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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형 과 경쟁하다
Korea, Republic o 둘리 0 336 2010-09-19 10:48:08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버스를 두 번 갈아 타야했는데 일찍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첫 번째 버스에서는 잠을 푹 잤다. 그리고 두 번째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마음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봉사활동을 하는 마음으로 가고 있었는데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더 커져갔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직원분이 봉고차로 성심원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가는 길이 계속 굽이굽이 산을 넘어 갔다. 산속 깊이 들어갔기 때문에 산골짜기에 있는 작고 초라한 곳인 줄 알았다. 그렇게 도착한 성심원의 처음 느낌은 정말 경치 좋고 공기도 맑고 앞에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가 따로 없었다. 정말로 자연 속에 어우러져있는 곳 이었다. 정말 이곳에 환자들이 살고 있다고 믿기지 않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숙소로 가서 먼저 짐을 풀었다. 그리고 봉사활동에 관한 설명을 듣기위해서 다목적실에서 모였다. 그곳에서 봉사활동 일정과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이곳 생활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주의사항 중에 그분들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듣고는 약간 놀랐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외모가 병 때문에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 화를 내시며 심하면 다시는 봉사활동을 못 오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그 분들이 다른 환자들보다는 훨씬 예민하므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각자 맡은 곳으로 나뉘어져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봉사 하는 곳에서 탈북자 형을 만나게 되었다. 그 형은 우리보다 2일 먼저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해서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눈은 보지 못하시거나 아니면 심하게 손상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팔이나 다리, 손가락 발가락을 없을 것은 예상 했지만 눈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약간은 무서웠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직원이 화장실 청소를 하라고 했다. 화장실 청소가 끝나자 또 할 일이 없어서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속으로 나도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 차라리 계속 일을 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북한에서 온 형은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식사준비도 하고 말벗도 해드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북한 형을 따라다니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유심히 지켜보면서 도왔다. 그렇게 2일 정도 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이곳의 생활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일 후부터는 북한 형 없이도 스스로 시간이 되면 때맞춰서 일을 찾아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직원 분들은 북한 형이 일을 너무 잘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나서 경쟁심이 생겼다. 그 뒤로 더욱 열심히 하고 일을 찾아 다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북한 형에게 물어 보면서 하였고 이러면서 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북한 형은 탈북을 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곳에서 봉사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번 성심원에는 혼자서 왔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홀로 성심원 같이 멀고 산속 깊숙한 곳에 찾아와서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서 대전 성심원도 다니고 이번에도 봉사활동을 오게 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봉사활동이었다. 한번도 내가 스스로 봉사할 곳을 찾아서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 사람이고 미래에 간호사가 될 사람인데 북한 형은 국적도 다르고 이런 일을 전공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 하였다. 그런대도 이곳까지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많은 반성을 하였고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4일째 되는 날에는 점심쯤에 할머니 한분이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다. 직원이 할머니께서 평소 엄살이 심하다고 하시면서 플라시보를 처방한다고 약을 가져 오셨다. 약을 할머니를 침대에서 앉힌 채로 드렸는데 할머니가 삼키기에 너무 큰 약이었다. 그 약을 드신 할머니께서는 즉시 얼굴이 점점 파래지시면서 말을 못하시면서 입을 벌리고 계셨다. 평소에 말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어서 직원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보기에는 약이 목에 걸린 것 같았다. 내가 약이 목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자 직원이 놀라며 할머니의 등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드리고 난후 할머니께서는 혈색이 돌아오면서 숨을 쉬셨다. 순간 너무 아찔했다. 일단 안심은 되었지만 아직 약이 안 넘어 갔을 수도 있으므로 할머니를 휠체어에 일단 앉히고 할머니께 약이 넘어갔냐고 물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약이 넘어갈 때 목에 상처가 생기셨는지 계속 목에 약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물을 많이 드시게 한 다음에 물어 보았는데 할머니께서는 목소리도 점점 작게 하시면서 더 아프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약은 넘어 갔는데 할머니께서 아픈척하신 것이었다.







걱정이 되어서 자꾸 물으면서 물도 드리고 등도 두드려가며 약이 넘어가도록 하였는데 약이 안 넘어갔다고 거짓말을 하신 것을 알게 되니 정말 속상했다. 그리고 그 날밤에 숙소에서 낮의 일을 생각하며 노인들은 약을 먹다가도 한순간에 기도가 막혀서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노인에게 약을 드릴 때에는 좀 더 신경 써서 드리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수께서 오신 다음날 저녁에 원두막에 모여서 서로 봉사활동을 하고 난후 느낌을 돌아가면서 말하였는데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부터 밥도 혼자 못 드시고 말도 제대로 못하시는 분들도 있고 다양한 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장소마다 하는 일도 달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그 분들도 만나보고 싶기도 하였다.

작년에 오신 선배님들의 한층 더 깊은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성심원이라는 곳에 대해서 처음생각과 변화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비슷하게 느낀 것 같았다.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져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번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말 살면서 쉽게 해보지 못할 소중한 체험을 하였다. 나중에 간호사가 된다고 하여도 한센병 환자를 만나기 힘들고 탈북자를 만나기도 힘들 것이다. 또한 레프팅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신 한진숙 교수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런 경험을 통해 몸도 마음도 한층 더 성장 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에 침대 난간을 만지고도 비누로 손을 씻고도 찝찝해 했는데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약간 몸이 불편하실 뿐이지 일반인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새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데 섭섭하기도 하였다. 처음과 다르게 나의 많은 모습이 변해 있었다.



김경모(건양대2학년)



*8월12일부터 17일까지 건양대학교 간호학과 12명의 학생들이 봉사를 했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백의의 천사'가 될 이분들이 직접 성심원 방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안고 가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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