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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은인과 탈북자
Korea, Republic o 이민복 2 689 2009-10-18 07:34:19
*아래 평범한 댓글 속에 있지만 좋은 글이어서 올립니다.

난 한국에 온지 10년이 된 사람입니다. 참 세월은 빠릅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때는 우리 탈북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많은 분들이 찾아 왔었고요. 북에서 교육받고 북의 사상체게 속에 살다가 온 저에게 한국은 희한한 별세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을 잘 몰라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나는 가끔 밤에 잠을 자는 아들의 방에 가보고는 북한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느라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지요.
1998년. 그 힘들던 해. 사람들은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갔지요. 탈북자들이라면 그때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들은 밤새 죽은 사람들이었지요. 그때 나는 사람이 굶으면 맥이 없고 추위와 병마에 약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길거리에 떠돌던 꽃제비들.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던 가리지 않던 북한의 강인한 아줌마들. 북한의 끝자락인 두만강변의 회령과 압록강변의 신의주에서 남단인 해주까지 쌀을 사러 길가에 배낭을 이고 지고 억척스럽게 걸어가던 그 여인들.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한국에 오니 평양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어서 잘 산다고 믿고 있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평양에 갔을 때 나의 친구가 문수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평양 대동강가에 있는 주체탑이 있는 곳이라면 아마도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 집은 11층이었는데 난방이 되지 않아서 집안은 냉장고와 같았고 먹을거리도 끓일 땔감이 없어서 평양 주변의 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 잘게 쪼개서 배낭에 넣고와서 집안에 난로를 놓고 음식을 끓여 먹더군요. 난 그때 평양의 친구집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평양도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런데 그것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지만 최고위층은 너무도 잘 살고 있었죠. 그들은 너무 잘 먹어서 기름진 배에 넘쳐나는 힘을 주체할수 없어서 처녀들을 데려다가 욕심을 채우고도 뒤탈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민의 위에 군림하는 백두산 줄기들이니까요.
그밑에 빌붙어 배를 채우는 극악한 자들. 그들을 북한에서는 소위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간부들이라고 하죠. 북한은 상위층 10% 때문에 2700만이 굶주림과 추위. 병에 걸려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틀러가 악독하다고 하지만 김일성에게는 반도 따라 가지 못합니다. 스탈린이 독재를 했다고 하지만 김정일에게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죠. 이제는 삼대장군인 김정운이 세습을 한다고 하더군요. 언제면 우리 북쪽의 형제들이 배부르게 먹고 살날이 있을지 가슴이 아픕니다.
개리님. 사랑은 조건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사랑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이말을 하는 것은 무조건 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은 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신도 자기만 믿으라고 그렇지 않은 자는 벌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내가 종교인은 아닙니다. 내 아내는 한국사람이지만 종교를 믿지 않고 저도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왜? 정말 신이 있다면 북한 같은 나라가 존재할수 없으니까요.
개리님. 저도 북한에서 부모 형제를 잃은 사람입니다. 98년 그해. 비지찌꺼기를 먹고 아버지와 형, 누나가 식중독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 약 한알 써보지 못하고 한많은 세상을 떠낫지요. 그리고 석달 후. 어머니와 동생이 파라티부스에 걸려 끝내 아버지를 따라 갔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피가 끓어서 이를 갑니다. 그때 의사가 그러더군요. 어머니와 동생은 굶어서 병에 걸렷다고요. 몸이 약해지니 병균에 대항할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죠.
그때 난 살아남은 내 여동생을 데리고 무조건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어떤 탈북자들은 중국에 친척이 있어서 도움이라도 받았지만 나에겐 중국이 생전 처음 밟아 보는 땅이였죠.
말도 모르고 지리도 모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해집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중국 남방의 선전까지 갔고 그곳에서 난 남의 집 일을 해주었고 내 여동생은 나가서 빙걸을 팔았죠. 그때는 정말 살아갈 앞날이 아득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25섯. 여동생은 열아홉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고 사는 것이 지옥이엇습니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데 중국 공안의 북송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죠. 그때 난 배낭여행을 온 한국 여대생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우리 남매를 보고 자기의 돈을 털어 주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우린 가다가 죽어도 가자고 결심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샹강(홍콩)에 도착했습니다. 정작 홍콩에 도착했지만 갈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쪽팔리지만 그 여대생이 준 전화번호에 전화를 했지요. 그리고 얼마후 그 여대생이 홍콩에 왔고 6개월 후 우린 그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 우리 남매를 도와준 그 여대생은 나의 아들을 낳아준 아내가 되었습니다.
개리님. 전 이제 112명의 직원을 가진 작은 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동안 단 한시도 북한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밥을 먹을 때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목이 멥니다. 뉴스를 볼 때 북한이 나오면 나는 감정이 북받쳐서 답답해집니다.
그렇다고 조건 없이 북한에 도움을 주는 것은 결사반대입니다. 난 햇볓정책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일을 위해. 하나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햇볓정책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한이 한국의 도움을 진실로 받아 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들. 북한의 위정자들은 지금은 어려우니까 어떻게 하든 한국을 이용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한국을 적화시켜 북한의 김씨가문의 통치를 한반도에 확장하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가서 우리 대통령들이 김정일과 만날 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마치 조공을 받든 어께를 세우고 목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제는 햇볓 정책도 변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게속 북한에 끌려 다니기만 하면 햇볓정책의 본질이 흐려지고 북한 위정자들의 통치도구로 전락합니다. 이제는 한국이 도와주면 저들도 호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일단 대등한 입장이 되야겠지요. 그들이 대한민국에 저지른 죄를 사죄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대한 우리의 선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미새끼가 엄마의 젓을 먹고 자라서 그 엄마를 잡아먹듯 그들은 우리 한국을 통채로 삼키려고 할 것입니다.
개리님은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북한이 중국에 흡수된다고 하는데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정일이 북한을 중국에 넘기려 한다면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중국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무시하고 골칫덩이 북한을 차지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지요. 중국은 한국이 자기들과 국경을 접하는 것이 두려워서 북한을 어떡하든 유지시키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북한이 강도의 자세를 버리고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린다면 언제든지 북한의 지원에 찬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승냥이는 절대로 양으로 변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지요. 너무 사랑에 눈이 멀어서 잡아먹히는 양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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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천사 서울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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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탈북 2009-10-18 13:18:54
    복많은 사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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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소년 2009-10-18 14:25:56
    97, 98년도 북한이 참 힘들었습니다.

    저도 99년도 탈북하여 7년을 타국에서 헤맸습니다.

    지금도 내 자신이 부모형제 친인척 친구들을 멀리 뒤로 하고 탈북했다는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대북지원 ? 내 형제 친구들에게 득이 될 대북지원을 반대할 탈북자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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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rry 2009-10-18 19:42:03
    97년인지 98년인지 부터 김대중은 남으로 부터의 지원이 있기도 전에 비공식적으로 북에 식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관계자의 구체적인 증언에 의하면 러시아의 곡물을 사서 일부러 탈곡하지 않은 상태로 기차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탈곡시설이 농촌에 있기 때문에 달리 전용되지 않고 농촌에서 탈곡하게 만들어 굶주린 농민들이 먼저 먹게 하기 위해서 였다지요. 이를 먹고 죽어가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역시 여가 탈북자가 올린 글에 따르면 98년에 기차로 쌀이 들어왔는데, 남한 적십자 포대였고 당원들만 한밤 중에 동원해서 포장을 벗겨내고 주민들에게 배급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김대중은 그의 전임자인 김영삼이나 지금의 이명박 처럼 북 주민들의 굶주림을 노골적으로 이용해서 뭔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북 주민들이 가정 어려울 때에 그들을 도와주고 신뢰와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다만 북 당국이 일반 주민들에게 이를 잘 모르게 하려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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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소년 2009-10-18 22:23:28
    개리님/ 우려되는 것은 남한에서 보낸 쌀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식량가격하락으로 이어지면 괜찮겠으나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키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건 더 부정적입니다.

    단기간 눈앞의 아사자는 구제할 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더 큰 기근으로 이어진다는거죠.

    식량지원뿐 아니라 모든 대북지원들을 이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식량지원도 분명히 북한의 국가식량통제시스템을 수정하도록 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겠죠.

    예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탈북자들이나 북한주민들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뻔하지 않겠습니까?

    북한독재의 생명줄이 되여줬기 때문이죠.

    물론 그것으로 인하여 남한경제에 어느정도 이익이 되였을지는 모르지만 북한주민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량지원 경제지원도 페쇄된 북한경제구조를 하나하나 바꾸어나가는데 확실한 중점을 두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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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rry 2009-10-18 23:54:10
    지난 10년 간의 북의 배급체계의 붕괴와 장마당은 형성이, 이미 외부의 식량지원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지요. 지금 배급체계를 복원할 만큼 외부 원조를 더 하자는게 아니라, 2년간 지원 중단으로 크게 줄어든 원조를 도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지원 중단 전의 3배는 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비료지원의 중단은 식량생산의 감소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남의 식량지원이 몇배로 늘어나야 할 요인이 됩니다...미리 비료를 줘서 북의 자체 식량생산을 늘렸으면 싸게 먹혔을 것인데 바보 짓이지요.

    남북 간의 대립으로 이런 것 처럼 서로 손해보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상황입니다. 60억 달러 짜리 러시아 가스관 사업도 좌절되었지요..

    북 전역을 관통하는 가스관도 안생기고 개성공단 합숙소도 안생겨 개성공단에 노동자 공급이 못 늘어나고 있고, 개성 평양 간의 고속도로의 건설도 늦춰진 일이 무얼 의미할까요?

    분명히도, 님들이 그리도 바라시는 북 개방의 심각한 지체입니다.,얼마나 역설적이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리고 북이 아무리 경제적 여유가 나중에라도 생긴들, 배급체계를 복원하는 것은 큰 한계를 가집니다. 기존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비중을 안 줄이고 시장에 의존하는 부문을 늘리지 않는다면 북의 경제성장이 늦춰지는게 경제원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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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이독경 2009-10-19 13:21:19
    울나라 올해 쌀생산량이 468만톤으로 국민5000만으로 나누면 1인당90킬로가 할당되고 북한은 년평균250만톤 생산인데 올해 흉년이 들어 200만톤을 2000만으로 나누면 100키로는 돌아갈낀데문제는 이걸 누가 다가져가노 이말이지...

    물론 남쪽은 쌀이 주식이 안된지 오래지만 북한은 주식이라치고 또 흉년이 들어 부족한건 알지만 그래도 나눠먹으면 사는데 누군가가 독식하니 문제 아이겠능교...


    중국의 쌀생산량은 세계1위로 약 2억톤이 되는 데 중국인구12억에 인당 170킬로가 돌아가지요.. 사실 중국의 쌀이 매우 풍족하지요 중국에 쌀먹는 사람 많지 않지요.. 중국에서 100~200만톤 지원하는거는 얘들 껌값이겠지요..

    북한의 쌀 생산량은 년평균250만톤으로 고지에다 엄청 악조건의 환경에 있는 네팔 생산량의 반도 안되지요..네팔이 몇년전에 420만톤을 넘었는 데... 왜 북한은 넓은 면적에 곡식이 이리도 적나요..

    머리나쁜 게리!! 들으시오 땅을 인민들에게 자작농으로 주면 내일 바로 먹는문제가 해결됩니다.

    무조건 주는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아무리 많이 지원해줘도 절대권력자가 배급으로 주면 모자랄 수 밖에 없습니다.

    왜 모자라는 지는 게리님이 생각해보시고 올려주시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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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게리 2009-10-19 00:08:15
    개리 애한테 이야기 해보았자 소귀에 경읽기야.. 그냥 포기해...애 북에서 넘어온 애 맞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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