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벌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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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글 역시 저의 중고교 동기회 게시판에 올린 겁니다. 세상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파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성중 동문이 내게 1년 6개월 정도 더 근무할 기회를 주었지만 교사 정년퇴직 2년 남겨놓고 자진퇴직했다. 내게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60여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질풍노도 Sturm und Drang, the storm and stress.의 연속이었다. 어렸을 때 열(10) 식구가 굶어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군대에 가서, 맞아죽을 뻔한 적도 있고, 동상(凍傷)에 걸려 생병신이 될 뻔한 적도 있었고, 월남전에서 수시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박격포탄에 떨기도 했다. 비행기와 배를 타는 것이 무서웠지만 먹고살기 위해 5대양과 6대주를 돌아다녀야했다. 하지만 좋은 세월도 몇 번은 있었다. 월남에서 순전히 영어 English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제대하고나서 은행에서 현금으로 42만원을 찾았는데, 당시 고액권 지폐 100장짜리 42묶음이었다. 가지고 간 보자기가 부족해서 형과 나의 모든 주머니에 돈다발을 쑤셔 넣어야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 시절 일본책들 몇 권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영어참고서를 썼는데 무려 50만권이 팔렸다. 당장에 서울 중심지에 52평형 빌라를 구입했다. 20여년 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입시학원에 있을 때, 낮에는 1 시간 당 5만원, 밤에는 13만원을 받았다. 그밖에 원고료, 채점비까지 합치면 월수입이 거의 1000만원에 육박했다.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 그런데 학원장이 익살스러웠다. 언제나 월급을 현금으로 주었다. 1만원권 지폐 100장씩 10다발을 쇼핑백에 담아 집까지 들고 가야했다. 그런데 마누라와 함께 방바닥에 쏟아놓고 세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후 내 건강이 이상해지니까 겁이 난 마누라는 노후대책을 위해 초조해졌다. 내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주식으로 1억원을 날렸고, 남대문 사채업자에게 5000만원을 빌려주고 두 달치 이자를 받고나서 떼었다. 지금 나는 혼자서 매달 110만원으로 아주 편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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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어를 제일 배우고 싶은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