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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public o 지나가다가 0 364 2010-01-07 09: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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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데 2010-01-07 09: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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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알의터 2010-01-07 10:16:37
    왜구놈들이 수탈해간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 위안부, 지하자원, 농업생산물, 역사침탈, 전 국민의 노예화, 관동대학살,,,

    아직도 1천조엔을 더 내놓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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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주부 2010-01-07 10:56:25
    일본은 6.25전쟁으로 인하여 경제대국의 길로 가게 된 계기가 되었죠.
    우리나라에선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지만
    전쟁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라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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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바리사냥 2010-01-07 11:51:34
    이젠 여기도 쪽바리가 설치는가?....
    요샌 여기 저기 낄때 안낄때 다 껴서 인터넷에서 쪽바리가 설치니...
    세상 바뀐지가 언젠데 아직도 쪽바리 타령이야.

    그리고 단순히 순수한 원조로만 보면 미국에서 받은 순수 원조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그 성격을 달리한다고 객관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협정당시에 무상과 유상의 차이를 모르는가? 무상은 당연히 침략피해로 받아야 될 돈이고 즉 청구권인데 3억달러 밖에 안된다는게 문제다.
    피해액수로 보면 당시에도 너무나 적은 액수이다.
    즉 받아야 할 돈을 받은건데 문제될것은 없다.

    또한 그동안의 과정에서 기업의 성장이나 수출신화의 과정을 보면 일본에서만 온것이 아닌 미국,독일,네덜란드,영국 등 선진국들에서 기술이전과 투자가 있었고 한국 노동자들의 중동신화, 베트남전쟁,미국의 원조, 등을 통해서 경제가 성장한것이고 그것을 이뤄낸 사람들은 한국내부의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대기업의 성장신화를 보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뀌게 하여 성장했고 지금은 오히려 선진국시장에서 1등제품을 만들고 일본제품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얘기 자체가 한계가 있다.
    이미 역전시켜 놓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경제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근대에는 막대한 자원유출과 식량송출이 강제적으로 이뤄져 일본경제에 기폭제가 되었고 전후에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패망후에 일본의 경제가 발전되었다는 것이 있다.
    오히려 은혜를 입은 것은 일본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또한 기술이전은 일부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필요한 기술을 이전한 사례는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과의 경제관계는 로열티에 지불과 수출의 극대화를 통한 현상만 강화되었다.
    즉 경제협력을 통한 막대한 이익은 일본쪽에도 있었고 그동안에 무역수지에서 막대한 이익과 흑자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고대부터 왜국은 문자나, 문화, 등에서 그동안에 많은 것에서 왜인들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역시 직시해야 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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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인 2010-01-07 14:28:46
    1.1965년 한일협정때 북한 김일성 돼지새끼가 일으킨6.25전쟁의 폐허로 인해 전세계적으로는 말할것도 없고
    아시아에서도 최고로 찌져지게 가난한 최빈곤 거지국 한국에게 위대한 대일본은 천문학적인 경제자금을 주고 무상으로 거지 한국에게 식량원조는 물론 6.25전쟁때 파괴된 수많은 남한의 건물과 다리,재방시설,문화재등을 복구시키고 새로 지어준다.

    ->한일 협정은 무상3억 유상2억 총5억달러의 지원금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국사이에서 청구권의 형식으로 지원되고 있어 당연히 받아야 될 금액이지 이것을 지금의 국제적 의미에서 말하는 지원,원조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패망후에 경제가 발전한 것은 일본이지 한국이 아니다.
    즉 은혜를 받은 것은 일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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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그리고 위대한 대일본께서 한국에 많은 공장을 지어주고 기술을 가르쳐 거지 한국을 세계 경제11위의 경제 대국으로 가는데 중추적인 역활을 한다.

    ->1953년의 휴전후에 경제적 자원원조, 식량원조 등에 있어서는 90%이상의 un과 미국을 통해서 이뤄진 부분이 있다. 즉 65년 한일협정과 53년이후에 전후복구는 일본과 사실상 관계가 없는 것이며 그시기에는 일본과 국교자체가 없었고 냉전시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이승만시기에 제1공화국의 제2의 가상적국은 일본이었다.

    또한 한일협정의 65년의 과정은 하나의 한국내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서 한국에서 경제가 국가주도의 발전단계에 있던 미국의 원조, 중동노동자, 독일수출일꾼파견, 베트남전, 한일협정, 등으로 인한 각국의 지원과 원조로 인한 투자가 이뤄지던 시기에 여러가지 사건중에 하나이지 그거 하나만으로 지금의 상황에 있다.라는 것은 즉 객관적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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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아래는 일본기업으로 부터 기술원조 및 막대한 지원을 받아 성장한 한국기업에 관한 내용

    ->단순히 기술원조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유상과 무상은 개념이 다르다. 즉 사용된 로열티나 유상으로 지원된 부분은 돈을 내고 있으며 이로인한 투자로 인하여 일본에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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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삼성 전자
    1969년일본의 산요 전기와 제휴해, 삼성 전자의 기본으로 되는 「삼성 산요 전기」가 탄생.80년대부터 하이테크 분야에 진출.

    ->지금 삼성은 일본산요보다 훨씬 큰회사이다.
    또한 세계시장에서 여러제품을 좌지 우지 한다.
    기업의 성장 신화는 한국인, 한국정부, 창업자의 혁신 등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사실들을 단순화 시키는 것은 오류가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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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포스코
    포스코는 한일 협정시, 피해자 개인의 대일본 청구권 방폐의 대가로 해서일본에서 받은 자금을 기로서일본의 신일본 제철의 기술로 지어진 기업

    ->청구권의 사용으로 한국내의 정부주도적으로 이뤄진 포항제철(포스코)이다.
    이것은 받아야 될 돈으로 산업을 일궈낸것이고 인프라의 구축에 성공하고 발전하게 된것이어서 전혀 문제될것이 없다고 본다.
    또한 산업 발전에서 it와의 접목, 독일철강기업과의 제휴등의 여러과정이 있어왔지 일본과의 관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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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현대 자동차
    1973년부터일본의 미츠비시 자동차의 기술 협력을 받아 1975년에 한국 첫 순국산차 「포니」를 발매. 그 후도 미츠비시 자동차로부터 엔진등 기술원조를 받는다.

    ->먼저 현대라는 기업의 성장신화를 보면 정주영씨에 의해서 창업된 한국기업에 신화이고 현대자동차의 포니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에서 기획되고 합의되어 만들어진다. 엔진은 미쓰비시에서 왔고 타이어, 그밖에 여러가지 것들이 각국에 협력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지 어디 한군데에서 그거 하나만으로 지금의 현대자동차가 있다고 보기 여려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기업들은 한국인들의 노력과 땀에 결실이고 대기업 위주에 정부정책에 일환으로 성장한 바가 크다. 그것을 기술이전 한가지 만으로 한국기업을 원조했고 만들었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지 판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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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삼양식품
    6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인 한국은 북한 김일성 돼지씹새끼가 일으킨 6.25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농경지가 파괴되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게다가 보릿고개가 되면 보리까지 부족해 식량난은 극도로 심해졌다.
    그때 일본은 라면이라는 걸 개발해 일본국민들은 식량난 걱정을 별로 안하던 때였었다.


    ->53년 휴전후에 한국내에 식량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시기는 un을 통한 미국에 식량의 원조가 막대하게 이뤄졌다.
    한편 이시기에 라면을 개발해서 일본국민들이 식량난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라는 것은 글쓴이의 지적수준을 나타나지 않나 생각해본다. 라면은 쌀의 대체식품으로 한국내에서는 정부차원에서 지원된 사실이 있지만 단순히 당시에 일본에서 라면을 개발해서 일본역시 식량난을 걱정안한다.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
    즉 한국내에 쌀부족으로 인하여 밀가루를 이용한 라면의 생산의 확장되었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이며 적절한 시기에 일본에서 도입된 라면이 인기를 끈것이다.


    (7-2) 삼양식품
    이에 한국민들을 식량난에서 벗어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1963년 삼양식품의 전중윤은 일본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에게 라면 맨드는 법을 무상으로 전수받아 그때 6.25전쟁과 보릿고개등으로 식량난에 굶주리던 조선인들을 구원하고 일본 묘조식품으로 부터 라면기술을 무상으로 배운 삼양식품은 지금 라면시장에 있어서 농심과 더불어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기업으로 성장한다.이는 라면기술을 무상으로 가르쳐준 위대한 대일본 묘조식품의 공헌이 지극히 크다 아니할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이전만으로 삼양식품을 만들었다.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삼양식품과 한국시장이 잘 맞았다는 것이 가장 첫번째 사실이며 한국시장내에서 라면을 생산해내서 한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장한 식품회사로 봐야 되는 것이지 단순히 한국내의 쌀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대체 효과로 라면의 판매가 상승한 것을 두고서 조선인을 구원했다느니 삼양이 그것만으로 한국내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니 말하는건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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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그 이외의 일본기업으로 부터 기술원조를 받은 한국기업에 대한 내용

    마츠시타 전기산업아남 전기 칼라 TV,오디오 제품에 관한 기술
    일본 빅터 금성사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일본 빅터 삼성전자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토시바 한국 전자  TV, 오디오용 바이폴러 IC의 설계,
    제조에 관한 기술 및 양자 기술자의 수락 파견
    샤프 삼성 반도체 IC제조 기술
    쿠보타 철공강산 산업상 하수도용, 안, 대형 밸브의 제조 기술
    히타치 정기 기아기공  NC공작기의 제조 기술
    고바야시 코세이쟈리아 화장품에 대한 제조 기술
    얀마쌍용중공업중, 대형선박용 디젤 엔진에 관한 기술
    토시바 금성 통신  X선진단 장치, 초음파 진단 장치에 관한 기술
    캐논 롯데 산업 고성능 건식 복사기에 관한 기술
    소니 현대 전자  VTR의 제조 기술
    히타치 조선 한국 중공업 선박용 엔진 제조에 관한 기술
    일본 정당 제일 정당 정당 공장의 자동화에 관한 기술



    -> 미국에서 일본으로 유럽에서 일본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각국 사이에 있어 왔고 초창기 경제발전에 있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이전은 하나의 흐름이다.
    그러나 지원이나 원조를 해도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용해서 발전하여 경쟁관계까지 온것이 한국경제의 신화이며 역사인것이다.
    이것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역시 같은 것이며 하나의 흐름에서 봐야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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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한국의 문화 일보 내용에서

    한미FTA가 1965년의 한일협정과 같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수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때 일본의 한국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으로 인해 한국이 경제발전할수 있었다.

    (문화 일보)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6062201033037115002


    -> 기사 짜집기 해서 만들면 참 할말없지만....

    무엇보다 한일협정은 청구권에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받을것을 받는 협정이다.
    물론 양국의 국교정상화에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있지만 한미fta는 개념이 다르다.
    또한 한일협정으로 인한 경제적 지원의 하나의 계기가 된것은 사실이지만 베트남전, 중동노동자, 등 수도없이 많은 외자유치노력과 달러벌이가 당시에 있었고 그돈으로 한국내에 인프라의 구축과 지금 존재하는 산업의 싹이 튼것이지 한일협정 하나만으로 되었다는 것이 참 한심한 논리이다.
    그리고 그땅을 발전시키고 만드는 것은 그나라의 국민이고 그힘이지 단순히 원조만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

    제시한 사이트 내에서 마지막에 지금은 어떤가. 한·일 양국은 한일합방은커녕 국제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라고 쓰여져 있다. 그말로 답변이 모두 가능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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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원조

    한국 철도 설비 개량 사업 1966-06-08 39.6억엔
    한국 한강 철교 복구 사업 1966-06-17 3.6억엔
    한국 건설기계 개량 사업 1966-07-20 23.4억엔
    한국 수리 간척 및 준설 사업 1966-07-20 11.88억엔
    한국 해운 진흥 사업 1966-07-27 32.43억엔
    한국 중소기업 및 기계공업 육성 사업 1966-07-27 54.0억엔
    한국 철도 설비 개량 사업(2) 1967-03-23 33.65억엔
    한국 수송 및 하역 기계 개량 사업 1967-06-27 9.35억엔
    한국 광주 시중 수도 사업 1967-07-11 6.05억엔
    한국 시외 전화 확장 사업 1967-07-11 3.60억엔
    한국 오오다시 상수도 사업 1967-07-11 5.90억엔
    한국산업 기계 공장 확장 사업 1967-07-31 10.80억엔
    한국 소양강 댐 건설 사업 1967-08-07 3.96억엔
    한국 중소기업 및 기계공업 육성 사업 1967-08-07 26.69억엔
    한국 고속도로 건설 사업 1968-06-26 10.80억엔
    한국 시외 전화 확장 사업 1968-10-30 6.48억엔
    한국 소양강 댐 건설 사업 1968-12-28 46.98억엔
    한국 고속도로 건설 사업 1969-04-14 18.00억엔
    한국 농수산 진흥 사업 1969-06-19 8.92억엔
    한국 영동 화력 발전소 건설 사업 1969-09-01 6.41억엔
    한국 청주시 상수도 사업 1969-12-04 3.24억엔
    한국 남해다리 건설 사업 1969-12-04 7.88억엔
    한국 소양강 댐 건설 사업 1970-02-04 27.01억엔
    한국 시외 전화 확장 사업 1970-06-25 5.17억엔
    한국 종합 제철 사업 1971-07-16 28.80억엔 포항 종합 제철(주)
    한국 서울 지하철 건설 및 국철 전화 사업 1972-04-10 272.40억엔
    한국 종합 제철 사업 1972-05-01 107.49억엔 포항 종합 제철(주)
    한국 상품차관 상품차관등 1972-09-18 77.00억엔 대한민국 정부
    한국 종합 제철 사업 1973-01-16 10.87억엔 포항 종합 제철(주)
    한국 통신 시설 확장 사업 1973-04-23 62.00억엔
    한국 한강 유역 홍수예경보 시설 사업 1973-07-20 4.62억엔
    한국 상품차관 1974-05-13 77.00억엔 대한민국 정부
    한국 포항종합제철소 확충 사업 1974-05-22 127.88억엔
    한국 대청 다목적댐 건설 사업 1974-12-26 118.80억엔
    한국 농업 종합 개발 사업 1974-12-26 194.40억엔
    한국 포항종합제철소 확충 사업 1975-07-30 2.25억엔
    한국 북평항 건설 사업 1976-03-31 124.20억엔
    한국 충북선복선화 사업 1976-11-26 43.00억엔
    한국 통신 시설 확장 사업 1976-11-26 66.00억엔
    한국 농업 진흥 계획 1977-06-10 126.00억엔
    한국 초고압 송전선건설 사업  1977-11-28 40.00억엔
    한국 충주 다목적댐 건설 사업 1978-01-20 140.00억엔
    한국 농업 진흥 계획 1978-01-31 60.00억엔
    한국 의료 시설 확충 사업 1978-12-25 70.00억엔
    한국 농업 종합 개발 사업 1978-12-25 140.00억엔 한국 전력(주)
    한국 교육 시설 확충 사업 1980-01-18 100.00억엔
    한국 국공립 의료 및 보건 연구기관 근대화 사업 1980-01-18 40.00억엔
    한국 도시 하수처리 시설 건설 사업 1980-01-18 50.00억엔 건설부, 대구시, 오오다시, 전주시
    한국 교육 시설(기초과학 분야) 확충 사업 1981-02-27 60.00억엔
    한국민 사이 지역 병원 의료 장비 확충 사업 1981-02-27 130.00억엔
    한국 의료 장비 확충 사업(서울 대학 소아병원)1983-10-11 54.0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서울탄강) 1983-10-11 115.00억엔
    한국 지방 상수도 확장 사업(부산, 서울, 진주)1983-10-11 78.00억엔
    한국합천다목적댐 건설 사업 1983-10-11 204.00억엔
    한국 서울 상수도 시설 근대화 사업 1984-08-08 29.0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서울안랑) 1984-08-08 167.0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부산) 1984-08-08 63.00억엔
    한국 기상 관련 설비 근대화 사업 1984-08-08 42.00억엔
    한국 국립보건원 안전성 연구 센터 사업 1984-08-08 24.00억엔
    한국주암다목적댐 건설 사업 1984-08-08 111.00억엔
    한국 오오다시 상수도 확장 사업 사회적 서비스 1984-08-08 22.00억엔
    한국 도시 폐기물 처리 시설 건설 사업1984-08-08 4.00억엔 대구시, 성남시
    한국 농업 수산 시험 연구 설비 근대화 사업 1984-08-08 33.00억엔
    한국 의료 시설 확충 사업 1985-12-20 123.0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부산장숲) 1985-12-20 92.6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광주) 1985-12-20 75.6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하루카와) 1985-12-20 32.80억엔
    한국 화학 연구용·계량 표준 연구용자기재 보강 사업 1985-12-20 27.00억엔
    한국 교육 시설 확충 사업 1985-12-20 152.00억엔
    한국 종합 해양 조사선 건조 사업 1985-12-20 41.00억엔
    한국 교육 시설 확충 사업 1987-08-18 129.11억엔 문교부, 국립과학관
    한국 중소기업 근대화 사업 1987-08-18 77.50억엔
    한국 농업기계화 사업 1987-08-18 77.50억엔 전국 농업 협동 조합 중앙회
    한국 폐기물 처리 시설 건설 사업 1987-08-18 53.72억엔 대구시, 성남시
    한국 낙농 시설 개선 사업 1987-08-18 38.75억엔 서울 우유 협동조합
    한국림하다목적댐 건설 사업 1987-08-18 69.75억엔
    한국 울산시 도시 개발 사업(철도 부문) 1988-06-22 44.40억엔
    한국영산강 3-1 지구 방조제 사업 1988-06-22 44.40억엔
    한국 하수처리장 건설 사업(제주·청주) 1988-06-22 41.59억엔
    한국 교육 시설 확충 사업 1988-06-22 5920억엔
    한국 연구소 시설 확충 사업 1988-06-22 26.79억엔 한국 유전공학, 기계, 전자 통신, 화학 연구소
    한국 사립대부속 병원 시설 확충 사업 1988-06-22 56.24억엔 이화여대 가쿠, 츄우오 대학, 한양대학, 고려대학, 도아 대학
    한국 대전 상수도 확장 사업 1989-08-22 14.34억엔
    한국 중소기업 근대화 사업 1989-08-22 62.00억엔 코쿠민 은행
    한국 서울 지하철 건설 사업 1990-10-31 720.00억엔
    한국 의료 장비 확충 사업(서울 대학교 병원) 1990-10-31 43.20억엔
    한국 수산·상선 학교 연습 의장비확충 사업 1990-10-31 21.60억엔
    한국 중소기업 근대화 사업 1990-10-31 115.20억엔
    한국육 가공 시설 확충 사업 1990-10-31 17.28억엔
    한국 배합사료 공장 건설 사업 1990-10-31 54.14억엔
    한국 낙농 시설 개선 사업 1990-10-31 24.48억엔

    -> 일본정부의 원조라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것을 원조라고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무리가 있는 이론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한국내 인프라개발사업이나 기업 투자목적의 장비, 건설사업, 댐사업, 상수도 사업 등 모든것이 투자나 돈과 관련된 거래이고 최근에 한국의 ktx 고속철도사업이나 주요 기관사업의 입찰에서 실패한이후에 이익을 상실한 것 역시 일본이었다는 사실과 실제 위에 투자로 인하여 생기는 부품이나 기술사용료, 등에 있어서 돈을 벌어간 것도 일본이라는 사실은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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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한국의 IMF즉,외환위기로 외환거지국이 된 한국에게,348억 달러와 1,300억엔 지원한 일본97년 11월, 금융개혁 법안의 불성립을 배경으로,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염려로부터 외국 금융기관의 자금 인상이 발생해, 이것에 의해 심각한 외화 부족을 초래하게 된 한국은 IMF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IMF,G7등은, 한국에 대한 총액 570억 달러를 넘는 지원(집일본은 100억 달러를 지원)을 결정.

    그 후, 100억 달러의 지원 앞당김이나 일.미.유럽의 민간은행과의 단기 채무 218억 달러의 장기채무에의 전환등의 지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나라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결제를 위한 1,300억엔의 수출입 은행 융자(98년 5월 계약),한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30억 달러 상당한 수출입 은행 융자(김대중 대통령 방일시 합의) 등의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http://www.meti.go.jp/hakusho/tsusyo/kakuron/H11/03-01-01.html

    ->객관적 사실에서 imf 당시에 근본적인 경제위기에 근원은 미국계 핫머니와 헤지펀드에 있다고 보며 한국내에서는 부실대기업의 문어발식영양과 금융기관에 방만한 경영에 있다고 봐야 하지 그것을 특정국가에 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러나 무엇을 잘못알고 있어서 지적하고 싶다.
    97년 당시에 한국정부에 지원요청에 일본은 차관 제공을 고사시킨 사실과 함께 한국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 만기연장 철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가장 먼저 인출하여 IMF체제를 앞당겨준것은 사실이 있다.
    또한 IMF 구제금융이 결정된 시기에 일본은 33억달러에 달하는 채권은행 대출금 회수도 거부한 사실이있다.
    일본은 한국과의 협약을 깬것은 물론 채권회수의 연장에도 동의하지 않아 한국을 가장 큰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라고 볼수있는 것이다.
    이때 일본에서는 그 당시 한국이 필요했던 100~150억 달라라는 외환보유고가 충분히 있었으며(당시 한국의 대일무역수지 적자의 누적액수가 1000억달러 정도 ) 일본은 냉정하게 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이후 imf를 거쳐서 들어온 지원자금에서 세계2위에 경제대국의 위치에서 그 비율분담은 상식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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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보면 쪽바리가 아닌 한국인인거 같은 느낌인데 글을 마구 붙여넣기 해서 쓴것 같은데 제대로 알고 상황을 어느정도는 맥락을 보면서 글을 써야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너무 한국에 대한 비하에 열을 올리는 것도 망상이나 정신나간 소리를 일방적으로 하는 것도 대일본제국이니, 신민이니 하는 것도 당신의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를 중립적으로 설명해서 설득력을 갖길 바라며 현실세계를 사는 세계인이 되는 것이 좋지 않을지 판단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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