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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에서의 죽음의 나날들"(1)
Korea, Republic o 천국의모모 3 434 2008-07-09 11:47:02
※이글은 제가 하나원에 있을때 썻던 글입니다. 그래서 우수상 받았었지요..








먼저 이글을 쓰게끔 기회를 주신 하나원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998년 5월달에 탈북했다가 99년도에 료녕성에서 잡혀서 신의주로 넘어갔습니다.


넘어올때는 큰 마음먹고 돈을 벌려는 생각으로 넘어왔지만 금방 매매군들한테 잡혀서 료녕성으로 팔리워가게 되였어요.


그래서 일년도 못살고 인츰 공안에 잡혀서 북송되여가게 되였습니다.


북송되여가는 그날부터 전 참혹하고 혹독한 북한의 옛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거리에 나붙은 프랑카트의 구호들과 안전원들의 웨침소리들! 보든것이 무서웠어요


신의주 보위부에서 집결소로, 청진집결소에서 xx안전부로 여기서 재판받고 증산교양소로가게 되었어요. 처음에 도착했을땐 7월27일 인것 같았어요.


경비초소에서 11호교양소까지 걸어갈 때 교하소에 다니는 여자들을 보았다.


모두 회생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은 다허약해져서 형편이 없었다.


걸어가는 동안에 우리는 교하소의 비밀을 대충 짐작할것 같았다.


여자경비원“선생이”우리를 (나외2명)데리고 11호까지 같이 갔고 도착했을때는 점심시간이였다.


모두가 행진하고 식당같은데 모여갔고 경비원은 나를 교양소 사관선생한테 갔다 .


선생님은 우리가 가지고 온 짐을 다내놓으라고 했다



우리 세명은 짐을 다 꺼내놓았다 내가 꺼내놓은 짐들을 사관선생님은 하나하나 보다가 중국에서 가지고간 세수수건을 하면서 총반장보고 밥먹이라고 했다.


총반장따라 식당으로 내려간 우리는 놀랐다 모두가 허약인 입원실 사람들이 줄을 서서밥을 기다렸다. 허약도 완전한 허약이 아니다 모두가 눈이 10리나 들어갔다.


젖가슴과 엉치는 여위여서 뼈만 앙상하였다. 나는 옥수수껍질과 옥수수눈으로 한 밥을 대충 먹고 반배치받았다


우리는 교양소에서의 초보반인 대리반에 들어갔다. 대리반은 한 20~30명쯤 되어보였다.


여기 대리반에서 열흘동안 있다가 반 배치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 대리반에 온 교양생들은 그닥 여위지 않았다.이날은 7월27일 전쟁승리의 날이 돼서 새끼돼지 고기국을 저녁 식탁에 올랐다. 그다음날은 오이 뜯으러 남새밭에 갔었다. 먼저온 대리 수용생들은 배고픈지 고추같은 오이도 막 정신없이 뜯어먹었다. 여자 경비선생이 항상 자동보총을 메고 단임선생과 함께 뒤에 따라다녔고 반장이 대렬옆에서 고조로된 긴장성으로 걸어갔다.


아침이나 점신, 저녁식사할때나 일하러 나갈때나 어쨌튼 모든게 대렬을지어가지고 “김정일장군님의 노래”들을 부르며 지정된 장소까지 걸어가야 했다.


대기실에서 10흘지나서 작업반에 배치됬였다. 내가 들어간 반은 2반이다. 이수용소에는 총7개반이 있는데 1,2,3반은 논밭,즉 벼를심는반이고4,5,6반은 옥수수와 콩을 심는 반이다. 그리고7반은 남새반이다.1,2,3반은 수전반인데 월경자들만 있고4,5,6반은 일반범죄자들만 일하였다.들어가자마자 영희란 애의 옆자리에 내가 차지하게 되었다.나는 먼저 영희에게 내소개를하고 영희도 자기소개를 하였다. 영희는 나보다 2살아래 18살이였다.그날밤 영희는 자기의 슬픈 이야기를 다했다.영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래 남한 제주도 출신이였다.


그들은 어릴 때 북한에 건너가서 늘그막에 영희를 낳은 것이다.


영희엄마가 본래 병원에서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았단다.근데 50이거의 돼서야 늦둥이 영희가 태여났단다.그래서 어릴때부터 부모들의 사랑많이 받고 자랐단다.


애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영희부모드른 영희가 태여남으로써 웃음가득,기쁨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마음한구석에는 영희랑 같이 고향제주도에 가서 살고싶은 생각은 항상 있었단다


그래서 영희부모들은 한국가려다가 적발되여 정치범수영소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했고 영희는 부모가 없는 고아가 되었다. 평상시 부모들이 영희보고 꼭 제주도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영희는 중국으로 삼국을 통해서 한국에 갈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영희의 앞길을 하나님은 열어주질 않앗다. 영희는 한국시도 하다가 끝끝내 붙잡혀서 북송되여보위부에서 한국간다고 진술하지않고 중국에서 살다가 붙잡혀들어왔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여기 이무서운 증산교양소까지 왔던 것이다. 불쌍한 영희였다.


우리는 형제를 맺었다. 동생의 소식조차 모르는 나로써는 영희가 정말 친동생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줄도 같이서고 밥도 같이 앉아먹었다.그러던 어느날 벼김매기를 할때였다. 돌피도 뽑고 풀도 뽑았다. 나와 영희도 같이 나란히 서서 풀을 부지런히 뽑았다. 한창 하다가 허리가 넘 아파 허리펴서 쭉 둘러보았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우리 2반사람들은 모둑 약속한듯 메뚜기를 잡아서 생거로 입에 다 넣는것이였다.


그리고 웃단추에는 껍질이 밝혀진 개구리가 걸려있었다. 옆에서 열심히 메뚜기를 잡아먹는 사람에게 난 물었다. “이메뚜기를 생거 어떻게 먹습니까? 맛있습니까?”


“제두 이제 그렇게 되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우리처럼 되요 그런 말 다른 사람보구는 물어보지마오 .사람들이 좋아안하오.”난 더는 물어보질 않았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날 메뚜기와 개구리를 먹겠는가!~나는 쭉 둘러보았다. 모두가 허약이돼서 메뚜기 잡아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쓰려났고 이런 속에서 교양생 생활을 해나가는 이 사람들 ,아니 죄도 아닌 죄 때문에 여기로 들어와서 배고푼 고생을 왜 해야 하는지... 이사람들 언제면 지옥같은 이소굴에서 빠져나가겠는지.. 근심스러웠다.


며칠이 지나자 나와 영희도 이사람들처럼 메뚜기를 잡아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처음에는 좀 두려웠다. 하지만 교양소에서 주는 밥가지고는 도저히 고픈배의 만족을 채워주질 못했다.


그러나 개구리만큼은 정말 먹질못했다.



나와 영희는 하루에 몇백개의 메뚜기를 잡아먹고 풀도 먹었다. 제일 맛있는 풀은 냉이풀이였다. 그냉이 풀이 왜 그렇게 맛있던지..죽을둥살둥 그 풀을 뜯어먹었다. 하루는 이날도 우리는 논밭에 바지를 걷어올리고 논밭에 들어섰다. 메뚜기는 많으나 선생이 딱 지켜서고 있어서 메뚜기를 잡지못하고 김만매였다. 나와 영희는 제일 앞장에 서서 김매고 논뚝에 있는 냉이풀을 뜯으려고 냉이 풀에 손을 댓다. 순간 커다란 구두발이 나와 영희의 손에 와닿았다.올려다보니 담당선생이였다. “김은 안뽑구 뭘해?야 이간나새끼들아~” 선생은 큰 구두발로 우리의 손을 마구 비벼댔다. 순간 손껍질이 발가지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짜릿릿해나는데 그 고통이루말할 여지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난 영희를 보았다. 영희는 너무도 아파 이를악물며 선생한테“선생님 잘못했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잘못한거 알기나 알아?”선생은 우리보고 무릎을 끌라고 하였다. 피트성이 손으로 무릎을 쥐고 끌고 앉았다.


선생은 반장보고 냉이를 호미로 흘채로 캐라고하였다. 반장은 한뿌리 다칠세라 캐여서는 선생앞에 2개를 가져다 놓았다. “너희들앞에 이쓰는 이풀을 흙채로 다 먹으면 일어나가거라 만약 다먹질 않으면 가만두질 않을 것이다.” 선생은 우리를 노려보았다.


할수없이 나와 영희는 피투성이된 손으로 흙이 가득묻은 냉이를 뿌리채로 입에 넣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고 마음속에서는 복수의 피가 끓었다. 입안에서는 흙 때문에 씹지를못하고 잘넘겨지지도 않았다. 선생은 “하하”웃으며 “야 이간나들아 남들이 일할 때 냉이를 먹곘다구 하니깐 이런 처벌이 내리지..또 그러겠니?” 하면서 가라고 하였다.근라밤 나는 깝질 다발가진 영희의 두손을 나의 내의로 싸매주면서 꼭 안아주었다. “영희야 괜찮아.~!~ 우리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나가서는 꼭 잘살자 다시는 이런곳에 오지말자”우리는 전등도 없어서 켠 등잔불밑에서 “고향의 봄”을 조용히 울면서 불렀다. 난 영희를 꼭 같이 데리고나가서 같이살리라 마음먹었다. 이세상에서 혼자밖에 남지 않은 영희, 이불쌍한 영희는 지금은 이안에서 나 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오로지나만 믿고 나만 따르는 영희를 나는 교양소에서 그누구보다도 사랑하였다 .





다음 호에 계속하여 "2"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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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제대로알자 걸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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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원 2008-07-09 13:26:09
    이글을 쓰신분에게! 혹시 하나원 97기 졸업생이 아니신지요, 내가 당시 직접 읽어보았던 글과 너무도 똑같네요. 안경을 끼셨지요, chw-9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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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승 2008-07-09 16:04:25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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