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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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터넷에 들어 오기만 하면 우선은 혹시 메일이 오지 않았나?? 하고 메일 부터 열어 본 다음에 컴을 끄기 전에 반드시 탈북 동지회를 방문하게 되는데 왜일까? 솔직히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내가 탈북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 한국 동란 때에 이북에서 피난을 나왔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일까? 한국엘 가면 반드시 한 번 쯤은 탈북하신 동포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새터민에 가 봐야 겠다고 마음은 먹으면서 막상 한번도 못 가봤다. 왜였을까? 그냥 돌아 와서 나는 생각해 봤다. 가서 어쩔 건데???? 그렇다 어쩔 일이 없다. 다만 내 동포들이 듣던 대로 그 용감하게 사지를 뚫고 왔다는 그 용맹함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일까? 가서 전에 내가 살던 고향의 소식이 듣고 싶어서일까? 뚜렸한 목적은 없다. 다만 그들이 보고 싶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백령도엘 갔던 일이 있다. 그곳엘 가니까 모두들 황해도 말씨를 사용하더라. 그런데 그곳엘 가니까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내 입에서도 황해도 말씨가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나는 놀랬다. 내가10살에 고향에서 피난을 나왔는데. 그간 35년 이상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또씨 하나 틀리지 않게 황해도 말을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가끔 중국에서 온 동포들을 만난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 동포들에 대해서 감정이 별로다. 하지만 난 아니다. 왜일까? 생각을 해 봤다. 그랬더니 그들을 만나면 북한 말을 쓰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중국 동포들이 날 보고 언제 왔느냐고 묻는다. 나도 중국에서 온것으로 알고 말이다. 같은 억양을 쓰는 고향 사람이 그립니다. 다시 말해서 고향이 그립니다. 내 생전에 가 볼수있으려나??? 이번에도 한국에 갔을 때에 임진각엘 가봤다. 임진강에서 잠실집에 오는 시간이면 내 고향 연백땅에 갈수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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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고향의 향기가 양념을 치는 그대의 글은 그닥 별치 않은 글 같은데도 눈물을 뽑는구만.
내 역시 고향을 북에 둔 인간으로써 이제는 앉으면 무릎이 귀에 닿건만 ,,아직두 고향에 돌아 갈 그 날을 - 세살난 아이 어미 기달듯 하는 불쌍한 인간이오.
이 창에서 욕쟁이로 소문이 났고 온갖 욕설과 비난은 누구 주기 싫어서 혼자 독차지 하는 인간이건만 항상 눈귀엔 뜨거운 것을 달고 사는 인간이오.
그렇다고 하여 무기력한 여인네들 같이 우울증으로 궁상을 떨기도 싫고,
고향이 그립다구 콧대 높은 요즘 젊은애들 사무실에 발길 들여 놓기도 싫고.
하느님을 스승 삼고, 이 창에서 나를 욕하는 논자들을 친구 삼아 하루의 아침과 낮을 보내고 변함없는 친구인 술을 벗삼아 저녁을 보내는 인생이요.
당신의 고향 연백이나 우리 고향 평양이나 자다가도 팔 뻗으면 안을수 있는 아름다운 계집의 품같이 가깝고도 그리운 것이구...떼어 버릴수 없는것인데..
님이나 - 내나 전생에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 슬픔을 한생 동안 떨어지는 가랑잎속에 썩히며 살아야 한단 말이오.
가랑잎은 썩어서 제고향찾아 가겠건만 이 몸은 제고향을 갈것 같질 못하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요.
언제 이 반도에 발길을 놓는 날이 있으면 한번 통성명이나 하기요.
우리들의 고향 그리움은 하늘에서 벌써 친했을 것이건만 우리들의 육체는 서로가 얼굴도 모르고 머나먼 바다 건너에 있구려..
부디 건강하시우.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될게요.
요즘은 왜 고향이야기에 관심이 가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어제도 북한 5도청이란 카페에 들어 가서 님들의 적어 놓은 사연 마다 참견을 하면서 댓글을 올렸는데.....
두목님은 평양이라셨지요?
나는 6.25때는 연백에서 피난을 나왔지만 낳기는 봉산에서 낳았답니다. 그러니 평야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지요?
해방 되던 해에 연백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어렴푸시 봉산 생각이 나곤 한답니다.
평산으로 사리원으로 이렇게 고향땅의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데 언제나 가 볼려나????
철천지 원수와 같은 이 일본 만 아니었더래도 우리 민족이 갈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이러한 땅에와서 살고있으니 참으로 산다는 것이 묘합니다.
도목님 자주 자주 만나기로 합시다.
이북 고향만 그리운 것이 아니라 현 서울의 소식도 그립기만 하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컴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요. 그럼 이 밤도 편한 잠자리되시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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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삐라운동을 위해 전전주 백령도에 갔었는데-
용연이 고향인 78세장로님이 계셔-
너무 정정하셔 60세초반 같아 보여-
만감이 넘치는 고향을 바라보기만하며
언제 고향갈가 ?!
그래서 함께 풍선으로 고향에 진리소식전하며
고향길 앞당기자고 하니 그렇게 하자고 약속.
근데 저녁인사로 안녕이 주무시라는 것이 무색하게
다시 만나기위해 준비하는 5일도 안되
자전거 사고로 뇌출혈로 사망하셨다고-
그분의 고향염원을 어케에 덧지고 최선을 다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부디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www.nkca.net
심장에 남는 말씀 입니다.
저도 요주음 더욱도 그런생각이 듭니다.
물론 죽겠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가족과 혜여진지 6년째 어제일같이 생생하고 가족을 두고온 그 죄송함은 항상 저의 발목을 잡는구려.
힘들어도 쓰러지지도 못하겠고,결혼도 못하겠고, 어떤 직없이 생기면 이것이 과연 통일후 우리식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가 사색의 연속이고 ...
세월이 흐르면 좀 식을줄알았더니...바다도 막는 갑문을 세우는 인간이것만 정작 몇인치 안되는 자기속 외로움과 자책을 막을방도는 없는듯하오.
과연 통일은 불가능할가...
꼭 정일씨가 죽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