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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탈출(9)
Korea, Republic o 백심 1 1371 2010-12-20 20:39:36

4. 법망의 깊이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경관들과 사단 보위부 상급지도원의 얼굴에는 모두가 호랑이 잡은 포수마냥 웃음이 한껏 넘쳐흘렀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방귀를 끼고도 옆 사람에게 머리를 돌리고 그 것으로도 성차지 않으면 지어 발까지 굴러가며 남에게 넘겨씌우려 드는 오리발 형의 인간들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보기에도 느끼하면서 찝찔한 개기름이 철철 흘러 넘쳤다. 뺀질이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모습에 어쩐지 속이 다 메슥메슥해졌다.

“너희들이 죄를 지은 것은 지은 것이고 이제라도 반성하여 고치면 되는 것이야! 세상에 비밀은 없거들랑. 예로부터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거야. 이 세상에 비밀이란 없어! 그러니 이젠 꼬리가 밟힌 이상, 잃어버린 쌀은 빨리 찾아서 인민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 지금 쌀은 어디에 있지?”

 

사단보위부상급지도원은 목깃을 열어젖히며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발로 비벼 끄고 열려진 차 뒷문으로 우리를 들여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랬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 비밀이란 시간상 문제일 뿐 없다는 진리가 나의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중학교 때, 나의 담임선생이 가끔씩 자랑삼아 외우던 그 내용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나도 자식을 가진 놈인데 집에 있는 부모들 생각을 해야지? 내 아들도 군대에 나갔어. 우리가 아무렴 군인인 너희들을 죽이려고 하겠어? 사건이 제기되어 할 수 없어 이렇게 한 것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조건에서 사건이 빨리 마무리 되는 것은 너희들의 행동 여하에 달려있다.”

 

조수석에 앉은 사복 쟁이 중 가장 높아 보이는 경찰관이 독촉했다.

“현재 쌀은 400kg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다 팔아서 돈을 받아가지고 술을 사서 먹었습니다.”

성철이가 재빠르게 나서 입술을 바르르 떨며 성큼, 성큼 대답했다. 경찰관의 상냥한 사탕발림에 무슨 생각에서인지 넘어 간 것 같았다.

 

나는 그러는 그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혼자 살려 친구고 뭐고 다 버리려는 그의 심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저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쫄딱 나서 말하는 그가 그 순간만큼은 한심하고 짝이 없다고만 생각됐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는가? 아니다. 최소한 내가 아는 성철이는 자기만 살자고 양심까지 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게 뭐야? 과연 내가 저런 이를 친구로 믿었단 말인가?

 

도무지 그의 행동은 정녕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긴 아까부터 나의 도주 제안을 이해시키려 하더니 이젠 마음 따윈 아예 굴욕을 향해 제대로 정리한 것 같았다.

“너 정말 혼나 보갔어? 한번 법 맛을 보아야 하갔어? 빨리 제대로 말 안해?”

그런데 갑자기 성철의 돌발보다도 그를 위협하는 다른 경관의 물음에 왜서인지 복장이 터져왔다. 군대도 아닌 사회 경찰관이 큰 소리를 치다니?

보위부상급지도원도 아니고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큰소리치는 것은 나로써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굴을 들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사실 경찰들은 군인들을 마음대로 다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설상 지들의 법망에 현행으로 체포되어도 군인이라면 그 뒤처리는 군부에 넘겼다. 이런 까닭에 군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듯 하였고 반면, 어디가나 경찰들은 웬만한 일에 군인들이 개입되면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난무했다.

“아니 우리들이 이 마당에 와서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을 것을 손에 쥐고 먹지 않고 아직까지 보관하겠습니까? 그래서 처리하느라고 서둘렀는데 아직까지도 다 처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좋아! 그럼 현재 남은 쌀 위치를 대라!”

 

어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허우적거리는 성철이의 대답은 나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과 배짱에 의거하여 도주하려 했던 꼬투리만한 희망은 성철이의 발빠른 행동으로 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낙연 광산 120반 인민반장네 집과 공병 국 여단 후방부운전수네 집에 나머지 쌀이 있습니다.”

 

성철은 마치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우리를 믿고 쌀을 받아주었던 부모님 같은 분들이 겪어야 할 고통의 순간을 생각하면 나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어떻게 지켜본단 말인가?

 

몸은 절로 떨려 왔다. 어쩐지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절박감에 눈앞은 자꾸만 흐려져 갔다. 정말 오금이 저리고 뼈가 쑤셔났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뾰족한 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절해고도에서의 침착성을 조금이라도 찾아보려고 다시 한 번 주어진 판국에 대한 진찰을 해보았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보니 아마도 우리 처리 문제는 사단 보위소대 사무실에서 보위부장으로부터 일정한 방향지시를 받은 것 같았다. 그러니 어쩜 성철이의 행동이 옳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뻗친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성철이도 그래서 지겹게 물어보는 경찰관의 물음을 듣고 일단 터진 일은 수습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권호는 아직도 떨리는 마음인양 얼굴이 파래가지고 도저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뭐라고? 그것이 정말이냐? 만일 거짓말을 쳤다가는 너희들 모두 우리 손에 죽을 줄 알어!”

 

마치나 큰 비밀을 얻은 것처럼 제일 높아 보이는 경찰관이 조수석에서 몸을 돌리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상급참모동지, 쌀 위치가 확인되었으니 출발합시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모두가 서둘렀다. 보위부 상급참모는 군복을 바로 입으며 자기 위치를 차지했고 나머지 경관들은 흐트러졌던 옷들을 만지작거리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중고차인 일본산 도요타에 갑자기 10명의 인원이 들어앉자 타이어가 눌린 감이 있었다. 그러나 발동소리 하나는 야무졌다.

삐거덕, 덜커덩....

 

빨간 오각별이 새겨진 보위소대 철문이 열리고 차가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우회전으로 낙연방향을 향해 핸들을 틀었다. 차는 이내 넓지 않는  언덕길로  접어들어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어 놓은 창문 유리들로는 습도를 동반한 무더운 열 대아 바람이 나의 얼굴을 향해 스쳐지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숨 막혀 죽을 지경이었던 불덩어리 같은 차 안에서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울분만 토로하던 나에게 차 바람은 그나마 시원해보였다. 마음의 무게에 눌려 험상했던 나에게 있어 그나마 바람은 감지덕지 하기만 했다.

 

장연에서 낙연까지는 불과 4km도 되나마나한 거리였다. 하지만 토사 길에 다 낡은 타이어가 자기 중량을 초과해 견디지 못했다.  그러니 읍 시가지를 1.5킬로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여단후방부운전수 이놈 새끼! 이번에 잘 걸렸다. 공병 국 군복을 입고 하늘 높은 줄 몰랐지? 아니 글쎄 그 같지 않는 놈이 우리 안전원(경찰)들을 알기 는 우습게 알고 날뛰지 않았갔시오?”

 

조수석에 앉았던 경찰관이 타이어 수리로 멈추어 선 자동차의 조수석에 그냥 앉아 뒤에 앉은 보위부 상급지도원에게 한마디 하였다.

“아 그렇습네까? 이번 기회에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어 주십시오. 법의 맛을 똑똑히 보여주라 이 말입네다.”

 

날카롭게 생긴 보위부 상급지도원은 그들 중에서도 제일 좌상인 것처럼 부끄러움도 모르고 큰 소리를 쳐가며 자못 훈계까지 하려 했다. 아마도 같은 법을 지키는 길에서 서로 같이 투쟁하는 동지로서 우정으로 격려해 주는 모습에 나의 몸은 잇몸까지 사려들며 오로로 떨려 왔다. 이제 나 하나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할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가슴은 더 아파났다.

 

이때 젊은 선글라스를 낀 경관이 설레발을 치며 그렇지 않아도 거세게 타오르려 열을 올리는 상급들의 질 응답 불길에 키질을 해댔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글쎄 배급소가 습격당하고 그래도 핵심인물들인 인민반장들에게만 군중감시활동을 더욱 강화하자고 호소를 하고 비밀리에 이 사건을 추진시켰는데 120반 인민반장이 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혁명을 하겠습니까?”

 

그랬었다. 광산 안전부(경찰)는 사건이 터지자 일반 서민들에게는 소문을 내지 않고 핵심들에게만 알리고는 모두가 불철주야로 잠복에 들어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 수없는 이철호가 배급소 습격의 날, 우리가 준 쌀을 먹지 않고 돈이 필요하다며 20kg정도나 팔아버리려 낙연 광산의 재래시장으로 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 물이 샐 틈도 없이 그물을 쳐 놓은 사복을 입은 경찰관들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무직업자에 안전부(경찰서) 요시찰인물로 되었던 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야 먼지 밖에 없는 그의 집에서 쌀이 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이치가 맞지 않았다.

 

광산 안전부(경찰서)유치장에서 구타와 고문으로 견디다 못해 5일 만에 철호는 불었고 광산안전부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군인들인 나와 성철을 체포하려 사단보위부와 협동하였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달려든 것이었다.

 

석비레를 깐 토사 길로 어질러진 먼지가 또다시  날렸다. 타이어를 수리한 차가 모든 것을 정리 한 채,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차는 일단 여단후방 부 운전기사네 집 옆에서 멈춰 섰다.

 

3명의 사복을 입은 경찰들은 다짜고짜 기사네 집에 쳐 들어가 <가택수색>의 명목으로 수색을 하며 한동안 난리를 부렸다. 그리고는 그의 집에 남아 있던 200킬로그램의 쌀을 빼앗아 왔다.

 

마음이 착한 나의 어머니 같은 차기사의 와이프는 우리가 타고 있는 차에까지 따라 나와 안타까운 얼굴로 백지장이 되어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보다 한살 적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늘 근심으로 살던 차기사의 아줌마였다. 그러는 그가 얼굴에는 눈물로 범벅이 돼, 경찰들의 거듭되는 욕설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것이었다.

 

차마 나는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어 얼굴을 떨어뜨리고 차 바닥을 내려다보고 말았다.

“법은 오톨루 위반하면서 우리하고 큰 소리를 쳐? 이번 일에 남편이 잘 되나 두고 보자니까요. 아줌마 하고는 말 할 대상이 아니니 내일 아침 9시까지 남편을 안전부(경찰서)에 내 보내시우.”

“우리는 이 쌀이 배급소에서 가져 왔다고는 믿지 않았어요. 정말 모르고 받아 놓았는데...”

운전기사의 아줌마는 말을 더듬었다. 그의 주위에는 벌써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잠깐 사이에 동네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십 명이나 차 주위로 모여 섰다.

“세상에 비밀이 있는 줄 아우. 쌀 문제라서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걸리 우다. 그러니 더 이상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시우.”

 

사복을 입은 경찰들 중 어머니에게 위협을 주면서 어깨가 으쓱하여 떠드는 경찰관은 나이가 제일 어린 그의 담당 주재원이었다.

운전기사의 아줌마는 다행히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성일의 어머니.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하면 갚아드리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자책했다. 보면 볼수록 너무나 가슴이 아파 머리가 다 어지러워 졌다. 앞으로 그들의 뒤에 찾아 들 허망함과 공허, 자기 모멸감을 생각하면 속울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아픈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어느 때던 이 죄를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어쩐지 가슴속에 넘쳐나는 많고 많은 말들 중에 이 말만은 가슴 속으로 소중하고 깊숙이 새겨 넣고 싶었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여단후방 부 운전기사네 집에는 아들 성일과 딸 두 명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해주에 있는 황해남도 도 군사동원부장에게 직접 찾아가 많은 뇌물을 주고 아들은 해군으로, 딸은 북한군 제 7군단 직속 참모중대 교환수로 배치하도록 했다. 그래도 자기 자식들을 해군과 공군, 국경경비대와 같은 생활이 좋아 보이는 단위로 보내는 것이 간부들과 힘 있는 사람들의 구호였다.

황해도 지구에 배치된 나와 같은 군인들의 행동에 보병부대라면 환멸을 느낀 그들이었다.

 

성일의 집에서 멀지 않은 배급소로 쌀은 옮겨졌다.

차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120반 인민반장(통장)네 집으로 향하였다.

 

북한의 통장은 그래도 핵심계층에서 선발되곤 했다. 특히 국경연선과 평양시, 그리고 분계연선과 같은 특수 지구의 통장들은 다른 지방의 통장들보다

30원이라는 월급을 더 받았다. 그 돈은 반에서 제기되는 불법에 관한 모든 사건들을 보고 하라는 의미 차원에서 주는 돈이었다. 하지만 낙연과 같은 후방지구의 통장들에게는 그런 대우가 없었다.

 

원래 개인재산에 대한 <가택수색>은 그 지구 당위원회의 결정에서 이루어졌다. 당위원회에는 낙연 광산이면 여단장과 광산 당 비서 그리고 안전(경찰)부장과 검찰소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누구네 집으로 무슨 일, 때문에 가택수색을 하여야 한다면 4명의 위원이 거수투표의 원칙에서 모두가 찬성되어야 만 했다.

 

경찰서의 독단으로 집행하면 인권침해에 걸렸다. 그러니 미리 전에 <가택수색>영장을 발급하고 사건에 착수하였는지는 모르나 통장과 그의 맏아들이 우리가 묶여 갇혀 있는 차를 지나 건사해 두었던 쌀 포대들을 메고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해보였다. 두더지 모양으로 묶여 있는 우리를 보며 그들은 혀를 찼다.

 

어깨에 쌀 포대를 메고 개울 건너 배급소에까지 두 번에 걸쳐 날라다 놓은 그들의 얼굴에는 땀과 함께 짙은 공포가 여지없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많은 위협과 공갈을 받은 것 같았다.

10m거리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듣지 못해도 바늘 방석위에 앉은 그들의 심정을 읽어보자니 나의 가슴은 정말로 나쁜 놈이라는 자책이 뼈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었다.

 

두 집에 대한 가택수색과 초보적인 사건 해결이 풀리자 우리는 광산 안전부로 향했다.

광산 청사가 있는 1지구에서 350m이상의 터널을 통과하여 가면 2지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기본 갱들과 채광설비들이 질서 있게 늘어섰다. 안전부(경찰서)는 그곳에 있었다.

 

장연군 안전부 보다는 청사 건물이나 유치장 건물도 규모가 반 정도로 작았고 둘러친 울타리의 철조망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이제는 몇 년 녹이 쓸고 허술하게 늘어졌다.

 

그 마당으로 차가 거침없이 들어갔다. 수갑을 찬 우리들은 몸을 거들지도 못한 채, 차에서 짐짝처럼 뿌려지다시피 끌려 내려왔다.

“나는 이 애들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부대로 돌아가겠습니다.”

 

권호가 억울하던 나머지 발을 땅에 닿자마자 큰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렇다. 이 형님은 죄가 없다. 오직 나를 피난시켜주려고 왔을 뿐이다.’

“이 형님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왜 죄가 없는 사람을 함부로 잡으려 합니까? 돌려보내 주십시오.”

 

나는 그들에게 항의했다.

“개소리 치갔어? 이 새기들 어따 대고 큰 소리야? 너희들 죽고파? 야, 야!”

 

여단후방부운전기사의 담당인 젊은 경찰관이 나와 권호의 뺨을 살짝살짝 때리면서 위협했다.

“이제 조사 해보고 죄가 없으면 풀어주지 않으리. 뭘 그리 잔말이 많아?”

“그 새끼들 아직 정신이 덜 들었다니깐. 모두 구류장에 쓸어 넣으라우!”

 

책임자로 보이는 조수석에 앉았던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명령조로 우리에게 달려드는 젊은 경찰관에게 말을 하였다.

“알았습니다. 앞으로 걸 엇. 이 새끼들 너희들은 이 시각부터 당과 국가 앞에 죄를 지운 자들이야! 알갔어?”

 

이제는 속을 얼려 빼먹을 대로 다 빼먹었다는 것인지 차에서 하던 동정어린 말들은 털끝만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초보적인 검문검색을 마친 다음 커다란 철창의 한쪽에 비치된 쪽문으로 통과하여 유치장 안에 들어갔다.

 

천정에 매달린 백열등 하나가 덩그렇게 빛났다. 너무나도 초라한 마룻방이었다.

세 평도 되나마나 한 방에는 소변을 받아내는 덩그런 빨간색 플라스틱 통이 오른쪽 모서리에 놓여 있었다.

철창의 맞은 켠 벽에는 밖으로 환기 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쇠살창에 덮여 무거운 바깥 빛을 겨우내 받아주는 것만 같았다.

 

저녁 6시가 지나는 시간이어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유치장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그 위에 3명의 수감자가 깎아 놓은 대나무처럼 날을 세우고 있어 곧추 앉은 꼿꼿한 그 자세가 너무도 애처로워보였다. 그들의 모습에서 어쩐지 울컥 모멸감이 찾아 들어왔다.

 

모발은 남자에게 있어 힘의 상징이며 유혹의 무기라지만 그들 중, 두 명의 머리에는 바사사한 솜털을 제외하고는 너무도 털이 없었다.

희미한 전등불빛에 비친 그들의 머리가 눈이 시릴 정도로 청 기왓장처럼 파랬다. 또, 꺼져가는 눈매는 조금만 다쳐도 힘없이 쓰러질 허약 인처럼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거기에 삐져나온 모든 피부는 닭살에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있어 더 스산해보였다.

 

몇 개월 동안 하루 16시간을 양반다리자세로 순간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유치장 질서에 많이도 당한 것 같았다. 그 속에 철호가 있었다. 그래도 철호는 아직 머리를 깎지 않았다. 또, 다른 이들에 비해 살도 많이 붙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더니 들어오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깍지 않은 머리는 먼지와 때로 얼룩졌고 무척 수척한 얼굴에는 피기가 한 점 없고 턱수염만 시커멓게 드러나 있었다.

몸에 걸친 옷에는 피 자국이 붙어 있었고 눈과 얼굴은 부어 있어 구타와 고문에 의한 상처가 깊숙이 배겨 보였다.

 

철호를 보는 순간, 나의 눈에는 불이 일었다.

“이 개새끼! 사람을 잡어 먹어? 혼자서 했다고 하면 안 되나? 반편 같은 새끼!”

나는 주먹을 쥐고 그의 어질러진 얼굴에 된 매를 안기려 했다.

“야 이 새끼를 봐라! 가만있지 못하 갔나? 너희를 싸움하라고 같은 방에 넣은 줄 알아? 조용히들 하고 옆에 앉아있는 동료들과 같이 자리를 정하고 앉아있어. 알갔어?”

 

나의 벼락같은 소리에 우리가 들어온 쇠살창 너머 정면에 걸상을 놓고 감시하던 상위계급의 경찰간수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단화를 신은 그의 발바닥 쪽에서 쇠못이 콘크리트 바닥과 씨름하는 소리가 이가 시릴 정도로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간수 경찰관의 소리에 나는 쥐었던 주먹을 내려놓고 말았다.

‘하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오죽하면 네가 불었겠나? 친구인 성철이도 너와 다를 바 없는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겁쟁이인 너야 더 했겠지?’

 

나는 자신스스로를 위안하며 분을 삭이려 했다.

원래 장연군 경찰서 유치장과 같은 군 급 이상의 유치장에는 죄수들을 다루는 간수들이 특무상사나 그 이하계급의 하사관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장교 계급의 안전원(경찰)들이 간수로 있는 것이 신기했다.

군 경찰서보다 인원수가 적은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또 유치장에는 오줌을 싸게 하는 요강 통은 있으나 대변을 보는 변기통이 없었다.

장연군 안전부 구류장에는 매 감방마다 대변기가 설치되어 있어 악취냄새가 심하였는데 그래도 이곳은 그만하면 냄새도 덜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 1시간정도 지나자 온 몸의 땀투성이는 시간과 함께 말라붙어 버석버석한 소금기로 되어버리더니 조그마한 저항에도 힘없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져 갔고 땅거미와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나와 권호, 성철이는 열을 지어 바른 자세로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나의 옆으로 철호가 앉아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하더냐? 이 철호 새끼하고 패를 치지 말라고 얼마나 너에게 말했나? 오늘 너와 나, 이 꼴이 뭐냐?”

 

권호는 나를 들으라는 듯 뒤에 앉아 중얼거렸다.

“계속 말하갔어? 야! 이 새끼! 너 이 앞으로 나 왓!”

 

권호가 나가자 간수는 그의 손을 쇠살창 밖으로 내 밀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권호가 두 손을 내밀자 쇠살창 한개 사이로 갈라서 내 놓게 하고  수갑을 채워 버렸다. 뒤로 빠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간수는 끝내 허리에 찬 권총집에서 소제 대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것을 추겨들고 마치 죽여야 할 짐승을 대하 듯 권호를 무섭게 노려봤다.

이미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릿발처럼 날카롭게 세워져있었다. 그기에 입까지 사려 물고 접어드는 그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살인을 칠 것 같았다. 

드디어 이성마저 잃은 듯, 경찰관은 추켜 든 소제대로 권호의 손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티끌만한 동정심도 그에게는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지? 이 짐승 같은 새끼! 또 한 번 더 넋두리를 해봐라. 법 앞에 와서도 그냥 제멋대로야?”

 

간수는 열 다 섯 번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그제야 속이 풀린 듯 고문을 멈추었다.

나는 권호가 고문당하는 모습에 내 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 매, 한 매 소리 나며 맞을 때마다 권호의 손등에는 피가 배여 굴 뱀으로 이어졌고 피부가 터져 피가 흘렀다. 몇 분이 지나자 그의 손은 마치 고무풍선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권호의 손을 소리 없이 잡아줬다. 그러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한 비통함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땅을 치고 통곡할 수는 없었다.

권호의 손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을 떼다가 붙여 놓은 듯이 건들댔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아 안타까움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직 가증스럽게 설쳐대던 짐승 같은 간수 경찰관을 그대로 방치하는 하늘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동생한테 도움주려 찾아왔던 욕심 아닌 방조가 바로 이런 참극이란 말인가? 나는 속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 속에서 그저 서러움에 치를 떨어야만 하였다. 그런 속에 어둠은 서서히 다가왔다.

 

게슴츠레 바라보는 맞은 켠 창문 밖의 울타리 넘어 산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보아왔던 산보다 더 무직해보였다. 그 곳으로 어스름이 검불의 가루가 되어 내려왔다. 그러니 둘러앉은 경찰서 담벼락과 숨은 마당으로 어느새 어둠이 고여 검은 빛으로 우묵했다. 검댕 이와 적소가 얼룩이 져 어스름에 저무는 경찰서 마당 안은 그야말로 삭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스름은 어둠으로 가라앉아 마당의 몸을 묵묵히 채우니, 마당은 하늘보다 더 먼저 뚜렷하게 감해졌다. 그래서인지 창 넘어 내다 본 하늘은 오히려 희미하게 트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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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탄생 ip1 2010-12-21 17:50:32
    쌀 좀 훔쳤다고 완전히 개취급하고 고문하는 인류가 바라마지 않을 훌륭한
    공산주의 입니다.
    뒷처리를 좀더 치밀하게 하지 글쎄 ....
    멀리 가서 팔든지....ㅉㅉㅉ

    암튼 고생 많았읍니다.

    아픔과 별개로 참 흥미 진진 하네요.
    마치 소설을 읽어내려 가듯 눈을 뗄수가 없네요.
    솜씨를 묵히기엔 작가 소질이 너무 아까운데,
    소설이라도 한편 써서 문단에 등단하셔야 겠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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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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