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전쟁은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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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전쟁은 왔습니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한반도 문제의 解答 正答은 150년 前 美대통령 링컨에게 다 있다고 주장해왔다. 1860년대 초, 美남북전쟁이 터지기 전, 美북부(메이슨-딕슨 線 이북)에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있었고, 유럽에서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자유로운 생존경쟁으로 미국 북부는 농업소국에서 산업화 대국으로 급변하고 있었는데, 미국 남부는 소수의 백인 노예主들이 흑인노예들을 가축처럼 사고팔며, 오로지 흑인노예 강제노동에 의한 목화재배만 고집하고, 집단군주주의 봉건주의에 고착해있었다. 한반도 남반부에서는 해방 후 지난 60년간 이승만-박정희의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로 한국은 농업소국 후진국에서 산업화 대국경제로 급상승했는데, 한반도 북반부 김씨조선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세습 일인수령 절대독재로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살육하고, 세뇌하여, 북한주민들은 흑인노예들보다 더 못한, 나치 치하의 유태인들이 당한 것보다 더 지독한 인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美남북전쟁 前 북부 주민들은 지금 남한국민들처럼 참 잘 먹고 잘 살았었다. 유럽에서처럼 왕이나 귀족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갖다 바치지 않아도 되었다. 자식들 교육을 열심히 잘 시키면, 아버지는 면직공장에서 일하거나,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어도, 자식들은, 아니, 통나무 집에서 태어나 하루종일 나무만 찍어대던 문맹농부의 자식 링컨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 잘난 남부의 노예主 집단군주들 내버려 두고, 우리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남부의 노예주들이 북부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부 노예州들은 북부 자유州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미국은 당시 동부에서 서부로! 서쪽으로! 이민 개척민들이 자유와 기회와 땅을 찾아 몰려가는 시대였는데, 남부 노예주들은 그 서부에도 노예제도를 확장하겠다고 발악을 했다. 북부에도 자유州, 서부에도 자유州면, 노예제도 남부는 언젠가는 소멸될 거란, 북부에 먹힐 거란, 걱정에서 발악을 안 할 수 없었다. 드디어 캔자스 변방州에서 유혈 살상사태가 났다. 1856년 5월, 미조리 州의 노예主들이 보낸 조폭들이 캔자스 州의 자유이주 정착민 농부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났다. 이에 맞서 나선 노예해방운동가가 바로 존 브라운이란 영웅이었다. “나쁜 놈들! 이(齒)에는 이, 눈(眼)에는 눈이다! 너희들도 맛좀 보아라!” 존 브라운은 칼과 총으로 노예주 조폭들을 찾아 찌르고 죽여버렸다. 대한민국이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려해도, 김씨조선은 대한민국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휴전선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동해바다 건너 일본에 자유민주주의, 이렇게 자유민주주의에 둘러싸여 있으면, 김씨조선은 언젠가 자유민주주의에 먹힐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훨씬 더 잘 사니까! 김일성이 이 역사적 진실을 알았기 때문에 6.25 남침(한반도 남북전쟁)을 했던 것이고, 김정일도 어버이 수령님에게 잘 배워서, 제2의 한반도 남북전쟁은 필연적 사실이다. 링컨이 그랬드시, “Fellow Citizens, We Cannot Escape History! 역사는 피할 수 없습니다!” 링컨은 당시 미국인구 3천만일 때, 60만 이상의 장정들 피를 흘리게 하고, 자신도 전쟁이 끝나자 마자 죽었다. 그렇게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북한인권운동에 참여한 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북한인권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대한민국 보전이 더 시급하게 되었다. 수도 서울에는 빨갱이들이 득시글거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링컨 취임 前 15代 美대통령 제임스 뷰캐넌과 하는 짓이 비슷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제일 우유부단 무능했던 대통령으로 치부받는 머저리가 바로 중도실용 (자유州 편도 아니고 노예州 편도 아니었던) 제임스 뷰캐넌이었다. 천안함 격침을 보면서 160년 前 캔자스 학살을 되돌아 본다. 자유를 찾아, 땅을 찾아, 기회를 찾아, 서부로 간 농부들을 노예주 폭도들이 학살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나? 천안함 해군장병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나? 천안함 격침은 학살이요, 테러다. 학살 전문, 테러 전문범이 바로 김정일이다. 그래도 증거가 필요한가? 한반도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링컨이 제2차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연설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과 함께, 역사상 영문으로 쓴 3大 연설문에 속한다. 그 연설 중, 링컨이 한 말 – “그래서, 그 전쟁은 왔습니다”란 말이 지난 한 달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On the occasion corresponding to this four years ago, all thoughts were anxiously directed to an impending civil war. All dreaded it--all sought to avert it. While the inaugural address was being delivered from this place, devoted altogether to saving the Union without war, insurgent agents were in the city seeking to destroy it without war--seeking to dissolve the Union, and divide effects, by negotiation. Both parties deprecated war; but one of them would make war rather than let the nation survive; and the other would accept war rather than let it perish. And the war came. “4년 전 이 자리[美합중국 대통령 취임식:역주]에서, 온 국민들의 불안과 신경은 닥아오는 [남북間:역주] 內戰에 쏠렸었습니다. 모두들 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 했고 – 어떻게든 전쟁만은 피하고자 했었습니다. [제가:역주] 대통령 취임연설을 하는 도중에도, 한 편에서는 전쟁을 하지않고 나라를 보전하려고 노력했는데, 수도 곳곳에 잠입했던 반란세력은 전쟁없이 나라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 이 연방을 와해시키고, 협상이란 수단으로 민심을 갈라놓으려고 했습니다. 양 쪽 모두 전쟁을 반대한다고 주장했으나, 한 쪽에서는 나라를 보전하기보다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고집이었고, 한 쪽에서는 나라가 망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은 왔습니다.” 데이비드 허버트 도널드 지음, “링컨” 남신우 옮김 2010년 5월 1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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