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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유린을 눈감아 주는 남북회담? 또 얼마나 푼수를 떨 것인지?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371 2009-08-30 21:43:20
1.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주면 다시 건져주게 되리라] 대한민국의 대인들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과연 김정일의 분노의 파장에 자유로운가를 묻고자 한다. 만일 그의 주구들이나 부역자들이나 약점을 잡힌 자들이 나라의 지도자의 班列(반열)에 선다면 서 있다면 김정일의 분노의 파장에 그리 편치 못할 것이다. 이런 연결심리 조건반사를 奴隸根性(노예근성)이라고 한다. 노예근성들은 늘 주인의 분노가 표출되는 煽動(선동)에 약하다는 결함을 소유한 자들이다. 또는 그들은 김정일의 분노의 量(량)을 달아보는데 限(한)없이 未達(미달)되어 언제든지 戰戰兢兢(전전긍긍)하는 자리에 있게 된다. 또는 자신의 행동에 분노를 담아내는데 분량을 재는 기능도 현저하게 마비되어 제구실을 못하게 된다. 때문에 그들은 늘 분노를 쏟아내는 자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슬픈 그들의 일생이고, 대한민국을 늘 그런 忿怒(분노)로 시달리게 한다. 이런 분노의 양을 달아보는 기능이 없는 것이 그것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자들과 그것에 요동하는 자들을 보게 되는데 너무나 격랑 치듯이 過猶不及(과유불급)하게 행동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런 것에 장단 맞추는 군중의 요동침은 모두 다 노예근성에서 기인된다고 봐야 한다.

2. [A man of great wrath shall suffer punishment: for if thou deliver him, yet thou must do it again.] 큰 인물은 자기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자기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큰 인물이 안 된다. 아니 못된다. 본문 [A man~]은『gadowl (gaw-dole') or〈shortened〉 gadol (gaw-dole')』라 읽는다.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만일 이런 의미를 현재의 대한민국 내에 노예근성을 가진 김정일 주구들의 만행을 드러내는데 사용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서 김정일의 노예가 되었으나 그것을 감추고 스스로 큰 자라고 하는 자기최면을 불어넣었다. 마치도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듯이 자기최면에 성공한다. 하여 스스로 거대하다는 거인 心理(심리)에 잡힌다. 그것으로 자기들의 아성인 기득권을 쌓아올린다. 그것으로 김정일을 위해 스스로 장대한 일을 꿈꾸며 廣大(광대)한 일을 하는 자로 착각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로 여기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노예근성의 소유자들이고, 때문에 김정일의 의식에 갇혀 분노의 푼수를 모르는 great, 우리가 지구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바다를 보게 되는데 바다의 怒濤(노도)의 크기와 넓이가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데,

3. 비록 큰물이 분노하고 격렬하게 요동치나 그것들은 큰바람에는 크게 작은 바람에는 작게 요동친다. 바다의 물도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늘 激浪(격랑) 怒濤(노도) 大作(대작)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이 곧 김정일의 直系(직계)노예들이고, 그들은 김정일의 기준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일의 분노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에 요동치는 노예들이기 때문이다. 그 노예들의 기만에 따라 선동당하는 인간들은 더욱 기준이 없는 자들이다. 김정일과 김대중의 의식에 갇힌 그들은 김정일의 기준과 김대중의 기준을 따라가려고 자기의 기준과 하나님의 모든 기준을 버렸다. 하나님의 기준이 없는 자들이 권력을 가지면 세상을 수시로 들끓게 한다. 그 분노의 크기와 넓이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것에 따라 대응하는 대책이 없다는 말인데 large(in magnitude and extent), 이는 김정일의 변덕이 죽을 쑤듯이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隨時(수시)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분노를 하는 자들이 含量(함량)미달인데 군중 속에 自高(자고)하여 스스로 大人(대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걸맞지 아니한다.

4. 그런 자들이 기준이 없는 저울이 없는 분노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환경이 된다. 그 안에 갇힌 자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 변덕에 시달리고 살아야 하는데 평안한 날을 보는 것이 손가락 꼽기이다. 그런 변덕이 없는 날이 희박하다. 數(수)와 量(량)으로 본다면 in number, 자기표현의 강렬함 자기의지의 격렬함 조울증적인 성질 늘 분노로만 표현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그 사람 속에서 언제든지 나와서 헤아릴 수 없는 기후의 변화처럼, 갑자기 그 따위의 激烈(격렬)함을 몰고 온다. 주변을 극단적인 긴장 속으로 몰려가게 하고 ,그 안에서 그는 自己(자기) 빛 自己(자기) 熱(열) 자기 音(음) 자기 色(색) 자기 振動(진동) 따위의 세기 크기를 보여 준다 in intensity, 인간의 모든 소리가 지구에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특히 김정일 주구들 속을 보면 김정일의 눈에 띄려고 가장 큰소리가 되도록 나타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텐데 그들은 오로지 대한민국에 맹렬히 忿怒(분노)하는 격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여겨 늘 대한민국을 증오하고 적개심을 다해 늘 선전선동으로 一貫(일관)한다 loud(in sound),

5. 자기는 김정일 노예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는 자기분야에 더 오래된(나이에서) 높은 자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자 분노의 저울이 주는 기준을 무시하고 반정부투쟁(사실은 대한민국에)의 분노를 쏟아내기만 한다 older(in age), 그런 것이 자기 이미지 提高(제고)와 관리와 리더십의 중요성에서 in importance,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려는 멋으로 여기려는 것 important things, 그것이 모든 남자 중의 남자의 두드러진 현저한 특히 뛰어난 우수한 모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나 사실은 김정일의 의식에 갇힌 노예일 뿐이다 distinguished (of men)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님의 기준이 없이 인간적인 분노를 담아내는 자들과 그것에 선동되는 자들은 하나님께 罰(벌)을 받게 된다. 큰소리는 큰소리칠만한 자들이 치는 것인데, 함량미달인 그들은 그 큰소리가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를, 대정부투쟁의 忿怒(분노)라고 하는 것으로 눈가려 激怒(격노)하는 것으로 자기의 위대함과 그 세계에서 뛰어남과 아울러 김정일의 눈에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은 결국 罰(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 노예들은 김정일을 속에 품고 김정일을 위해 김정일의 구현을 위해 사는 것이지만 눈가림으로 자기구현을 위해 사는 인간으로 보이려고 한다.

6. 인간이 자기구현으로 사는 것이 타락한 것이고 그것이 문제 큰 문제인데, 함에도 불구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자기존재가치를 돋보이고자 하여 분노를 당할 자들을 구분하고 그들에게 자기과시의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이 곧 하나님 보시기에 벌을 받을만한 잘못이라고 한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담아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대로 분노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분노로 살게 하려고 분노를 주신 것은 자기존재의 표현이고, 정체의 表現(표현)이고, 자기구현의 표현이고 자기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늠하는 것에서 항상 작은 것에는 작게 큰 것에는 크게 분노해야 한다. 이는 규모 있는 분노라고 해야 하나?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고, 인간의 분노 더더욱 김정일의 분노를 담아 이런 것을 가늠하지 못하는 자들이 사리에 어긋난 분노를 담아 그것도 규모 없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울과 그 기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과 그 저울이 없는 자들은 언제든지 그것이 고장난 것처럼 행동한다. 때문에 오버하다가 罰(벌)을 받을 지경까지 가는데, 그런 자들을 건져주면 그것으로 그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또다시 그런 짓을 하게 된다. 때문에 북한인권을 유린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정권과는 결코 회담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7. 때문에 모든 인생을 때를 따라 하나님의 분노를 담아낼 때 사용할 저울과 그 기준을 아는 자들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의 저울과 그 기준을 알고 행하는 것을 분수를 안다고 한다. 단어 분수란 分數 percentage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 자기에게 알맞은 한도, 푼수, 정도, 범위, 단계, 각도, 온도계 따위의 도(度), 지위 계급 신분 분수 degree, 물체의 넓이 길이 면적 양 신장 확대된 것 넓은 장소 extent, 비율 어림잡다 평가하다 지위 명성이 있다 rate, 비(比) 비례 비율 비율로 나타내다 비례적으로 확대하다 축소하다 ratio라고 한다. 김정일의 주구가 아닌 인간의 각기 가진 분노의 내용을 잘 달아서 時宜適切(시의적절)하게 한다면 참으로 효과적이라고 본다. 김정일과 관계없는 큰 사람이 된다는 것에는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말인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를 담아 세상을 섬기는 절제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것이 없는 자들은 이미 밝혔듯이 고장난 저울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本文(본문)의 매우 무서운 성격 아주 거친 성격 대단히 혹독한 성격 [~of great~]는『garol(gaw-role')』이라 읽는다. 그 안에는 푼수 없는 性格(성격),

8. 푼수 없는 태도 예측 불가능한 기후와 같은 인간이 보인다. 아울러 조건 따위가 엄격한 가혹한 무자비한 인간인 김정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harsh, 그의 주구된 자들과 부역자들과 약점 잡힌 자들은 모두가 다 김정일의 입김에 요동쳐야 한다. 마치도 未開地(미개지) 거친 땅 울퉁불퉁한 땅과 같은 김정일과 같은 성품을 누가 다 감당하랴 rough, 그런 성품에서 나오는 것에 늘 푼수 없이 격랑 치듯이 격노하는 자에게 누가 그에게 혜택을 볼지 전혀 모를 神(신)만이 아시는 것, 마치도 제비 당첨 제비뽑기 추첨과 같이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lot,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푼수 없는 분노를 모두 당하도록 나누다 분배하다 portion을 담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아 세상을 섬기는 저울을 공급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고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구현은 인간을 아가페로 사랑하는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김정일처럼, 또는 그의 주구들처럼 또는 그들과 관계없어도 자기 최면에 취하여 스스로 큰체하며 푼수 없는 자의 분노 격노는 본문[~wrath~] 『chemah(khay-maw') or(Dan. 11:44) chema' (khay-maw')』이라 읽고

9. 그 안에는 조절 기능이 없이 폭발로 이어지고 있는 열 뜨거움 뜨거운 상태 heat, 푼수 없는 격노 분노 노발대발 rage, 이유가 없는 불만 자기 내키는 대로 언짢음 자기 기준식으로 불쾌 원칙 없는 화냄 용서를 모르는 다발성 노여움 hot displeasure, 자기 기준으로 내세우는 악 부정 따위에 대한 분개 분노 비분 자기 기준의 의분 indignation, 푼수 없는 노여움 무절제한 화와 자기표현의 성 anger, 푼수 없이 내리는 복수 변덕에 내리는 징벌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거나 천사가 되어 천벌을 내린다고 하는 또는 대신한다고 하는 僭濫(참람) wrath, 사람을 죽이는 독 사람을 파괴하는 독물 주변사람을 파멸케 하는 독약 그것은 결국 자기를 죽게 하는 극약(劇藥) poison, 하나님의 진노를 담지 않고 인간의 분노를 담은 병 병 모양의 용기 bottles, 하나님의 열이나 발열이 아닌 인간의 분노의 열과 발열인데, 그 조절기의 기능이 상실된 것 fever, 자기 기준의 원한 악마의 충동으로 악의 거기서 나오는 독설 독사의 독 venom, 사탄의 충동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푼수 없이 타오르게 하여 자기 생을 태우고 타인을 태우는 것으로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다. 결국 자기 삶을 태워버린다.

10. [야고보서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burning anger를 담고 있다. 本文(본문) [벌을 받을 것이다. 고통을 받을 것이다, 괴로워할 일을 겪을 것이다]는 [~ shall suffer~]는 『nasa' (naw-saw') or nacah (Ps 4 : 6 [7]) (naw-saw')』라 읽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있다. 하나님은 푼수 없이 분노하는 자들에게 역사 심판이 그를 벌 받도록 들어 올리다 받들어 벌 받게 하다 to lift, 푼수 없이 벌 받는 사람이 그 벌 받는 장소와 내용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그를 둘러싸는데 견디다 버티다 bear up, 푼수 없이 분노하는 자들을 벌 받는 곳으로 운반하다 가지고 가다. 들고 가다 carry, 벌이 푼수 없이 분노하는 자들을 취(取)하다 잡다 take를 담고 있다. 본문 처벌하기 벌을 받기[~punishment] 은 『`onesh (o'-nesh)』라고 읽고 그 안에는 그에 합당한 품질이 좋은 상등의 벌을 내린다 fine, 푼수가 가져오는 형벌 처벌을 통해 왜 푼수를 지켜야 하는지를 알게 하다 penalty, 손해배상의 보증보장이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 사람에게 푼수의 가치를 반면교사하다 indemnity를 담고 있다.

11. 만일 사람이 그런 일로 벌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 준다고 해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本文(본문) 만약 그를 건져 줄 경우, 배달해 줄 경우 [~for if thou deliver] 은『natsal (naw-tsal')』라 읽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푼수 없어 벌 받는 자를 멀리 날치기하기 위하여 to snatch away, 푼수 없이 벌을 받아도 그를 그곳에서 끌어내어 인도하고 돈을 주고 사와 明渡(명도)해서 벌에서 벗어나도 그가 가진 푼수는 다시 벌 받을 자리로 몰아간다deliver, 벌 받는 자를 구조하고 구하고 구제하여도 다시 돌아가 있어 다시 구조해야 하는rescue, 푼수 없는 자는 늘 救(구)해야 한다, 늘 구해내다, 구조하여도 여전히 벌 받는 자리에 가 있다. 완전한 구조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푼수를 갖게 하는 것이다save, 벌의 옷을 벗다 감옥의 囚衣(수의)를 벗어 버리게 하고 석방의 옷을 입혀도 곧 다시 수의를 입으려고 벌거벗다 strip, 가령 푼수 없어 벌 받는 자리에 간 자들을 약탈하듯이 강탈하듯이 건져내어도 결국 그 푼수가 그를 약탈하고 강탈하듯이 벌 받는 장소에 갖다 놓게 한다 plunder, 푼수 없이 분노하는 그가 받는 벌에서 멀리 찢기 위하여 애써 수고하여도 결국 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고장난 푼수다 to tear oneself away,

12. 푼수 없이 분노하는 그가 받는 벌의 장소에 석방을 배달해도 되레 그 석방을 보낸 자에게 돌려보내다 deliver oneself, 감옥에서 밖으로 나오게 하여도 결국 감옥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그런 자를 건져는 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be torn out or away를 담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다시 건져 주어도 여전히 그는 그 벌 가운데 있게 된다 [~him, yet thou must do it again.] 은『yacaph {yaw-saf'』라 읽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아무리 추가해서 건져주어도 여전히 거기에 있다 to add, 그를 건져 주는 횟수를 증가하여도 여전히 그는 벌 가운데 있게 된다 increase, 거듭 다시 해보아도 여전하다 do again, 그는 푼수 없는 것과 결합하기 위하여 사는 자이고 to join, 그는 그로 벌 받는 것을 자기 삶에 결합한 자이다 join oneself to, 그는 罰(벌)과 結合(결합)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고 to be joined, 그는 그 罰(벌)을 나날이 추가 되게 하기 위해 사는 자이다 be added to, 그것의 원인은 곧 푼수가 없는 것인데 to cause to add, 푼수 없이 더 많은 분노를 하기 위하여 벌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to do more,

13. 다시 또 되풀이 do again을 담고 있다.[이사야 5: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이사야 56:12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술 취하면 자기 나름의 푼수도 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저울도 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는데 이런 것은 참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공평과 균형감각을 재는 저울의 balance와 scale 미량천칭microbalance등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특히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그를 벌 받는 것에서 건져주는 것이다. 사람은 선악과의 족속임을 주지한 바와 같다. 선악과 족속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겪어서 아는 길을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저울이 있어 그 행동과 말을 미리 달아보고 韓藥(한약)을 조제하듯이 해야 하는데, 그것이 未熟(미숙)한 인간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런 푼수가 없는 인간들 속에 살고 있고 특히 김정일과 김대중의 저울에 달아 보는 눈으로 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14.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저울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하나님의 구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저울에 따라 하나님의 척도에 따라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런 푼수 없는 인간들이 다스리는 북한은 언제든지 벌을 받게 마련이다. 그 벌은 기근으로 나타나고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런 봉착은 도와줄 때뿐이다. 根本的(근본적)으로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현재의 김정일 체제를 가지고는 결코 북한주민의 미래가 보장되지 아니한다. 김정일 체제가 어서 속히 붕괴되고 그곳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가 자리 잡게 되는 대한민국의 헌법의 통치지역으로 수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북한 인권을 돌아보는 노력으로 가능하게 된다. 분노를 맹렬히 하는 체제는 결코 벌을 받을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 분노에 피해가 북한인권에 赤裸裸(적나라)에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의 자생력이 없게 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김정일 집단에 돈을 대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푼수 없는 자들이 푼수 없는 자들에게 뇌화 부동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꼭 그 길을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겁을 먹은 것인가? 아니면 草綠同色(초록동색)인가? 아니면 戰略戰術(전략전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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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북한주민의 자생력이 없게 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김정일집단에 돈을 대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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