깡통, 우유통, 유리병, 벽돌, TV, 컴퓨터, 냉장고, 드럼통, 가스통 뭐든 쓰다 버릴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쏜다. 가끔씩 폭발물(1파운드, 2파운드씩 합법적으로 파는 것이 있다.)을 가져다 놓고 쏘아 가전제품들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도 한다.

발밑에 흩어진 수많은 탄피며, 벌집이 된 타겟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시티에서 나와 말끔히 치워준다. 글도 못 읽는 꼬맹이들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을 쏘러 온다. 특히 주말에 가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각 나라 별별 총들이 다 나온다. 난 한국 K1소총과 K5권총을 들고 간다. 다들 처음 보는 총이라 뭐냐고 물으면 ‘Maid in Korea!’ 대우에서 만든 총이라고 자랑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우면 가전제품 만들던 회사 아냐?’하며 잘 모르지만 총기 전문가들 사이에선 믿을만한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K1은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가격도 웬만한 미국 총 두 배 값이다. 누구나 한번 쏴보면 좋은 총이라고 칭찬을 한다. 여기서도 국위선양!

담배물고 총 쏘는 사람,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총 쏘는 사람, 의자에 테이블까지 갖춰 놓고 편안히 앉아서 쏘는 사람, 애인이랑 데이트하며 총 쏘는 사람. 나처럼 기회 봐서 사람들 없을 땐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총 쏘는 사람. 그 뒤로 아무렇게나 뛰어 노는 꼬맹이들 등등.
자율적인 통제 속에서 아무런 사고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시골 인심 후한 것은 여기 가야 제대로 느낀다. 마치 한국 담배인심 같다. 초면인데도 ‘내 총은 이건데, 네 총은 뭐냐?’ 자기 총 쏴보라며 친절하게 탄창 가득 장전까지 해서 총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러면 답례로 내 총도 총알을 장전해 건넨다.

한국군대에서 정말이지 한 발, 한 발 피 땀 흘려 쏘고 행여 탄피라도 하나 잃어버리면 해가 지도록 수색작업을 했던 기억이 선명한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상황을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발밑에 수북이 쌓인 탄피들을 발로 차다 보면 간간히 흘리고 간 실탄들을 주워 다시 쏘는 재미도 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쏘다 남은 총알을 쏘라며 주고 가기도 한다.

이 동네선 총기휴대도 특별할 것 없는 생활문화이다. 수업시간에 부모들이 쭉 앉아 수업을 지켜본다. 앉아 있는 아빠들 중에 경찰이나 보안관들도 여럿 있다. 옆구리에는 장전된 권총(총알이 약실에 들어 있는 상태로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된다.)에 예비탄창을 두, 세 개씩 더 차고 앉아있다. 보이진 않지만 바지 아래 발목엔 작은 권총이 하나 더 채워져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처럼 꼭 2개의 권총을 차고 다닌다. 백업 건(Back up gun)이라고 해서 제1화기가 기능 고장을 일으킬 경우를 대비한다.

얌전해 보이는 엄마들도 핸드백에 권총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한 엄마가 남편이 생일선물로 사주었다며 권총을 슬쩍 보여주었다. 루거LCP 380구경, 6연발이다. 탄약실에 한 발 더 장전하면 7연발이 된다. 필요하면 15연발 탄창으로 바꿔 낄 수도 있다. 크기가 손안에 쏙 들어간다. 가볍고 얇아 여자들이 딱 달라붙는 반바지에 스포츠 브라만 입고 달릴 때 가슴 사이에 숨겨 넣고 뛰기도 한다. 전혀 무장 상태로 안 보인다. 하지만 여자라고 얕보고 함부로 추행을 하려 했다간 벌집 되기 십상이다.

“좋은 총이네요. 다른 분들은?” 그랬더니 바로 여기저기 핸드백에서 권총들이 튀어 나왔다. 서로 자기 총 자랑이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주었다. 아버지가 시집갈 때 줬다 등등. 그러자 평소 말이 적던 페기 아줌마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차에 갔다 왔다. 씩~, 웃으며 품에서 총을 꺼냈다. 44매그넘 리볼버! 20세기 말까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총으로 불렸던, 그리즐리 곰도 잡는 총이다. “Ms. Peggy, you win! (페기 아줌마가 이겼네!)"

이 동네 남편들은 이렇게 가르친단다. 누가 달려들면 배에다 대고 탄창 다 빌 때까지 방아쇠 당기고 총은 돌아오는 길에 강이나 저수지에 던져 버리고 오라고. 하나 더 사 줄 테니까.

이 동네서 송판이나 차고 검(劍)으로 대나무 베는 시범을 보이는 동안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은 품 안에 권총들을 차고 있었을 걸 생각을 하니 뜨끔했다. 안되겠다 싶어 큰 맘 먹고 나도 총 하나 샀다. 혼자서 총 쏘는 연습을 하고 총기휴대면허도 땄다. 미국 산다지만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도시의 사범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런 동네가 다 있어?’ 하며 놀래시는 분들도 많다.

많은 집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사냥을 따라 다닌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 멧돼지 배도 가르고, 사슴 가죽도 벗긴다. 다람쥐 토막치고, 칠면조 털도 뽑으며 큰다. 그러다보니 한국 아이들이 보기엔 충격적인 장면들과 피에 대해서 거부감도 없다.

한 수련생 아버지가 칼로 멧돼지 사냥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냥개들을 풀어 멧돼지를 코너에 몰아 놓고는 멧돼지에게 달려들어 큰 사냥용 칼로 심장을 찔러 버렸다. 그리곤 심장에 박힌 칼을 쥐고 마구 비틀어 돌렸다.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멧돼지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얼굴과 온몸에 다 튀었다. 총이 있으면서도 그런다. 손맛이 틀리다나....... 이런 사람이 자식을 내게 맡긴다. 위험한 세상 강하게 크게 해달라고. 나로선 참, 할 말이 없다.

이런 동네에서 함부로 ‘무(武)는 창 모(矛)자에 그칠 지(止) 자를 써서 전쟁을 그치게 하는 수단이다’라며 주먹질, 발길질만으로 실전호신술 운운하거나 이걸 배우면 무조건 이긴다.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말들은 도리어 수련생들에게 헛된 상상을 심어 주어 위험에 쳐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먹엔 주먹, 칼엔 칼, 총에 총으로 맞설 줄도 알아야 병법에 맞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총칼이 없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내는 것이 또한 무도정신이라고.

이런 동네지만 내가 총을 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한 수련생이 권총을 쏘러 가자고 했다. 나는 총이 없다고 하자, ‘사범님, 권총은 무인에게 있어서 현대식 검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예전에야 무인들이 개인 병기로 검을 항상 차고 다녔다지만 현대에 선 그럴 수 없으니 당연히 권총은 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합법적으로 권총휴대를 허용하는데 무인이 되어서 그 정도 무장도 안하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빈틈없는 임전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름 일리가 있었다.

일본의 검성(劍聖) 미야모도 무사시의 일화가 있다. 무사시가 주군(主君)을 보러 갔다. 쓸 만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말에, 들어오다 보니 문밖에 대기 중인 자들 중에 범상치 않은 자가 있다며 천거했다.

주군은 “내가 모르는 자가 있었는가?” 하며 무사를 불러들였다. 평범해만 보이는 무사에게 무사시가 “평소 어떻게 자신을 단련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예, 제가 워낙에 겁쟁이인고로 잠을 잘 때도 칼을 빼어 머리위에 매달아 놓고 잡니다.”
그 한마디에 주군은 감탄하며 바로 그에게 큰 직책을 맡겼다. 흘깃 스쳐지나가면서도 시골출신 무사의 비범함을 알아챈 무사시도 대단하고, 한순간도 방심을 하지 않는 임전태세를 갖추고 자신을 닦아온 시골무사도 대단하다.

이런 빈틈없는 이들에겐 어떤 일을 맡겨도 잘 감당해 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무인(武人)에게 있어서 순간의 방심은 죽음이다. 그러한 판에 요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에 방심하고 살아가고 있나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미국에 총기휴대 반대론자들도 많지만 총기휴대 찬성론자들의 생각은 선량한 시민들이 더 많이 무장을 해야 사회가 더욱 안전해진다는 믿음이다. 나쁜 놈들이 다 총을 들고 활개를 치는 세상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는데 언제 올지 모를 공권력만 믿고 기다린다? 총을 든 악당에 대항해 맨주먹으로 가정과 평화를 지키겠다고?

그런 생각은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미국서 살아가며 공감하곤 한다. 더구나 무인이라면서 현대의 가장 기본적인 개인병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다룰 줄도 모른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호신술에 문외한인 껍데기로 비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리 도장 블랙벨트 야외훈련에서 빠지지 않는 순서 중 하나도 사격이다. 부모들의 허락을 받고 권총사격을 가르친다. 물론 대부분 총을 쏘아 본 아이들이다. 부모들과 함께 안전하게 총을 다루는 법, 부모 없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총을 발견했을 때 대처요령 등을 지도한다.

미국에선 아이들이 호기심에 몰래 총을 만지다가 오발사고로 죽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이런 교육도 한다. 어떤 때는 경찰인 학부모에게 부탁해 도장에서 총기 안전 교육도 한다. 수 십 가지 총들을 가져와 진열해 놓고 정말 진지하게 강의를 한다.

내가 총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은 총과 관련된 강력사고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니 어떤 상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야겠다 싶었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 총기관련 강력범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내가 직접 만난 사람들 중에도 총 맞고 살아난 사람만 4명이다. 무장 강도를 직접 당한 사람은 13명이나 된다. 이 중 우리 도장 수련생도 여럿이다. 물론 나에게 그런 일이 직접 일어날 확률은 극히 적지만 내가 경각심을 가지고 일깨워 주어야 할 사람들까지 범위를 넓혀 생각하면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싫든 좋든 무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며 공공의 안전을 가르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러니 내게 허락된 병기의 성능과 장단점은 잘 알고, 파악해 상황에 맞게 쓸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도 한 수련생의 할머니가 봉변을 당하셨다. 낮에 혼자 집에 계셨는데 누가 뒷문을 부수고 침입 하려 했다는 것이다. 놀라 비명을 지르는데도 계속 문짝을 부수더란다. 할머니가 총을 꺼내다 바닥에 대고 한방, 빵! 쏘자 그때서야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덕분에 마루에 총구멍만 났다고.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실감이 났다. 미친놈들이 가까이 있구나! 이런 미친놈들이 집안에 뛰어들었다가 주인 총 맞고 죽거나 아니면 반대로 주인이 총 맞고 죽는 사건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You tube에서 Gun shot이란 단어를 쳐보면 온갖 총격장면들이 나온다. 맘 약한 사람 절대 보지 말 것!)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총도 무식하게 파워풀한 것들을 선호한다. 곰 잡는 총을 들고 다닌다. 총을 맞은 상대가 즉각 쓰러지지 않고 방아쇠라고 당긴다면 큰일이라 그렇다. 총알도 특수제작된 것으로 아주 살상력 높은 것들을 선호한다.

사실 총이 답은 아니다. 총이 있다지만 함부로 총질을 할 순 없다. 만약이라도 겁에 질려 총을 쏘고 봤더니 상황이 정당방위가 아니라든지, 주위의 애매한 사람이 총을 맞았다든지 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 책임을 다 져야 한다. 일절 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러니 살겠다고 총 쐈다가 도리어 인생 망가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겁에 질려 상황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그래서 총을 다루기에 앞서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총은 무슨 필요인가? 오래전 가르쳤던 한 수련생의 어머니가 권총 강도에게 머리채를 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이 CCTV에 찍혀 로컬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 뒤로 가게에서 항상 권총을 두 개씩 차고 일하셨다. 하지만 권총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안다. 다만 마음속에 뭔가 믿을 구석이 있다는 위안을 삼는 것이다.

즉, 총으로 인해 발생한 자신감을 방패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불안한 세상, 나름대로 정신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총기애호가들에게는 총이란 불확실한 상황 속에 던져진 자신에게, 부족한 자신감을 채워주는 상징이나 부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자신감을 갖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마담 X, 이분이 도장에 처음 왔을 때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팔짱을 딱 끼고 째려보는데 척 봐도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십대 후반에 키는 작고 뚱뚱한 몸매에 몸까지 굳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마구 따라 했다. 조심하시라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다 발목 꺾여 넘어지고. 몇 주 쉬고 다시 나와서는 파트너 마다 꼭 이겨먹고 말겠다는 태도로 마구 달려들어 다 들 싫어했다. 치고받는 겨루기가 아니라고 해도 말을 안 들었다.

싸움 붙으면 어떻게 하나, 난 언제 540도 돌개차기를 할 수 있냐. 이상한 것만 자꾸 물었다. 나도 좋게 대해줄 수가 없었다. ‘마담 X, 손은 높게, 발은 낮게. 손은 눈 찌르고 발은 낭심을 노려라. 가능한 빠르고 세게 치고 바로 뛰어야 산다. 아줌마 수준에 무슨 540도며 그게 할 줄 안다고 통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그런대도 눈치 없이 매번 비법을 물었다.

그런 마담 X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활짝 웃으며 자기성적표라며 건강검진 결과를 가져왔다. 태권도 배우기 전에는 검사항목마다 뭐하나 정상이 없었고 먹는 약의 종류도 엄청 많았는데 올해 수치는 몸무게도 20파운드 빠졌고 대부분 항목이 정상인 궤도로 돌아왔다고 했다. 작년 검진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죽지 못해 살았음이고 올해 검진 결과는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있음이었다. 이게 지난 일 년 Master Lee의 성적표이기도 하다며 태권도가 자기를 구해주었다고 극구 칭찬했다. 그러더니 따로 할 말이 있는데 남들 없을 때 얘기 할 수 없겠냐고 해서 상담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찾아 온 마담 X가 대뜸, 요즘은 집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내려 혼자 현관까지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데 그것이 너무 살맛난다는 것이다. 이 전까지는 집 마당까지 가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 남편이 마당에 서 있는 차까지 나와 자기를 데리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 삼십 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사정이 있었다.

열일곱 꽃다울 때 몸매도 좋고 한참 잘나갔다고 했다. 어느 날 밤, 치어리더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마당에 차를 받쳐놓고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서니 얼굴에 뭐가 딱 닿더란다. 그 땐 몰랐는데 그건 건장한 남자의 가슴팍이었다. 위를 올려다보자 불이 번쩍하며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깨어 보니 병원응급실 침대였다. 얼굴은 다 뭉개져서 형상을 알아 볼 수 없었고, 옷은 갈갈이 찢겨진 채 알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현관 앞에 쓰러져 있던 것을 아버지가 발견했다고 한다. 누군가에 의해 폭행에 강간까지 당한 채 버려진 것이었다. 아마도 인근에 사는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짐작뿐 범인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일 이후 망가진 것은 육체뿐만 아니라 피폐해진 영혼까지였다. 도무지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차에서 현관까지 가는 그 길이 너무 무서워 30년을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한 번의 큰 상처가 그 영혼까지 갉아먹고 그 오랜 세월 족쇄처럼 따라 다녔으니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그런데 태권도를 배우고 나서 건강도 돌아오고 체력도 생기자 자신감이 하나씩 붙더란다. 이젠 ‘그딴 놈 다시 한 번 걸려봐라! 이번엔 네가 죽는다!’라는 오기도 생겼단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정신이 상쾌해지고 사는 것이 즐겁더라고.

이 이야기를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강간 피해자를 직접 대하긴 처음 인데다가 그 충격적인 일을 상상하니 내가 다 미안하고 마음이 미어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성격 안 좋다고 미워만 했으니 속 좁았던 내가 반성되었다. 그 이후 나도 태도를 바꾸었다. 되도록 친절하게 대해주고 묻는 말에도 성의 있게 대답해준다. 그러다 보니 요즘 마담 X 실력이 부쩍 늘었다.

성인들이 하기 어려운 동작들도 제법 잘한다. 힘도 좋고 나름대로 자기 몸에 맞는 코디네이션을 익혀 안정감도 높아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다. 한 번씩 기분나라고 일부러 맞아주기도 하는데 힘이 좋아 엄청 아프다. 게다가 가끔 실수로 발이 낮게 날아들기도 하는데 그땐 나도 기겁을 하고 피한다. 그럴 땐 저거 맞으면 진짜 병신(?)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수련생들과의 관계도 무척 좋아졌다. 먼저 편하게 말도 잘 건네고 곧잘 웃어 준다. 직장에서도 대인 관계에 문제가 많았었는데 요즘 부쩍 좋아졌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마담 X를 그 지옥 같던 시간에서 구해 낸 것은 태권도라기보다 작지만 자기 안에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생겼다는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건강해진 육체 속에서 샘솟은 신선한 에너지가 그런 자신감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지혜로운 스승들의 가르침을 들어 보면 바른 수행을 하고 스스로의 기운을 맑히면 탁한 기운은 물러가고, 모든 마(魔)도 따라서 물러간다고 한다. 밝은 빛이 어둠을 내 모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자석이 자석을 끌어 들이듯이 맑은 기운은 맑은 기운을 끌어 들이고, 어두운 기운은 어두운 기운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교도소가 어떤 곳인가? 어두운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끼리끼리 어울려 고통 받는 곳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행복한 이들은 행복한 이들끼리 더 잘 어울리고, 불행한 이들은 불행한 이들과 어울려 살아갈 일이 더 많이 생긴다. 그러니 맑은 기운으로 나를 채우고 도장을 밝히면, 우리를 둘러싼 인생의 모든 문제도 빠르게 물러갈 것이다.

현대의 도장은 심신의 수련을 통해 맑고 밝은 기운을 채워 가는 에너지 충전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범은 그 에너지 충전소의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샘이 되어주어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신선한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어 저마다 새롭고 살맛나는 인생을 살게 해주는 에너지사업, 그런 사업을 일으킨다면 도장은 더 이상 퇴행사업이 아닌 새 시대에, 새로운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야 덤으로 저절로 따라 올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가치를 도장 안에서 캐낼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금맥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인간에겐 가장 귀한 금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황금, 소금 그리고 지금. 그 중에서도 지금이 제일 귀하다.

그래서 지금(只今) 나를 맑히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새로이 몸도 맑히고, 마음도 맑히고, 영혼도 맑혀보자. 싱싱한 기운을 끌어 올려 도장을 채우는 새 사업이 시작될 때 우리들의 삶이, 그리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수련생들의 삶도 더욱 밝아지지 않겠나.

[편집팀의 내부 사정으로 연재가 예정일보다 늦어졌습니다.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hotmail.com]


출처 


http://www.mookas.com/media_view.asp?news_no=1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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