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죽음과 향후 정국 - 얼음공주(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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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때 누군가 묻더군. 노무현이 대통령 되어도 괜찮은 거냐고. 솔직히 난 노무현이 누군지 몰랐어. 그땐 난 컴도 없었으니까. 문명의 이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남들이 핸드폰을 다 들고 다닐 때에도 난 오랫동안 핸드폰 없이 버텼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나던 날 나는 컴을 하나 샀어. 컴맹이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러던 어느 날, 현충원 밖에서 노사모들이 박정희 무덤을 파헤치라고 데모를 한다는 뉴스를 봤어. 피가 끓어오르더군. 야후 게시판엘 가봤지. 온통 이상한 논리들이 판을 치고 있더군. 노사모들이었어. 나는 노사모를 통해 노무현을 접했지. 노사모의 논리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어.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 적어도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노사모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 노사모가 없었더라면 내가 글을 쓰는 일 따위는 없었을거야. 박정희의 무덤을 파헤치라는 소리는 노사모에게 노무현의 무덤을 파헤치겠다는 소리와 같은거니까. 그리 말하면 노사모일지라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노무현 당선 후 김원기는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했었어. 노무현은 극좌파죠.라고.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라는 김원기의 이 말 한마디로 나의 노무현에 대한 첫 느낌은 극좌파로 자리매김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노무현을 규정하는 말이 돼버렸지. 역시 첫인상은 중요한거야. 노무현은 여러 가지 어록을 남겼는데 막가자는 거냐, 깽판, 별놈의 보수, 독재자의 딸, 못해먹겠다.등등 나로서는 듣기 거북한 말들이 많았어. 지독한 갈라치기였지. 극좌와 극우를 가르고,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고, 과거와 현재를 갈랐어. 그 결과가 지금 조문을 막고 있는 극좌 꼴통과 노무현의 죽음을 통쾌해 하는 극우 꼴통이지. 이회창이 6% 성장을 들고 나와서 오기로 7%를 들고 나왔다는 노무현이었지만 이명박에 비해서는 그런대로 경제는 잘 챙겼다고 볼 수 있어. 막판에 부동산 폭등으로 치명타를 맞았지만 노무현의 성향으로 봐서 그런 정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 결정적으로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노무현의 반미적이고 극좌적인 성향에 의문이 생겼지. 이라크 파병은 좌파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니까. 노무현이 지지자로부터 결정타를 맞은 사건이 바로 박근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던 거였어. 명분이야 지역감정의 극복이었지만 사실 노무현만큼 지역감정을 철저히 이용했던 정치인도 없었지. 수도이전으로 충청표를 장악하고 호남표에 영남표를 약간만 얹으면 이긴다는 단순 계산의 승리였으니까. 철저한 지역분할의 산물이었지. 경선전에서도 노무현은 김대중을 철저히 옹호함으로써 후보가 될 수 있었는데 광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지. 적으로부터 비판이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동지들로부터 비난이 나오면 끝나는 거다. 목포 앞바다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고 하는데 광주만큼은 김대중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광주시민회관이 떠나갈 듯했지. 그걸로 승부는 끝이었어. 지역주의의 승리였지. 노무현의 몰락은 그의 예언대로 지지층으로부터 비난이 나오면서 시작되었어.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자 조중동의 공격을 막아낼 동력이 없었던 거야. 노무현이 당선되자 김대중이 말했지. 노무현이 이긴 건 조선일보와 싸웠기 때문이야,라고. 그 후로도 조선은 지나친 정치 개입과 스스로 대통령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쳐서 보수층조차도 노무현이 왜 조선과 싸웠는지 이해하게 되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선과의 싸움만큼은 노무현이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극좌파 노무현은 결국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말까지 들었어. 대통령이 돼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야. 국익 앞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았을테니까. 이명박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의 적은 노무현과 노사모였어. 그런데 바로 그 노무현이 죽었어. 한동안 가슴이 텅 빈 것 같더군. 노무현은 그래도 상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적이었어. 비록 이념도 다르고 가치관도 생소했지만 소탈한 인간미는 있었지. 권력을 움켜쥐지 않으려는 의도가 지나쳐 권력을 조롱하고 권위를 팽개쳐 버리기는 했지만 그의 그런 의도까지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야. 이명박이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보니 노무현의 그런 진심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더란 거지. 물론 그 방법이 너무 단순하고 품위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거야 그의 캐릭터이니 그의 죽음을 앞에 놓고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 바람에 노무현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그는 명예가 뭔지는 알았어. 적어도 진정성만큼은 인정해 줄 수 있었지. 승부사였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던졌지 남을 던지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난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더군. 그럼에도 적장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는 갖추고 싶었어. 며칠 동안 침묵을 지켰지.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도 많은데 나 같은 적이 먼저 나서서 그들의 슬픔을 앞서 가기는 싫었으니까. 노무현도 원하지 않았을거야. 슬픔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야.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슬픔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는거니까. 나같이 사랑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위선이겠지. 나는 요 며칠 정국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았어. 충격은 잠깐 이었고 향후 정국이 어떻게 흘러 갈거냐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관심사였지.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몰아칠 걸로 예상했지.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이걸 느꼈을거야. 후폭풍의 존재 자체는 분명한 거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몰아칠 거냐 하는 건 아마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거야. 각 진영은 숨을 죽였지.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본능적으로 후폭풍이 몰아 칠 걸 느끼며 바짝 몸을 낮췄지.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오바함으로써 후폭풍의 강도를 약하게 할 역풍을 극구 두려워했어. 봉하는 봉하대로 분노를 표출하며 자신들만의 권력을 만끽했지. 봉하와 청와대의 수 싸움은 치열했어. 봉하는 처음에는 가족장을 주장했지. 어찌 노무현의 장례를 이명박 정부에게 맡길 수 있냐는 게 명분이었어. 나도 그게 일리가 있다고 봤지. 정부는 국민장을 권했어. 아마 권하면서도 받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을거야. 봉하는 정부의 허를 찔렀지. 국민장을 받았어. 그러자 청와대는 이명박의 봉하 조문을 발표했어. 봉하로서는 뜻밖의 사태 진전이었지. 만일 이명박이 봉하로 내려가서 계란 세례를 받는다면 여론이 어찌 돌아갈 건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어. 봉하의 고민이 깊어졌지. 봉하는 진영 공설운동장에서 경복궁으로 영결식 장소를 바꿨지. 정부는 난감했을 거야. 겨우 덕수궁 돌담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정부가 경복궁 앞뜰을 내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지. 그러나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어. 최규하의 전례가 있었으니까. 경복궁은 명박산성 뒤쪽 청와대 바로 앞이야. 봉하는 명분을 앞세워 청와대의 안방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봉하에서 조문을 거부당했지. 거부당할 걸 알면서 간거야. 그래야 명분이 서니까. 봉하는 이명박에게 봉하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명박은 봉하에 가는 걸 포기한 듯 보이지. 너무 정략적인 냄새가 난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든 오바하는 쪽이 당하게 돼있어. 봉하가 조문을 방해한 건 그들만의 세도일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일종의 오바지. 이번 일은 치열한 명분 싸움이야. 그 누구도 실리를 챙길 수 없는 싸움판이지. 머리대 머리, 책략대 책략, 말대 말의 싸움터야. 이렇게 말하면 노무현의 주검을 앞에 놓고 너무 판세에만 연연한 게 아닌가 할 수 있을거야. 그러나 지금의 판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큰 판이야. 어린 꼬마가 촛불 하나 들고 덕수궁 앞을 지나가도 막는 게 경찰이야. 솥뚜껑에 에지간히 놀랐다는 거지. 이명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냐 하는 건 이걸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어. 박근혜는 봉하로 가던 발걸음을 돌렸어. 노사모들의 마음은 알 수 있지만 아마 이건 노사모들의 패착으로 기록될 지도 몰라. 그들은 스스로를 너무 고립시켜 버렸으니까. 노사모가 위축되고 민주당이 야당으로서의 몫을 다 하지 못했어. 그 몫을 박근혜가 해 오고 있었지. 소위 여당 내 야당이었어. 아마 이명박 최대의 적은 노무현도 민주당도 아닌 박근혜였을거야. 그런 박근혜를 봉하는 거부했지. 나는 판세가 급격히 노무현과 이명박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어. 죽은 노무현이 산 명박을 쫓아낸다면 과연 박근혜의 땅은 어디냐는 우려였지. 그러나 노무현은 죽었어. 이건 변치 않는 사실이지. 그렇다면 향후 노무현을 지지하던 세력을 누가 흡수하면서 구심점으로 떠오르게 될까? 과연 구심점이라고 할만한 인물이 있기는 한걸까? 봉하를 가만 들여다보면 같은 친노 중에서도 노무현의 시신을 지키는 세력이 있고 한땐 동지였지만 조문도 거부당하는 세력이 있지. 유시민, 천호선, 안희정, 이광재, 서갑원등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그중에 맏형뻘은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동영이나 김근태등은 문상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어. 그들 내부의 분화지. 유시민은 비오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노무현에게 우산을 받혀주던 마지막 남은 가신이라고 할 수 있을거야. 과연 유시민이 노무현 사단을 이어받아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그 싸가지가 문제될거야. 어쨌든 노사모는 주군을 잃었기 때문에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 분화될 수밖에 없어. 민주당과 민노당, 유시민과 정동영등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가겠지. 민주당 입장에서는 노무현이 남긴 숙제가 부담스럽지. 안그래도 성장을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쪽으로 선회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터였는데 노무현식 극좌 노선이라니. 이미 민주당 내에선 노무현은 비주류였어. 이런 호기를 살려 민주당의 활로로 만들 수만은 없는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겠지. 이명박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어. 안으로 타오르는 촛불의 열기를 어떻게 조기에 진화할거냐는 거지. 방아쇠만 남았을 뿐 터지는 건 시간문제니까. 납작 엎드린 건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몸짓일 뿐이고. 좌파가 결집하고 분노가 타오를수록 이명박은 박근혜를 적대시한 댓가를 치러야 할거야. 박근혜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했지. 이명박의 지원 세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거야. 노무현은 목숨을 버림으로써 다 죽었던 좌파 결집에 성공했어. 이명박 책임론이 커질수록 이명박은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겠지. 노무현을 침으로써 좌파의 근거를 뿌리부터 없애겠다는 작전은 오히려 역공을 당해 지리멸렬한 상태야. 노무현과 대척점에 섬으로써 이명박은 보수의 맏형이 되고자 했겠지만 이제는 노무현의 죽음을 통쾌해 하는 일부 꼴통들의 수장으로 전락한 꼴이지. 이명박의 보수 결집 전략은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말았어. 헤쳐 나가기가 만만치 않을거야. 정국은 급격히 극좌대 극우의 싸움판이 되고 말았으니까. 한편 박근혜 입장에서는 천하가 삼분된 가운데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도 있고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할 수도 있는 묘한 입장이 돼버렸지. 일단은 자중하면서 양쪽의 싸움을 관망할 수밖에 없을거야. 양극단을 배제한 채 넓은 중도의 영역을 개척할 수밖에 없어. 적벽대전의 제갈량 같은 입장이 돼버렸지. 대격변이 오면 박근혜의 행보 역시 자유로워 질 수 있는데 어느 시점에 가면 한나라당과의 결별도 예상할 수 있겠지. 대격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노무현. 마지막까지 처절한 승부수를 던졌어. 노무현 때문에 좌파가 몰락했다는 말이 가장 가슴 아팠을거야. 그 빚을 갚기라도 하듯 목숨으로 좌파의 숨통을 터줬어. 이명박 역시 이명박 때문에 보수가 몰락한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거야. 보수가 몰락한다고 해서 목숨을 던질만한 승부사는 아니기 때문에 보수의 탈출구는 더 이상 없다고 봐야지. 따라서 박근혜를 보수 최후의 보루로 남겨 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거야. 노무현은 우리 사회에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를 던지고 갔어. 그의 죽음이 사회 통합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죽음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고 그것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싸움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으니까. 그게 노무현이 바라던 거라면 그의 죽음은 너무나 덧없는 거야. 그의 죽음은 내게도 오랫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겠지. 세월이 지나고 인연이 닿는다면 언제 봉하에라도 한번 다녀와야겠어. 그의 실체를 찾는 여정은 앞으로도 긴세월 동안 이어질테니까. 노무현. 죽음으로써 영원한 삶을 택했어. 그의 이름은 나라가 존속하는 한 어떤 의미로든 잊혀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노무현 때문에 이명박은 비교 당하는 게 불가피해 졌지. 과연 이명박이 노무현만 할까? 적이었지만 훌륭한 적이었어.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 주고 싶어지는군. 부디 극락왕생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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