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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담화문보다는 법치구현의 左右(좌우)에 날선 劍(검)을 사용하실 때입니다.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317 2009-06-21 15:49:14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본문의 화목의 의미를 먼저 말하고자 한다. 和睦(화목)이란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성질이 아닌 하나님의 본질과 같은 동질을 갖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거짓과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씀하기도 함이다. 때문에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는 거짓을 분리하는 검을 가져야 하는데, 그 검은 하나님의 말씀의 검, 곧 좌우에 날선 검을 말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동질이 되는 것이 마른 떡 한조각만 있어도 肉饍(육선)이 가득한 상태로 하나님과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하신다. 하나님과 다투는 자들과 합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그런 것에 실패하고 있다. 흥정해서는 안 되는 것에 힘을 모으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다. 헌법의 명령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장사 속으로 자기정권의 유지만을 도모하고 국가에 망함을 불러들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정권만 살려고 임시 통변한다면 더욱 큰 낭패를 겪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2. 때문에 우리사회는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어제 대통령은 노무현의 자살에 대한 談話(담화)문을 한다고 한다. 國民葬(국민장)을 허락해서도 안 되는데, 정치권력의 이익을 위해 참된 가치를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대통령의 담화문은 사과를 담아내는 것인데, 도대체 대통령이 무엇을 사과하고 왜 그런 담화문을 해야 하는가? 반역자들의 蠢動(준동)을 국민통합차원에서 다루자는 것은 너무나 상황인식이 安易(안이)한 것은 아닐까 한다. 대통령의 자리는 헌법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보다 더 나은 가치로 승화하지는 못할망정 法治(법치)구현을 이루는 검찰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오히려 반역자들의 기를 세워주는 담화문은 叱咤(질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基準(기준)을 가져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보다 더 나은 말로, 같은 행동도 보다 나은 것으로 먹고 입고 마시고 자고 사는 것의 모든 것을 보다 더 나은 것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게 文明(문명)의 의미이다. 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本能(본능)이고 생명의 의미이다. 그런 운동이 없다면 인간은 죽은 것이나 진배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 안에서 항상 본질적으로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신다.

3. 하나님은 만유의 대표시고, 하나님의 그러한 나름의 추구가 없다면 만유는 보다 나은 것을 입을 수도 먹을 수도 없게 된다. 대통령의 담화문 선택은 국민통합의 보다 나은 처사가 아니라고 본다. 이는 外治(외치)의 공과에 파묻힌 오만한 행동이다. 法治(법치)구현을 해야만이 비로소 국민의 통합을 가능케 한다. 국민통합은 타협과 거래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것은 버릇을 잘못 들이는 것이고, 그런 선례를 남기면 여전히 平地風波(평지풍파)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말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外治(외치)의 결국은 內治(내치)의 힘으로 작용되게 해야 하는데, 법치구현을 하는 것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보면 알겠지만 법치구현만이 국민통합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서 오늘의 말씀의 英譯(영역)은 [Better is a dry morsel, and quietness therewith, than an house full of sacrifices with strife.] [Better~] ~것보다 나으니라의 原語(원어)는 『towb (tobe)』라고 읽고 그 속에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의 보다 나은 것을 알려면 기본 값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준을 삼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그 지혜의 기준을 따라 보다 나은 것의 정체가 만들어지거나 드러나거나 결정된다.

4. 따라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준을 따라 보다 좋은 good을 담고 있게 된다. 이번에 대통령의 선택은 자기들 보기에 좋은 것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인가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름부음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더 유쾌한 pleasant,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다 더 기분 좋은 agreeable, 하나님의 보시기에 보다 더 좋은 느낌 agreeable (to the senses)을 갖게 되시는데, 이는 더 나은 제사, 더 나은 중보, 더 나은 제사장, 더 나은 성소의 의미로 주시는 하나님의 본질의 공급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되는 하나님의 동질의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분량을 갖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흡족한 유쾌함 pleasant(to the higher nature)를 이루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다. [창세기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하생략]. [창세기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과연 김대중의 세력에 굴복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5. 국민 大多數(대다수)가 그의 죽음의 비겁함을 알고 있는 때에 무슨 담화문을 하라고 하느냐고 소리치고, 模倣(모방)자살이 늘어난다면 어쩔 것이냐 하는 것의 이유를 들어서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결정만해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는 기준에서 좋은 것이나, 생명을 멸시하는 기준은 마귀의 보기에 좋은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기준이고, 거기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더 좋은 것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는 창조의 기준이 제시된다. 때문에 인간에게 인간의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게 한다.『towb (tobe)』에는 보다 더 나은 것 곧 특별한 종류 excellent (of its kind), 하나님의 부요의 보다 나은 가치 rich, 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보배들 valuable in estimation의 의미가 인간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을 위해 달려가는 자들이 된다면 물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뇌물로 기업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치부를 목표로 하는 경제활동보다는 이웃사랑 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아가페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달려가는 운동을 하였을 것이다.

6. 그것이 하나님의 가치기준에 따라 보다 나은 가치의 적정선 appropriate, becoming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비교적인 보다 나은 better (comparative)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황금만능에 빠져 허덕이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유의 가치를 위해 이웃사랑의 가치를 위해 전 인류의 구원적인 가치를 위해 달려가게 해야 한다. 지구의 구원을 필요로 하게 하는 정치군사적인 무기의 그 가공할 파괴성을 생각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과 환경의 보호의 친화적인 기업과 무너진 생태계의 복원과 치유에 힘을 쏟는 가치의 추구가 강해야 한다. 더욱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쁨, 보다 나은 질적인 기쁨과 보다 다양한 건강한 기쁨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온 인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가페로 이웃사랑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의 참여도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구원의 길이고 그것이 곧 건강한 기쁨을 갖는 길인데, 거기에 투자하는 국민이 늘어나야 한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7.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 있고 glad, 하나님의 행복도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때에 있고 happy를 담고 있다. 어떤 자들은 보다 나은 기쁨의 기준이 김정일 식이 있고 김대중 식이 있을 것인데 모두는 그것의 기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에 기준을 만족하게 하려고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그러지고 거슬리는 세대에서 누가 북한주민의 참담함을 지고 갈 것인가? 우리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다. 살인착취가 성행하는 것이 보다 나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인가? 문화와 문명이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나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인가? 북한주민을 고통 속으로 심각하게 몰아놓고 민족이라는 허구성에 공동값을 삼아 민족통일이니 뭐니 하는 것의 평화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보려는 자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것이 마치도 최고의 가치인양 버젓이 행동하는 세월의 양심은 죽은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그렇게 더럽고 더러운 것이다. 많은 드라마와 映畵(영화)들이나 가요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나은 것인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보다 나은 가치의 추구, 감각의 알맞은 prosperous,

8. 사람 속에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미적인 감각에 따라 알맞은 (of man's sensuous nature), 특히 sensuous는 주로 미적 감각의 만족에 관한 것을 뜻하는 말인데 sensual 외설적 호색적인 의미를 함유한 말이고 voluptuous 감각적 관능적인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성적인 방종은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sensual 외설적 호색적인 것으로 가득한 문명에서의 가치는 무엇이고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가? 성적인 것이나 가정적인 것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오로지 감각적인 관능적인 욕구에 따라 살아야 하는 voluptuous의 팽창의 가치란 무엇인가? 인간이 가치를 감각적 관능적인 욕구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의 의미를 보다 더 나은 가치추구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추한 것이고 진노를 산다고 하신다.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towb (tobe)』는 sensual, voluptuous만 빼고 sensuous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가장 좋은 명철 곧 지성인이 가진 보다 나은 명철의 가치 추구의 성격으로 good understanding (of man's intellectual nature)의 세상을 연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입장에 선 자들을 지성인이라고 하신다. 참된 추구는 그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9. 가치추구의 진행이 멈추면 그것은 퇴보를 향해 동작모드의 변환을 위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지성은 언제든지 가치추구에 진행을 쉬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동질성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처럼 보다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한다. 그것이 곧 동질성의 분위기가 되고 그 사회의 풍조가 된다.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회 類類相從(유유상종) kind 및 끼리끼리 친절함을 담고 있다. 그런 자들을 대하는 사회의 풍토나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온화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다 나은 가치추구의 동질에 대한 상냥한 친절한 자애로운 분위기가 풍토가 좋은 온화한 상서롭게 여기는 길조로 여기는 benign을 담고 있는데 그것이 곧 『towb (tobe)』이다. 보다 나은 것으로 향해가는 주님의 눈빛은 인간에게 진보하라고 하신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의 진보는 살인착취의 노예가 되라고 하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참으로 기가 찬 일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동일한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한데, 하나님은 그런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가치관을 가진 자들의 내용에 하나님의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 우리의 꿈은 고기에 있지 아니하고 화목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10. [마태복음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하나님은 살인착취의 친구들과 합하는 거래를 하라고 하신 적이 없고, 대한민국 헌법도 그것을 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권력의 오만은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을 통치행위를 빙자하여 거래하고 있다. 이는 사악한 짓이다. 우리는 가치를 기리는 기준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포괄적인 뇌물혐의를 받고 자기가정을 지키려고 자살한 자를 기려서는 안 된다. 생명의 가치를 욕되게 한 자들이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私(사)를 위해 公(공)을 죽이고 법치를 비웃고 자살한 것이니, 더욱 안 되는 것은 그가 대통령을 지낸 자이기 때문이다. 법치구현을 무너지게 한 자들을 기리는 짓은 안 되는데 계속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towb (tobe)』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다 나은 가치추구의 올바른 생각과 행동 right (ethical) n m, 하나님 눈에 보다 더 나은 것 a good thing, 하나님의 보다 더 나은 이익 benefit, 하나님 눈의 기준에 따라 보다 나은 공공의 행복 또는 福祉(복지) 福利(복리) welfare, 하나님의 가치 기준에 따라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의 번영, 행복, 특히 공공에 종합적으로 보다 나은 좋은 것들 prosperity, happiness, good things (collective),

11.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방향으로도 도덕적으로 보다 더 좋은 가치 moral good n f, 하나님의 가치로 보다 더 나은 滑手(활수)함 너그러움 厚(후)한 마음 慈悲心(자비심) 博愛(박애). 은혜로운 것, 은혜, 하사금(下賜金 bounty) 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劍(검)을 주려고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좌우에 날선 검으로 참된 가치와 거짓된 것이 합쳐지지 못하도록 갈라 버리시는 것이다. 다시 합해지지 못하도록 갈라버려야 한다.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진정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신차려 바로 서서 대한민국을 굳게 세우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참된 가치에 눈을 뜬 나라와 국민은 복이 있다. 그것만을 고수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검을 가진 국민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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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劍(검)을 사용해야 할 때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周邊(주변)이라면 속히 改閣(개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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