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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INES 기습의 교훈
Korea, Republic o Messines 0 260 2009-09-20 16:48:09
Messines 능선 기습의 교훈!
제1차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의 독일군 요새 Messines 능선 에 자리잡은 방어 진지 능선!
영국군은 이를 땅굴작전으로 괴멸시킨 전사(戰史)가 오래 되었지만(1917년)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1917년 6월 7일 새벽에 벨기에의 Messines능선을 연한 독일군의 방어선 일대에서 대규모의 지하폭파가 발생하여, 산병호 및 교통호에 배치되었던 10,000여명의 장병들이 일순간에 몰살당한 대참사가 벌어졌고, 그 결과로 독일군의 방어선이 붕괴되고 인근지역을 감제하는 중요한 지형인 Messines능선을 영국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영국군으로서는 Messines를 장악함으로써 서부전선에서 전면공세의 전기를 획득했을 분만 아니라 오랜 소모전으로 저하된 사기를 진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16년부터 Messines능선을 탈취하려는 영국군과 이를 고수하려는 독일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어 Plumer장군예하의 영국제2군이 2,000여명의 손실을 입게 되자, 영국군 전략가들이 교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기발한 전술을 구상하게 되었는데, 이 결과로 땅굴을 굴착하여 독일군 방어선 밑으로 침투하여 돌파하는 땅굴굴착기습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영국제2군은 완전한 기습을 달성하기 위해 땅굴굴착작업에 직접 투입된 장병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작전보안을 유지하면서, 1여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땅굴을 굴착하여 독일군 방어선 바로 밑에 100만 파운드의 고성능폭약 아날린을 장전하였다.
독일군이 이상한 징후를 발견하고 의심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땅굴폭파준비를 완료한 영국군이 Messines능선 일대에 17일 간의 통상적인 포격을 실시한 후에 6월 7일 새벽에 치열한 포격을 가한 후 침묵을 지키자, 독일군은 이를 영국군의 전형적인 공격준비사격으로 오판하고 장병들을 바로 땅 밑에 고성능폭약이 장전되어 있는 산병호 및 교통호에 배치하였다.
이때를 포착하여 영국군이 100만 파운드의 고성능폭약을 발파시킴으로써, 그 결과 10,000여명의 독일군 장병의 시체가 산병호 및 교통호에 나뒹구는 참상이 벌어졌고 독일군 방어선이 붕괴되어 Messines능선을 영국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에서 유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고자한다. 어느 날 전후방지역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지하폭발로 주요군사시설들이 파괴되어 지휘통제체제가 마비되고 방공시설이 무력화되고 탄약 등 긴요한 전투물자의 보급이 중단되는 대혼란이 발생하는 가하면, 수도권 일대의 국가주요시설이 갑자기 유사한 지하폭발로 파괴되어 행정입법사법기능이 마비되고 한강상의 주요 교량의 교각이 붕괴되어 교통이 마비되는가 하면, 서울을 상징하는 고층건물들이 붕괴되는 등 아비규환 사태가 벌어질 뿐만 아니라, 후방지역 주요 전력 및 에너지 시설이 파괴되어 모든 산업기능이 정지되는 대참사가 벌어져 모든 국민이 공황상태에 직면한 상황에서, 땅굴출구로부터 쏟아져 나온 한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북한특수부대원들이 국가 및 군사 주요시설들을 타격하여 후방교란작전을 수행함과 동시에 휴전선지역에서 북한군이 대규모의 전면공격을 실시함으로써 한미연합군의 전쟁수행능력이 와해되고 국가전쟁지도체제가 마비되어 대한민국이 존망의 기로에 봉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는 산속 은밀한 곳에 구축된 출구가 간첩 및 공비의 또 다른 침투루트로 이용되고 있는 시나리오이다.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이 등산객으로 위장하여 흑색 등산복과 지팡이를 들고 전국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다. 특히 등산지팡이 모양으로 개조한 개인화기를 지참하고 배낭 속에 폭발물을 휴대할 수 있으므로 첩보 수집은 물론 요인암살 및 주요시설 폭파를 감행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북한 당국에게는 ‘눈의 가시’같았던 이한영(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서 귀순자)이 1997년 성남시 분당구에서 암살된 미궁에 빠진 사건, 그리고 땅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정지용이 2002년 화성지역 땅굴추정지점 작업현장에서 의문의 공격을 당하여 의문사한 사건 등이 땅굴루트를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요원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필자도 믿고 싶지 않지만 지금 이 시점에도 진행되고 있는 시나리오이고, 멀지 않은 장래에 닥칠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경륜을 가진 군사정보전문가라면 필자가 제시하는 아래의 몇 가지 사항을 면밀히 조사하게 되면, 새로운 각도로 땅굴문제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첫째, 연합정보자산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항공사진을 통해 북방한계선 북방 5Km이내의 지역을 분석하게 되면,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초까지 북쪽사면에 건물들이 신설되고 이 부근에 큰 원형펌프가 보이고, 이 펌프로부터 배수로가 보일 것이다. 이 건물들이 땅굴입구이고 원형펌프는 땅굴에 고이는 물을 배수하는 펌프이다. 이 근처에 새로운 밭이나 둔덕이 생기고, 불필요한 대전차방벽들이 구축되거나 호수가 서서히 작아지거나 사라지기도 하는 등 지표의 변화 및 변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땅굴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 진 지표의 변화인 것이다.
둘째, 1980년 후반에 전방지역 특히 방책선에서 근무한 많은 장병들이 이상한 지하음을 청취한 경험이 있고, 전방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이상한 지하음을 신고한 사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심정을 파던 작업인부들이 시추봉의 이상 낙하현상을 신고한 사례도 있다. 왜 그 시기에만 이러한 현상이 있었고, 지금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땅굴을 굴착하여 이미 완료했기 때문이다.
셋째, 1980년대 후반에 스웨덴의 건설중장비회사로부터 북한당국이 상당히 많은 수의 자동굴착기(TBM)를 수입한 사실과, 그 회사의 기술자들이 자사의 굴착기를 수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사실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웨덴기술자들이 굴착기를 수리한 장소와 그 굴착기를 조작한 북한인기술자들의 신분을 확인해줄 수 있다면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넷째, 북한의 전력생산능력과 전력소모량을 비교분석해보면, 북한의 노후한 송전설비에 의한 유실전력을 감안하고서도, 북한인민들이 지나치게 심각한 전력내핍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에 어떤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전력사용처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즉, 수많은 땅굴들의 관리에 따른 배수 그리고 갱차운영 등에 많은 양의 전력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다섯째, 북한군사전략가의 시각에서 생각해보자. 기습의 달성 여부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군사전문가의 상식이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기습공격으로 한반도의 석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UN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만 경험을 바탕으로, 제2차 한국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는 완전한 기습을 달성해야하고, 이울러 미군의 증원이 시작되기 전에 한반도를 석권하거나, 최소한 수도권은 장악하려 획책할 것이다. 그들은 한미연합정보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기습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로는 지하접근로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순간에 한미연합전투력을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주요시설을 지하폭발로 파괴하여 대혼란을 초래하는 방책을 강구함과 동시에, 땅굴출구를 통해 다수의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후방을 교란하면서, 휴전선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는 배합전을 수행함으로써 미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려 획책할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땅굴과 지하폭발에 있다. 즉, Messines기습의 교훈을 활용한 전략이다.
여섯째, 북한당국자의 발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다” “남측이 선제타격하기 전에 어찌할 수 없도록 먼저 타격하겠다” 등 한미연합전력과 정보능력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는, 어떤 것을 암시하는 그네들의 발언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상투적인 공갈협박으로만 생각할 것인가? 그네들이 어떤 무기와 전략을 그토록 자신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서 그해를 넘기기 전에 이를 사문서화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남북화해를 추진해온 김일성이 태도를 일변하도록 북한군부가 어떻게 설득했을 것인가? 1992년경에 땅굴을 서울 근교까지 도달시키고, 지하폭발을 준비한 것이 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필자가 남침땅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말기에 전방지역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이다. 부임 직후에 부대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한 가지의 수단으로 전역장병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병들이 방책선 및 전방지역에서 이상한 지하음을 청취하여 보고하였는데 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가라고 불평 힐난하였다. 처음에는 무시하였으나, 전역장병들을 면담할 때마다 매번 같은 질문이 쏟아져 나오자 필자도 의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작전책임지역 북쪽 지역에 대한 항공사진을 요청하여 이들을 해석한 결과, 여러 개의 땅굴입구 의심지역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남쪽으로 연장하여 예상땅굴축선을 그려보니, 공교롭게도 장병들이 이상한 지하음을 청취한 지역과 일치하였고, 더 연장해보니 주민들이 이상한 지하음을 청취하여 신고한 지역과도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육군본부 탐지과에 보고하여 탐지활동이 시작되었으나, 탐지과 요원들은 그때까지 발견한 땅굴(1970년대에 재래식 장비 및 폭약으로 굴착한 땅굴)을 탐지하고 발견한 방법에 집착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에 자동굴착기로 굴착한 땅굴과 북한의 역대책(아군의 탐지활동을 방해하는 대책)을 이해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민간인 기술자들이 영파탐지(dowsing)로 장병들이 이상한 지하음을 청취한 지점에서 정확하게 위치를 지적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 탐지방법의 신뢰성을 인정하게 되어, 필자가 스스로 영파탐지방법을 배워서 인공터널위에서 수차례 실습하여 그 신뢰성을 재확인하였다. 그 후에 필자가 전후방 지역 및 수도권 일부를 탐사한 결과, 다수의 땅굴을 탐지하였고, 이 땅굴에는 갱차 레일이 깔려있고 그 중앙에 두 가닥의 전선이 감지되었으며, 특히 땅굴의 막장이 주요시설에 도달해있고 여기에 폭약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탐지하고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엄청난 사실을 확인하기위해 몇 차례 반복하여 시도하였으나, 그 결과는 동일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십팔년간 관계기관이나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줄 것을 믿고 기다렸으나, 최근에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가는 상황을 보고서,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며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관계기관이 남침땅굴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줄 것을 간청하는 뜻으로, 이와 같은 스스로도 믿고 싶지 않은 엄청난 시나리오를 상정하여 졸문을 적어보았다.
군정보기관과 탐지과 요원들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남침땅굴의 발견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표면으로부터 지하 30M까지 지하공간을 촬영가능한 Ground Penetrating Radar(미국 Accurate Locators Inc.)를 도입하여, 고속도로터널이나 자하철 위에서 그 성능을 시험 확인한 후 영파탐지로 탐지한 땅굴의 막장에서 탐색하는 방안이다. 설사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탐지하려 노력할지라도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오호 통재라, 이일을 어찌할꼬! 여호와하나님께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간구할 뿐이다.
prayerkmw@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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