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감한 동포를 보았다.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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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삼촌의 권유로 나는 남쪽삼촌과 함께 며칠후 비행기로 선양을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탈북자분과 있었던 일을 삼촌에게 얘기 했다.. 선생님.. 북쪽 조카분은 선생님의 형님이 의사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입니까? 사실이야 우리형님이 서울대학 의과대학을 다녔어.. 아 사실이군요... 625때 인민군이 서울대학에 들어와 학생들을 끌고 갔어.. 다른 학생들은 빠져나오고 했는데 우리형은 오질 못했어. 환자를 돌볼줄 알아서 그런지 데리고 간것 같아.. 조카는 뭘 하는 사람인가?.. 잘은 모르겠어요.. 사장이란 소리를 몇번 들어본것 같아요... 어느새 비행기는 선양공항에 도착했다. 선양에 도착하자 중국말 때문에 걱정했는데 의외로 남쪽삼촌이 능숙하게 중국말을 한다...중국말을 잘하십니다. .. 요즘 배우고 있어.. 그런데 선양 서탑에서 만나기로 했던 탈북자분은 나타나질 않았다.. 전화를 하니.. 이상하게 불안하다.. 불안해서 가질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고 하며 떨린다 한다.. 나는 그가 와있다는 작은도시로 그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탈북자분과 다시만났다.. 불안해 하는 모습이 이었고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여러시간 흐른뒤 같이 선양으로 가게 되었다.. 불안해 하는것 같아 선양까지는 불법 자가용 택시를 이용했다 선양의 경회루 식당에서 남쪽삼촌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탈북자분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삼촌이 와있는 방문을 열자 탈북자분은 머리를 숙이고 조심조심 삼촌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내가 누구의 아들입니다 . 삼촌과 조카는 잠시 마주보았다.. 그리고 조카는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쏫는다. 남조선 출신이라고 얼마나 멸시를 받으며 살았는줄 아십니까? 삼촌은 어깨를 두드리며..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시간이 흐르며 북쪽조카는 가족사진과 아버지의 사진을 삼촌에게 전해주며 설명한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같은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외가친척도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습니다... 옆에 앉아 듣고 있던 나는 남쪽삼촌이 형님을 얼마나 따르고 형제애가 깊었는지를 알수있었다.. 아마 삼촌이 중국까지 달려온 이유는 형님에 대한 그무엇이 있는듯 싶었다... 멋진 형제... 잠시후 나는 내가 낄자리가 아닌듯 싶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들어가니 나를 반가히 맞는다... 삼촌이 노래방 한번갈까.. 조카 좋습니다.. 노래방에서 조카는 울고 삼촌은 노래를 부른다. 이노래 http://blog.joins.com/modrige/11063225 -끝- ---- 쓰고싶은 이야기는 많다... 북쪽의 조카는 삼촌의 한국행권유에 거절 했다.. 이유는 내가 성공해서 가리다... 장손이 성공해야 집안이 잘되는 법이라고.. 그리고 나는 김정일과 싸워야한다 였다.... 나는 그가 김정일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포에 지원식량이 들어오면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쌀을 훔쳤다 한다... 그는 나쁜사람들을 처단했다.. 지금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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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싸운다는 말이 왜 가장 걸리는지.
여기의 자유로운 세상에서 이명박이 욕을 실컷하고 사니 북쪽의 지옥같은 세상이 좋아보이는 사시눈을 갖은 사람이 된듯해.
왜 위대한 지도자동지와 싸운다니 불경해 보이지?
인생의 쓰레기들..
조카분도 삼촌을 만나기에 얼마나 감정이 복잡했을까요.. 그동안의 원망과 그리운 마음이 뒤섞여서..
그런데 조카분이 김정일과 싸우는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다니..죽음을 각오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겠네요. 부디 잘 되시기를 빕니다.
이처럼 엄청난 경험담을 올려주신 미란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참 소설같은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