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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public o 북녘마을 0 256 2010-08-19 17:02:25
열린사회, 닫힌 나라


6월23일 미국 댈러스에서 귀국하는 A씨를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40대 중반의 A씨는 떠날 때보다 무척 야위어 보였다.

“70일 동안 고생이 많았나 봅니다. 얼굴이 몹시 축 갔네요.”

차를 출발시키며 넌지시 건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씩 웃으며 활달하게 말했다.

“보기보다 세심하네요, 근데 뱃살이 줄고 날씬해진 몸매는 안 보이시나요? 70일 동안 10kg이나 줄었거든요.”

그러니 살 빼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지만 고생보다 줄어든 몸매를 바라보며 더 즐거워하는 여인이다. 나도 씩 웃었다. 여자들이란 참, 나이와 함께 부어오르듯 뚱뚱해지는 몸매에 무척 신경이 쓰이나보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10이라는 숫자를 없애 버리자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하다. 두 달 열흘 전 A씨는 친구의 소개로 댈러스에 식당일 하러 갔다고 한다. 석 달 동안 미국이라는 땅도 구경 할 겸 미련 없이 떠났다가 지금 돌아오는 길이다.

“그래, 벌이는 괜찮았습니까?”
“네, 한 달 봉급으로 이미 5천 달러를 남편에게 송금했고, 지금은 두루두루 쓰고 남은 6천 달러를 가지고 귀국했어요.”
“그러니까 70일 동안 만 천 달러를 벌었다는 것입니까?”
“그래요!”

조금도 주저 없다.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이럴 수가, 내가 듣기로는 미국에서는 한 달에 기껏해야 300만원(한화)정도 벌 수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혹 뻥 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하루 잠자는 시간은 네 시간? 그 정도밖에 안됐어요, 물론 쉴 수도 있지만 일한만큼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또 일할 것이 눈앞에 있는데 피곤하다고 외면할 수도 없구요.”
“네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돈도 벌고 미운 군살뭉치도 빼 버렸으니 A씨에게는 일거양득이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 결과는 대단한 만족이다. 그래서 A씨도 지금 수척해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고 있는 것이다.
만 천 달러면 한화로 천 이백만원이 넘는다. 우리 같은 탈북자가 한국에서 식당일을 해 이만한 돈을 모으려면 근 일 년을 애써야 한다. 하지만 배운 것 없고 문화가 다른 탈북 아줌마들이 당하는 “멸시”와 “차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웬만하면 모두 몇 달 안돼서 그만두고 마는 것이다. 억울함, 삐뚤어지는 심사, 보복심리 이런 것들이 합쳐서 성격은 날로 거칠어지고, 그러노라면 정착의 길은 안개처럼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참 고마운 대한민국입니다. 먼 이국에서 힘들 때마다 내 가슴에 스며든 이 고마움으로 하여 난 성수가 났거든요.”

갑자기 왜 이러시나! 나는 그녀 심중이 언뜻 안겨오지 않아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A씨의 반응이었다.

“뭐가 그렇게 고마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이 대한민국이 있어 나 같은 사람도 미국이라는 나라에도 가보고, 힘은 좀 들었지만 두둑하게 돈도 벌지 않았습니까? 손에 달러뭉치를 든 순간 문득 소련에 3년간 벌목 나가서 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던 사람 생각났습니다.”
“?”
“제 남편이었지요. 밤이면 몰래 청부업을 해 5천 달러를 3년에 걸쳐 벌어 왔더군요. 집에 와서 으스대며 목과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그가 지금 눈에 선합니다.”

그녀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건 그럴 만도 하다. 5천 달러면 북한에서는 대단한 부자다. 외국 바람을 쏘이지 않고서는 결코 만질 수도 구경할 수도 없는 액수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지금 두 달 남짓한 사이에 그 배가 넘는 돈을 벌었답니다. 북에서 보면 신기루 같지요.”
“아, 네에.. 듣고 보니 그렇군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내 이런 생각 했습니다. 북조선은 왜 인민들을 국외로 내보내지 않는가하고요. 그렇게 해주면 가난이란 말을 모르고 살 수 있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녀는 말을 끊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도 따라 쉬었다.

“그렇게 하면 정권에 대한 반항이 생길까 두려워서겠지요.”
“반항이라뇨? 왜요? 돈을 벌게 해주는데 왜 반대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깥 문물을 알게 되면 인민들이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얼른 말을 받았지만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돈을 번 A씨가 미국에 마음대로 가게 해준 조국을 고마워하는데, 왜 저 북녘마을은 사람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걸까? 탈북한 사람치고 다 아는 사실이지만 북한에서 외국이란 선망의 대상이다. 길건 짧건 외국에만 갔다 오면 뭔가 번쩍이는 생활을 한다,
옥수수밥이라도 배곯지 않게 먹을 땐 어느 누구도 정권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옆집에서 외국에 다녀와 뭔가 보지 못하던 희귀한 물건을 쓰며 어깨에 힘주고 다녀도 그건 내게 차례지는 복이 아니라며 심상히 넘겼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이라는 아사위기를 겪으면서 북녘마을 사람들은 많이 달라졌다. 비로소 우린 왜 이렇게 먹지 못해 늘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도처에서 죽음이 실려 나가자 비로소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것이다.
배급도 못주는 직장에 매일 출근해봐야 얻어 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자기 손으로 무언가 구해야만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절박감이 현실로 된 것이다. 그래서 산으로 바다로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면 무조건 달려갔다. 이미 머릿속에는 이러면 당 조직의 비판을 받는다는 것도 당적양심에 어긋난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냉혹하다. 승인 없이 국경을 넘으면 바로 역적으로 몰려 처벌받는다는 사실도 그들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들키지 않고 넘어 갔다 오기만 하면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엄혹한 시절에도 굶지 않았다. 그러나 소위 당적양심을 더럽히지 않는다며 고지식하게 살던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굶어죽었다. 그렇다고 죽은 후 그들에게 차례진 명예 같은 것도 없다.
왜 그랬을까? 공식적으로 이웃인 중국여행을 승인해 주진 못하더라도, 못 본 척만 해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권이다. 말로는 중국을 피로서 맺은 형제국가라고 하면서도 살기위해 강을 건너 식량을 구해 온 사람을 역적으로 몰아 처벌하는 정권을 어찌 이해한단 말인가!
북한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국이면서 모두 북한의 동맹국이다. 한국 같으면 무비자 출국까지 했을 것이다. 북한도 무비자는 아니라도 나갈 수 있게만 해준다면 인민들은 너무 고마워 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과 같이 최하위 빈곤국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지도 않았을 것이며, 수백만의 대아사도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설사 인구 70%가 죽어도 그것만은 허용할 수 없었다.

“우리가 살던 북한을 남한 식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의문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생각을 더듬던 내가 말했다.

“하긴, 그 말이 맞아요, 이곳에 온지 몇 년 되지 않은 내가 이런 의문을 품었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사회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눈만 뜨면 누가 죽었다는 소식부터 듣던 북녘마을 악몽을 죽어도 잊으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근데 어쩌죠? 자꾸 잊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건 그만큼 지금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살아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웃었다, 쓴 웃음이다. 오로지 정권존재만을 위해 필요한 수천만 국민들,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피로 보상해야만 하는 북녘마을의 참상이 다시 눈앞에 떠오른다. 그들은 노예다. 주린 배를 부둥켜안고 죽으면서도 김정일 만세만을 불러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제 북녘마을 사람들도 알만큼 알고 각성할 만큼 각성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낙원이요 한 쪽은 지옥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이 어떤 비책이 따로 있어 수억 인구를 굶주리지 않고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감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나라의 문을 활짝 열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북쪽 사람들은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왜 김정일만은 그 길을 외면할까? 강을 넘어갔다오면 쌀말이라도 지고 오는데 왜 역적이라고 어마어마한 감투를 씌우는 것일까? 처형이 무서워도 앉아 죽을 수만은 없어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든다. 사실상 지금 북녘마을은 정권 대 주민간의 치열한 전쟁상태다. 하라는 대로 하면 굶어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사활을 걸고 생계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 역사 어디를 들춰봐도 이런 예는 없다. 하지만 모순투성이의 체제만을 고집하며 인민의 생사엔 아무관심도 없는 정권은 오래 버틸 수 없다.

A씨가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눈 굽을 훔친다. 이야기 곬을 따라 가슴에 묻은 북녘마을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생각만 해도 울음부터 나오는 우리 고향 북녘마을, 두고 온 가족이 굶어 늘어진 모습이 삼삼 떠올라 주체하기 힘든 심정이다. 언제면 북한도 세계에 합류할까? 맘 놓고 지구촌 어디든 달려가 능력껏 일할 수 있는 그때가 과연 언제일지, 자가용 타고 온가족이 좋은 곳 찾아 유람해 볼 그날이 그리도 허망한 꿈일까?

바깥에선 세계화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구수하다, 언제까지 그 바람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북녘마을 주민들은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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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타작전굿 2010-08-23 01:10:48
    참 글을 잘 쓰십니다.
    주민들이 외국 맘대로 갈 수 잇으면 북한 경제 좋아 진다는 거 다 알 겁니다.
    근데 주민이 배불러 노래가 나와도 ,일성이와 정일의 새빨간 거짓 선전이 들통난다는 것 단지 그것 하나때문에 저리 문을 걸어놓고 굶주린 백성들만 바라보고 있으니 저게 마적단보다 더한 놈이지요.

    잘 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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