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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탈북 이야기(13)
Korea, Republic o 장현석 1 389 2010-04-20 17:13:07
2010년 04월 20일 (화) 14:26:59 뉴스코리아 webmaster@newskorea.info


우리 가족이 다 추수한 텅 빈 밭들, 그리고 동생이 돌보던 정든 송아지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왕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왕청에 가면 어떤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아저씨 댁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한 뒤로는 항상 산속으로 피해 다니다가 사람들이 많은 도로에서 처음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길거리마다 구경거리도 많았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해보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을 빠져나갈 때가 있었는데 혹시라도 공안대의 눈에 띌까봐 마음을 조이기도 했다.

오갈 데 없는 우리 가족이 낯선 아저씨의 도움으로 아저씨의 집으로 향할 때 참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귀가하고 있었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은 갈 곳이 있어서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니 스스로 초라해지고 한없이 작아졌다.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저녁이 되면 식구들이 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쉴 수 있는 우리 집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허무하게나마 가져보았다.

아저씨는 부인이 한국으로 돈벌이 나오신 후 몇 년 간 혼자서 지내시는 분이셨다. 부인이나 여자의 손길이 오랫동안 끊어져있었다는 것을 구석구석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안 곳곳을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아저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잠시지만 며칠 동안 이곳이 우리 집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을 쉽게 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아 보이는 창고, 주방,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 먼지가 가득 차 있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후 엄마랑 나랑 이모는 바닥도 닦고, 화장실도 닦고 청소만 하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그만해도 된다고 아저씨가 자꾸만 말리는 바람에 채 끝나지 않은 청소를 미루고 깊이 잠들어 버렸다. 참 다행이었다. 산골 집에서 나와서 당장 갈 곳도 없던 우리 가족이 또 우연히 아저씨를 만나게 된 일, 그리고 집에서 머물게 해주신 일 모두가 다행이었다.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여유로워보였지만, 순간순간의 여유로움뿐이었을 것이다.

눈을 잠깐 붙인 것 같은데 어느 새 왕청 시내에 분주한 새벽이 밝아왔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열심히 이곳저곳으로 이동했고, 떡과 두부와 아침에 먹을 만한 음식들을 실을 구루마들도 음식을 사라고 집요한 소리를 내고 다녔다. 뒤쪽 창문을 살짝 열고 이브자리를 정리했다. 창문으로 기름에 뭔가를 튀긴 것 같은 고소한 냄새가 물씬 들어왔다. 지금은 기름 냄새만 나도 느끼하다고 난리지만, 그때에는 그 기름 냄새가 너무 좋았다. 내가 부유해진 것 같았다.

아저씨는 지갑을 챙기시고 잠시 나가서 밀가루를 길게 꽈서 튀긴 뭔가를 한 봉지 사 갖고 들어오셨다. 우유랑 그 꽈배기를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몇 개를 먹었는지도 생각도 안났다. 아저씨는 정신없이 먹고 있는 우리에게 연신 ‘안됐다, 안됐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자꾸 권하셨다. 우리 가족은 정말로 꽈배기를 하나도 안남기고 다 먹어치웠다. 그때야 우리는 잘 먹겠다는 말씀도 못 드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느꼈다.

아저씨는 이제부터는 그 꽈배기 질릴 때 까지 사 줄 테니 아저씨 댁에서 마음 편히 지내라고 하셨다. 순간은 너무 감사했고,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 같았지만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한 마음은 여전했다.

아저씨는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 봐 주시겠다고 나가셨다. 며칠 동안을 거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신분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왕청에서 지내게 될 날들을 기대하면서 우리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리 가족 세 식구 월급이 일반 중국인 한 사람의 월급보다도 적은데도 누구도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저씨가 알아봐 주셨지만 식구 중 누구도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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