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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탈북자지만 질적으로 다른 것 같다......
청취자 4 429 2005-08-25 07:31:58
뭐든지 남의 뒷다리 잡고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북한식 상호비판문화는 이제 버리세요. 김은 미국이 단 한명의 탈북자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북한인권운운하는걸 자격없다고 비판했고 베트남은 북한보다 인권상황이 나은게 뭔지 저도 이해가 안되요. 제가 알기로는 베트남의 경우 해외여행의 자유가 없으며 농촌의 경우 수백만이 절대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지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조금 이성적으로 관찰하시길 바랍니다. 그저 물고뜯는데 익숙한 당신들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탈북자 사회 전체이미지를 흐리게 만듭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그런 자세가 정말 귀하들에게는 없는지요?
아래 KBS박인규코너에서 가져온 인터뷰 전문이 있습니다.

MC 박인규:
김형덕씨 안녕하십니까?



김형덕 씨:
예. 안녕하세요.



MC 박인규:
보통 탈북자라고 하지만 요즘 공식적인 용어로는 '새터민'이죠. 우선 언제 한국에 들어오셨고 국적을 취득한 건 언제입니까?



김형덕 씨:
저는 이제 93년도에 북을 떠났고 한국에 들어오기는 94년도에 9월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 5개월 간의 조사과정을 거쳤고 95년 2월 달에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MC 박인규:
지금 연세가 32이시던데?



김형덕 씨:
연세라고 할 나이는 아닙니다.



MC 박인규:
죄송합니다. 상당히 일찍 탈북하신 거네요?



김형덕 씨:
예. 그렇죠 사실 나올 때 기준으로 하면 만 18세.



MC 박인규:
우선 이번에 탈북자가 새터민이 북한대사관에 들어가서 내가 합법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해달라.. 상당히 처음 있는 일인데 왜 이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김형덕 씨:
일단은 새터민들도 과거의 이산가족이거든요. 그리고 숫자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현재는 부정기적으로 음성적으로 만나고 있기도 한데 이게 risk(위험요인)가 브로커들이 중간에서 굉장히 농간을 많이 하고 이러기 때문에 그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결국은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안정적이지 못해요. 그러니까 한번 만나다 끊기는 경우도 있고 저도 한번 만났는데 그 이후론 단절됐거든요. 그러니까 중국 등에서 서신을 교환하고 살아있는 걸 확인했는데 그 뒤에 서신이 끊겼거든요. 브로커에 의해서 의존하는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굉장한 위험부담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고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도 없고 이게 아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더라고요.



MC 박인규:
지금 말씀하시는 중에 탈북자, 새터민 국내에 7천명 정도 있는 걸로 알고있는데 그분들 중에 만난 분들이 이미 있다? 정상적이진 않지만?



김형덕 씨:
예, 많죠. 연락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대게 불안정하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죠.



MC 박인규:
그래서 차라리 만나려면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만나게 해달라?



김형덕 씨:
그러니 북쪽정부가 그걸 보장해주는 게 저는 옳다고 보거든요.



MC 박인규:
그런데 딴 거 보다도 저희는 이제 '탈북자를 북한이 강제소환 한다' 그런 언론보도를 많이 봐 가지고 제 발로 북한대사관에 들어갔을 경우에 '당신은 무단으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니까 다시 북한으로 소환하겠다' 그런 걱정은 안 해 봤어요?



김형덕 씨:
그런데 정치논리에 따라서 그게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저는 어떻게 보면 남한국적을 취득했고 북쪽에서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왔어요. 이미 공민권을 받기 전에 왔기 때문에 북쪽에 대한 정체성을 제가 갖고 있지도 않았고요 잘.



MC 박인규:
공민권이라는 건 18세나 20세가 넘어야 받는 겁니까?



김형덕 씨:
그렇죠. 만 17세 돼야 주는데 저는 군에 바로 입대했기 때문에 군인증은 있지만 공민권은 못 받았죠. 군에서 제대하고 나면 공민권으로 주거든요.



MC 박인규:
어쨌거나 북한대사관에 들어가도 내가 강제로 다시 북한에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신 거군요?



김형덕 씨:
그렇죠. 저도 논리적 근거는 있습니다만 뭐 사실 편안하진 않죠 당연히 그런데 남한에서 결혼해서 남한에서 살고있고 남한 국적이 있는데 국적이 그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국제사회에 인권문제 때문에 욕을 먹는데 그런 무리수를 둘 거라고 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MC 박인규:
이 문제를 키우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북한인사 관계자를 만났을 때 '내가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했을 때 굉장히 놀랬을 것 같은데요?



김형덕 씨:
뭐 많이 흥분하고 욕을 하죠. 그런데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려움도 많이 겪고 이런 과정을 함께 하지 않고 달아난 이런 사람으로 보니까 조금 욕하고 화를 내고 xx하고 욕을 하죠. 그래서 제가 뭐 그랬죠. '그쪽도 하나의 조국이고 가보니까 똑같은 민족이 살고있고 조국이니까 우리가 민족반역자니 배신자니 이런 말을 쓸 필요도 없다. 같은 민족끼리 무슨 배신이냐. 같이 협력해서 서로 이루어 가면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설득하고 그분들에게 '그런 거 자체가 우린 과거에 사로 잡혀있는 거다. 미래로 가는 게 더 좋지 않겠냐' 이런 쪽으로 설득을 했어요.



MC 박인규:
이번에 북한주재영사관으로 들어가신 게 고향에 남아있는 형제분들, 평남 개천이라고 하셨죠? 만남을 하는 것 외에 약간 보다 더 정치적인 이것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개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새터민 7천명이 부정기적으로 음성적으로 만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남한에 북한의 가족을 못 본 이산가족이 굉장히 많거든요? 실제로 북한의 국경에 가서 그런 음성적인 방법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에 예를 들면 북한이 김형덕씨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남한 이산가족들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서 만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북한이 이번 김형덕씨 요청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김형덕 씨:
저는 북쪽에서도 전형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받아들였으면 좋겠고요. 만난다고 해서 북쪽체재가 흔들린다거나 남쪽체재가 문제가 되고 그러진 않아요. 그거는 좀 지나치게 우리가 과도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북쪽에서도 좀 미래지향적으로 바라 봐야하지 않을까.. 결국은 역사에 책임을 져야되기 때문에 또 이산가족이 많이 남지도 않았고 자꾸 사망하고 있단 말이죠. 그리고 또 그런 분들이 또 북쪽에 가서 북쪽을 반대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단지 가족을 돕고자하는 마음이거든요. 그런걸 만나게 해주면 북쪽에서도 경제적으로 유익인 점도 있고 또 그들이 늘 선전하는 광폭정치도 한껏 대내외에 자랑하는 그런 정치도 될 거니까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권유하고 싶어요.



MC 박인규:
그럼 일단은 김형덕씨가 북한에 있는 형제나 친척을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그쪽에서 답을 준건 아니죠?



김형덕 씨:
답을 기다려야되는 입장이고 만약에 거절당하면 지속적으로 그걸 요구해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MC 박인규:
앞으로도 이제 뭐 결과를 달라?



김형덕 씨:
결과를 달라 하고 안되면 안 된다.. 안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걸 통보 받아야죠. 그걸 노력해서 우리가 한발 한발씩 우리가 가족이라는 기본적인 공동체가 법과 권력에 의해서 왕래할 수 없다는 것은 안 좋은 거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조금씩 해나가는 것을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MC 박인규:
어쨌든 지금으로선 북한이 어떤 입장으로 나올 진 모르지만 만약에 김형덕씨의 합법적인 방북이 결정이 된다면 다른 이산가족들도 굉장히 큰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7월 달에는 가족들하고 함께 금강산에 갔다왔다고요? 새터민으로는 처음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김형덕 씨:
예. 저는 사실 금강산 관광은 시작초기 첫배를 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게 왜 그러냐.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지워버릴 수 없어요. 저는 더구나 혼자 왔기 때문에 더 그래요. 6남매 중 혼자 왔는데 얼마나 가고 싶겠어요. 분위기가 남북관계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까봐 저는 오히려 참아줬어요. 그거 뭐 또 여러 명에게 비난받을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초기 안정화 단계까지는 우리가 좀 기다리자 그런데 백만명이 넘고 이게 한두 명의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 이제는 자리잡았으니까 문제없고 북한이 그런 것을 문제삼을 거라고 보지 않아요, 북쪽자체가.



MC 박인규:
가는 과정에서 남쪽당국에서 자제해달라던가 그런 지시는 없었습니까?



김형덕 씨:
그런 건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그런 제약은 받지 않습니다.



MC 박인규:
갔다와서도 무슨 말을 들었어요?



김형덕 씨:
뭐. 갔다와서도 얘기가 있죠. 가능하면 인터뷰를 자제해달라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차원에서 알리는 게 맞다고 봐요.



MC 박인규:
가셔서 금강산 들어가셔서 안내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어떤 요즘에 말하자면 탈북자라는 걸 그쪽 안내원이 알았다면서요?



김형덕 씨:
그쪽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까 제가 여기 와서도 한 10년 간 북한을 연구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쪽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쪽사람들이 놀라는 거죠.



MC 박인규:
너무 잘 안다?



김형덕 씨:
너무 잘 알고 자기는 대북 사업가들이나 정책관리자를 만나봤지만 그렇게 잘 아는 사람 처음 봤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북쪽만 위해서 연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 안다'고 했더니 '간첩 아니냐'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간첩이다'라는 농담까지 주고받고 하다 탈북자라고 하니까 그쪽에서 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더니 정리가 되고 나서 하는 소리가 '그러면 민족 반역자시군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격하게 이야기한 건 아니고요 농담식으로. 그래서 제가 조크를 다시 던졌죠. '그쪽엔 다른 민족이 살고 있지 않더라 똑같은 민족이 살고있더라' 그런 이야기하니까 조용해지더라고요.



MC 박인규:
북한에 대해서 남쪽도 민족이니까 반역자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북화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김형덕 씨:
그렇죠. 역할을 할 수 있다. '북쪽에서, 보낸 사람에 대해서 자꾸 그러지 말고 포용하는 정책으로 가야.. 그 사람들이 남과 북의 이질감도 존재하는데 그걸 화해하는 쪽으로 가야지 자꾸 배제하고 외면하면 갈등을 조장하는 것 밖에 더 되겠느냐' 그런 쪽으로 이야기했더니 뭐 '조국을 반대하는 일을 좀 하지 말아 달라' 그래서 전 이렇게 얘기했어요 '남쪽이나 북쪽이다 다 조국이기 때문에 전 양쪽에 득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말을 했어요.



MC 박인규:
18세 때 북한을 떠나셨다고 했는데 북한에서 청년돌격대원을 하다가 '노동교양소' 일종의 교도소, 왜 탈북하시 게 된 겁니까?



김형덕 씨:
결정적 탈북동기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저는 일단 북쪽에서 미래가 조금 보장 안 되는 직업을 가지고있었고 사실은 그냥 건설에 동원되는 군사조직 비슷한 건데 10년 간 근무해야 되요. 그런데 가보니까 그때만 해도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자재나 이런걸 해결 할 때 '조절'이라고 해서 도둑질을 시킵니다. '조절'이 뭐냐하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균형을 맞춰서 조절한다' 이런 뜻이에요. 은어로 만든 건데 자율적으로 만드는 조절부대지 그런데 그걸 자꾸 시키는데 결국 대장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었거든요. 그것을 제가 불 가능성이 있으니까 삼천교육대 비슷한 곳에 남쪽의 노동교양소를 보낸 거예요. 저는 그때 당시엔 너무 억울해서 '이건 아니다. 이건 죽어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도 장래도 그렇고 너무 부당하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억울하죠.



MC 박인규:
그럼 거기가 평남 개천이었습니까?



김형덕 씨:
평남 중산 노동교양소였죠.



MC 박인규:
거기서 탈북 하려면 그게 어렵지 않습니까?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김형덕 씨:
제가 그때 산에서 노숙하면서 제가 그때는 너무 억울해서 사람을 죽이려 했었어요. 그 사람을 내가 죽이려고 했었어요. 살인하는 입장을 이해 하겠더라고요. 너무 억울하니까. 그래서 거기 갔다가 잡힌 거예요. 사실 그때 안가고 바로 넘어갔으면 됐는데 그 후에 다시 잡혀서 더 많은 고생을 했죠.



MC 박인규:
그런데 이게 평남에서 북경까지는 거리가 꽤 멀텐데 어렵지 않습니까?



김형덕 씨:
그런데 지나가는 차들 잡아타고.. 제가 원래 그런 돌격대라고 하면 워낙 거친 곳이고 그런 곳에서 훈련하다보니까 웬만한 기동수단은 다 잡아타고 이렇게 했어요.



MC 박인규:
96년도에는 중국.. 96년도에는 한국국적을 취득하신 이후인데 중국에 밀항을 하시려 하다가 잡혔다.. 왜 그런 겁니까?



김형덕 씨:
저는 그때 왜 그랬냐하면 그때 당시는 새터민들에게 여권 자체가 안 주어졌어요.



MC 박인규:
그때까지는 여권이 없었습니까?



김형덕 씨:
여권이 그때도 나오긴 나왔으나 오래된 사람들에 한에서 줬고..



MC 박인규:
말하자면 새터민 탈북자들은 믿을 수 없다?



그런 입장이죠. 사실 감시대상이죠. 그때만 해도 사실 우리사회도 불과 10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오지 않았어요? 민주화를 거치면서? 그전에만 해도 그런 경직된 사고를 하고있으니까 여권을 안 해주면 제가 나갈 수 없으니까 북쪽에 가서 형제들을 만나고싶은데.



MC 박인규:
그때는 그럼 중국에 가려는 이유가 아니라 북쪽의 형제들을 만나고 싶어서 중국으로 간 것입니까?



김형덕 씨:
그런데 여권을 안주니, 지금 제가 생각해보면 그때 싸움을 해야되는데 싸움을 하면 계란으로 바윗돌 치는 느낌이 드니까 정부를 상대로 그러니까 '결과로 보여주겠다' 이런 쪽으로 선택하다보니까 무리수를 둬서 밀항하게됐는데 밀항하다가 잘못 돼서 중국선적은 분명한데 울산항으로 들어가서 다시 갔다고요. 갔는데 모르고 나왔다가 선원들에게 붙잡혀 가지고.



MC 박인규:
탈북은 쉽게되는데 탈남은 쉽게 안 되나보죠?



김형덕 씨:
탈남이 더 어렵더라고요.



MC 박인규:
중국 밀항까지 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남한에 와서도 그렇게 편안한 생활을 하신 것 같진 않아요?



김형덕 씨:
사실은 뭐 신문돌리는 거, 골프장 볼보이, 용접공 별난걸 다해봤어요. 도로 포장하는 걸로 해서 사실 여러 가지 다 해보다가 그때 당시만 해도 지금은 탈북자 교육도 해주고 안내도 해주는데 그때는 아예 없었어요. 방치였어요. 그러니까 방황하다보니까 '도저히 살 땅이 아니다. 여기도 통로는 있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게 없다 그러니까 결국은 가족하고 같이 사는 게 그나마 인간다운 삶이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탈남을 시도했어요.



MC 박인규:
작년에 어떤 일간지에서 탈북자 100명인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허용이 된다면 다시 북한에 가 살고싶다라는 사람이 제 기억으로 서너십 명 나온 것 같아요. 실제로 새터민 중에서도 다시 북한에 가서 살고싶다던가 아니면 북한에 형제 자매 부모를 만나고싶다던가 이런 분들이 많은가보죠?



김형덕 씨:
그런데 그게 왜 그러냐면 문화적 배경자체가 북쪽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남한의 문화적 코드에 맞추기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남한사람에 익숙해지기보다 오히려 북쪽문화에 익숙하고 편하죠 마음적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거니까 온 거니까 다시 돌아 가고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MC 박인규:
공식적인 가족방문을 요구하셨는데 93년도에 나오신 다음에 북에 남아있는 형제자매들을 한번도 만나보시지 못하셨어요?



김형덕 씨:
제가 6남매 중에 셋째로 있는데 누님이 개성에 한 분 계시고 가까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한번 연락이 돼서 서신을 주고받았어요. 주고받고 그랬는데 비공식적으로 만났죠. 그런데 그게 1년 뒤에 단절 됐고 아예 연락이 두절됐어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risky 한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북측 정부에서 당부해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MC 박인규:
예를 들면 우리정부에서 이산가족 많잖아요? '이산가족 서신교환하자, 이산가족이 북한의 상봉면회소 이런 거 말고 직접 고향에 가서 만나게 하자'라고 요청을 하면 북한이 받아들일까요?



김형덕 씨:
저는 북측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서신교환이나 그리고 상봉장소에서 면회하는 것은 비용이 더 들어요. 차라리 우리가 비용을 들여서 고향에 방문하는 게 낳습니다. 북쪽의 인프라가 너무 안됐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가 주는 게 더 낫지 그쪽에 가서 우리가 상봉장소로 이동시키는 건 또 북쪽에서 비용 부담해야되거든요. 서신부담도 마찬가지로 서신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가서 방문해서 비용을 대서 방문하는 게 낫지. 그게 더 인간적이기도 하고. 그걸 제안도 안 해봤잖아요?



MC 박인규:
남한에서는 북한이 국민들을 통제하고 외부사람 들어오는 거 싫어하기 때문에 남한이 요구해봐야 북한이 받아들이겠느냐 하는데 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김형덕 씨:
제가 볼 때는 서독의 경우를 우리가 참조 할 필요가 있어요. 서독은 제안을 거절당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제안했거든요. 우리는 제안도 안 했고 오히려 그쪽 눈치를 본단 말이죠. 이건 우리정부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MC 박인규:
고려해 볼 만한 문제네요. 그 한국에 오셔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하셨는데 그 중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해보셨어요? 새터민 국회의원 보좌관은 처음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하시게 된 겁니까?



김형덕 씨:
아, 그렇습니다 정치라는 게 우리 사회갈등의 요소들을 다루는 공간이고 또 새터민들도 그게 또 남북 통합시대에 그 어떤 필요한 역할들을 담당해야 되고 또 남북관계 일익을 담당하고 싶은 건 또 다 우리 같은 마음이고 하니까 남북문제에 다루는 거에 내가 뭔가 기여를 해보고싶었어요 저는 뭔가 남북관계가 평화적으로 계속 진전되기를 원해요. 규칙대로는 갈등이 있더라도 우리가 미래지향적인 대안들을 우리가 직접 제안해야 되요. 근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만 자꾸만 제안한다는 말이죠.



MC 박인규 :
북한이 들어줄 것 같은 것만요?



김형덕 씨:
들어 줄 것 같은 것만 우리가 제안한다는 거죠. 그러면..



MC 박인규 :
그럼 너무 우리가 실익에 소극적이다?



김형덕 씨:
제가 볼 땐 결국은 그것은 오히려 잔머리 쌓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나을지도 모르고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MC 박인규 :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까 하는 말인데 하나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북한이 인권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그 뜨거운 감자일 수 있단 말이죠 인권문제 제기해야 된다는 사람도 있고 또 한쪽에서는 북한의 인권이라는 게 먹고사는 건데 자꾸만 딴 거 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 결국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한 근본적인 이유는 어쨌든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재대로 먹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살게 만드는 건데 어쨌든 그거는 북한에 있는 김정일 정권 통해서 해야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북한인권 문제를 어떤 식으로 제기하고 접근하는 게 실제로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북한에 살다 오셨으니까 한번 좀 얘기해주세요.



김형덕 씨:
개인적으로 다 사안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기 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좋은 방법이라고 보는데 저는 지금 미국이라든지 서방세계가 제기하는 인권이라는 건 굉장히 우려성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왜 자기네 나라는 한반도 소위 새터민 수용 안 하냐고요.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다 수용하잖아요. 그런걸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보고요. 그리고 그건 저의가 숨어 있다고 봐요.

MC 박인규 :
다른 정치적인 무언가가 있다?



김형덕 씨:
뭔가 있다고 저는 보는 거죠. 인권문제라는 것은,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 이런걸 해결해야지 나라마다 인권 기준이 틀려요. 경제사정이나 그 수준에 따라 인권기준이 다르거든요. 그럼 베트남은 북쪽보다 더 열악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그러니까 그것은 제가 볼 때는 우리가 점진으로 '이산가족 상봉'이라든지 아주 기본적으로 할 수 있고 필요한 부분부터 접근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돼요. 그래야 우리가 뭐 문제를 해결을 본다든지 이런 부분이 있지, 그렇지 않은 데서는 우리식대로 우리식 상황만큼 걔네한테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거든요? 그런 미국식 기준이면 우리 인권유린국가이거든요.



MC 박인규 :
2003년도에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른바 남북 정상회담 때 대북송금을 했다고 그 특검을 하자 말자 해서 그때 거부권을 행사해야 되느니 마느니 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잘 했다고 보십니까?



김형덕 씨:
저는 특검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MC 박인규 :
왜 그렇죠?



김형덕 씨:
왜냐면 남북관계에 초기에 시발점이었고 북쪽도 그때 굉장히 오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할 필요가 없는 거거든요. 그쪽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MC 박인규 :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김형덕 씨:
불가피한 선택이죠. 초기의 만남인데 대가없이 그 사람들이 왜 만나죠? 그 한번 만남을 통해서 남북 관계에 확실한 결과가 가져와졌어요. 6.15 정상회담 이후에 북한주민들이 하다 못해 중국 가서 남한주민을 대하는 태도 보세요.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그런 대가 없이 그런 걸 이뤄낼 순 없기 때문에 다만 앞으로는 그런 부분을 좀 해서는 안되지만 '한 것 자체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MC 박인규 :
그 당시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요? 드러낼 필요가 있었겠느냐?



김형덕 씨:
그것은 더 오히려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MC 박인규 :
국회의원 보좌관 이제는 안 하시죠?



김형덕 씨:
예. 앞으로도 안 할겁니다.



MC 박인규 :
정치적으로 다른 국제 정치에 뭐 환멸을 느껴서 그러시는 겁니까? 어떻습니까?



김형덕 씨:
저는 일단은 이산가족을 만나는 인권문제에 대해 신경을 쓸 것이고요. 그게 인권이라고 보고 우리가 자랑스럽게 북을 방문할 수 있고 이산가족들이 자연스럽게 만남을 할 수 있는,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이런 상황이 남북관계에 가장 좋은 인권문제해결이라고 봐요.



MC 박인규 :
정치보다는 남북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걸 만들겠다?

김형덕 씨:
그렇죠. 그게 남북관계 발전의 척도라고 보거든요?



MC 박인규 :
여기 국내 남한에 사신 지는 12년 되셨는데 어떻습니까 남한에 여러 친구들도 있을 거고 많이 만나실 텐데 탈북자라든가 북한에 대해서 좀 남한이 잘못 생각하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 것 그런 게 좀 있습니까?



김형덕 씨:
아 그게 처음에는 우리사회가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 구조 자체가 경쟁적이고 조금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경쟁상대로만 보니까 그 사람들은 너무 버겁죠 적응하기가. 그게 좀더 우리가 나름에 '공동체'라는 걸 생각해보고 조금 더 끌어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고요. 그러고 북한에서 오신 분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 하고있어요. 근데 기본적으로 자기가 갖고 있던 이전의 문화적 배경이라든지 이런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우리가 끌어안는 것이 작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로 보거든요. 그러니까 좀 더 너그럽게 봐주시고 좀 더 이렇게 좀 도와주는 그런 입장에서 하는 것이 결국 그분들이 통합되어서 돌아가도 '아 남한사람들이 정말 잘 도와주어서 잘 적응했다' 이렇게 할 때 나중에 통합했을 때도 분열이나 갈등보다는 화목공동체에서 좀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동서독도 그래서 아직도 갈등하잖아요.



MC 박인규 :
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게 탈북하시는 분들이 거기서 살기 힘들어서 특히 나오시고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대체로 이제 북한 얘기를 하면 사람이 살 데가 아니라고 한다던가 굉장히 어떤 좀 원색적인 분노 같은 것을 막 드러내는데 김형덕씨는 좀 다르신 것 같아요.



김형덕 씨:
아 그런데 우리가 보통 감정과 이성을 조금 적절히 좀 제한할 필요가 좀 있죠. 왜냐하면 자기가 경험한 걸로 다 세상을 바라 볼 수는 없잖아요.



MC 박인규 :
그럼요.



김형덕 씨:
다른 사람들 시각도 있고 또 남한 사람들이 또 그런 갈등을 원치 않는데 굳이 우리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은 남북 간에 좋지 않다고 봐요. 그건 우리가 오히려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야지 그건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MC 박인규 :
'화해의 메신저'라. 그거 아주 좋은 말씀 해 주셨는데 그 마지막으로 앞으로 지금 연세도 많지 않으시니까 하실 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앞으로 남한에서의 인생 계획 같은 건 어떻게 잡고 계신지 좀 부탁 드릴께요.



김형덕 씨:
아 저는 일단은 남북이산가족이 정말로 정상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 동서독 같이 그런 날을 간절히 바라고 그런 일들을 그런 일들을 계속 해나갈 것이에요. 더 나아가서는 이제 남북통합시대의 북쪽사람들과 남쪽사람들이 갈등하지 않고 화합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보고 중재자 역할을 해보겠습니다.



MC 박인규 :
저도 사실을 따지고 보면 이산가족이거든요. 김형덕씨가 좀 활동을 잘 하셔서 가까운 시일 내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력 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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