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북스토리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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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에 이어') 7 "뭘 물어보시게요?" 틀림없는 한국말에 나는 그 여자가 구면처럼 느껴졌다. "네"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내가 절박해보였던지 그 녀는 선뜻 나에게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나는 그때 가까이 오는 그가 고마웠다. 누군가로부터 이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내가 아직 멀쩡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였다. "어디를 물어보고 싶은데요?" 나는 마주 선 그가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내 몸 냄새에 불쾌해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우선 내 말을 마지막까지 들어주겠다는 것을 약속해주십시오" "?" 여자는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때야 내 아래 위를 얼핏 흩어보았다. "전 이상한 사람은 절대 아니고 아가씨에게(동무라고 말할 번했다.) 해를 끼칠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5분만 시간을 내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여자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고나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는 내가 북한에서 왔고 친구랑 헤어진 딱한 사정이며, 한국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까지 절절히 호소하다시피했다. 그러나 배고픔과 관련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왠지 그때에는 같은 사람 대 사람 사이에 할 말이 아닌 듯 싶어서였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그 여자는 자기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그 물음에 목구멍까지 나오는 "밥입니다." 말 대신 나는 "한국 가는 방법을 좀 알려주십시오."했다. 내가 그러길 잘했던 것 같다. 그 여자는 낯선 남자라는 경계심을 풀고 부지런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심양보다 북경 영사관으로 다들 간다는 것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대련으로 가면 고생이 덜하다는 것, 그리고 돈이 있으면 중국 여권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까지 참으로 아는 것도 많았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요?" 이 질문이면 대화를 좀 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그 여자는 내가 찾던 말동무임이 분명했다. 또 다시 이어가는 그 여자의 말 들 속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화룡시에 사는 자기 아버지가 탈북자들을 농사시키며 많이 숨겨주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놀라며 그의 아버지를 대단한 분이라고 칭찬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연길에서 심양까지 오는 길에 신세졌던 고마운 조선족들과 그들에 대한 나의 감사함을 열렬히 토로했다. 그 여자가 불쑥 물었다. "이 심양에 친척이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어디서 잡니까? 밥이나 먹었습니까?" 나는 먹었다는 말은 차마 입에서 안 나왔다. 잠시 고민하던 그 여자는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했다. 혹시 공안에 신고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핸드폰과 중국말이 조금 긴장되었다. 이윽고 나를 향해 돌아선 그 여자가 활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친구가 나에게 찜질방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물어보니 표를 주겠답니다. 거기서 자겠습니까?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그와 함께 걸으며 이름을 물었다. "왕초린!" 몇 번을 못 알아듣는 내 귀가 신기했던지 자기 이름을 소리치며 깔깔 웃었다. 나이는 내가 알아맞히겠다고 했더니 고기 굽는 리어카를 가리키며 맞히면 저 양꼬치를 사주겠다고 했다. 먹을 것 때문에 여자 나이를 가슴 조이며 점쳐 본 적은 아마 그때가 난생 처음인 것 같다. 얼마나 그게 빨리 먹고 싶었으면 "26살!"하고 외친다는 것이 "양꼬치!"해버렸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다행히도 초린은 내 실수를 모른 채 양꼬치를 진짜 사줄 것이라며 거듭 다짐했다. "26살"조심스런 내 음성에 "몇 살?" 다시 물었다. "26살"내가 좀 더 크게 말하자 초린은 손뼉을 짝짝 쳤다. "틀렸어요, 에궁 양꼬치 못 사주겠다……." 그 말에 양꼬치가 더 간절해졌다. "도대체 몇 살이에요?" "27살" 단호한 그 대답에 나는 속으로 '일 년 늦게 태어 날 것이지...'하고 푸념했다. 그러나 초린은 마음이 예뻤다. 일 년 젊게 봐준 턱이라며 쪼르르 달려가 양꼬치를 네 개씩이나 사들고 왔다. 나는 사람은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니깐! 이렇게 감탄하며 두 개를 먹었고 초린이 준 한 개를 또 먹었다. 초린이가 꼭 소원 성취하라며 친구로부터 받은 찜질방 표를 내밀 때 나는 부탁했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난 그동안 공안에 쫒기며 사람이 무서웠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그리워요."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초린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힘내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 대상이 기다리고 있어요." "대상? 그게 뭐죠." "음,,,뭐랄까. 한국에선 애인을 자기라고 부르잖아요. 우리 조선족은 대상이라고 해요" 이후 목욕을 하면서 나는 초린의 말에서 새롭게 안 대상의 의미에 피씩 웃었다. 뜻은 같은데 말이 다른 이국적인 여자를 직접 만난 그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새로워서였다. 나는 그날 씻고 또 씻었다. 몸이 깨끗해 질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아 양꼬치 먹은 힘을 다해 때를 밀었다. 비누를 문댈 때 마다 친구생각이 났다. 나는 이렇게 더운 물에 목욕을 하는데 친구의 지금 상황은 어떨까. 광용에게 전화 할 돈도 남기지 않고 술을 사 먹은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몸은 깨끗해졌지만 대신 아프지 않나싶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온 몸이 나른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자게 됐는지. 그것도 한참을 생각해봐야 했다. 이어 초린이 생각이 났다. 참 고마운 애였지. 그런데 그 얼굴을 아무리 되새겨 보려 해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양꼬치만 보였다. 그때 내 옆에 누군가 서있는 것만 같았다. 누굴까? 나는 망설였다. 두만강을 넘은 후부터 내가 먼저 남을 쳐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맞지요? 어제 그 사람 맞지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니 글쎄 초린이가 아닌가. "어떻게? 여기 어떻게 왔어요?" 나는 중국 땅에서 처음으로 지인을 우연히 만난 행운에 내가 한국말을, 그것도 북한 억양으로 소리치는 줄도 몰랐다. "짜잔!" 초린은 폴싹 주저앉으며 플라스틱 통에 담겨진 흰 빵을 보여줬다. 나는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음식보다 사람이 더 반가웠다. "어떻게 왔어요? 친구랑 같이 왔어요?" "아니, 음식 줄려 왔어요. 어제 헤어질 때 사람이 그립다면서 더 있어달라고 말하던 게 자꾸 맘에 걸려서 분명 아침을 굶었겠구나, 이러면서 왔어요. 먹어요." 빵을 집어주는 그 손에 나는 무엇이든 주고 싶었다. 갑자기 공안이 가져간 내 외투안의 달러 생각이 났다. "내가 어제 대상을 만나 자랑했어요. 이러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이러이런 도움을 주었다고" 공상에 잠긴 듯한 초린의 표정이 무척 귀여웠다. "대상이 뭐라고 해요? 중국 사람인가요?" "네, 여기 한족이예요, 금방 뭘 물어봤죠? 아 참 내 대상이 뭐라고 했는지 그걸 물어봤죠?" 나는 그냥 웃었다. "잘했다고 하던데요. 날 보고 착하다고 하면서 일요일 옷 사 주겠다고 했어요. 그 사람 착하죠?" 나는 둘 다 착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대상도 김정일이 엄청 싫어해요. 아마 중국 사람들은 다 미워할걸요. 배 나온 게 싫어서. 조선은 다이어트 안 하죠?" 나는 마음씨도 말도 예쁜 초린에게 물이라도 떠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벌써 그가 냉큼 일어나 물 컵을 두 개 들고 왔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앉는데 옷 사이로 가슴굴곡이 살짝 보였다. 예쁜 그 속살은 도덕이요, 위선이요 하는 그 모든 겉 치례들을 부정하며 순수한 초린이 자체를 보여주는 듯싶었다. "한국 언제 갈려고요?" 나는 아무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던 고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설사 초린이가 그냥 사라진다고 해도 그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엇인가 얻는 것 같았다. 초린은 영리하기까지 했다. 광용에게 친구안부를 묻는 문제는 자기가 맡겠으니 한국 갈 큰돈을 해결할 논의나 하자고 하였다. "돈 좀 벌만한 재간이 뭐가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도 없었다. 중국에서 지금껏 잘한 짓이란 공안을 피해 달아난 것밖에 없었다. 한숨 끝에 피아노를 좀 친다고 말을 흘렸더니 초린이가 버릇인지 손뼉을 쳤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 서울에서 내가 가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피아노를 치면 그들은 북한 사람이 어떻게 피아노를 치냐는 식으로 놀라군 한다. 마치도 북한은 음악도 없는 나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때도 초린은 피아노란 말에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어느 정도 치세요?" "체르니 50번 정도" 초린이가 피아노를 전혀 몰랐다. 체르니 50번이라고해도 그 의미를 이해 못하기에 나는 연습과정을 한참이나 설명해주었다. 그 말을 다 듣고 난 초린은 자기 대상 조카가 한국인이 많이 오는 서탑에 사는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 용돈도 벌고 기회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감격에 두 주먹을 불끈 들어보이자 초린은 손뼉 치며 응원해주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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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탈북수기땜에 여기에 자주 들여보게 되는것 같네요
내일이 기다려지네요
한계와 용기가 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저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하면서
이민복님처럼 삐라를 보내야 진짜 애국인데 전 고작 이런 글로... (내일 계속)괜히 이렇게 시작해서 일 끝나고난 후 밤에야 스토리를 쓰는데 그것도 매일이니 힘들더라구요...이민복님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ㅎㅎ
슬릴있고 재미있고,
다음편 기다립니다.
저가 30번 안쪽으로 글 읽은 순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171번째이군요..매일 글 읽는 게 일과처럼 되었네요.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킨이 나온 빠삐용 보다 더 스릴 있게 보고있습니다...진성님의 친구가 무사하길 빏니다..
친구의 소식도 언제일지 모르지만 알려주시기 바랩니다(상세히)
무척 수고하시고요..이런글 읽게 해주신 진성님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오늘도 읽을수록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장선생님 같은분이 왜 탈북을 하게 되셨는지도 알고싶군요?
하루 늦게 올라왔네요 ^^
역시... 필력이 장난이 아니네요
다음편도 부탁해요 ^^
그 천사 같은 마음씨.... 배곺을 까봐 찜질방 까지 찾아 온 그녀.....
그녀의 남자 친구인 중국이에 대하여 질투가 남니다.
그리고 장진성님도 그런 여자가 나타 날때 까지 결혼 하지 마세요.
반드시 그런 여자가 나타나 결혼 하게 될것입니다. 기대합니다.
오랜 만에 마음이 놓입니다.
지난 6회 마지막 부분에서 한 아가씨를 마났다고 했을 때에 행운이 돌아 왓다고 감 잡았었습니다. 앞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 입니다. 장진성씨!!!!
- 애독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2-04 13:48:11
매일 조마조마 하며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갑제닷컴에서 예전 책을 내셨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가능하면 그런 쪽과 거리를 조금 두시고 스스로 한국사회를 더 파악해보는 데에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님 정도의 머리와 용기라면 벌써 한국사회에 대해 많이 파악하셨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전혀 다른 체제의 사회에 뛰어드셨으면 여기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연원과 이유 그리고 그간의 과정 등을 좀 더 정확히 아시는 데에는 분명 절대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희 부모님 세대랑 저희랑도 사고관이 다른 점이 많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보릿고개를 경험하신 분들이고 저희는 구식부엌에서 입식부엌으로 그리고 흑백TV에서 컬러TV로 옮겨가는 사회 모습을 경험했거든요. 사고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지향하는 바도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저희 어렸을 때 엄마들은 소위 '신식'이고 아버지들은 '구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들은 '못 살았을 때를 생각해야지!'라고 호통치는 반면 엄마들은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애들한테 예전 걸 강요해요. 요즘 세상을 즐기도록 놔도요.'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이런 사고에서 오는 차이가 굉장히 크더라구요.
최근 북한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서, 왜 북에서 오신분들이 대부분 소위 보수가 되시는 지 많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북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됐구요.
하지만 북의 기준에 맞추어 남한을 판단하시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아이들에게는 지금 쌀밥이 중요하지만 남한 아이들은 피자에 열광합니다.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지만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는거죠. 이런 남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왜 쌀밥에 목메지 않느냐라고 호통친다면 정말 이상할 겁니다.
남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공유해온 역사가 있고 룰이 있고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걸 공유하시는 데에는 마음을 열고 시간을 느끼실 필요가 조금 있을 것 같습니다.
장진성님이 이미 알고 계실만한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너무나 훌륭한 글솜씨에 감탄해서 이런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는 단점도 많지만 분명 장점도 많습니다. 놀라운 건, 여기 사람들은 단점을 파악해서 고치고자하는 노력이 대단하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싸우기도 많이 하는데요, 상처가 곪아터지도록 모두 가만히 있기 보다는 싸우는 쪽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절대로 천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 으싸으싸하며 장점을 더 많이 가지려고 전력투구하는 이 사회를 장진성님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시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시려면 조갑제 쪽과는 조금 거리를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결론은.. 정말 글이 훌륭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졸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북의 기준의 맞춰서 남한을 평가하지 말아달라는 님의 글은 장진성님의 글과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진성님은 그냥 탈북과정을 글로나마 올린건데 왜 이런식의 답글로 보는이들마다 불쾌감을 조성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그냥 편하게 이분의 탈북과정을 읽어주셨음 합니다.
탈북자들이 감내해야할 고통 등등...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