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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쓴글
Korea Republic of 진정한하나 0 471 2009-06-01 18:43:12
■ 2007년 평양 - 남북 정상회담

남북정상의 만남이 전 세계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얼마인가

사실 꼭 해야 되는 일이라서 하긴 하지마는,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심리적인 부담도 있고, 강한 희망과 기대가 있으니까 어느 쪽으로나 부담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대개 예측 가능성이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내놓을 카드는 예측 가능성을 조금 넘어설 수 있는, 그래서 기대 이상의 소득을 거둘 가능성이 있었지요.

만난다는 것,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악수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타전된 그 자체가 주는 메시지.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메시지. 특히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은 어머니에게 주는 메시지가 얼만지 그것 좀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북쪽에 대해 주어야 될 메시지는 우리는 당신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겠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야기가 꽉 막혔지만 역지사지로 풀어내

‘7·4 공동성명부터 여러 가지 선언 만들었는데 지금 그냥 종이짝에 불과한 것 아니냐. 우리 민족끼리 하기로 해놓고, 자주성이 없는 것 아니냐. 특구 하자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이득을 본 것이 없다. 하던 개성공단이나 잘 마무리 하고 다음에 생각해보자.’ 북한이 이렇게 나오니까 이야기가 꽉 막혔습니다.

뭐 하러 오라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오라 해놓고 이렇게 서로 논쟁이나 하자는 것은 아닐텐데. 그러다 머릿속에 하나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얘기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구나.’ 그래서 점심 때 우리 수행원들하고 얘기하면서 ‘개혁·개방에 관한 얘기를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하지 않았느냐’며 서로 역지사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에서 가장 유연한 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가 듣던 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되는 사람, 오래 얘기하면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실무적인 많은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어떤 결정들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북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이었습니다.

회담에서 가장 공들였던 것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NLL이 들어 있고, 여러 가지 경제적인 협력 과제가 한꺼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NLL 문제 때문에 충돌이 있었지 않습니까? NLL문제라는 것이 단박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또 아닙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는 뒤로 미루고, 그 위에 평화·경제협력 합의를 해서 일정한 평화지대를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그것은 꿩 먹고 알 먹는 좋은 사업 아니냐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평화선언’ 합의도 역사적 사건

그 다음 평화선언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이미 9·19선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9·19선언은 그 내용이 굉장히 풍부하게 되어 있어서 그 안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9·19선언 이행한다’고 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일단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하자고 발언은 해 놓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공식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하고 저하고 이것을 합의해버리면 순차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공식화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굳히는데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선언에 관한 합의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될 가능성’ 주장은 공연한 트집

한나라당이 ‘다음 정부에 부담을 준다. 다음 정부하고 노선이 틀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연한 정치적 트집입니다. 그 주장대로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관계의 주요사업은 한나라당 전신인 민정당·민자당이 집권했던 88년도 7.7선언에서부터 91년 남북기본합의까지, 한나라당이 만들어놓은 틀 위에서도 다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한나라당에겐 없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겐 있었던 것이 한 가지 있죠. 바로 신뢰입니다. 남북 간 제도적인 합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남북 간에 신뢰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무슨 많은 정책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렇게 싸우는데, 실제 차이는 딱 한 가지, 신뢰성입니다.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신뢰나 상대방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상대방이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해소해 주는 것이 신뢰입니다 소위 말해서 흡수 통일, 무력 공격,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말해야 하고, 분명하게 믿게 해 주는 것이 신뢰지요.

■위기의 출발 - 북핵문제

당선과 함께 시작된 북핵위기

당선되고 보니까 북핵문제 때문에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북한에 대해 폭격을 해야 된다’는 주장이 막 나오고 절박한 분위기였습니다. 그 뒤에 이렇게 한 고비 한 고비 넘어 왔습니다.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참 우여곡절도 많았고, 아주 힘들었던 까마득한 옛날 얘기를 회상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 당시 북한 폭격설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한국과 경제 거래를 하는 투자자들이 엄청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폭,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폭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가장 시급했던 메시지, ‘한미관계 이상없다’

북핵문제로 경제 투자자가 빠져나갈 것이라고 해서 투자자 단체들도 찾아갔지요. 주한미상공회의소, 주한유럽상공회의소를 찾아갔지요. 찾아가서 ‘한국에 안보불안이 없다’고 말을 했는데 뜻밖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북핵 괜찮냐. 남북관계 괜찮냐’는 질문이 아니고 ‘한미 관계 괜찮냐. 한미 동맹 괜찮냐’고 자꾸 물었습니다.

언론과 야당에서 북핵문제를 자꾸 한미 간 갈등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미 갈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제스처가 필요했습니다. 주한미군 사령부에 가서 악수하고 사진 찍고 그랬는데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주둔군 사령부 먼저 방문해 악수하고 사진 찍어야 되는 상황이 어디 정상적입니까? 그러나 서글프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당시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한미 간 원만한 관계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급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되고 제일 첫 번째 중대사가 미국 방문이었습니다. 그게 한반도의 상황이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대화 해결 약속 받아내

핵문제가 터졌을 때 국내외에서 ‘칠 수도 있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북한이 할 수 있는 대안이 뭐겠습니까. 항복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명확하게 반대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연 남북문제가 풀릴 수 있느냐?’ 이 문제로 미국과 상당히 많은 대화와 논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일단 평화적 해결, 대화에 의한 해결이라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후 6자회담이 만들어졌지만 또 한 차례 갈등이 있다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 정동영 특사가 김정일 위원장 만나고, 9.19선언을 이끌어내고, 이제 잘 가는가 했니 BDA 사건이 불거져서 다시 미사일 발사, 핵실험까지 간 것 아닙니까?

북핵협상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은 언론과 한나라당

그때 제일 어려운 것은 우리 국내 언론과 한나라당입니다. 국내 언론과 한나라당이 미국의 강경파들보다 더 강경했습니다. 더 강하게 협박하고 더 강하게 비난하고. 제일 힘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참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이 요구했던 대로 했더라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대안도 없이 그냥 몰아만 붙였습니다. 그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지요.

북핵협상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원칙은 ‘평화’

협상할 때 항상 쓰는 전략이론으로 당근과 채찍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얘기하더라도 채찍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결국 대화론이 아니고, 판이 깨지는 강경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수준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적어도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선, 평화를 깨버릴 수 있는 위험한 채찍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강하게 계속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당근을 제공하자. 이익을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이익이란 것은 안전보장, 관계 정상화, 경제 지원, 이런 순서로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미국과의 사이에서도 굉장히 힘겨운 줄다리기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는 어떤 모험도 단호히 반대한다”

북핵문제는 그때그때 계속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상황이 아주 변화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바탕에 깔려있는 본질적 구도는 변함없이 한 가지입니다. 북핵문제 바탕에 깔려 있는 그 본질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양쪽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미국이 5년 동안 한반도에서 얻은 확실한 정보는 한국 정부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이나 강한 압력의 행사,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제재를 순순히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절대로 평화를 깨는 어떤 모험도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험을 거쳐서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이 마지막에 결단을 하게 된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여튼 이 문제가 풀려나간 서너 가지 요인 중에서 한국 정부의 일관성도 분명히 사태 해결에 한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지도자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정치인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 사람이 그 시기의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역사적 과제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가장 중요한 평가의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를 넘어 동북아 대결질서 극복해야

남북 간 평화와 통일을 그냥 남북 간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결은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냉전의 대치로 바뀌긴 했지만, 동북아 지역의 역사적 대결구도가 결국 한반도 분단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지금도 그 대결적 질서가 그냥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북 간의 협력·통합을 이야기할 땐 항상 동북아시아 질서 전체를 놓고 전략을 짜나가야 됩니다.

■ 이런 대통령을 꿈꿨다 - 낮은 권력, 높은 국민

대통령의 ‘말’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대통령의 말을 연습해두는 건데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서 잘 못 앉아 있고 말을 위엄 있게, 행동을 기품 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은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품위를 만들어 나가는 준비가 부실했던 점은 인정을 하지요.

시민과 함께 걷는 대통령을 꿈꿨다

팔메 수상은 스웨덴의 아주 훌륭한 지도자로 케네디처럼 유명한데 그 사람이 86년경 경호를 해제하고 아내와 함께 극장에 갔다가 저격을 받아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는 계엄이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팔메 수상처럼 자유롭게, 보통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니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그런 나라 한 번 만들어보자.’ 이런 희망을 제가 얘기를 했었지요.

참여정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참여정부가 뭐했냐? 참여정부 기간 동안 해야 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지요? 제가 공약한 것 아니겠습니까? 공약한 것 중에 못 이룬 것이 뭐지요?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지켜지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사회. 성적이 별로 나쁘진 않을 텐데요. 정경유착, 반칙과 특혜, 특권이 없는 사회. 성적이 별로 나쁘진 않을 텐데요.

권력 줄였지만, 가장 힘있는 정부

4대 권력기관 다 손 놓아버리고, 비합법적인 권력 수단은 일체 쓰지 않다보니까 보기에 따라 아주 약한 정부가 됐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정부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다 해결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매우 강한 정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물리적인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 그 일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권력은 정통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잃어버린 10년? - ‘경제파탄’이라는 거짓말

한국경제, 위기이고 파탄인가

한나라당과 언론이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데, 경제만 가지고 얘기하더라도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 경제가 엎어져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5년 동안 엎어진 경제를 일으켜 세워 놓았고 참여정부가 그 뒤를 이어서 경제의 체질을 바꿔냈습니다.

경제가 파탄이 났다고 주장하는데, 5년 내내 경제 파탄이지 않습니까? 경제파탄이 유행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올 여름에 인천공항을 거쳐서 빠져나간 사람들이 해외에서 쓰고 온 돈의 규모는 사상 최대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 경제를 적실하게 표현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경제의 중요한 한 지표인 것은 맞지 않습니까? 왜 하필 주식 가격이 몇 배로 뛰어오른 것은 인정하지 않지요? 주식 가격은 우리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한 것이 아닙니까?

한글신문과 영자신문의 차이

2004년부터 2005년, 2006년 사이에 외국 투자자들은 우리 주식에 투자를 많이 했고, 우리 국내 투자자들은 투자를 많이 안 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5월이 되면 이런 보도가 나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이만큼 벌어간다.’ 매일같이 경제파탄을 주장하는 한글신문 보는 사람들이 누가 투자를 하고 싶겠습니까? 결국 영자신문 보는 외국투자자만 엄청 돈을 벌어간 것입니다.

대통령 흔들려고 경제까지 흔들어서야

경제는 심리입니다. 언론과 한나라당이 경제가 망한다고 하는데 누가 투자를 하고, 누가 소비를 하겠습니까. 전혀 책임없이 보도하고 주장합니다. 대통령 깎아먹으려고 우리 경제까지 깎아먹어서야 되겠습니까.

경제성장으로 모든 게 해결되나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일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가 늘어야 민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 성장 몇 퍼센트 늘어나고, 수출이 얼마 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무너진 중산층, 불안해진 일반 직장인들의 문제를 오로지 성장만으로 해결하자고 70년대, 80년대에나 어울릴 법한 노래를 그냥 반복해서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학생 키가 쑥쑥 자랄 수 없는 일

경제 성장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경제인, 정치인, 언론인, 국민 모두가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중학교 때 매년 10센티씩 컸다고 대학생도 자꾸 10센티씩 커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한국도 이미 OECD 국가입니다. 성장률도 OECD 수준에 맞게 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수준을 무리하게 뛰어넘으면 인플레나 금리 상승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와 대통령의 역할

실제로 어지간히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에선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경제가 죽었다 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발전국가 같은 특수한 케이스에서만 경제가 이륙하는 단계에서 독재자가 한 역할에 대해 평가를 하는 이론적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런 특수한 케이스 외에는 정치지도자에 의해 경제가 죽었다 살았다 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의 컨디션

지금 한국경제는 체력적으로 가장 건강합니다. 기술수준도 지금 제일 높은 수준입니다. 축구팀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초체력도 있고 기술수준도 이만하면 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한국 경제는 컨디션이 아주 좋은 수준입니다.

대북정책 반세기, 갈등만 있고 성과는 없다.

대북정책에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목표는 통일입니다. 그 밖에 독재 시대에는 반공, 안보, 승공통일, 이런 냉전 논리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냉전 체제의 붕괴와 민주화 이후에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 이런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그 어느 목표도 치열한 갈등의 소재가 되었을 뿐,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어느 목적도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과가 너무 빈약합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목표가 잘못 설정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북 문제를 다루는 인식과 자세,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남북 협상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동안 대북정책으로 거론이 되어온 주제들 중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싶은 문제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싶은 문제 몇 가지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의 새로운 활로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희생할 수도 있는가?
평화통일, 과연 가능한 일인가?
통일 논의, 이대로 좋은가?

통일인가? 평화인가?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필요할까요? 상호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인가요?
분단국가에 있어서 통일은 지상의 명제입니다. 이 논리대로 가면 통일을 위해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을까요?
평화는 인간의 행복에 가장 결정적인 조건입니다. 평화 없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입은 손실은 그 무엇으로도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경험했고 아직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통일을 위한다는 명분이라 할지라도 평화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는 평화를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통일이든 평화이든 모두 이념적 성격과 현실적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통일은 이념적 포장이 많은 반면에, 평화는 이념의 포장이 없습니다. 평화는 생생하고 절실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평화통일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다짐하자.

지난날 북진통일론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확실하게 정리해 두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같은 주장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다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통일 아닌 통일은 없습니다.

평화를 대북정책의 독자적인 목표로 삼자.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대북정책에 관한한, 통일로 가는 중간과정이나 통일 방안의 일환으로 평화를 말했을 뿐, 평화 그 자체를 남북관계의 목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분단 상태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분단 고착을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먼저 성취하지 않고는 통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평화가 먼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화통일 전략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동북아의 평화구조가 선행되어야 하고, 동북아의 평화구조에는 한반도의 평화구조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제 통일방안의 일환으로서, 또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통일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가치로서, 대북정책의 고유한 목표로 설정하여, 평화정착을 위한 전략을 말하고, 평화계획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 정착에 진전을 볼 수 있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 과연 가능한 목표인가?

모두가 통일을 이야기합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통일을 노래해 왔습니다. 그런데 통일의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통일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통일을 너무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통일의 의미를 냉정하게 다시 짚어봐야 합니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통일이란 두 개 이상의 국가 권력이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국가연합, 연방, 단일국가를 신설해서 통합하는 신설통합이나, 어느 한 국가로 나머지 국가를 흡수하는 흡수통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나 국가 권력의 전부 또는 일부가 소멸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연방제 주장이 나오고, 남북연합이라는 개념이 국가적 정책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일부를 양도하여 연방정부 또는 연합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입니다.

어느 개념을 채택하거나, 통일을 위해서는 권력의 소멸이나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는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통일이라는 것은 이런 일을 합의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권력을 소멸하게 하거나 양도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속성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국가는 가치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도덕적 실체라는 것이 근대 이래의 국가이론입니다. 그 위에 권력은 종교, 또는 이념으로 정당성을 포장합니다. 나라를 분열하여 분단 정권을 세울 때에도 이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나 이념적 명분을 훼손하는 양보를 말한다는 것은 반역이 될 것입니다.
누가 감히 양도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역사적으로 전쟁, 또는 일부 국가권력의 붕괴로 인한 통합은 있어도, 합의에 의한 통합은 그 사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억지로 사례를 찾는다면 미국의 연방정부 수립과, 유럽의 통합을 합의에 의한 통합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경우와는 의미와 여건이 아주 다릅니다.
이들 국가의 사례는 분단국가의 통합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는 독립전쟁이라는 역사적 성공을 이룬 동업자들 간의 통합이었고, 유럽연합의 경우는 한발 앞선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인류의 미래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일제 치하에서부터 치열한 이념의 대립과 분열이 있었고, 이것이 해방 정국에서 권력투쟁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분단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분단 정부의 수립 후에도 세계 냉전 체제의 첨단에 서서, 동족간의 전쟁을 치르고, 극단적인 이념대결을 벌여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조건의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의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비록 합의형 통일을 이룬 예멘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재분열과 무력에 의한 재통일을 한 바 있어, 우리가 통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역사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통일을 말할 일이 아닙니다. 진지한 자세로 통일이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 있게 말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정색하고 이야기 해 봅니다. 과연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가능한 일인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라고 말입니다.
국가의 통일, 민족의 통합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상의 이념입니다. 이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내야 합니다.

평화통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금기를 깨고 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분열의 원인이 된 요소들을 해소해야 한다.
국가주의 사고를 넘어서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협상의 일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종국적인 관건은 신뢰이다.

금기를 깨고, 현실을 말하자.

우리의 대북정책에는 여러 가지 금기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현실을 현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있습니다. 북쪽 땅에는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은 사실상 국가권력입니다. 그러나 북한 땅은 우리의 영토라고 말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은 반국가 단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헌법 위반이 됩니다.
북한 정권을 인정하거나, 그쪽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북쪽의 주장을 수용하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좌경 용공이 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금기는 법적 정치적 당위를 강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국민을 설득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진지하고 책임 있게 통일을 추구하는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금기를 깨야 합니다. 당위는 당위이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상투적인 권력투쟁, 이념투쟁을 넘어서야 합니다. 현실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사실을 사실로 말하고, 상대를 상대로 인정하고, 상대의 주장도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합에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인 통일방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분단의 요인을 해소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의 패권경쟁, 국제적·국내적 이념 대결의 결과입니다. 이들 분단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고는 분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들 원인을 극복하고 해소해야 합니다.
자주역량과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우리의 힘만으로 세계의 패권경쟁, 이념 대결 자체를 해소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대결장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북아의 질서를 대결의 질서가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방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영외교, 일방외교는 분단의 원인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합에 대한 주변 국가의 동의를 얻어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주역량과 균형외교가 필요합니다.

이념 대결을 넘어서자.
이념 대결의 틀 안에서 이념 대결로 빚어진 분단을 합의로 극복한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입니다. 승공통일의 사고를 넘어서야 합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하는 대결주의도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국가주의 사고를 넘어서자.

앞에서 말했듯이 전통적인 국가관을 그대로 따르면, 국가권력의 일부를 양도하자고 말하는 것은 반역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럽에서는 유럽의 통합을 위해 주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국가 주권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사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진심으로 통합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합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주권의 일부를 양도할 수도 있고, 양보가 항복도 이적행위도 아니라는 인식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평화통일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통합을 하려고 한다면 진정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국가주의 사고를 넘어서야 합니다.

정쟁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남북 통합은 민족의 지상과제입니다. 정파적 이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파가 초당적 협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부닥치면 사사건건 치열한 정쟁의 대상이 됩니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합의 전략이 다를 수 있고, 전략이 다르지 않더라도 실행과정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야당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북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은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전략 논쟁도 아니고 논리적 비판도 아닙니다.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 이념 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념 대결로 생긴 분단을 넘어서자고 하면서 이념 대결에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달라졌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사고의 구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쟁이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습니다. 이제 정쟁을 가치와 전략의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정치인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 힘이란 국민적 합의에서 나옵니다.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대북정책의 가치와 전략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여론의 대세를 형성하고, 나아가서는 이를 투표 결과에 반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이것을 국민적 합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의 속성과 정권의 욕심을 넘어서 권력을 양보하여 통합을 이루는 일은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역사의 법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는 권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들어 갑니다. 여기에 국민적 힘을 말하고 국민적 합의를 말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협상의 일반적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지금 협상의 국면에 있습니다.
흔히들 외교적 수완, 또는 협상의 기술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을 얼른 들으면 협상의 요체가 무슨 기교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외교나 협상은 결코 기술이나 수완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원칙이 중요합니다.


협상에서 존중해야 할 일반적 원칙은 무엇입니까.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협상을 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실제로 남북 간 협상에서는 정통성에 관련되는 발언 시비로 협상 자체가 무산되어 버리거나 협상에 들어가서도 시간만 낭비하고 마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감정과 비난을 일삼는 일도 삼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
협상은 상호간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적화통일의 목적을 존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쪽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량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체제 유지를 위한 명분용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 상황에 맞는 북쪽의 목적은 체제를 방어하고 유지하는 것일 겁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것인가. 평화를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존중하면서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가 이렇게 가면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집니다. 별도의 논의가 필요해집니다.
그 밖에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이라는 목적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실한 자세로 합리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
진심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고, 진실한 사실과 사리에 맞는 논리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협상에서는 전략적 발언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명분을 위한 거짓말이나 억지 주장은 협상을 위태롭게 합니다.
기 싸움을 하거나 국내 정치용이나 국제사회 명분용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절제해야 합니다.
사리를 따져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일도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따져서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정이 쌓이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협상의 결과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국가 간의 협상결과는 약속 중에서도 특별히 엄숙하고 무거운 약속입니다. 그런데 지난날 우리는 수시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뒤집었습니다.
북한이 그렇게 한다고 우리도 그렇게 할 일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열쇠는 신뢰이다.

신뢰 없이는 아무 것도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평화와 공존에 대한 신뢰, 진심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믿음, 약속은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상대이다. 믿을 수 없는 상대를 두고 신뢰를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그렇게 주장할지 모릅니다. 상호불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양쪽은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습니다. 신뢰가 존재할 리가 없습니다. 대화를 통해 신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먼저 상대를 신뢰하고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신뢰하지 못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신뢰가 무너져도 낭패가 되지 않을만한 일, 상대가 약속을 위반할 경우에도 대비가 가능한 일, 이런 일부터 해나가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도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지사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에 관해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하는 일마다 의심하고 불신하게 됩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흡수통일은 평화통일인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평화통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흡수통일을 전략으로 삼아서 상대 권력의 붕괴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북한을 자극하여 평화통일을 깨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탈북자 문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일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이 될 수도 있고, 통제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북의 붕괴를 획책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생각이 짧은 사람들입니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북한은 반국가 단체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법대로 하면 남북 간의 대화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대담이나 토론에 나가보면 ‘연방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이 아니고 반드시 있습니다. 연방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면 당장 시비가 됩니다. 6.15 공동선언에서 언급한 연방제 문제도 언론과 국회에서 종종 시비꺼리가 됩니다. 연방제 주장이 찬양, 고무에 해당한다는 국가보안법 판례가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시비꺼리를 만들거나 보도하기 위한 것이 었습니다. ‘합리적이다.’ ‘명석해 보인다.’ 이런 대답을 하면 당장 국내에서 큰 시비가 걸립니다. 법적으로는 찬양, 고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화의 상대방을 ‘약간 이상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6.25전쟁은 남침인가? 통일전쟁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악의적인 이념 공세입니다. 이 또한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이념적 대결주의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남북 대화의 걸림돌입니다.

9.19 선언과 10.4 선언에 관하여

지난 2005년 9,19 선언은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를 위한 구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깨져 버렸습니다. BDA에 대한 미국의 재제조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핵실험이 이어졌고, 북미 회담은 2년 이상 지체되어 버렸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2007. 10. 4. 선언은 이념적, 정치적 성격은 거의 없고 실용적, 실무적 내용으로 된 선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선언을 존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남북관계가 다시 막혀버렸습니다. 관계를 복원하는데 많은 시간과 부담이 들어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관계 복원을 위해 허겁지겁 이런 저런 제안을 하는 모습이 좀 초조해 보입니다. 그야말로 ‘자존심 상하게’ ‘퍼주고’ ‘끌려 다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존심 상하고, 퍼주고, 끌려 다닌다, 이런 비난은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전매 특허였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결과로서 신뢰가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상대를 자극하고 신뢰를 흔드는 일이 많다.

한미 동맹은 본시 대북 억지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목적은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 간 국력의 차이와 냉전 구도의 변화로 대북 억지를 위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남북 대화의 국면입니다. 진정으로 대화를 성사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대북억지를 위한 한미동맹과 관련된 수사적인 표현의 수준을 있는 대로 높여서 강조하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대북 억지를 위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좋을 상황입니다. 여기에다 일본까지 끌어넣어 더불어 ‘이념과 가치를 함께하는’ 한·미·일 협력관계를 과시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나아가서는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불편하게 만들뿐입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제는 동북아에서 어느 한 쪽과도 적대적이지 않은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에 비중을 두는 것이 동북아의 상황에도 맞고, 남북 간의 대화 국면에도 적절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이념 공조를 강조하고, 북한을 굳이 주적이라 명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제공격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남북 간에 신뢰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어떻게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얻고, 동북아 평화 구조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P.S.I와 M.D에까지 가담을 하게 되면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대결구도로 만들고 우리도 그 한쪽에 가담한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정말 이것이 동북아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대화를 촉진하는 길이 될까요? 이것을 평화통일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큰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계 5027은 북한의 도발을 전제로 하고 있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경고성 계획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한미 연합군이 북한 전역을 완전히 석권한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은 이 전제의 해석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으로서도 신경이 쓰일만한 내용입니다.
작계 5029는 전쟁 이외의 사유에 의한 북한의 유사시에 한미 연합군이 북한 지역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획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이 한국에 제안하였으나 한국은 이것을 거절하는 바람에 작전계획으로 성립하지 않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이 계획이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만한 민감한 것입니다.
작계 5027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나, 작계 5029는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과연 지금 이런 작전 계획이 필요한 것일까요? 설사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북한, 중국과의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는 부담을 무릅쓰고 강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역지사지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북한의 처지에서 생각해봅시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과 대규모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국의 국력과 군사력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송전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받지 않았습니다. 언제라도 목을 조를 수 있는 일이라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강 하구나 휴전선 이남에 합작 공단을 조성하자는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북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인지를 생각해 보았는지 의심스러운 제안입니다.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와 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사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상대방의 생각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당선자 시절 북핵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의 무력행사 가능성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물론 무력행사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북한의 굴복을 받기 위한 전술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전술가들은 나의 발언을 서투른 아마추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원칙을 바로 세우고, 신뢰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전술적 가치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하게 원칙을 말하여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작전 통제권의 환수

자주국가가라면 당연히 작전 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작전 통제권을 환수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작통권 환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작통권도 가지지 않은 나라가 참여한다는 것이 시비꺼리가 될 것입니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을 더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이나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위해서는 다자 안보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 대화 체제에서 미국이 너무 커보이게 되고 이것은 다자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작통권의 환수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진하였습니다.

나는 전략적 유연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두었으며 PSI 또한 북한과 물리적 충돌가능성이 있는 조치에 대해서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M.D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작계 5029도 반대했습니다. 한미 군사 훈련도 최대한 축소하려고 노력했고, 남북 간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면 최대한 사리를 밝혀서 북한을 변론했습니다. 개별 정상회담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 상해도 참았습니다.
이 모두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의 보답은 빠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는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결국은 정상회담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회담에서는 많은 합의가 있었습니다. 한 번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의 크기를 평가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일 것입니다.
BDA만 아니었더라면 정상회담은 훨씬 일찍 열렸을 것이고 남북관계는 훨씬 앞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상호주의란 무엇인가?

말 뜻 그대로라면 당연한 사리로 보입니다. 그러나 상호주의라는 말의 내용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가치를 비교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쓰일 수 있는 말입니다.
개성공단 투자는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주의에 맞는 것인가요. 아닌가요. 해주공단, 안변 조선공단, 이런 것이 성사되면 우리 경제에도 큰 활로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개성 평양 간 도로와 철도에 대한 투자에는 시비가 많았습니다.
대북정책에 관한 한 상호주의라는 말은 대화와 협력 정책에 대해 시비를 거는데 사용되어 온 용어입니다. ‘왜 일방적으로 퍼주는가? 자존심도 없는가? 왜 끌려 다니는가? 본때를 보여야 한다.’ 이런 비난의 뒤에 ‘상호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따라옵니다.
결국 상호주의라는 말은 대결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합니다.

실용주의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이 말에 대한 언론의 반응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용주의의 반대 개념은 무엇인가? 가치, 이념, 정통성, 이런 개념일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을 강조하는 것, 동맹을 강조하는 것,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이런 것은 실용주의인가요 이념주의인가요
연방제 말만 나오면 시비를 걸고, 김정일 위원장의 인품을 묻고, 6.25 전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물어서 시비를 하려고 하는 자세는 실용주의에 맞는 것인가요?
실용주의 운운 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 정말 헷갈립니다.

결국 대북정책은 근본적인 사고와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저런 구체적인 통일방안이나 협상의 전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전략은 근본적인 사고와 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고와 자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http://www.knowhow.or.kr/speech/view.php?start=20&pri_no=999999971&mode=&search_target=&search_wo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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