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북한군 탈출(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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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탈출
복도에서 내다 본 출입문마당 쪽은 생각 외로 환해보였다. 그렇다면 어둠을 이용한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는 희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근심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출입문을 연 순간, 경찰서마당 오른쪽 구석 쪽에서 장작불을 피워놓은 범법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삽질하는 소리 그리고 모래와 자갈이 채를 통과하여 갈려 빠지는 소리가 주변을 요동쳤다. 시멘트 타입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를 채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이 새끼들! 빨리들 못 하 갔나? 빨리하고 잠을 자야지?” 그 속에서도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왔다. 아마도 작업을 책임진 경찰관인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경찰서에 들어올 때, 화장실이 본서 건물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위치를 향해 다시 한 번 두리번거렸다. 결전을 치러야 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둘러보았다.
우리가 나선 쪽은 다행히 왼쪽이었다. 그러니 화장실은 우리가 나온 본서건물 뒤 오른 쪽에 위치했다.
북한의 모든 경찰서나 그 하부말단 단위인 분주소의 배치를 보면 화장실은 언제나 본 청사 뒤쪽 좌우에 설치하였다. 화장실이라야 여자와 남자를 갈라놓게 설계하였고 대소변은 땅을 파서 콘크리트 타입을 치고 그곳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뒷간 처리는 반드시 울타리의 바깥에서 하게 했다.
여기 화장실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화장실 근처는 본서건물에 가려 장작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검댕 이와 적소가 얼룩이 져있는 어스름에 오버랩되어 칠흑 같기만 했다.
물가에 움트는 어린 가지라도 따뜻한 시선이 닿았을 때, 비로써 기다림과 꿈의 상징이 될 수 있다더니 지금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집중된 관심이 한 순간에 운명마저 바꾸어 놓을 실천의 상징으로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것이 자연과 사회와 더불어 사는 생명체들이 가져야 할 성정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나 학수고대하던 꿈의 상징, 옮겨야만 하는 실천의 상징, 또, 억 천만번 죽더라도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마음의 격전지가 눈앞으로 들어왔다. 어쩐지 그 격전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다 이긴 싸움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쿵쿵쿵 북소리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몇 미터만 가면 운명의 스위치를 과감하게 눌러야만 하는 순간이어서 여태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 말짱하던 정신을 이상할 정도로 만들었다.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기 시작했고 허우대만 멀쩡할 뿐 온 몸은 사시나무같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거기에 잔등마저 고온 앞의 엿가락처럼 무섭게 희어들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살아서 꿈틀거리며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불에 달군 빨간 쇠꼬챙이가 깊숙이 지져들어 오는 것 같았다. 배꼽부위까지 따가워나며 온 몸이 오로로 떨렸다.
순간적으로 숨은 컥 막혀오고 얼굴이 달아올라 아까부터 타들던 입술은 무방비를 한 채 더 깊숙이 말라들었다. 정말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이 몹시 황당하기만 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며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가. 어차피 죽을 바엔 최후발악이라도 하다가 죽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잠재우려고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도 옮기지 않았는데 벌써 온 몸을 감싸고 있던 화끈거리는 열로 하여 잔등과 콧등에 식은땀이 뽀질뽀질 솟아나고 어느새 또르르 굴러 떨어지며 나의 입술을 향해 들어왔다. 쩝쩝했다. 거기에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수많은 벌레들이 뒤엉킨 것처럼 혼잡스러웠다. 도저히 정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귀를 강구고 간수경찰관의 발자국소리를 탐색하려했다.
이때 갑자기 빠른 회전으로 썰물이 지는 홍도 바닷가처럼 몽돌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릴 지경으로 경찰관의 구둣발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간수 경찰관은 나의 뒤에서 어정쩡하게 그냥 아무런 눈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따라왔다. 그의 구둣발소리는 마지못해 움직이듯 거칠게 무거웠고 투박했다.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처럼 맑은 소리가 들려야만 상대와의 심리전에서 또, 결투에서 이길 수가 있는 것 아닌가? 경험이 없고 어설프면 경기장에서 게임에 임한 선수는 감독이 아무리 지시해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초보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기 육체하나 보존하기 어려운 극한상황에서 선수에게 감독의 지시는 늘 백해무익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그 것을 타파하기 위해 훈련으로 자기만의 노하우를 찾고 실전으로 경험을 쌓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의 싸움은 일반 체육경기가 아닌 목숨을 담보로 한 실전이어 나에게는 더 심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절호의 순간을 절대로 만들 수조차 없었다. 그 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그늘진 곳으로 가야만 했다.
1초가 1시간 맞잡이로 여겨지며 겨우내 건물모서리를 향해 돌았을 때, 화장실은 불과 내 앞으로부터 4~5m 거리에 있었다. 나는 태권도복에 운동화(천으로 만든 간편한 신발)를 신은 발의 보폭을 맞추며 뒤에서 경각성 없이 따라오는 간수경찰관만 때려눕히려 하였다.
때려눕혀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그것도 더는 일어 설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왜냐면 상대는 지난날 내가 수많은 체육경기들과 실전 싸움에서 마주섰던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허리에 총을 차고 발톱까지 무장한 김 부자의 끄나풀이며 이 나라의 법관이다. 그는 정상적인 공무집행에 전투근무성원이지만 나는 적수공권에 범법자로 수갑까지 찬 수감자였다. 여차하면 그가 허리에 찬 권총으로 나를 사살할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칼자루를 잡았고 나는 칼날을 잡았다.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나에게는 어느 모로 보나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의 칼날에 베어져야만 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어야 하는 필사즉생(必死則生),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정신을 가져야 만이 배짱도 나오고 기술도 나오는 법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또다시 나의 머리에 포물선을 그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속에서도 넷을 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는 어쩐지 몰라도 나에게는 셈을 셀 때 죽을 사자가 상대의 제압에서 언제나 승산만 예고하는 수자였다.
레슬링경기를 할 때에도 상대의 약점을 알고 죽을 사까지 세고 공격하면 100%성공이었다.
한번은 1990년3월 어느 날, 방사포중대로 연대 내 장교학교 대상자들이 모여와 공부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들 속에는 항상 거들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사관 중대의 최 철순이라는 중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그의 그릇된 행동을 보면서도 사실, 그에게 달려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2년 먼저 군대로 나온 선배이다 보니 체통도 훨씬 더 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를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원성을 담아 점심밥을 먹고 나오는 그를 (넷)까지 셈으로 세고 주먹을 날렸다.
달려들 대상자가 없다고 우쭐대던 그는 그날, 나의 주먹 한방에 얻어맞아 얼굴 턱 뼈가 떨어져 나갔으며 15일간동안이나 군의 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결국 그해 그는 장교학교에도 가지 못하였다. 그 이후에는 나는 그 주먹으로 5번이나 실전에서 상대들을 KO시켰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지금껏 쌓아두었던 나의 노하우를 마음껏 발휘하여 상대를 꺾어야 했다. 그 노하우를 만들기 위해 7년의 세월을 땀으로, 훈련으로, 그리고 실전으로 수련한 나였다. 짬 시간만 있으면 손칼을 벼루였고 발차기와 레슬링으로 몸을 단련시켰다.
비록 점심과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또, 손에 수갑을 차고 있어도 사실 간수경찰관은 나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도대체 약점을 노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양육강식의 현장이므로... 잠시라도 한눈팔다보면 어느새 약한 것은 강한 것에 먹히는 극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힘과 스피드만 가지고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었다.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과 영리한 두뇌플레이가 필요했다. 과학적인 계산과 속임수를 배합한 그런 타격과 스피드만이 상대를 꺾을 수가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청각소리하나만 가지고 거리를 타산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는 문제였다. 그래서 셈을 셌다. 박자 수로 거리를 맞추려 했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속으로 네 번째까지 센 다음,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간수경찰관은 나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법관답게 제법 소리를 질렀다. “야! 인마! 왜 그래?”
순간 “인마!”라는 소리에 화가 치밀었다. 듣기도 싫고 부르기도 싫었던 ‘인마’. 7년의 세월을 그 단어 속에 울고 웃으며 풍찬노숙하던 나였다. 그런데 여태껏 귓구멍이 닳도록 들어 온 그 소리가 오늘은 왜서인지 학질 걸린 환자처럼 몸마저 부르르 떨게 했다.
잘해도 인마, 못해도 인마 그 인마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모욕이고 무시였다. 조금이라도 권세 있고 힘 있는 놈들은 그 인마라는 말을 꽁무니에 차고 다니며 거들거렸고 온갖 욕설로 거지발싸개 취급만 하려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로 간수 경찰관이 나를 무시하려 들었다. ‘등신 같은 새끼! 놀고 자빠졌네?’
무식한 인간일수록 포악성과 악랄성을 쌍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를 죽이려고 돌아선 상대를 아직도 한갓 보잘 것 없는 ‘인마’라는 죄인으로 알고 있는 그가 어쩜 어리석어 보였다. 또, 이런 청맹과니와 같은 인간에게 총을 쥐어준 북한 김 부자 정권이 한쪽으론 우습기도 했다.
불과 1미터 근처에 있는 간수 경찰관은 그러면서도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몸을 사리려 들었다. 그러나 풀었던 긴장을 다시 고쳐 매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어 버렸다. 벌써 나의 오른 발이 간수 경찰관의 고환으로 정확히 육박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인마의 발이 얼마나 매서운지 한번 맛 좀 봐라!’
나는 이를 사려 물고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확한 각도를 가지고 왼발로 몸 중심을 잡고 목표물에 타격했다. 내화벽돌 두 장을 동시에 부셔버리던 발이었다. “으윽!”
간수경찰관은 얼마나 강하게 맞았는지 찍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두 손을 그러안고 허리를 숙였다. “개새끼!”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왠지 모를 흥분으로 하여 그 순간만큼은 간수 경찰관이 짐승보다 더 못한 그 이하로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수갑을 찬 두 손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그의 목뒤를 내리 찍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소리높이 외쳤다. ‘오늘에야 내가 알았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껏 남몰래 그 여린 가슴에 흘리셨던 피눈물의 원인을, 그리고 지금껏 속고 살아 온 원인을 바보 같은 이놈이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러니 이 매는 우리 어머니의 가슴 속에 맺힌 피눈물과 내가 속여 살아왔던 지난날의 억울함을 합친 보상의 값이다. 이 시각부터 나의 심장엔 너희들이 부르짖는 더럽고 너절한 김 부자의 상징인 북한의 인공기란 없다. 너희들과는 오직, 이 땅과 이 하늘 아래에서 더는 같이 융합될 수 없는 물과 불, 수화상극이다. 그래서 너희들과 더러운 이 땅을 결별하련다. 북한 공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조국. 자유와 평화와 통일로 억세게 전진하는 태극기의 품으로 가련다. 그 품이야말로 나에게는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하나밖에 없는 조국이다. 그러니 더는 나의 앞길을 막으려 하지 말라!’
거기에 아무런 죄도 없는 정권호를 짐승처럼 취급하며 인정사정없이 권총소제 대로 내리치던 그 모습이 떠올라 손과 팔에 더 큰 힘이 들어갔다. 또, 경찰관의 얼굴만이 아닌 북한 김 부자의 찌그러진 상통이 생각되어 이를 사려 물었다.
어쩐지 지금껏 쌓아왔던 모든 분노와 한을 그 한 순간에 푼 것만 같아 가슴이 다 후련했다. 그 순간으로 하여 사실상 나는 경찰관만 아닌 북한 김 부자정권에 도전장을 과감히 내 던진 샘이 댔다.
평시 레슬링과 격술훈련을 꾸준히 하여 온 보람인지 아니면 아무런 대책 없이 방심한 상대의 탓인지 간수경찰관은 뼈 없는 사람처럼 기운 한 번 못써보고 땅으로 주저앉았다.
그가 완전히 주저앉는 것을 보고야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1.8m 정도의 높이로 된 경찰서건물 담벼락을 순식간에 넘어버렸다. 불과 몇 십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 자체도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허술하게 늘여놓은 철조망에 태권도복 하의는 가랑이가 찢어졌고 신발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생각 외로 긴장감과 마음의 무게에 눌려 바늘방석처럼 예리해 보이던 경찰서마당과는 달리 울타리 밖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매미소리와 찌르레기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차광기소리와 어울려 주변을 감돌았다. 불볕더위와 병해 층 때문에 풀잎들은 이미 오그라들었고 새 순들은 엉켜 붙거나 절망으로 사로잡힌 자연의 점령에 매미와 찌르레기에게는 너무나도 애달프게 다가와 서로서로 울며 신음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울창한 숲도 아닌 버럭 산인데도 사방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지금껏 상황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자꾸만 긴가민가했다. 금방 일을 저질렀던 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생각됐다. 더구나 이상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채 머리를 흔들며 수갑을 찬 두 손에 생침을 뱉어 느닷없이 종아리를 냅다 후려 갈겼다. 얼찌근한 아픔이 전율을 타고 숫구멍으로 치솟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을 쳐도 정말 큰일을 쳤다. 그러니 얼굴만 마주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이곳에 찰떡궁합으로 붙어있어야 할 까닭이 궁금해졌다. 빨리 이 위험구간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울타리 뒤에 높이 솟아있는 버럭 산으로 정신없이 뛰어 올랐다. ‘걸음아! 날 살려라!’
나는 속으로 이 소리만 곱씹어 넘기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왠지 모를 그 어떤 날카로운 비수가 나의 허벅지를 힘차게 박은 것 같았다. 아무리 발에 힘을 넣어 올려 뛰어도 주먹보다 더 큰 돌덩이들이 나의 발바닥에 끈끈이처럼 달라붙어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려만 가는 것 같았다. 그 것도 쓰러졌던 간수 경찰관이 정신을 차리고 나를 사살하려 뽑아든 권총 앞으로 기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달렸다. 죽을힘을 다해 내 머리통보다 더 커 보이는 간수경찰관의 권총 아가리에만 가지 않기 위해 달렸다.
숨은 턱에 닿아 견물냄새가 목을 태울 것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이때,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버럭 산이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온 천지가 버럭 산으로만 보이던 내 눈앞으로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이 바라보였던 것이다. 산의 정점은 바로 나의 코앞에 있었다.
나는 끝내 200m 되는 높이의 버럭 산 정점에 올라서고 말았다. 그러나 발걸음은 도저히 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급하게, 너무도 당황하게 또, 너무도 아찔하게 달린 것으로 하여 사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엄마 젖 먹던 힘까지 다 합쳐 달려 그저 몸 전체가 허영거리기만 했다.
(다음에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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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명찰보다소중한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12-25 09:03:09
보안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한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가서 반죽도록 터지고 또 옮겨가서 터지고, 또,또....
그중에 죽기가 쉽상인데, 몇대 맞기도전에 잘 나왔읍니다.
남한 같으면 건설현장 아무데나 또는 카센터 등 몰래 들어가 커터로 수갑을 자를수도 있겠지만, 북한에서 대체 어디서 풀었을지 궁금해집니다.
남한에서 운동한 사람중에 이런 문장력을 보여주는 사람 여지껏 본적이 없군요.
님은 여기서 났더라면, 지금도 늦지않겠지만, 작가든 학자든 뭐든 크게 성공했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온지 얼마 안됬다해도 벌써 큰 일꾼이 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ㅎㅎㅎㅎ 재미있는 건 여기서 태어났다면, 어릴때 공부가 뛰어 났으니 , 남한에선 아마도
레슬링이나 격투기등의 운동은 첨부터 시작도 안했을지 모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성탄절 메리크리스마스***
님의 얘기가 소설 같으면서도 그 글 솜씨가 작가수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적 우리로 들어가면 탈출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려면 필자처럼 개고생 하거나 아니면 산송장이 되어서 나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대단한 담력과 정신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북괴 탈출을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