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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우리집 풍경 (북녘마을이야기)
Korea, Republic o 북녘마을 0 342 2010-08-12 18:01:33
이제 봄이 깊다. 북쪽에서 살살 불어오던 냉기가 어느새 훈풍으로 바뀌더니 한낮이면 제법 열기까지 풍긴다.

어제 오후 동 여맹에 갔더니 사회적과제로 준 인분실적을 내일 총화한다고 알린다. 나 혼자서는 감당해 내기 힘든, 하긴 이건 솔직히 나 혼자 할 일은 아니다. 우리 다섯 식구가 사는 가정에 부여된 과제다.

중학교에 다니는 맏이 영길이, 역무원으로 일하는 맏딸 영순이 인민학교3학년인 둘째 아들 영호까지 식구 일인당 인분 50키로 그램이다. 그까짓 얼마 안 되는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만에, 동네 변소에서 생것을 퍼 말리자면 그 과정이 이만저만 시끄럽고 힘든 것이 아니다.

식구인원대로 맡기다보니 우리 집은 250kg이다. 말린 인분을 이만큼 만들자면 아마 생 똥 1톤 반은 퍼 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풀 곳이 많으면 입에 수건을 틀어막고 어떻게 해 보련만 집집마다 다 그런 과제를 맡아서 그 원천이 문제다.

그래도 미리 이런 상황을 예견해서 꽁꽁 얼어붙은 겨울 내내 길에 널린 개똥, 염소똥을 모아 둔 것도 있었고 그간 열심히 준비했다. 과제 절반가량은 만들었는데 나머지를 모으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요샌 그 똥 때문에 이웃 간 불화가 꼬리를 문다. 심지어 똥을 가운데 놓고 주먹이 왔다갔다하는 판이다. 제기랄, 조선민족이 이제 하다하다 똥 전쟁까지 치르게 됐으니,,, 그러잖아도 애써 모아놓은 인분을 보면 동 사무소에 갔다 바치기가 아까워 죽겠다. 왜냐면 뒷산에 일궈 놓은 내 집 뙈기밭에 줄 거름도 없어 쩔쩔 매는 판이니까? 그러나 그 밭에 못줘도 이 과제는 해야 한다, 시끄러워서라도, 동 여맹에서 맨 날 사상교양을 들이대니 말이다.

쌀은 사회주의다. 쌀이 많아야 공산주의에 간다. 장군님 모시고 뭐 거기까지 가려면 당면하게 거름을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역설이다. 에이 울화가 터져서, 아니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인분을 퍼 말리고 해서 쌀을 생산한다는 거야? 요즘은 뭐 더운 바람과 함께 역한 똥내가 사방에 진동한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자그마한 마당구석에 겨우내 무져 놓은 똥 더미가 용을 쓰고 갓 퍼다 펴 놓은 것까지 가세해서 냄새를 풍기는데 말이지 근데 그거 너무 맡으니까 이젠 별로 쿠린 줄도 모르겠다. 냄새가 나던 마던 많이만 쌓였으면 좋겠다.

오늘 이 녀석들 어찌나 꼴 좀 보자, 나는 잔뜩 벼르고 학교 쪽을 넘보았다. 오후 세시니까 공부가 끝날 때도 됐다. 아무데 가서든 한 바케쯔 정도 생 똥을 퍼 오지 않으면 저녁밥도 없다.

그래도 애들은 그런대로 말 잘 듣는데 문제는 이 웬 쑤 같은 나그네다. 돌아가지도 않는 공장에 맨 날 출근해서는 점심에 조금 주는 옥수수가루 밥에 목이 멨는지 어두울 때까지 얼굴 쪽도 내밀지 않는다. 아니 내가 해 종일 시장에 나가 장사하랴 언제 똥 풀 시간이 있다고 이렇게 배짱부리는지 모르겠다. 암튼 오늘저녁엔 기필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잔뜩 벼른다.

큰 애 영길이가 뿌르르 들어온다. 가방을 종이가 찢겨져 너풀거리는 방구석에 홱 팽개치더니 나를 보고 히쭉 웃는다. 분명 어디 도망갈 자세다. 요즘 들어 식량이 여의치 않아 잘 먹이지도 못해 목이 성큼한데 그럼에도 어디에 힘을 비축해 두었는지 학교 갔다 와서도 집에 붙어 있으려 안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구슬려 똥 푸기를 시켜야 했다. 과제수행을 더 이상 미루다가는 무슨 경을 칠지 모르는 판이니 이럴 때 인정사정에 포로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마당 구석에 놓인 바케쯔를 쥐며 빽 소리쳤다.

“야,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씨, 또 똥 푸기야?”
“그래, 안하면 어쩔 건데, 엄마가 비판무대에 올라서는 걸 안 보겠으면 말 들어”
“그러잖아도 오면서 봐 둔 거 있어, 근데 나만 시켜 먹기야?”
“무슨 소리야?”
“누난 하나도 안 시키면서, 글구 영호는??”
“아직 안 왔으니까 그러지 오늘은 늦어도 모두 해야 하니까 그리 알고 움직여,”
“씨,,”
영길이는 툴툴거리며 바케쯔를 들고 나가 버렸다. 미안했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양을 나 혼자서 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암튼 들어오는 순서대로 애들을 모두 그렇게 밖으로 다시 내보낸 나는 잠시 후 시장으로 나갔다. 저녁엔 뭔가 배부르게 먹여야 했기에 그간 틈틈이 모아 두었던 돈을 손에 쥐고 종종 걸음을 쳤다. 나가면서도 나그네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은 그다.
분명 미꾸리처럼 또 빠지려고 작정을 했나 부지, 나는 단단히 별렀다.

암튼 그렇게 저녁이 오고 시장서 봐온 것을 끓여 상을 차렸다. 뭐 상이라야 옥수수밥에 된장국, 김치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요즘치곤 꽤 푸짐한 상이다. 하루 두 끼 우거지 죽만 먹다가 옥수수밥이라도 밥은 밥이니까 명절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고 오랜만에 된장국을 끓였다. 벌써 방안엔 구수한 장 냄새가 퍼져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

“어험.” 큰 기침을 떼며 마침 나그네가 들어왔다. 아니꼽게 보는 내 눈초리를 의식했는지 신을 벗다말고 왜 그래? 한다.
“몰라서 물우?” 내쏘는 내 말이다.
“애들도 일찍이 들어와서 모두 인분과제를 하느라 여념 없는데 당신은 대체 뭐요?”
“오, 그것 때문에? 자고로 여자란 외눈박이야, 허허”
“??”
“이리오,” 나그네가 날 데리고 밖을 나왔다. 마당구석에 헌 마대에 담아 놓은 것이 있었다.
“??”
“자, 보라구?! 이게 뭔가?”
나는 마대 아구리를 풀었다. 손을 넣어 만져보니 잘 말려진 인분 가루다. 너무 기뻐 한 번 들어보니 묵직했다.
“이거 어디서?”
“말도 마오, 그걸 도둑질하느라 내 어둡길 기다렸지, 우리 직장 마당구석에 쌓아놓은걸 슬쩍했는데 잘했지?”
“잘했어요, 한 40kg는 잘되겠는데요?”
“넘을게야 50키로는 될 거야 내 그걸 메고 오느라 땀깨나 흘렸는데,”
“수고했어요,”
나는 인분이 묻은 손으로 나그네의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다.

손을 씻고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나그네가 크엉 크엉 헛기침을 따고 엄한 총화 사업을 한다.
“오늘 이 아버지는 인분계획을 초과 완수했다. 못한 사람?”
“나도 했어요,” 큰 딸이 먼저 말했다.
“나두 다 했는데,” 영길이가 으스대며 말했다.
“너, 영호는?”
“나도 했는데,” 막내가 더 당당했다.
“네까짓게? 얼마나 했게?”
“한 바가지 퍼 왔어요, 그랬지 엄마?”
내가 고개를 끄떡여줬다.
“정말이야? 너 같이 쬐꼬만게 어떻게 한 바가지 펐다는 거야?”
나그네가 놀란다.
“음 그건 재수가 좋았지 뭐”
“한 번 말해 봐”

“공동변소 곁을 지나는데 한 사람이 안에 들어가기 싫었던지 변소 뒤에 쭈그리고 않겠지, 난 그 사람에게 아저씨 싼 건 내거니까 그렇게 알아주세요. 하고 말한 뒤 얼른 집에 들어와 똥바가지 갖고 나갔어, 근데 말이지 우리 반 형민이가 거기 벌써 와 있었어,”

“그래서”
“너 가라, 내가 맡아 둔거야 하고 들이댔지 뭐”
“그러니까 걔가 가던?”
“갈게 뭐야, 한 바탕 으르는데 뒤를 보던 그 사람이 애들아 싸우지 말아 이 애가 먼저 왔다. 하고 형민에게 말해 주더라, 그쯤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겠는데.”
영호가 어깨를 주욱 편다. 온 가족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래 넌 역시 내 아들이야, 나도 너만 할 땐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거든 자, 이젠 먹자”

나그네가 영호의 머리를 쓸어주며 만족해한다.
오랜만에 화기가 도는 식사시간이었다. 나도 장국을 입에 떠 넣으면서 얼른 속구구를 해 보았다. 대충 250키로의 양이 채워진 것 같았다,
뭐 두루두루 인분마대에 돌을 섞어 넣으면 말이지,
그 밤 오랜만에 나는 발편잠을 잤다. 곁에 누운 나그네의 손을 꼭 잡고 말이다.

멀리 떨어진 직장에서 인분 마대를 메고 들어온 나그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지난 5월 중순 전화를 통해 전달받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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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쌴티 2010-08-13 03:13:17
    생동하게도 썼구려. 마치 영화와 같은상상이네. 내내읽는순간에도 코에서 구수한 인분냄새나는것 같네. 어이구 그놈의세상 왜그리도 구질구질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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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동해1 2010-08-15 08:24:18
    <쌀은 사회주의다. 쌀이 많아야 공산주의에 간다.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대해 다시금 알게 되였습니다.ㅎㅎ

    조선어문교과서에 넣을만한 생동한 문장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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