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펀글(탈북녀 최진희씨글) 김대중 햇볕정책 평가
나그네 4 587 2005-06-25 23:15:08

남한선호 바람 일으켜 시장경제로의 전환 계기

2005-06-14 14:31
최진이 (탈북시인)

김대중 씨가 평양에 가 김정일을 만나고 6 ·15공동성명을 발표한지 벌써 5주년이 되어 온다. 내가 한국사회에 입문한 주기와 맞먹어서인지 나에겐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을 맞으며 김대중 씨의 대통령 임기시절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에도 일부에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에 대해 탈북인으로서 나 개인의 견해를 잠시 피력해보고자 한다.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회가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사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문제는 명확한 선을 못 그은 채, 즉 대북송금을 어떤 차원에서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국내 국민에게 올바로 인식시키지 못한 채 정몽헌의 자살에 부딪쳐야 했다.
그 이후로 대북송금 문제는 한국사회의 중심이슈로 거론될 수 없는 미묘한 성격의 문제로 이전되어 논쟁 테이블 위에서 잠식되어야 하였다.
정몽헌 자살 직전까지 대북송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향을 보면 대북송금을 해야 한다는 쪽(극소수)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최다수)으로 나누어져 왔음을 볼 수 있었다.
양쪽은 자신의 논리로 상대편을 설득시키기에 서로 실패하였다. 대북관계에 대해 거시적 관점을 갖고 있는 몇몇 인사들이 거국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수차 주장하였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 제안을 충분히 납득하기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당해온 공산북한의 한이 너무 뿌리 깊었다.
또한 한국 사회 위정자들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비리에 대한 환멸도 대북송금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것들은 드러나지 않은 내적 원인들이고 외부로 드러난 한국인들의 대북송금을 찬성할 수 없는 이유는 이쪽에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한 돈을 북한당국자들은 핵개발에 이용하여 우리를 향한 무기를 만들게 한다라는 것이었다.
또 북을 떠나온 한 유명인사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북송금이 북한의 반인민적 체제를 연장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두 번째 큰 이유가 되었다.
북한의 전제정치에 일찍부터 환멸을 느껴 드디어 그곳을 탈출한 탈북자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위의 논리들을 긍정하고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음을 고백 드린다.
그러나 북한의 중하층 출신 시인으로서 살인적인 기아와 전제정치가 전횡하는 북한 사회에 살며 인본주의 정치를 누구보다 목이 타도록 갈망해온 한 사람인 나는 이 문제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측면이 있었음을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대북송금이 남북간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어떠한 효과를 가져왔는가와 대북송금이 과연 북한에서 핵무기 제조에만 쓰여 졌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고위급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일부의 논의에 대해 공감이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면서도 김대중 씨의 정책에 대해 긍정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근거를 들려고 한다.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북한권력자들의 권력유지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50년 동안 북한인들 속에 주입시켜 온, 동토대처럼 얼어붙었던 북한인의 남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햇볕정책기간 녹아 버린 데 대한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너나없이 놓쳐왔다.
그 대표적 실례가 북한 사회에 버젓이 배회하는 남한 선호의 선풍적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의 한 일환으로 북한엔 1998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남한 상표를 단 물건들이 2000년 이후로 북한 시장들에 보란 듯이 나돌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숨겨올 수밖에 없었던 북한인들의 남한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햇볕정책이후 잦아진 이산가족 만남을 계기로 돌출된 것이라고 나 개인적으로는 정의가 된다.
북한 정부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오늘날 북한사회인들의 남한(자유사회) 동경 분위기는 햇볕정책이 전 북한인에게 안겨준 보이지 않는 큰 선물이다.
또 10년에 한번씩이나 진행 될까 말까 하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더는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로 잦아졌고 남북의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의 한을 풀게 된 것은 분단역사 반세기만에 남북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러한 성과들이 “돈”이라는 매개물 없이 과연 성사될 수 있었던 것들이었을까? ‘NO’라고 답변이 거침없이 나온다.
물론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퍼주기 정책이 덮어놓고 옳지는 않았다고 해도 북한 지원 정책의 새로운 노정에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과도기적 단계가 아니었을 가 싶다.
북한은 한국에서 지출된 대북지원금으로 시장경제로의 탈바꿈을 위한 시도를 한 흔적들을 우리는 보고자하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북한이 새로운 '경제관리조치'후 상점 물가를 올리고 장마당을 없애는 동시에 북한의 전반적 근로자들에게 3개월 분의 월급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각종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경제자활능력이 없는 북한이 자국내 전 근로자들에게 3개월간이나 지급한 막대한 돈은 어디서 취해낸 것이었을까?
1998년 이후, 북한에서 거의 사라졌던 꽃제비들이 최근 다시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데 그럼 그 5~6년간 북한이 전반적으로 최악의 기근을 면해온 물질적 토대는 어디에 기반 해 있었을까?
반대로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지시켰다고 해서 기아라는 그 한가지 원인 때문에 권력욕 외에 다른 안목이 없는 김정일이 자기 권좌를 내 놓았을 수 있었을까? 그는 기아를 정권유지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희대의 인물인데 말이다.
김정일이 보기에 자기의 생존과 무관한, 정말 별 것 아닌 국민기아 문제로 수십 년 간 공들여 쟁취한 자기 권좌에 위협을 주는 개혁을 섣불리 시행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 불가능한 부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김대중의 대북 지원정책은 그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이며 인류애적 의미가 가미된 것이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에 대해 못 마땅해 하는 한국인 전반의 근본적 정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 점을 이렇게 찾아보았다. 대북송금을 다루는 권력중심부 사람들이 그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사취할 것이라는, 즉 한국국민 일반의 신뢰성을 권력계층부 인간들이 심히 상실당해온 데 있다고,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났다. 대북송금과 관련된 어느 권력가의 운전기사가 자기 상사의 사기 심리를 노려 대북 지원용으로 명명된 몇 억대의 돈을 훔쳐낸 사건을 우리는 신문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이 조금 더 설득력을 얻자면 남북관계의 거시적 관점에서 포용력을 가지고 하되 이를 빌미로 한국 측이 저지르는 비리현상에 대해서는 엄격한 감시와 처벌을 병행했어야 하였다.
남한인들의 대북지원 방법에 대해 몇 가지 더 언급을 하자고 한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 배급소에 갔었는데 한국에서 온 것이 틀림없는 수수마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땐 의아했었다.
도와주려면 온전하게 흰쌀을 보내줄 것이지 어째서 남쪽 사람들은 그쪽에선 짐승사료로나 쓴다는 통수수를 주어서 수고하고도 고맙단 말을 받을 수 없게 구는 것일까하고.
나는 중국에 와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한국 측에서는 입쌀을 보내면 권력자들의 소유로 되기가 십상이므로 일반인들에게 전해지게 하자고 보내는 알곡종류에까지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날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닐 수 있는 애정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정말이지 그것이 입쌀이었다면 일반주민 배급소까지 그 쌀 포대는 와 닿지 못했을 것이며 보통 평양시민들은 보다 더 심각한 아사위기에 허덕이게 되었을 것이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그 껄끄러운 수수포대 옥수수포대들은 수많은 무명의 평양시민들을 아사위기에서 수차례나 건져내준 것이었다.
북한인들에게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

물론 생돈을 내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도 북한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가 있다.
집집마다 20~30개씩 쌓아놓고 쓰는 세수 비누와 세탁비누 절반씩만을 덜어내고 매 집집 연필꽂이마다에 빼곡이 꽂혀져 볼펜심이 굳어져갈 정도로 남아도는 필기도구들, 학용품들, 성냥, 라이터들, 타올, 수첩, 공책, 몇 번 입고 수거함에 버리는 의류품들....이런 것들은 북한 일반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절실한 최고의 필수품들이다.
북한 일반인들은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인 생활품들, 식품들, 의류품들은 그들에게 최고의 수요품이다.
물론 북한정부가 허울만 남은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들을 받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인들의 절절한 입장이 되어 조금만 더 탐구한다면 보낼 방법들은 얼마든지 발견되리라고 나는 믿어마지 않는다.
그 방법은 돈의 회전코드에 대한 관념이 전후무후한 북한인들에게 올바른 경제개념을 심어주는 데도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고 나의 경험으로 보아 단정할 수가 있다.
북한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 남북한만의 문제, 나 아닌 남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세기에 이런 비인간적 사회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북한문제, 중국에서 탄압을 받고 있는 북한 탈북자문제에 국적과 이념,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 나가 팔을 걷고 나설 의무가 있다.
좋아하는 회원 : 4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대구 2005-06-26 03:02:48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북에서 알고 있던 6.25 전쟁일으킨 자.
다음글
조선일보기자 강철환님이쓴 <평양의 어항>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