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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督人(기독인)이여, 더 늦기 전에 묵은(김정일의 저 흉악한 살인착취 잡초들에 덮인) 땅을 갈아엎어 起耕(기경)하자.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294 2009-05-18 14:27:05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instruction of wisdom; and before honour is humility.] 지금 세상은 김정일의 판으로 끌고 가려는 자들이 모든 선전선동의 자리에 앉아 세상의 기본적이고 참된 가치를 마구 파괴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세우시고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敬畏)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그 하나님의 지혜를 공의로 삼아 그것에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주신 것이다. 무신론자들이고 사악한 악마의 자식들인 김정일 走狗(주구)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런 기준을 마구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문제에 아주 심각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함에도 인간들은 하나님의 세우신 道(도)를 거부하고 있으니, 오히려 김정일 집단이 세상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여 그분에 대한 근본적인 경외를 거부하는 자들이 목자의 길에 서서 오히려 세상을 망하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없게 하는데 일조한다. 그것은 곧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의 훈련이 없어지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 18: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누가복음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은 사람을 무시하고 결국 자기가 번거롭게 되는 것을 피하는 것을 위해 재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판사들이 신영철대법관을 인민재판 하듯이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틀림없이 저들이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는 자들인가 하는 것에 의문을 표시한다. 김정일과 그 친구들과 한통속이라는 의혹을 알게 하는 것 같은데, 법관들이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지 못하니 어제 竹槍(죽창)이 나타나 대한민국 공권력에 도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이 나라가 잘못된 자들의 손에 의해 이상한(亡國(망국)) 쪽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시기에 하나님의 정하신 경외의 도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겠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지혜의 훈계는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은총이고

3. 그것은 하나님의 존귀를 입는 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존귀를 입는 것이 될망정 김정일의 오물이 묻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을 해결하려는 자들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아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곧 지혜의 訓戒(훈계)라고 한다. 경외는 곧 지혜의 훈계이다. 이런 것을 훈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敬畏(경외)라는 말은 英譯(영역)으로 fear 히브리어 原語(원어) 『yir'ah (yir-aw') 』라고 읽는데, 그 속에는 아주 광범위한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그 분 외의 모든 것은 그 분의 손에서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至尊(지존)하심을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으로 간격을 갖게 하심으로 上下關係(상하관계)의 원리를 굳게 정하신다. 따라서 만드신 만물이 그분 앞에 서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거나 죽은 자 같이 되는 至尊(지존)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두려움이란 것은 그렇게 부여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능력(지혜의 훈계)이기도 하다. 조물주 하나님의 임재, 지존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조물주를 인식하게 모든 피조물에게 입력한 暗號(암호)가 저절로 풀려나게 한다. 그 암호가 풀리면 자신도 모르게 그 존재 자체가 “나의 조물주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시여!” 하며 무릎을 꿇게 되거나 죽은 자같이 그 발앞에 엎드려지게 된다. 그것을 조물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정립적인 고유본능이라고 해야 한다.

4. 그것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awesome的으로 담아낸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敬虔(경건) 敬神(경신) 信心(신심) 경건한 言動(언동)과 조물주에 대한 孝誠(효성)과 그런 언동을 갖게 하신다. 또 그 안에는 인간은 하나님께 구해야만이 존재되는 것과 필요를 위한 기도가 발생되는 piety적인 것의 연원을 포함한다. 존재의 두려움과 함께 발생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非본질이 겪어야 하는 恐惶的(공황적)인 두려움 곧 terror적인 것이 있다. 이것은 모든 非본질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발생하는 것인데 그것이 지존 앞에서 폭발적으로 솟구친다. [요한1서 4:17-18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 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지존과 연결된 존재의 평안은 하나님과 평강(하나님이 제시한 유일한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동질을 이루는 화목)의 관계를 유지가 가능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fear 곧 근심과 걱정과 절망 불안 우수사려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버림을 받았다는 공포가 앞서게 되고, 거기서 기쁨을 잃어버리는 심리 상태를 포함한다.

5. 하나님이 없다면 그의 존재에게 불행이나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의 잠재되는 염려가 폭발적으로 이어져 가게 된다. 이런 것들이 고유본능적인 것이고, 그런 것이 파생되어 나타나는 심리적인 변화들이 여러 표현들로 담아내게 한다. 관계의 설정에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라는 딱딱한 관계의 인식이 아닌 조물주의 성품은 아가페 사랑이고, 그 사랑의 손에 의해 만든 피조물과의 사랑의 관계는 사랑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두려움의 고유본능을 승화시켜 사랑의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사랑의 두려움이란 것은 모든 것에서 피조물은 하나님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겸손과 온유의 의미와 본질의 구분과 하나님의 겸손과 온유의 본질만을 구하게 하는 그것에 필요를 갖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담는 그릇이 된다. awesome or terrifying thing (object causing fear)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추월할 수 없다는 것,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영원한 간격을 인식하게 하는 것의 내용으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질과 비본질의 차이와 상하의 관계에서 가지는 것은 건널 수 없다는 영원한 간격의 의미가 거기서 곧 피조물의 조물주에 대한 순종이라고 하는 지배의 관계로 이어지게 한다.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순종을 전제하게 된다. 이 말씀은 지혜의 훈계를 입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과 뜻과 마인드와 목표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지배를 통한 복종의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게 되는 존경 경의 respect와 reverence,

6. 외경, 공경, 숭배; 존경. 경례; 공손한 태도 위엄과 상하관계의 질서의식을 갖게 한다. 진정한 하나님께 경외란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란, 하나님의 훈계로 훈련하는 것 곧 instruction(훈련 또는 그리스도의 할례[골로새서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를 의미한다. 사탄의 지배를 즐겨 받는 인간에게 지배의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특히 오로지 하나님이 인간을 지배함은 예수 그리스도 안(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에서만 啓示(계시)하신 것이다. [골로새서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요한복음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7. [요한복음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제시이다. 그것으로만이 하나님의 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 통로를 통해 받는 훈련에서 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것은 곧 지혜의 훈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지휘를 의미한다. [야고보서 6: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결국 하나님의 지휘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동하게 된다.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나가게 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거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指揮(지휘)를 받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는데, 그런 자에게는 존귀의 앞잡이 곧 하나님의 존귀를 입혀주는 것이 뒤따른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이 존귀를 입혀는 주는 것은 인간에게서도 존귀를 입게 된다는 것을 含意(함의)한다.

8. 때문에 경외를 통해 하나님의 본질인 겸손을 얻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열어두신 문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드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 대한 경외의 의미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卑下(비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 속 깊이 깨닫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것이 큰 바다를 이뤄 폭풍처럼 휘몰아쳐 몰려오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그것을 긍정하는 긍정을 담고 있는 큰 샘이 비로소 드러나 열려 솟구쳐 나온다. 그 긍정이 강물처럼 洪水(홍수)가 되어 자신을 엄몰해 간다. 이 두 물결에 덮여 엄몰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런 만남을 얻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자기부정이 있게 되고, 그 시간의 흐름 후에 정직한 심령을 갖게 되는데 그 정직한 심령이 바탕을 이루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본질의 성품의 轉移(전이) 곧 겸손의 전이를 받게 된다. 그 전이를 통해 하나님의 겸손에 녹아져 버린 인간은 그의 外飾(외식)된 모든 假面的(가면적)인 僞善的(위선적) 겸손과 인간적인 모든 겸손이 타버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기서 받은 겸손은 비로소 하나님의 겸손의 의미를 알게 한다. 특히 그 겸손 속에는 하나님의 온유가 늘 함께 흐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겸손은 하나님을 수용하는 수용성으로 온유는,

9. 하나님을 적응하는 적응성으로 구분되는데, 相互補完的(상호보완적)인 관계의 정립을 통해 겸손과 온유는 하나님의 겸손을 완성 및 완전케 한다. 하나님의 모든 본질은 귀소성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모든 본질을 수용하는데 겸손과 온유하다. 하나님의 겸손이 인간에게 오면 상하수직관계의 정립을 하게 한다. 수평관계와도 수용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겸손이 포함하는 수평관계의 영역을 모두 수용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만을 듣는 자가 된다. 그 명령만을 수용하고 듣는데 온유하고 그것을 마치도 옥토로 비유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예민하게 정교하게 알아보고 그대로 행하는데 주저가 없는 민첩성 곧 하나님의 시간과도 일치되는 수용성 및 적응성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빗대서 만든 인간에게 주신 겸손과 온유가 있는데 인간들은 그것은 humility로 英譯된 謙遜 또는 自己卑下라는 단어로 밖에는 담아낼 수밖에 없다. 히브리원어로 『`anavah (an-aw-vaw')』이다. 하나님의 겸손과 온유의 그 엄청난 의미를 담아낼 용어가 없어, 인간의 성품을 빗댄 용어로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속에는 humility, meekness를 품고 있다고 한다. meekness는 얌전함, 유화함, 온순함(humbleness 겸손함 하찮음) 참을성 있음 기백 기개 없음, 굴종적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 이런 것은 하나님의 본질인 겸손과 온유가 가진 것에 비하면 결코 흡족한 글자표현은 아니지만, 인간세계에서는 그런 정도의 표현을 가지게 되므로 그 안에 담아 하나님의 겸손과 온유를 인식하는 첫 걸음으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겸손을 얻는 자들은 하나님의 존귀를 입게 하신다는 것을 순리라고 하는 의미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하셨다. 이런 길을 따라 하나님의 존귀를 입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나라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김정일의 교만에 더럽혀지는 한민족은 살인착취족속이 되어 가고 있다.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한 일인데, 이 땅의 지도자들은 그런 것을 괘념치 않는 것 같다. 이는 그들이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 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제시한 영광만이 참된 기준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결국 수치요 영원한 수치라는 말씀이다. 이 후안무치한 자들이 대한민국 지도부에 앉아 국민을 한민족을 더럽히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사람을 구원하기에 능한 자라는 말씀에서 인간에게 인식되게 한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을 가지신 영광과 하나님의 자신이 가진 본질을 넘어설 자가 없는 존재의 영광과 영광 그 자체가 사랑의 본질이고 무한한 사랑의 능력을 의미하기에 그것을 모든 피조물에게 입력하고,

11. 그것으로 영광을 알게 하는 기준 곧 하나님과 인간이 공감하는 영광과 명예를 아는 인식어로 삼게 하셨다. 따라서 그 공용어인 아가페로 준행하게 하는 겸손으로 세상에서 공의롭고 정의롭고 당당한 승리와 수고의 결실을 명예와 인망과 신망과 명성과 체면을 세운다거나 신용을 얻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를 존귀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히브리 원어에 나오는 『kabowd (kaw-bode')』『ka bod (kaw-bode')』를 영어로 번역할 때 그것을 honour로 담아내고 있다. honour 곧 존귀로 번역된 원어 『kabowd (kaw-bode')』rarely. 드물게, 좀처럼 …않고. 드물 만큼, 각별히, 희한하게와 『ka bod (kaw-bode')』를 품고 있다. 뒤에 나오는 그 카-보드는 glory로 번역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본질의 榮光(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의 기준을 정하는 영예와 곧 그 기준으로 행하여 정당하게 얻어내는 榮譽(영예)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삼고 내세우는 명예와 그것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영광을 얻어내는 공평한 기준으로 삼아 모든 피조물이 공감 인정하는 평가를 받게 하는 명성과 그 모든 것에 순도가 지극히 높아 모든 피조물에게 絶讚(절찬)을 받는 것에 투명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투명성으로 모든 자들의 우러나는 찬사를 듣게 하는 것을 영광 명예를 삼고 아울러 그런 우러나는 찬사를 받는 자들에게 영광을 부여하고 명예를 주는 것을 포함하고,

12. 하나님은 사람들끼리 자랑을 하지 말고 자랑하려면 주안에서 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자랑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아울러 포함한다. 여기에 noblesse oblige(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 사회적 지도적인 위치에 있거나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녀야할 도덕적, 정신적 덕목을 가리킨다)로 삼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구원의 영광을 하사하신 것을 은총이라 하고, 그것을 찬미 찬송하는 것과 그것을 기리는 예배를 포함한다. 그 다음은 abundance인데 이는 하나님의 모든 풍부와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채워주고도 무한히 남은 풍부와 충만 그 모든 구원의 선하신과 인자하심의 영원하심으로 찬양하게 하는 윤택함, 은혜와 의의 모든 선물을 넘치도록 공급하시는 인자와 긍휼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혜를 주심과 모든 것을 다 가진 다량 재산과 모든 복의 근원이신 유복함과 그것을 베푸는데 무한히 부유하심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랑으로 행하심으로 지극히 화려함과 그것을 베푸시는 것으로 영광을 삼은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장관(壯觀)을 이루고 지극히 크게 장려(壯麗)함과,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의 빛나는 모든 선하심의 영광으로 화려하게 움직임과 행진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 화려하게 눈부시게 하고 그것을 당신의 영광으로 장식하다를 품고 있다. 그 다음은 splendor인데,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사랑의 광휘를 영원함의 진행을 하다. 행진하다. 영원히 화려하게 눈부시게 장식하고 진행한다. 진행할수록 더욱 무한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다음은 dignity이다. 하나님의 존엄의 본질 위엄하심의 본질,

13. 고상함의 본질 품위의 본질의 우러나는 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지존의 존엄의 행동, 지존의 위엄의 행동, 지존의 고상한 행동, 지존의 품위의 행동, 지존의 장중한 행동, 지존의 엄숙한 행동으로 하나님만의 가치관으로 참된 가치와 귀중한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 직분을 부여하는 것 곧 고관들, 고위층. 위계(位階), 작위(爵位)를 받도록 실력을 갖추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다음은 reputation은 하나님의 기준을 공유하는 자들의 評判(평판)과 그 반대자들이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世評(세평)을 포함한다. 그 다음은 reverence인데,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을 외경케 하고 공경케 하고 숭배케 하고 존경케 하고 문안케 하고 공손한 태도를 갖게 하고 존경받게 하고 위엄이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영광을 만들어 가시는데 능하심을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이런 영광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지혜의 훈계를 받는 자들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겸손을 가진 자에게만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런 자들에게만 입혀주는 것을 기본으로 삼으시는 영광의 수여자의 입지 곧 최후 심판자의 영광을 의미를 담고 있다. wisdom의 훈계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wisdom는 히브리어로『chokmah (khok-maw')인데 wisdom, skill (in war) wisdom (in administration) shrewdness, wisdom prudence (in religious affairs) wisdom (ethical and religious)를 담고 있다.

14. 이런 포함은 세상에서 인간이 인식하는 즐겨찾기적인 wisdom이고 하나님의 지혜를 담아내는 것에는 한정된다. 성경으로 성경을 푼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wisdom은 상상할 수 없는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 우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그것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데, 그 지혜의 훈련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혜의 훈계라고 한다. 여호와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경외하는 것과 그 지혜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는 것을 하나님의 겸손을 그리스도의 겸손을 입은 것이라고 하고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존귀를 입게 되어 사람과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게 되는 자가 된다. [잠언서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이런 자들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자들이 나올 수 있는 세상을 열어가야 하는데, 이들만이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본질을 누리고 하나님의 전능한 지혜를 공유하며 그것으로 겸손히 인간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를 이루게 된다. 참으로 사람을 사랑하여 자신을 희생한 예수 같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섬겨주기를, 묵은 땅(김정일의 저 흉악한 잡초들에 덮인)을 기경하게 되길 예수 이름으로 간곡하게 기도하자.

[마태복음 9:36-38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호세아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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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자녀들이 저 흉악한 살인착취 雜草(잡초)에 질식당하고 나서 후회한들 이미 때가 늦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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