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 팔려간 기구한 탈북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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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조선족이 이럴줄은 몰랐네요 (베이징=연합뉴스) 박기성 특파원 이옥화(24ㆍ가명)씨는 18세 때인 1999년 겨울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숨어 든 탈북 여성이다. 중국 생활 6년째를 맞으며 이제 불법 월경자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녀지만 탈북 초기 겪었던 고통은 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17세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난 뒤 가정 형편이 더욱 어려워져 당시 대학에 다니던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온 가족이 끼니를 걸러 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시절은 차라리 행복했다. 중국행은 "거기 가면 돈을 벌기 쉽다"는 북한인 탈북 브로커의 꼬임보다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쉽사리 깨어나지 못할 악몽의 시작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고향인 함경북도 한 도시에서 기차로 4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곳은 두만강이 바라다 보이는 회령이었다.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꽁꽁 언 강 앞에 이르자 국경수비대원이 지키고 있었고 브로커는 그와 귀엣말을 주고받고는 도강을 재촉했다. 얼음판 위로 30여m를 걸어 강 반대쪽 어귀에 닿은 뒤 브로커는 기다리고 있던 조선족 3명에게 옥화씨를 인계하며 "이 사람들을 따라 가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는 온 길로 되돌아갔다. 첫번째 인신매매가 이뤄진 것이다. 옥화씨는 브로커가 자신의 몸값으로 이들로부터 2천위안(약 24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들이 승용차로 옥화씨를 데려간 곳은 룽징(龍井)이었고 집안에 갇혀 이틀 낮밤을 지내다 이 곳에서 차로 4시간 가량 떨어진 푸쑹(撫松)으로 다시 팔려 갔다. 자신의 아버지 나이는 된 듯한 조선족 남성은 "널 5천위안이나 주고 샀으니 도망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겁에 질린 옥화씨는 사흘간을 죽은 듯이 지내다 한밤중에 속옷 바람에 도망쳐 무작정 불빛이 보이는 대로로 향했다. 이번에는 거리에서 만난 조선족이 그녀를 협박해 지린(吉林)의 다른 조선족에게 2천위안에 팔았고 이 조선족은 다시 5천위안을 받고 한족에게 그녀를 넘겼다. 이렇게 한 남자에게서 다른 남자에게로 팔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20세도 채 되지 않은 옥화씨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이 한족은 랴오닝(遼寧)성 한 깊은 산골마을의 다른 한족 농사꾼에게 1만6천위안을 받고 그녀를 팔아 넘겼다. 당시 26세의 이 남자는 옥화씨를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기지 않았고 그녀는 그 해 12월 그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그 곳에 정착했다. 옥화씨가 원했던 것은 이런 삶이 아니었지만 첩첩산중 외딴 시골 마을에서 도망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중국 말이라도 배우자는 생각으로 그대로 눌러 앉게 됐다. 해를 거듭하면서 아이는 자랐고 가짜 중국인 호구(戶口)까지 만들어 지내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중국 사람으로 변해 갔다. 남편의 동의를 얻어 지난 4월 베이징(北京)으로 돈벌이를 하러 나선 옥화씨는 자신과 같은 경로를 거쳐 동북 3성의 시골로 팔려 간 탈북 여성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한국에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붙들려 북한으로 송환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한국으로 가려다 붙잡히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까지 극심한 고초를 겪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지난 2개월간 인편으로 6천위안을 고향의 가족들에게 부칠 정도로 이제는 베이징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 옥화씨는 지난 세월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하면서 "한국에는 통일이 된 뒤에 꼭 가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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