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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더러움에 빠뜨리고 어둠속에서 웃고 있는 너희는 누구냐?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38 2008-10-07 11:14:56
1.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肉體(육체)의 快樂(쾌락)을 정신적인 사랑으로 認識(인식)하는 思考方式(사고방식)은 영혼을 가진 인간의 기본을 무시한 어쩌면 强要(강요)이고, 그것은 인간의 靈魂(영혼)을 무시 말살하는 공산주의적인 요구이고, 그 결과는 動物的(동물적)일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그런 것은 반드시 根絶(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式(식)으로 국민들이 길들여가고 있다면 隱然中(은연중)에 共産主義的(공산주의적)인 思考方式(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쾌락에 국민은 젖어가고 있는 셈이 된다. 自由民主主義(자유민주주의) 思考方式(사고방식)에서 나오는 健全(건전)한 쾌락을 누리는 국민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일을 반드시 해야 비로소 救國(구국)의 의미를 다할 수 있게 되는 機會(기회)를 얻게 된다. 나라를 구하려는 자들은 국민의 底邊(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 의식의 의미를 살펴보며, 그 기준치의 가량을 통해서 국가사회의 深層(심층)심리 기저 의식세계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2. 사랑을 위해 사는 것이 人生(인생)이다. 건전한 사랑이 아니면 가정이 깨지는데, 그 사랑의 기준이 末梢神經(말초신경)을 자극하는 濃度(농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라면, 이는 무신론자들의 인간 영혼 속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기들의 주장만을 세우려는 만행적인 焚書坑儒(분서갱유)적 사안이다. 이런 의도된 倒錯(도착)의 의미가 아주 강하게 제시되는 것이 오늘날 김정일 주구들의 남한 내의 파괴공작의 기본적 임무일 것 같다. 그것이 서구적인 곧 아마도 商業的(상업적)인 性(성)으로서 인식을 얻게 되는 것으로 遁甲(둔갑)을 하여 國民(국민) 곁에 가까이 있어 국민의 눈을 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오랜 人類(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을 원리와 그 사상을 부정하고 각기 나름의 실험적인 사상을 가진 인간은 성의 無限性(무한성)의 표현에 挑戰(도전)해 왔고, 그 기본원리에서 다양한 표현기법을 추구하여 말초신경을 甘味(감미)롭게 하려고 하였다. 인간이 세상에 사는 것은 다만 그런 말초신경을 감미롭게 하는데 있다고 보려는 자들은 이런 性的(성적)인 감미와 더불어 食貪(식탐)의 감미 곧 혀끝의 감미에 젖어 살게 된다.

3. 오늘날 인간은 이렇게 두 가지 充足(충족)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것에 力說(역설)을 힘주는 자들이 오히려 많아진 것은 그동안 김정일 주구들이 그런 일을 主力(주력)하였다는 말이다. 서구문명에 나타나는 쾌락추구의 현실과 大同小異(대동소이)하게 보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는 다만 時代的(시대적)인 흐름으로 여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意圖的(의도적) 倒置(도치)라고 하는 것, 곧 김정일 적화공작의 목표라는 것을 인식하는 자들이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性(성)의 쾌락증대의 기술적인 고찰은 모든 남성의 꿈같은 변강쇠的(적)인 것이다. 이런 기술의 과학적인 발전의미가 첨단 의약품과 치료기술의 개발과 다양한 레퍼토리로 가능한 性(성)의 힘을 부여하려는 努力(노력)의 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부부 밖으로 뛰쳐나가서 불륜의 사랑을 하는 것도 反社會的(반사회적)인 것인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이 사랑이고, 사랑이 곧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反(반)헌법적이고 反(반)국가적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반사회 반국가의 흐름은 반드시 停止(정지)시켜야 하는 것인데.

4. 성의 쾌락 곧 이런 것은 결코 他人(타인)의 自由(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부부간에만 가능한 것으로 이끌어가야 국가와 사회적인 健全(건전)성을 竪立(수립)할 수가 있게 된다. 인간의 靈魂(영혼)을 否定(부정)하는 性(성), 영혼의 사랑을 否定(부정)한 性(성)의 膨脹(팽창)은 결국 세상을 無神論者(무신론자)들로 곧 공산주의자들로 意識化(의식화)하는데 一助(일조)하게 한다. 自由民主主義(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을 수용할 수 없어야 한다. 北(북)의 그들은 反(반)종교의 자유로 그것을 가능케 하겠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결코 무신론자들은 공산주의자와 동일한 의식의 출발이라는 것을 認識(인식)해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 無神論者(무신론자)들이다.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발전해가고 膨脹(팽창)하고 있는 性(성)의 타락의 끝은 亡國(망국)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때문에 이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데, 인간의 자랑인 貞操(정조)와 영혼의 사랑과 그 도리를 버리고 자기들만의 말초신경의 만족을 위해 사는 문화는 참으로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稀薄(희박)하게 보인다.

5. 그런 방치가 어쩌면 반사회성을 넘어 반국가적인 災殃(재앙)을 불러오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된다는 憂慮(우려)이다. 사람의 심층심리가 사람의 無意識的(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경우가 茶飯事(다반사)이다. 이런 基底(기저)에 깔린 심리들이 결국은 공산혁명을 꿈꾸는 김정일 주구들의 혁명화 力量(역량)으로 操縱(조종)당한다고 한다면, 그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측면에서 위험한 부류로 생각해야 한다. 역사에서 폼페이 최후의 모습이 일거에 드러나서 사람들은 경악을 하게 된 것이 곧 그들의 赤裸裸(적나라)한 성의 표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화산이 폭발하여 죽어가도 피할 수 없는 쾌락에 젖어있는 인간의 矛盾的(모순적)인 行動(행동)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화산을 곁에 두고 사는 인간이 인간을 건지려는 노력을 처음부터 포기한 것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의 책무를 저버리고, 도리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으로만 세월을 보낸 자들이 거기에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런 대가를 받게 된 것이고, 그것이 그대로 오늘날 드러나는 것은 末世(말세)를 당한 인간에게 警鐘(경종)을 주고자 함에 있다.

6. 인간의 삶을 幸福(행복)하게 하는 것은 末梢神經(말초신경)의 자극을 위해 살아야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한 종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반문은 거기서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김정일 주구들의 평생 恨(한)이 되는 모양인데, 그것을 혁명화 역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鼓吹(고취)당하고 背後(배후)에서 流行(유행)을 선도하는 것에 생각 없이 따르는 자들의 욕심은 그들로 그것에 열렬한 지지 세력이 되게 한다. 이제 인간은 그런 것을 통해 문화적인 基盤(기반)을 얻고, 정신적인 企待(기대)를 가지고 본능을 美化(미화)하고, 그것을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 나름대로 性(성)의 인식으로 인해 자기 論(론)을 추종하는 자들을 곁에 모여들게 한다. 거기서 그들은 각양 性(성)의 쾌락을 만들어가고 누리고 있고 ,그렇게 모여지는 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못할 만큼 많은 것 같다. 사실 本能(본능)에 충실한 종의 의미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허망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간의 성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일 뿐이다.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에 노예가 되어 고통을 받게 된다.

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사실 남편 6명이나 두었어도 채울 수 없는 성의 갈망은 인간 속에 꿈틀거리고 있고, 그런 것은 마셔도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되는 虛妄(허망)성의 의미가 인간의 굴레가 되고, 멍에가 되는 本能(본능)인 것이다. 그 찰나의 快感(쾌감)을 쫒아 많은 수고를 하는 인간의 奴役(노역)은 참으로 고통스럽게 한다. 모진 노력을 다해 法網(법망)에 걸려 감옥에 갈 때는 가더라도 칵테일 性(성)으로 여러 가지 痲藥(마약)류와 겸비한 인생의 모진 노력은 쾌감을 위해 얼마나 강한 執着(집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는 진정한 사랑의 수고 없는 쾌락의 추구, 곧 육체의 노력으로만 얻어내려는 성의 쾌락 追求(추구)라고 하는 것에서 사회의 영혼을 가진 인간의 도리와 정신적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기쁨만을 위해 육체를 고달프게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의 의미를 말한다.

8. 인생은 기쁨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 되는 셈이다. 無聊(무료)한 일생에서 참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고, 그 대상이 여성이라는 것을 발견한 아담의 의미는 참으로 興奮(흥분)된 절제의 시간을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존재의 꿀을 따는 시간에 달콤함에 젖어가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영혼 속에 두신 사랑으로 열리는 모든 性(성)의 소리가 한꺼번에 깨어나면서 들려오는 저 신비한 바다의 갈망하는 파도소리를 듣게 된다. 그 파도가 말려오는 하늘아래 갯바위를 치는 물보라에 갈매기의 소리들을 들으면서 젖어가는 인생을 여는 아담과 하와인 것이다. 그것이 아담이 눈을 뜨게 하는 性(성)이고 하와가 온 몸으로 깨닫는 性(성)의 파도소리들일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靈魂(영혼)의 사랑으로 인해 들리고 들려주는 性(성)의 아리아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간의 계속 곧 다함이 없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의 기회는 또 다른 기약을 위해 일어서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배고픔의 의미 곧 배를 채우면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같은데. 그 후에 타락한 인간은 긴긴 餘韻(여운)을 꿈꾸는 갈매기의 꿈은 저 바다의 파도소리처럼 요란하기만 한 세월의 더러운 바다거품이 되어 해변에, 그 고독의 바닷가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게 하였다는 것이다.

9. 여자가 온 몸으로 성을 깨닫고 나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空間(공간)이 발생하게 된다. 이름 하여 고독의 바닷가를 갖게 되는데, 그것을 채우는 남편의 의미와 아내의 의미는 결국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이 나올 수 없는 성의 기쁨에 있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악마가 주는 기쁨이 솟는 성적 행동 곧. 墮落(타락)한 현대적인 性(성)의 개념은 성의 쾌락을 다만 사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영혼의 사랑 곧 마음에 우정이나 사랑의 정조나 서로를 책임지고 짊을 져주는 이웃사랑의 의무 등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다만 그것을 채우는 인생의 意味(의미)로만 만들어가는 인생들이 저 길에 가득하다고 한다. 사랑이 쾌락이고 쾌락이 사랑이라면 온 몸을 즐겁게 해주는 能力(능력)이 많을수록 성의 사랑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充足(충족)되지 않는다면 결국 헤어져야 하는 것인데 이런 고개 숙인 남자의 의미로서의 性(성)을 극복하는 것이 현대판 비아그라의 의미로 보려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랑을 늘 확인하고 살아야 하는 그 동물적인 근성들이 가득한 인식의 거리라면 다가오는 가을의 의미는 매우 애처로운 것이 된다. 인간은 기쁨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할진대 그런 기쁨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 것인가의 의미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게 하는 快諾(쾌락)의 의미는 무엇인가?

10. 사랑이 末梢神經(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이고 그런 쾌락이 곧 사랑이라면 인간사의 정조나 관계성의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쾌락의 의미는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의 사이에서 언제나 갈망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회는 기쁨을 論(논)한 학문의 의미가 무엇일가에 나름대로 具色(구색)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인간을 기쁘게 한다는 것에 대한 상품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그런 것의 인프라를 만들어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기쁨에 대한 판매인 셈인데, 다만 성을 소재로 하여 상품의 거리가 곧 공창의 유곽 또는 성의 쾌감증진을 위한 산업의 상품이 진열한 거리들일 것이다. 이 말고도 전국적으로 성행하는 인간의 의도적인 일탈의 의미가 거기에 가미되고 또는 주택가로 파고드는 모든 성의 配慮(배려)가 거기에 어려 있다면 타락한 성만이 인간의 唯一無二(유일무이)한 기쁨의 출구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타락한 성에 종이 되어 사는 곳인가? 그 속의 인간에게 그 자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그것에 대한 追跡(추적)을 하는 고민은 없어, 다만 너를 만나 한번 실험해보자. 일단은 서로의 속궁합을 알고 서로의 미래를 논하자는 계산적인 내용이 그들의 대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11. 망국적인 현상이고 나라가 무너져도 책임질 자가 없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부족한 탓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합법적인 참된 기쁨의 길을 제시하여 그런 길을 통해 국민이 건전한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만족하게 하는 문화의 축적을 요구해야 한다. 이 나라가 60년의 세월은 유구한 것의 한 티끌 같은 時間(시간)일 뿐이다. 때문에 아직은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축적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인간에게 반드시 가야 할 기쁨의 道(도)를 구축해 주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고속도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쾌락추구의 無秩序(무질서)한 길을 다 整備(정비)하고 자유민주주의 인간은 자유인이고 자유인의 기쁨은 이 길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이정표를 가진 기쁨에 이르는 길의 구축의 인프라를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합법적인 것이고, 또한 헌법적인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육체의 기쁨이나 정신의 기쁨이나 또는 영의 기쁨 등등을 모두 다 고려하여 적어도 헌법이 요구하는 기쁨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 길로 가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모든 국민이 그 길로만 다니도록 할 必要(필요)가 있다. 어차피 국가는 법으로 국민을 제약하기 때문에 기쁨을 추구하는 것도 반드시 制約(제약)할 필요를 갖게 된다.

12. 부모의 선택은 자녀들의 기쁨추구의 의미에 있을 것 같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빗나간 기쁨에 젖어 산다면 부모 속을 상하게 한다. 범죄의 행위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마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때문에 자녀들이 건전한 기쁨에 그 종류대로 즐거워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없는 다만 한순간에 느끼는 쾌락으로 인해 사랑을 인식하려는 그 感覺的(감각적)인 의미는 마치도 모래성과 같이 한순간에 파도가 스쳐 지나가면 무너지는 사랑이다. 국민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반문에 政府(정부)는 답해야 한다. 정부는 나서서 바로 살아가는 길을 답해주고 인도해 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쁨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에 분명한 답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기쁨의 도를 제시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인간에게 참된 기쁨을 제시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나라를 건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가페 사랑의 진정성으로 북한 인권을 돌아보고 그들을 건지는 기쁨에 젖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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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그것은 김정일類(류)의 기쁨이다. 반드시 제압하여 그들을 悲嘆(비탄)에 빠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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