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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그래, 자네가 요즘 슬럼프라고?
Korea, Republic o 더샌드맨 0 312 2009-10-16 11:57:55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더니, 요즘 가을이라도 타는 듯 힘빠져 있는 제게 때마침 다른 분께서 좋은 글이 소개해 주셨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것 같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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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네가 요즘 슬럼프라고?
나태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그런 날들이 하루이틀 계속되면서 이제는 스스로가 미워질만큼,
그런 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왜, 나는 슬럼프 없을 것 같아? 이런 편지를 다 했네,
내 얘길 듣고 싶다고.


우선 하나 말해 두지, 나는 슬럼프란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그냥 ‘게으름’이란 말을 쓰지.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지금부턴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할께.


나는 늘 그랬어.
한번도 관료제가 견고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지.
하다 못해 군대도 학교(육군제3사관학교)였다니까?
그렇게 거의 25년을 학생으로 살다가,
어느 날 다시 교수로 위치로 바꾼 것이 다라니까?
복 받은 삶이지만, 어려운 점도 있어.
나를 내치는 상사가 없는 대신,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내 삶이었거든.
그래서 늘 힘들었어, 자기를 꾸준이 관리해야 된다는 사실이.
평생을 두고 나는 ‘자기관리’라는 화두와 싸워왔어.


사람이 기계는 아니잖아…
감정적인 동요가 있거나, 육체적인 피로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어쩌다 보면 좀 게을러지고 싶고,
또 그게 오래 가는 게 인지상정이잖아…
교수라는 직업이 밖에서 점검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슬럼프,
아니 나태에 훨씬 쉽게 그리고 깊게 빠져.
내가 자주 그렇다니깐?
자네들에게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난 나태란 관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자전거는 올라타서 첫페달 밟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지.
컴퓨터 켜기도, 자동차 시동걸기도,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정지상태를 깨는 첫 힘을 쏟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관성에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근데, 문제는 말야, 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실은 자네도 슬럼프를, 아니 오랜만의 연속된 나태를,
지금 즐기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어.
딱 여기까지만 읽을 사람을 위해 덕담까지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됐지? 잘 가.


하지만, 위에 쓴 덕담은 거짓말이야.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그러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까, ‘정말’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 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


보통 ‘슬럼프’ 상태에서는 정신이 확 드는 외부적 자극이 자신을
다시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게 되거든?
어떤 강력한 사건의 발생이나, 친구/선배의 따끔한 한 마디, 혹은 폭음 후 새벽 숙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그런 걸 느낄 때까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학을 유보하거든?
땍!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런 자극은 없어, 아니면 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란 말야.
그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생활의 실천으로 옮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자극이 백번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단 말야.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내가 자네만할 때는 말이지, 가을이면 특히 11월이면,
감상적이 되고 우울해지고 많이 그랬거든?
"자 11월이다, 감상적일 때다" 하고 자기암시를 주기도 하고…
그래 놓고는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술도 마시고, 음악을 듣고…
그러면 더 감상적이 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은근히 즐겼어.
딱지가 막 앉은 생채기를 톡톡 건드리면
따끔따끔 아프지만 재밌잖아?
내 젊은 날의 버거움이란 그런 딱지 같은 거였나봐.


나도 철이 들었나보지? 차츰 해결법을 찾았어.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된거지.
일조량의 부족, 운동량의 부족, 술/담배의 과다…
즐기지 않는 감정적인 문제에 근원이 있다면 그런 거야.
난 정말 감정에서 자유롭고 싶으면 한 4마일 정도를 달려.
오히려 술도 되도록 적게 마시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해. 꽤 효과 있어.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 문제야.
나태는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오거든.
선생님 같은 나이에 무슨 새로운 목표가 있겠니?
내 목표란 '좋은 선생' '좋은 학자' 되는 건데,
그 '좋은' 이라는게 무척 애매하거든.
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만, 너무 멀면 동인이 되기 힘들어.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대개 일주일이나 한달짜리 목표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오늘' 해결하면 돼. 늘 '오늘'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뭐 이런 차원이 아니야.
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돼.
그런 오늘들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모이거든,
나태가 관성인 것처럼 분주함도 관성이 되거든.
사실은 선생님도 먼 나라에 혼자 떨어져서 요즘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
그래서 물리적인 생활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
육체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늦게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고, 술 마시지 않고,
햇빛 아래서 많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꼭 1시간은 색스폰 연습하고, 몇 글자라도 읽고,
3페이지 이상 글쓰고… 나는 잘 알거든,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걸. 여러 번 경험했거든.


힘 내.
얘기가 길어졌지?
내가 늘 그래.
대신 긴 설교를 요약해 줄게.
(선생님답지?)


일. 나태를 즐기지 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마.

사.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그거 알아? 모든 것은 흘러.
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 질거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래.


잘 자.
(아니, 아직 자지 마. 오늘 할 일이 있었잖아?)
새임.


(2005. 2.)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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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럼프 2009-10-16 12:55:38
    더 샌드맨님
    좋은 얘기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슬럼프 탈출방법은 이미 아는 거거든요. ㅎㅎ~ 머 새로운 거 없나요?
    자전거 타고 달리기하고 등등 운동하고 술 안마시고 사람만나고 자학안하고 ....그렇게 길게 연설할 일도 안닌걸요
    그리고 다 해보았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슬럼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는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을 정녕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 하 ....
    그렇다고 무턱대고 누굴 만나고 다녀도 또 그저 그ㅡ렇습니다
    진정한 방법은 ?
    세상은 누구나 어디나 다 그런 거라는 걸 알아 차리고 제때에 포기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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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샌드맨 2009-10-16 13:06:14
    슬럼프님/

    지금 힘들어 하신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진짜 정답을 몰라 헤매는 경우는 드물지요. 정답을 알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럴 때, 그 뻔한 이야기를 다른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들음으로써 극복의 동인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위에 제가 소개한 글은 그런 경우에 속할 겁니다. 뻔하지만 정답이고, 그것을 다시 한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에 좋은 글이지요.

    하지만, 불행히도 슬럼프님께는 좋은 계기로 다가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쉽군요.
    모든 문제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그 정답과 해결방법도 결국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겠지요.

    부디 자신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큰 도움을 못드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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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럼프 2009-10-16 14:32:30
    하하 샌드맨님 - 자신을 이긴다
    많이 듣던 말입니다
    늘 그말을 믿어 왔죠. 그리고 연설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을 이기라고요 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그 노력이야말로 오늘 저에겐 자학으로 되었습니다 . 자신은 인정해 보려는 마라톤 선수 처럼
    오래동안 애써온 덕분에 조금은 놀아도 괜찮을 정도지만 몸이 많이 상했죠
    몸에게 많이 미안 합니다. 그러다 나니 손에서 일을 놓아야 할 정도로 쇠약해 졌고 ....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 지고 재미 없습니다
    그러다 나니 이렇게 샌드맨님에게 심심풀이로 한번 걸쳐 보는데 시간을 보냈구려
    맘이 많이 상해 있는 참이라 슬럼프 빠져 나오는 무슨 정답이 있을 듯헤서
    한번 물어 본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해 주시니 고맙군요
    누구나 그런거라고 하면 좀 위안이 될려나 ?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구요
    그런거라면 세상이 얼마나 싫겠습니까. 심성이 곱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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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샌드맨 2009-10-16 15:40:17
    슬럼프님/

    제 어설픈 조언이 슬럼프님을 더욱 씁쓸하게 만든 모양이네요.

    제가 '자신을 이기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세상에서 가장 센 놈이 바로 자기 자신이란 걸 압니다. 이기기도 힘들고 이겼다 싶어도 어느 순간엔가 나를 다시 지배하고 있는 있죠.
    그래서 사실은 저도 그 말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인간은 언제나 나약한 모순덩어리임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인간이겠습니까? 신이지.

    가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일컬으며 칭송하잖아요. 하지만,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삶을 살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를 믿지만, 인간인 내가 더 이상 버텨내기 힘겨울 때, 내 뒤에 있는 든든한 백그라운드... '신'밖에 더 있겠습니까.

    슬럼프님께서 혹 어떤 신앙을 갖고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만, 기존의 신앙을 갖고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신앙생활에 힘써 보시기 바라며, 무신론자시라면 한번쯤 종교를 가져 보세요.

    아주 이상한 사이비 종교를 제외한 어떤 종교든 상관없고 자신에게 잘 맞겠다 싶은 것으로 골라 무작정 믿어 보세요.
    굳이 신을 믿기 힘들다면, 기도시간 등을 그냥 좋은 명상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생각하면 종교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다른 이들을 돕는 봉사활동 등에 참여한다면 분명 좋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게 말씀드렸나요?
    그저 좋은 뜻에서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그랬구나 하고 좋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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