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 되었나? (에버슈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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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 되었나? (에버슈타트) 몇 달동안 침묵을 지키던 미국 워싱턴의 한국通, 미국기업연구소의 닉 에버슈타트 박사가 지난 1월 21일, 더 위클리 스탠다드 잡지 인터넷에 “무엇이 잘못 되었나, What Went Wrong?” 란 장문의 논설을 실었습니다. 빌 클린턴의 대북 팀이 너무들 잘못해서 1994년 눈가리고 아웅식의 합의문 Agreed Framework으로 새버렸던 대북정책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잠시 (약 2년간?) 제대로 가는 것 같더니, 부시 2기에 들어서서는 클린턴 시절의 눈가리고 아웅보다 더 한심한 갈팡지팡 정책으로 변했습니다. 부시 팀은 아예 눈가리고 아웅 하지도 않고, 무골충 직업외교관 크리스 힐을 6자회담이란 사기극에 내세워 김정일에게 시종일관 아부 굴종 양보하기에 바빴습니다. 답답하던 에버슈타트 박사가 클린턴과 부시의 대북정책을 정확하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신임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선임자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잘 해달라는 부탁인데, 지난 몇 해동안 북한에 관한 에버슈타트 박사의 논설 칼럼들을 거의 전부 번역해온 역자로서는 이 논설을 읽고 더 답답하기만 했지, 별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바마/힐러리/웬디 셔먼 팀은 클린턴/부시2기 + 김대중/노무현의 대북 햇볕포용정책을 또 그대로 승계 추진할 확률이 많습니다. 오바마는 6자회담도 계속할 것이고, 대북 퍼주기도 계속하겠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이 캄캄한 현실과 앞날을 보면서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북한인권 엔지오들과 탈북동지들은 북한인권 운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김정일의 장난감 핵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오로지 북한인권만 떠들어대야 합니다. 등잔불이 꺼지고 뿌린 씨조차 없을면, 북한동포들은 물론 불쌍한 우리 후손들 설 땅이 없어집니다. 에버슈타트 박사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입니다. 가물가물 하더라도 등잔불은 지키자! 5년 후 10년 후 100년 후일을 위하여 오늘 씨앗을 하나라도 뿌리자! 2009년 1월 23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옮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PS: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에버슈타트 박사가 부시 팀에 대하여 배떠난 다음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에버슈타트는 부시 임기 때에도 위에 적은 내용을 자주 주장했었고, 백악관 보좌관들에게도 이런 직언을 퍼부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설이 무척 길어서 영어 원문은 실지 않습니다. 원문을 읽으실 분들은; http://www.weeklystandard.com/Content/Public/Articles/000/000/016/024opizu.asp 위클리 스탠다드 사이트에 실린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What Went Wrong? 더 위클리 스탠다드, 2009년 1월 26일자 논설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씀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박사는 이 논설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왜 실패했나 분석 평가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나, 전략을 조언한다. – 더 위클리 스탠다드 후세 사람들이 조지 W. 부시 정권의 실책(失策)을 논할 때, 그중 제일 두드러지게 잘못한 사례가 바로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지난 8년간을 돌아보면 부시 팀은 간헐적으로 김정일과 그의 정권에 강경하게 나간 적도 있었지만, 사실 부시 팀의 대북정책은 거의 시종일관 패배와 후퇴의 연속이었다. 부시의 임기가 끝난 지금,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그 어느 때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많아지고 위험해진 것이 사실이다. 부시정권 기간, 북한은 공개적으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더 한심한 일은, 북한의 핵 확산을 막을 방도가, 부시가 취임했을 당시보다 지금 더 가망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부시정권은, 김정일이란 괴물딱지가 꽉 틀어쥐고 있는 북한이란 노예국가를 조금도 바꿔놓지 못했다. 부시는 “악의 축”이라느니, “자유의 전진(前進) Freedom on March”이라고 말로만 떠들어대었지, 현 북한체제의 야만적 폭정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고, 북한은 그동안 개혁 개방하라는 인접국들의 권유를, 내 배 째라 하는 식으로, 들은 척도 안 한다. 도무지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나? 요즈음 워싱턴 정가(政街)에서는 부시의 대북실책(失策)에 관하여 “배울 것이 많다”고들 뒷공론이 많은데, 특히 새로 들어서는 오바마 정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한다고 들었다. 오바마 진영(陳營)의 비판을 들어보면, 부시정권은 대북정책에서 3가지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1) 부시 패거리들, 소위 더비아Dubya들은 북한문제를, 이전 클린턴 정권의 실용적이고(pragmatic) 유연 교묘(nuanced)했던 “포용정책 (engagement)”을 무시하고, 이념적 도덕적 측면에서만 접근했다; (2) 부시 수하들은 꼴보기 싫은 적들과는 협상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3) 부시 팀은, 이런 힘든 문제가 꼬일 때 “최고위층 간의 직접대면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생각조차 안 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여러 번 말한대로 “사전(事前) 조건” 없이 상대방과 얼굴을 맞대고 협상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오바마 진용에 있는 부시 비판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새로 들어서는 오바마 정부가 앞으로 대북정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지 대충 감(感)이 잡힌다. 그러나, 부시 정권 시절,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무슨 이유로 갈팡질팡 했었나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정확한 분석에는 신경들을 쓰지않는 것 같다. 모두가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비판만 되푸리하고 있다. 워싱턴에 새로 들어오는 정권의 대북정책 팀이, 왜 부시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는가,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하지 않으면, 이들도 또 부시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든지, 아니면 부시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제 오바마 팀의 부시 비판을 조목조목 차례대로 따져 보자. (앞으로 오바마 정권에서 대북정책을 주도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이 사람들은 지난 역사를 열심히 다시 쓰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클린턴 시절의 미북관계도 황금기는 아니었다. 클린턴 시절, 평양 정권과의 “포용정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의도적 자기기만(欺瞞)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들의 자기기만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미국시민들까지 북핵문제에 관한 지난 역사를 착각하게 만들어 놓았다.) 클린턴의 2차 임기가 끝날 무렵, 클린턴 정권의 고위관리들이 북한과의 핵문제나 기타 여러가지 난제들을 외교적으로 일괄타결 breakthourgh 하게 되었다고 즐거워 했을 때,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 약속해놓고도, 실제로는 몰래 우라니움 농축무기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었다. 북한이 그때 저지른 불법행위들은 이제 모두가 다 인지하는 공공연한 사실이고, 이런 정보는 미정보기관에서 밝힌 것이 아니라, “이슬람 핵무기의 대부(代父)”라고 불리우던 파키스탄의 A.Q. 칸 박사란 자가 까발긴 진실이다. 그런데도 클린턴 정권의 “호전적 포용정책가 engagement hawks”들은 북한의 이러한 사기전술에 관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신화, 즉, 김정일과 “최고위급 회담”을 추진하면 (2000년 10월, 미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한 것 같이), 미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고 믿는 쪽으로 일을 밀어부쳤다. 그러나 이런 신기루같은 미북관계의 진척(進陟)이란, 미국관리들이 자신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사실들을 외면했을 때만 가능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현재진행형인 “북한의 핵위기”란 부시정권의 외교관들이 2002년 북한 측에게, 너희들이 우리를 속여왔다는 증거를 내밀었을 때 터진 위기였다. 클린턴 정권의 1차 임기 때, 북한정권과의 속칭 “포용 합의”란 것은 미관리들의 이러한 자기기만으로 가능했었던 것이고, 당시에는 진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그 결과는 딴 합의나 마찬가지로 북한 측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 이런 것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가 워싱턴과 평양의 사절단이 서명한 클린턴 팀의 1994년 “제네바 합의문 Agreed Framework”이란 것이 있었다. 당시 이 제네바 합의는 대단한 외교적 성과라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후 클린턴 관리들은 이 합의문이야말로 “북한 비핵화”의 길잡이 roadmap 이라고 자부했었다. 안된 말씀이지만 이 합의문에는 작은 글씨로 쓴 주서(註書)가 달려 있었다. 미국이 종국에는 북한에게 핵발전소를 지어주겠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이 합의문에는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輕水爐) 2기를 지어주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은, 1992-1994년 첫 번째 “북핵위기”를 해결한다고 클린턴 정권이 한 일은 북한에 더 많은 핵물질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제네바 합의문”에 관여했던 사람들중 몇몇은 당시 북한에 지어주기로 제안했던 원자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니움은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안전한” 플루토니움이라고 떠버렸었는데, 이 세상에 “안전한” 플루토니움이란 있을 수가 없다.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핵폭탄도 이런 식으로 둘러댈 수 있는 “안전한” 플루토니움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제네바 합의문”은 북한이 2002년,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고 내지르는 통에 하루아침에 무산되어 버렸고, 지금까지 북한의 핵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한심한 전철, 미국이 북한에 계속 양보나 하고, 김정일 정권의 “평화적” 핵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이 지금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클린턴 시대의 “포용정책”에 관해서는 이제 그만 떠들기로 하자. 그런데 김정일과 “고위층 회담”으로 외교적 해결을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은 또 어떠한가? 지금 오바마 진영에 속한 사람들 일부가 친애하는 령도자와 “고위층 회담”을 할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떠드는데, 북한에 있는 친애하는 령도자와의 고위층 회담은 벌써 여러 번 있었다. 지난 10여년간, 김정일은 미국무장관과도 직접 만나보았고, 일본 수상과도 만났고, 전직 남한 대통령은 두 사람 모두 만났었다. 이 “고위층 회담”은 클린턴 시절 두 번 있었고, 부시가 들어선 후 두 번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고위층 회담”은 모두 외교적으로 별볼 일 없는 결과, 특히 평양을 찾아간 외국 고위층들에게는 별볼 일 없는 회담이었다. 김정일은 2000년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에게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에 관하여 거짓말을 했고, 2002년 북한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수상에게는 납북된 일본인들에 관하여 거짓말을 했다. 김정일은 2007년 평양 정상회담에 간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적으로 홀대했다. 이 정상회담에서 이렇다 할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런 정상회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선임 김대중 대통령과 친애하는 령도자가 2000년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만난 것은 정말 굉장한 “고위층 회담 합의”로 보이긴 했는데 (이 회담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사진찍기 위하여 현찰을 갖다바친” 회담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은 남한 대통령이 남한국민들의 세금 수억불을 갖다바치겠다고 몰래 약속한 후에야 남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허락했고, 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후일 전국 텔레비 방송에서 국민들에게 자신의 사기행각에 관하여 사과했고, 김대중 씨와 친애하는 령도자의 정상회담을 주선했던 김대중 씨의 수하들은 이후 남한 법정에서 징역형을 언도 받기도 했다. (김정일과의 고위층 회담에서 실제적 합의를 본 회담이 있기는 있었는데, 2001년 김정일이 모스코에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만났을 때, 이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지체없이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제안에 합의했었다 – 이런 합의도 진전이라면 진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평양정권이 자신들의 이전 입장에서 딴 방향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외국 지도자들과의 “고위층 회담”에서 회담 후 김정일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친애하는 령도자께서는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런 고위층 회담에서는 북한정권에 이득이 되는 일, 사전에 이미 정해놓은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이런 회담을 최대한 이용했다. 김정일이 이러는 것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놀라운 일이 있다면 딴 사람들이 이런 회담으로 김정일이 변화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미국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마주 앉으면 갑자기 김정일이 감화를 받아서 변할 지도 모르겠다는 망상 (지난 30년간 선군정치와 핵개발을 한 번도 늦춘 적이 없는 사람에게)은 망상이 아니고 굴욕이다. 마지막으로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이 외교적 활동의 부재(不在)로 실패했다는 비판을 다시 살펴보자.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약 1년 반 동안 북한과 비교적 접촉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공백기는 부시정부의 외교 팀이 “대북정책 재고(再考)”랍시고 시간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고, 김정일도 부시의 외교관리들은 만날 필요가 없다고 수개월간 옹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미국과 북한은 셀 수 없을 없을 정도로 자주 만났다. 양적으로 보면 클린턴 정권 때보다 부시 임기 때 미국과 북한이 훨씬 더 자주 만난 것이 사실이다. 지난 5년 반 동안,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하여 “6자회담”이란 다자회담 형식(중국, 일본, 러시아, 남한을 포함하여)으로 계속 만나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두 나라 외교관들은 수천 시간을 들여서 본회담이다, 비공식 협상이다, 계속 직접 만나서 얘기들을 했고, 이 6나라 정부는 6자회담을 통하여 (미국무부가 “북한 핵제거 실행기획서”라고 명명한 합의까지 포함하여) 최소한 2개의 합의를 끌어 냈었다. 간단히 말해서, 부시 정부가 북한과 회담을 안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다. 부시정권 임기 말, 지난 2년간은 부시정부 외교관리들은 거의 풀타임으로 끝장이 안 보이는 이 회담에 매달렸었다. 문제는 두 나라, 여섯 나라가 그토록 열심히 만나서 열심히 “비핵화 회담”을 했는데도, 북한은 핵을 제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핵을 제거하기는 커녕, 사실은 그와 정 반대이다. 이런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점점 더 진짜 핵보유국처럼 행동하게 되었고, 국제 회담으로 북한의 핵을 제거할 가망성이란 점점 더 희미해 보일 뿐이다. 지난 달 북경에서 열린 부시 팀의 마지막 6자회담에서는, 북한이 “외부의 핵검증 방법”에 반대한다는 생떼로 회담이 깨어졌고, 북한은 이제 부시가 임기초 북한에 주장했던 핵비확산 국제조약을 다 구겨접어서 휴지통에 처넣어 버렸다. 외교적 승리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데 – 이 경우의 승자는 김정일과 김정일의 졸개들이었다. 이래도 오바마 팀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부시 정부가 왜 대북정책에 실패했나, 진짜 이유를 찾아보자. 부시가 대북정책에서 실패한 이유는, 정상회담을 안 해서도 아니고, 협상을 덜 해서도 아니고, 클린턴 식의 “포용”을 안 해서도 아니다. 그리고 부시의 비판세력들이 계속 들먹이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부시의 이념적 아집(我執)도 아니다.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조지 W. 부시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진실과 북한의 숨은 의도를 인정사정 없이 매도했을 때,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몰아부쳤을 때가, 클린턴 정부 “북한 팀”의 판단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아니, 부시의 대북정책이 잘못된 이유는, 부시가 김정일 정권을 혐오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부시 대통령과 부시 외교팀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한 대북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 이런 위험한 정권을 외교적으로 다룰 때는 방법과 목표가 처음부터 분명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접근해야 했었는데 부시 팀에게는 그런 전략이 전혀 없었다. 부시가 북한문제에 실패한 이유는 지난 8년간 임기 초부터 마지막 날까지,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일을 일방적 강압적으로 밀어부쳤다고 (부당한) 비난을 받아온 부시 정권이, 가장 위험하달 수 있는 敵國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믿기힘들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시가 백악관에 들어섰을 때, 부시 관리들은 – 私的 公的 가릴 것 없이 – 클린턴 정권의 대북정책은 완전 실패작이라고 씹어대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신랄한 비판 뒤에는 확실하고 새로운 대북정책 대안이 있겠거니 믿었었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까, 부시 팀은 자신들이 매도했던 클린턴 정권의 대북정책을 기본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클린턴이란 이름만 달렸으면 무조건 매도해버린 것이다. 이제는 비밀도 아니지만, 당시 부시 팀에게는 ABC, 즉 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만 아니면 아무 것도 괜찮다) 가 모든 정책의 기본방침이었다. 부시의 대북정책 팀도 이 “ABC”를 자신들의 금과옥조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북한이란 큰 문제를 어떻게 해야 작은 문제로 줄일 수 있을 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획이나 지침이 없었다. 이렇게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부시 정부에 대북정책이 부재했다는 조짐은 처음부터 보였었다. 부시 임기 초의 “대북정책 재고”가 그렇게 오랜 시간 질질 끌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2002년 6월,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거의 1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무부 부장관은 대북정책에 관하여 “우리가 마음을 정한 후에, 우리는 우리의 우방 남한과 일본에 가서 대북정책에 관한 의논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1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까지 분명한 대북정책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후 또 2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2004년 10월,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속내을 다 드러내 보였다. 그날 그 인상깊은 인터뷰에서 파월 장관은 CNN 기자의 질문에, “우리[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레드 라인 –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없다는 것은 대북정책이나 전략이 없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렇게 역설적으로, 부시와 부시 보좌관들은 당시 김정일에게 공공연하게 적개심을 드러내 보이고 강경해 보였지만, 그들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큰 위협이었던 북한정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아무런 기획도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친애하는 령도자 김정일과 그의 정권에는 철저하게 부정적이면서도,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상태였다. 이렇게 중심을 잃고 목적지없이 표류하면서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은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 정책과 전략없이 국제무대에 나섰다가는 십중팔구, 상대방에게 깜짝 놀라거나 맥없이 당하기가 십상이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다국적 상대들에게 “장군” 장기수를 몇 수나 마련해놓고 나섰는데, 부시 팀은 “멍군”은 커녕 북한이 “장군”을 부르리란 것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깜짝깜짝 놀라기만 하는 아마추어들이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2002년 말, 미국은 북한에게, 너희들은 비핵 약속을 어기고 몰래 우라니움 프로그램을 개발연구해왔다고 내질렀는데,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영변의 플루토니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자, 그에 대한 후속대책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이 대결은 6자회담이란 다국 협상회의로 이어졌으나, 부시 정부가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나 철저한 준비가 없기 때문에 북한에 질질 끌려다닌 것은 나중에 더욱 분명해졌다. 북한의 핵위협을 축소시키고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펼친 부시 외교가 한심하게 계속 실패한 것은 이 6자회담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이에 관련된 딴 나라들과의 외교에서도 계속 기회와 실리를 놓지고 잃었다. 부시 임기 초, 김정일 정권에 제일 많은 지원을 퍼준 나라는 중국과 남한이었고, 이 두 나라가 당시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하지 않았더라도, 이 두 나라를 미국의 대북정책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외교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국제무대의 외교에서 이런 일들은 항상 일어나는 일들이고, 유능한 외교관들이라면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대한 관심과 득실이 있었다 –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로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협력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잘 설득했으면, 북한으로 인한 더 나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국이 미국과 협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 수도 있었다. 남한의 “햇볕정책” 정권들을 돌아보자. 이 정권들은 자신들을 괴멸시키겠다는 북한정권보다 자신들을 보호해온 미국을 더 의심한 정권들이었다. 그러나 열린 사회였던 남한에서 반미 친미 세력들이 대결했을 때, 미국은 남한의 애국 친미세력과 손잡아 남한의 대북정책을 미국 편으로 돌릴 생각은 안 하고, 남한정권이 왜들 저러나, 속은 상하면서도 팔장을 끼고 구경만 했다. 그래서 결국 남한 유권자들은 지난 선거에서 반미세력을 내몰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지만, 일이 이렇게 진전되자, 이제는 오히려 부시의 대북 팀이, 남한에서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지도자가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세월이 되었다.) 이렇게 무정책 무전략으로 일관한 부시정권이 중국이나 한국과의 양자외교에서도 갈팡질팡 실수한 것은 전적으로 인과응보라 할 수 있겠다. 부시정권이 이라크 전쟁으로 정신이 없고 재정도 바닥이 났지만, 미국에게는 그래도 북한의 핵위협에 국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었고, 아직도 갖고있다: 미리 강조를 해야겠지만, 전쟁이 아닌 딴 방법들이 있었다. 부시 팀이 전략적 비전이 있는 지도자들이었다면, 북한과의 외교협상도 이런 방법중 한 가지일뿐 북한의 핵위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중심을 못찾고 갈팡지팡해온 부시의 대북정책 팀에게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공”이란 말이 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부시 팀에게는 대안 “plan B”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첫 번째 계획이 망가지면 그 다음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련 준비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대북 외교협상에서는 북핵을 제거하자는 기본 목표는 점점더 변질하여 오로지 외교협상만 깨뜨리지 않고 계속하면 된다는 이상한 목표로 방향이 바뀌었다. 북한이 대량학살무기를 불법적으로 딴 나라들에 파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든 우리 정부의 PSI (핵무기 확산방지 이니셔티브), 그 좋은 국제적 방지수단도,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하는데” 방해가 된다하여 그동안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지난 2년간 PSI란 말을 들은 사람이 있나? 아무도 없다.) 그리곤 저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사건이 있었다. 김정일 정권은 위조지폐 양산, 불법마약 암거래 등 수입으로 바닥난 체재운영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부시정권 딴 관리들의 신중하고 끈질긴 탐정식 수사로 북한의 검은 돈을 추적할 수 있었다. 이런 추적 끝에, 마타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이 미리 겁을 먹고 북한 돈이라고 추정되는 미화 2천만불을 동결시켰다. 북한관리들은 미친 듯 펄펄 뛰면서, 자기들 돈자루를 돌려주기 전에는 핵협상 회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얼러대었다. 부시 대북 팀이 사전에 전략을 철저히 세워 놓았더라면, 이것이야말로 김정일의 아킬레스 건이란 것을 직감하고, 김정일을 더 세차게 몰아부쳐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무부 대북 팀은 오히려 미재무부 관리들과 머리 터지게 싸우더니 결국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아 (미국법을 몇 가지 우회하면서) 이 돈을 전액 찾아서, 심통난 평양 깡패들에게 돌려줬다. 우리 정책수립가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북한정권은 대량학살무기로 딴 나라 사람들을 위협했을 뿐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자국민을 학대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눈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북의 핵제거 문제와 연계하여 북한을 몰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눈에 핵밖에 보이지 않던 부시의 대북 팀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눈엣 가시로 취급하거나 심지어는 그보다 더 귀찮은 문제로만 생각했었다 – 자신들의 보스인 대통령은 계속 인권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이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아랑곳 없었다. 조지 W. 부시 2차 임기 때, 대북 협상에서 앞장을 섰던 크리스토퍼 힐은, 2008년 12월, “각 나라는, 우리 미국까지 포함하여, 인권 신장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곤 부시 대통령의 북한인권특사가 지난 해 1월, 평양정권과의 모든 협상에서 북한인권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그 사람은 6자회담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발칵 핀잔을 주었다. 이렇게 나침판도 없이 정처없이 표류하던 부시의 대북정책 팀은, 결국 북한과의 협상만 계속하면 된다는 식, 갈아앉는 배에서 발버둥치는 선객들같은 신세가 되어, 알맹이는 없어도 괜찮으니 회의만 계속해달라고 김정일에게 졸라대는 식이었다. 이렇게 협상을 위한 협상을 계속하면서, 그들은, 북한의 비밀 우라니움 농축 프로그램도 그냥 내버려 두고, 북한이 시리아에 핵원자로들 지어주었는데도 한 마디 따지지도 않았으며,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미국 외교관들이 부지런히 뛰어서, 2006년, 유엔안보위원회 결의안 1718조치를 통과시켰는데 – 이 1718 조치에는, 유엔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을 매도하고 북한에 경제봉쇄를 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는데도 - 부시의 대북 팀은 “대북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이런 유엔 조치에도 딴지를 걸었다. 급기야 지난 10월, 이 자들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내기 위하여 북한을 미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삭제해줬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희한한) 일은, 6자회담이 절뚝거리며 여기까지 오면서, 6자회담의 우리 편 동맹국들에게는 미국이 오히려 북한보다 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대가 되어버렸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북한의 불법자금을 추적한다고 해서 딴 나라들이 미국에 협조를 했는데, 미국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면서 방향을 바꾸어 자신들이 시작한 대북 경제압박을 풀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더 나쁘게 군 추태는, 6자회담에서 미국에 더 열심히 협조하면 할수록, 자국의 안보는 불안해지고 자국민들이 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관하여 치명적 손해를 본 나라도 있다. (지난 해, 미국 정부는 일본의 피납북자 문제에 관하여 동맹국인 일본을 윽박지르고 적국인 북한에 이롭게 일을 처리했다.) 6자회담이란 연극이 오래 끌면 끌수록 미국협상팀은 본래의 협상 목표와 목적에서 영 딴 데로 이탈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해 협상 끝에 이제는 “CVID, 완전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무장 해제,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armament” 말은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또한, 북한은 “완전하고 정확하게 complete and correct” 과거의 모든 핵활동을 신고해야 한다는 말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북한의 비밀 우라니움 프로그램도 외교협상 안건에서 슬그머니 떨어져 나갔다 – 애초에 6자회담을 소집하게 만든 바로 그 우라니움 문제가 이제는 문제가 안 된다는 말씀이다. 부시정부가 6자회담의 성과로 내세울 것은 영변의 플루토니움 시설에 있던 냉각탑을 없애버린 것, 그리고 눈요기들이나 하라고 북한이 건네준 플루토니움 프로젝트 서류들 뿐이다. 이중 가장 괴상했던 일은, 북한이 넘겨준 서류 종이에 고농축 우라니움의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라니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건네준 서류에 북한이 우라니움 증거를 묻혀 보낸 것이다. 부시의 대북 팀이 이름 값이라도 할만한 전략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따위 협상은 수년 전에 빨리 털어버리고 끝장을 냈어야 했다 - 협상을 계속하면 할수록 미국에게는 손해, 북한에게는 이득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끝장냈어야 했다. 그런데 부시 팀에는 딴 후속대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한 게, 이런 한심한 6자외교를 미국의 대북정책이랍시고 – 부시 정권이 종칠 마지막 순간까지 벌려온 것이다. 2001년,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前 정권이 이런 골치아픈 국제문제를 선임자들이 차기정권에 그냥 내팽겨쳤다고 비난했었다. 그런 북한문제를 부시 정부는 정권을 내놓으면서 클린턴 외교관리들이 했던 짓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한심한 지경으로, 이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내팽겨치곤 이삿짐을 싸들고 떠나버렸다. 미국의 대북 전략적 입지는, 부시가 처음 집권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오바마 팀은, 2001년 부시가 직면했던 북한의 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떠맡게 되었다. 부시 팀은 클린턴 팀의 대북정책을 입에 침을 튀기면서 비난했었다 – 북한을 회의에 끌어내기 위하여 뇌물을 바쳤다는 둥, 이전에 합의한 사항들을 북한이 위반하면서 도발적 행동으로 나와도 거기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둥, 그렇게까지 비난을 하더니 이제는 부시 팀에서도 이런 짓거리들을 다반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오바마 팀은 부시 팀 덕분에, 앞으로 북한과 맞대결을 해본다든지, 북한의 고약한 버르장머리를 고친려 한다든지, 그저 모든 일이 더욱 어렵게만 되었다. 더 한심한 것은, 북한은 자신들에게 – 해리 S. 트루만 이후 - 제일 적대적이었던 미국 대통령을 명실 공히 진짜로 제압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부시에게 외교적으로 완승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시가 자신의 부시 닥트린을 주머니에 접어넣고 꼬리를 내리게끔 만들었다. 북한은 지난 8년간의 경험을 살려서,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오바마 정부에게 더욱 오만불손하고 과감하게 나올 수도 있다. 이제까지 잘못되고 부정적인 면만 적었지만, 미국이 앞으로 도전적이고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하는 전망이 완전히 캄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면,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북한은 그런 상황에서 기가 막힐 정도의 고수(高手)로 위기를 넘겼다. 그와 반대로 미국은 이 경쟁에서 이길 수도 있는 패를 얻었다. 단지 그동안 우리는 이 게임에서 형편없을 정도로 한심하게 경기운영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수년간 미국이 대북정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오바마 정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직시하여 북한의 위기를 둘도 없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이익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목표를 하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가 이렇게 주어진 기회를 잡으려면, 우선 클린턴 시대의 대북정책 신화를 더 이상 신화로 생각하지 말고, 부시 시대의 대북정책 실패 이유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해 하여야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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