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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United States 서울토박이 2 704 2011-02-27 12:41:52
이밑에 박정희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이 있어서 이글을 씁니다. 그리고 탈북님들도 박정희 대통령을 잘모르시지요....

하나. 박정희 대통령은 비민주 독재자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1960년 초반에는 미국에서는 흑인이 버스 앞자리에 앉지 모하던 시절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소수의 백인을 위해 다수의 흑인이 노예생활하는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남부에서는 여전히 흑인과 아시아인을 받지않는 호텔과 레스토랑이 대다수였고, 화장실도 백인과 그외 잡종 인종으로 나뉘어서 아시아인들은 백인전용 화장실에 갈수도 없는 그런시절이였죠.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여전이 다수의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었고, 모든사람들이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민주주의의 개념은 지금과 같지 않았으며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는 전세계에 아무곳도 없었습니다.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면 투표를 해서 지도자를 뽑는다는 그런 생각조차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할수 있었지만, 그당시 잣대로 보면 충분히 자유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서거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본인은 대학을 다니는 형님들의 영향으로 이유없이 박정희를 미워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만세를 불렀으며 이제 곧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오리라 기대 했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그래도 박정희 시절에는 교육이 평등하여 수위의 아들은 서울대를 가고 사장의 아들은 삼수 사수 하다 겨우 삼류 사류 대학을 겨우 기어들어가던 시절이였죠. 박정희 본인의 딸 박근혜도 서울대에 보낼 권력이 있었으나 실력대로 시험치게 해서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시켰죠. 당시 모든 여자의 경우에는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최고로 치던 시절 서강대 전자공학... 좀 엉뚱하죠? 그 이유는 아래를 보시면 알게 될것입니다.  

둘. 박정희 대통령의 비젼

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박정희는 정말 뛰어난 인물라는 것을 깨닫고 심지어는 이유없이 미워하던 그가 쓴 책을 사서 읽어 보기까지 되었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사 보실수 있을지 모르지만, 박정희가 1978년 쓴 우리 민족의 나아갈길 이라는 책을 보고 경탄을 금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내용인즉 1960년대 석유화학 프라스틱 공업과 건설 중공업의 육성, 1970년대 중반 전기 전자산업의 육성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1980년대 부터는 정보화 산업의 시대가 시작되므로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믿어 지세요? 한번 사서 보세요. 읽어보면 박정희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단박에 알게 될것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전기 전자 정보 산업의 당위성이 중고등생에게 많이 홍보 되었죠. 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70년 말 80년대 초는 우리나라 최고 영재라면 무조건 전기 전자 물리 정보로 가는것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절이고 의대보다 전자공학과가 더 인기 있던 시절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전기전자 정보 산업을 기반으로 이만큼 사는것은 박정희 시절 계획적으로 육성되었던 바로 그 인재들의 영향입니다. 제가 단연코 단언하건데, 70 년대 에 정보화 산업을 계획했던 지도자는 이세상에 몇명 없었으리라 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박정희이지요.  

셋.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일으켰다고?

박정희 이전에 이승만이 12년간을 정권을 잡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북한 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이죠. 하지만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18년가 눈부시게 성장을 합니다. 왜일까요? 어떤 이는 열심이 일한 노동자의 공이라고 합니다. 어떤이는 윤보선 장면 정권이 그려놓은 밑그림을 박정희가 실했했을뿐이라고도 합니다. 

계획은 누구나 세울수 있습니다. 윤보선 장면의 경제계획도 이승만이 정권에서 초안을 잡은것이죠. 하지만 계획만 있다고 다 실해되는것이 아닙니다. 공부못하는 학생이 계획을 못세워서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죠. 사실 계획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지요. 노동자는 남한에도 북한에도 있고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에도 있습니다. 노동자를 독려해서 앞날의 꿈을 심어주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는것이 지도자의 자질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희망이 있었던 시절도 박정희 시절입니다. 전국민이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나을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고, 열심이 일하면 일한만큼 돌아온다는것을 굳게 믿었던 시절도 박정희 시절입니다. 이것이 박정희의 능력이지요. 누구나 희망을 같고 믿음을 갖고 살아가던 그런 시절이였습니다. 

넷. 어릴적 반공기의 쌀밥을 맛보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 꿀맛 같은 쌀밥을 매일 먹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가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를 비웃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다고. 제 나이 열살때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거의 40년후 우리 대한민국의 변화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요즘 나이어린 세대들이 박정희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매도하는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을때가 많습니다. 마치 이곳에서 탈북님들에 북한에 대해서 한수 가르치겠다고 날뛰는 그 아이들을 보면 제 심정을 이해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북한에도 박정희와 같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백성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그런 지도자가 어서 나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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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비 ip1 2011-02-27 12:45:53
    외람됩니다만, 당신은 오카모토 미노루가 누구이고, 대한광복군 제3지대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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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 ip2 2011-02-27 13:11:27
    도요타 다이쥬(豊田大中)도 아시겠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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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어진환경 ip3 2011-02-27 16:52:47
    뇌물현이가 언제 변호사질 했는가 기억이 안나면 강아지 IQ지? 당시 법률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기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되면 뇌물현이는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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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박이 ip4 2011-02-28 04:06:03
    제가 저서 제목을 잘못썼군요. 1978년 저서는 "민족중흥의 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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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방전 ip5 2011-02-27 12:58:20
    이비님 ..
    외람됩니다만,당신은 김웅우가 누구이고 조선국민회 창립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비님/ 참으로 가련한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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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박이 ip4 2011-02-27 13:02:31
    이비,
    내 자네보다는 나이가 좀 있을것 같으니 말 놓겠네. 자네가 내 연배라면 그런 쓸대없는 질문은안할테니 말일세.

    자네는 일제시대 열심이 공부해서 일제시대의 선생님이 된 사람이 친일파라고 생각하나? 그건 시대가 그랬을 뿐일세. 열심이해봐야 친일파밖에 될수 없는시절일세.

    박정희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젊은시절을 일제 시대에 살았던 사람일세. 일제시대에 자라나 학교를 갖 졸업한 사람이 뭘알았을까? 그는 일본군인이 된 이유가 단순이 긴 칼을 차고 싶어서라고 설명햇네. 얼마나 단순 솔직한가? 어린시절 그런 단순한이유로 중요한 결정을 했다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난 그래도 밥이나 쳐먹고 탱자탱자 놀던 다른 청년보다는 꿈을 갖고 열심이 노력했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더 박정희가 더 나은 청년이라고 보네. 잘못된 선택을 통해 실패를 맛보아야만 더욱 현명해지는 법이거든.

    박정희는 또한번 잘못된 선택을 했었지. 공산주의자 였네. 그당시 지식인 치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엇지. 박정희는 그 잘못된 선택으로 조금더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네.

    자네는 뭘하는 사람인가?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 성취를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였다는것을 나중에 깨달았을때 그 아픔을 아는가? 세상에 태어나서 열심히 뭘 해본적도 없고 성취해본적도 없는 인간이라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것을 깨닫고 고민했던 박정희의 심정은 꿈에도 해아려 보지 못하겠지.

    자네가 맞네. 박정희는 잘못된 선택을 한적이 있지. 그로인해 박정희는 발전하였고 방에서 때구루루 구루던 수많은 한량들은 그대로 굴러서 무덤까지 굴러굴러 들어가지 않았겠나.

    설사 박정희가 젊은시절 잘못된 선택을 한적이 있다하더라도, 박정희는 특별한 혜한을 갖고 우리민족을 잘 이끌어준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사실이네.

    이비 - 정보화 시대를 예언하고 준비하던 박정희는 32년전에 죽었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정보화 시대이고 그가 준비한덕에 우리는 전자, 전산, 전기, 정보화 강국으로 전세계의주목을 받고 있네.... 그럼 그다음은 무얼까? 지금 우리는 30년 후를 꽤뚫어보고 준비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이명박?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그럼 그전에는 누가 있었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또는 전두환? 지난 삼십년들 되돌이켜봐도 박정희 같은 인제가 전혀 떠오르지 않네. 자네는 떠오른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이 "우리의 나아갈 길" 이라고 선명하게 외쳤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린 아직도 박정희를그리워 하고 있는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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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비 ip6 2011-02-27 20:09:12
    장문의 글로 성의있는 답변을 해주시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제가 쓰고자 했던 바는 이미 다 아시는 듯해서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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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 ip2 2011-02-27 13:14:24
    박통시절은 현재의 중공/북한 보다도 몇 배 훠~얼씬 민주적이고 희망적인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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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7 2011-02-27 14:46:08
    서울토박이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동년배라서 더욱 다가오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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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7 2011-02-27 15:36:05
    그런데, 박근혜 국회의원의 능력에 대하여는 따로 검증이 필요합니다.
    박대통령과 동일시 내지 착시를 구분해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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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내일 ip8 2011-02-27 14:48:26
    좋은 글 잘 봣읍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지도자가 다시 나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연임제 대통령이 있어야 장기 적인 계획도 세울 수 잇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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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락 ip9 2011-02-27 18:27:05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박정희도 완벽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룬 것도 많습니다.

    유신헌법 제정 이후는 정치사적으로 본다면 박정희는 분명히 죽을 죄인입니다.
    하지만 군부독재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1987년 6.29 선언 이후에 그동안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을 봤을 때 1970년부터 민주주의를 했더라면 효과적인 경제건설을 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 하나 세우는 것도 핏대를 세우는데 1970년부터 민주주의를 해서 경부고속도로나 제대로 깔았겠느냐는 거죠. 나름 일리있지 않나요.

    역사가 선택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고 어쨌든 그 시대를 통해 현재의 찬란한 대한민국의 초석이 다져졌습니다.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가 본인이 의도했던 안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일정부분 공헌을 하게 된 것 처럼요.

    넬슨 만델라는 정치적으로는 완벽한 지도자로 보입니다. 누구나 존경합니다. 도덕성으로 따지면 박정희 대통령은 발뒤꿈치도 못따라갈 인류사적인 위인입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도 그럴까요?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흑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킨 이후에 남아공 경제는 완전 수렁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흑인들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백인 사업가들은 남아공을 떠납니다.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중심가의 고층빌딩의 오피스들은 텅텅 비고, 도심 한복판이 낮에 돌아다니기도 두려운 할렘이 되었습니다.

    이런걸 보면 도덕적으로 완전한 지도자가 반드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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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10 2011-02-27 22:39:53
    넬슨 만델라는 흑인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평생을 싸운 투사형 지도자입니다.
    28년 동안 옥살이 했습니다.
    백인정권에서 살해할 목적으로 케이프타운 앞에 있는 로벤섬에서 탈출 가능하도록 일부러 경계를 소홀히 하고 그의 탈출을 조장한 적도 있습니다.
    탈옥하는 그의 뒤를 조준하여 탈옥범 사살의 형식을 취하려는 시나리오가 있었죠.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것이 주요 업적이지요.
    아시다시피 그것으로 노벨평화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에만 남아 있었던 흑백차별의 없앤 것외에는 모든 점에서 박대통령에 전혀 필적하지 못합니다.
    넬슨 만델라가 훌륭하였지만 도덕성(부정축재)에 있어서도 박대통령은 아주 훌륭했다고 나는 봅니다.
    넬슨 만델라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아공의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넬슨 만델라가 중용하는 흑인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원인입니다. (인종차별주의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지만 백인과 흑인의 국정능력에 실력차가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넬슨 만델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임대통령 타보 엠베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열심히 잘하려고 해도 관료의 구조적인 부정부패, 무능으로 경제는 좋지 않습니다.

    남아공은 살인사건이 년간 2만건이 생기고 강절도등 강력사건이 줄잇는 나라입니다.
    과거 백인들의 통치시절보다 악화되었지요. 매일 놀라운 사건의 연속이지요.
    남아공 출신 미녀들의 수다 출연녀 백인 미녀 "브로닌"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백인 아가씨. 그 아가씨는 잘 알지요. 우리나라 치안상태가 얼마나 양호한지....
    물론 우리나라 남자가 못난것도 아니지만 치안도 좋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지요.
    남아공의 백인들이 주로 호주로 많이 탈출합니다.
    그녀도 남아공을 떠나고 싶은 것이지요.

    대통령은 용인술이 뛰어나야 합니다.
    아무리 대통령 혼자서 잘 할려고 해도 주위 관료들의 능력에 의해 대통령의 통치력이 제한됩니다.
    박대통령의 용인술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델라는 감히 흉내도 못냅니다.
    박대통령이 뛰어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두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 다른 여타 나라 대통령과 확연히 달랐던 것이지요.
    넬슨 만델라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볼때, 박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노벨발전상(만약, 이런 상이 있다면)을 3관왕 정도 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가진 것은 대한민국의 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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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락 ip9 2011-02-27 23:06:49
    도덕성이 부정축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지금 박근혜씨가 정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박통시절 형성된 각종 재단의 자금력에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유신독재는 둘째치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던 행인도 맘에들면 아무나 태워서 궁정동 안가에서 불륜을 강요하고 파티를 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김재규한테 살해될 당시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을 옆에 끼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거 하나만 봐도 넬슨 만델라의 도덕성과 박정희 대통령의 비교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네요. 차라리 단재 신채호 선생이나 김구선생 같은 분이라면 몰라도요.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혼재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들의 단점을 가린채 완벽한 위인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보수우파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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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10 2011-02-27 23:39:08
    박대통령이 떠난지가 30년이 되었는데 박통시절 형성된 재단의 자금력이라니 약간 어리둥절합니다. 그냥 박통의 후광과 인맥의 도움이라고 봅니다.

    육영수여사 사후에 외로운 홀아비가 된 나머지 젊은 여자들을 불렀다는 것은 지금 다 아는 사실입니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채홍사 역활을 하였지요.
    여자 조달에도 나름 정해진 법도가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을 아무나 태워서 불륜을 강요하였다는 것은 정확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 당시 시대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술 마시면서 박대통령이 여자를 옆에 두었다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인간적이어서 내눈에는 오히려 매력있어 보입니다.
    박대통령이 부처 가운데토막이 아니어서 사람냄새가 더 납니다.
    넬슨 만델라, 신채호, 김구 모두 다 남자입니다. 그 점에서 박대통령과 다를 바 없습니다.

    1977년 부산 동래 충렬사 완공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열해 있는 가운데로 박대통령이 지나가는(약 10m 앞에서)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키도 작은 양반이 보폭도 크게 씩씩하게 걸었가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는군요.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단점은 다른 곳에서 수십년간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이 창에서 단점을 가린 것도 없지만 단점을 들추고 싶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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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10 2011-02-28 00:04:42
    기술상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문장 순서를 수정합니다.
    "술 마시면서 박대통령이 여자를 옆에 두었다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 당시 시대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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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발 ip11 2011-02-28 03:17:04

    - 제발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2-28 03: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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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는 ip12 2011-02-28 03:48:12
    국민 이름 앞세우며 이빨까고 빌빌대는 정치가들만 있을 뿐 국민에게 할 소리도 당당하게 하고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던 지도자도 박정희가 유일했다고 봅니다. 아마 이런 강력한 영도력을 갖춘 지도자는 더이상 한국에선 나오지 않을 듯 싶네요.

    반만년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역동적으로 용트림을 했던 시절이었죠. 당시 카다피나 카스트로 같은 놈들이 통치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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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박이 ip4 2011-02-28 04:12:59
    박정희의 78년 저서는 "민족중흥의 길" 입니다.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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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ip13 2011-02-28 10:52:02
    유신헌법이라고는 알긴 아는거야? 북한의 김정일도 죽을때까지 혼자서 다해쳐먹지? 박통도 마찬가지야. 죽을때까지 혼자서 다해쳐먹을려고 했던거지.온나라 여자는 다 자기것이며 뭐든지 자기맘대로 나라를 주물렀지. 그게 독재가 아니고 뭐란거니? 독재가 그렇게 그리워? 그럼 북한으로 돌아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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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바기 ip4 2011-02-28 14:49:02
    자네가 그래서 무식하다는 소릴 듣고 있는건 왜모르는가? 자네 참 무식하네. 하나 아는거 가지고 모든걸 아는것같이 행동하는 자네같은 인간들을 증오하네. 난 문익환 저서를 몇권 보았네. 난 그사람이 싫었거든. 그 저서를 통해서 그를 존경하게 되었네. 나는 김대중이 싫다네. 싫기에 그의 저서를 읽어보았지. 여전히 깊이가 옅은 사람이라는걸 알았네. 그래서 여전히 싫어하지.

    싫거든 제대로 알고 싫어하게. 이 저능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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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락 ip9 2011-02-28 13:23:43
    박대통령과 넬슨 만델라의 도덕성을 비교하는 것은 그만하겠습니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니.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드려는 시도가 가끔 보입니다. 심지어는 전두환까지 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와 다를게 무엇입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많은걸 해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재를 한 것도 사실이고 유부녀에게 불륜을 강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건전한 보수'와 '수구 꼴통'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수구 꼴통'이 많아질 수록 피해는 '건전한 보수'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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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바기 ip4 2011-02-28 15:30:59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박정희는 우리에게는 있는 최상의 지도자였지만, 좋은 가장 좋은 남편은 아니였습니다. 만델라는 지도자가 아니라 일개 인권운동가에 불과 하지요. 뭐 폄하하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박정희 급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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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락 ip9 2011-02-28 15:47:14
    박통이 육영수 여사 생전에는 여성편력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관계도 좋았던 것 같고 그만하면 육여사 입장에서는 훌륭한 남편이었을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최상의 지도자였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군요.

    님은 넬슨 만델라를 일개 인권운동가라고 하지만 남아공 국민들에게 그는 님이 생각하는 박통만큼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니 님에게 제 의견을 강요해서는 안되겠지요.

    분명한 것은
    세계 어느나라를 가나 넬슨 만델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그를 존경합니다.
    박통은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거의 아는 이가 없으며 우리나라 내에서조차 박통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99%의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1%의 의견이 반드시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님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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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14 2011-02-28 13:48:31
    그렇습니다.
    박대통령과 넬슨 만델라의 도덕성 비교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변호사시험에 오랫동안 실패한 후 간신히 변호사시험에 합격되었고 실제 변호사로 활약한 것은 몇년(약 5년정도)되지 않습니다.
    몇년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흑인들의 안타까운 일을 많이 봐주고, 흑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을 한 것으로 일약 영웅으로 부상합니다. 백인정권으로 봐서는 위험한 인물이 된것이지요.
    42세에 투옥되어 70세에 감옥에서 풀려 나왔습니다.
    그러니 뭐 부정을 저지를 시간도, 여자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평생 감옥에 있었는데 뭘.........

    다만, 그의 처 위니 만델라가 할 짓을 다 했지요.
    만델라가 감옥에서 1년, 2년, 5년, 10년, 15년, 20년, 25년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만델라 이름을 팔고 할 짓을 다했지요.
    "위니"는 만델라가 28년째 감옥에서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위니"에게 만델라는 자신의 삶을 떠받쳐주는 보증수표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시키는 살아있는 도구정도에 불과하였을 뿐입니다.
    수렴정치 비스무리한 것.
    그런데 28년째 70살 먹은 영감탱이가 출옥하여 "위니"는 영광과 영화는 끝납니다.
    만델란는 "위니"와 이혼합니다.
    "위니 만델라"는 만델라가 출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지요.
    참으로, 파란만장 의외의 일이 벌어지는 인생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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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바기 ip4 2011-02-28 15:24:11

    - 서울토바기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2-28 15: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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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토바기 ip4 2011-02-28 15:34:13
    만델라는 좋은 인권운동가쯤은 되어도 인권지도자는 못되지 않나 하는생각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이야 말로 위대한 인권 지도자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다른 종족간 또는 인종간 평등하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우월한 민족과 인종이 존재 했지요. 그중 가장 우월감에 도취해 살고 있는 유대민족으로 태어나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다가 같은 민족에게 붙잡혀 사형당한 예수가 인권의 시작이지요. 그러나 예수가 죽은지 2천년이 지나서 마르틴 루터킹 에 의하여 진정한 민족적 인종적 평등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인권운동으로 미국이 인종차별을 실질적으로 철퍠한 1960 - 80년대 세상은 급속도로 변했습니다. 인종차별을 굳건히 지키던 호주도 백호주의를 철폐하게 되었고 끝까지 변화에 저항하던 남아공은 한동안 국가 취급을 받지 못하고 올림픽에도 초대 받지 못합니다. 1984년 남아공은 올림픽에 초대되지 않았고 남아공 출신의 천재 육상선수 졸라버드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영국 국적으로 참여할정도로 국제적 압력이 컸지요. 결국 남아공은 대세에 굴복하고 말았죠. 만델라 혼자 힘으로 변화된것이 아니라 사실은 국제적 압력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꾼 위대한 마르틴 루터 킹도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혼외정사로 아이도 있다고 하지요.

    도덕적으로 아주 민감한 미국에서는 마르틴 루터 킹의 치부를 캐는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을 위해 이룩해 놓은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개인적인 치부는 아주 작게 봅니다. 아시다시피 마르틴 루터 킹이 태어난 날은 미국의 국경일이기도 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태어난날도 국경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마르틴 루터 킹이 조지 와싱턴보다 더욱 위대하게 보는 이유가 있지요. 바로 전세계의 역사와 인종차별에 대한 관념을 통체로 바꾼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의 사상은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그가 행한 "I have dream" 이라는 9분짜리 연설은 다시들어도 눈물이 나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의 혁명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시대에 맞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당시 상황에서 아주 뛰어난 지도자였고 국가 전체를 혁명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만델라와 비교는 할수 없지요. 그는 일개 인권운동가일 뿐이고 박정희는 경제 혁명을 일으켜 나라른 통채로 바꾸어놓은 뛰어난 지도자이니까요. 제 생각에는 박정희는 만델라가 아니라 마르틴 루터 킹정도에 비교하는게 적절하지요. 분야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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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가 ip14 2011-02-28 18:29:07
    영웅은 시대적 배경이 만드는가 봅니다.
    어느 인물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였을때 영웅으로 탄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만델라도, 박정희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인물입니다.

    만델라는 수백년간 백인들의 지배하에 있던 남아공을 (사실상) 흑인들이 통치하는 나라로 다시 찿아온 흑인들의 영웅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5천년 우리 韓민족 역사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미국의 흑인들의 인권신장,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인권을 신장시킨 인물이지요.

    저는 10 여년전 남아공에 간 적이 있었는데 별로 좋지도 않은 中古자가용들이 마-트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데 핸들 락킹 바(핸들 자물쇠 철봉)가 핸들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통상의 잠금장치로는 안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낮에도 안심할 수 없는데 밤에 어두워지면 불안해서 밖에 나갈수 없었습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환경에서 불안에 떨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불편합니까?
    하루 24시간을 치안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고 사는 우리의 삶이, 우리는 잊고있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엄청 부러운 재산입니다.

    만델라가 흑인인권신장을 위해 싸울 수 밖에 없었든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해도 부유한 백인들이 사건을 맡겨주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이 같은 백인 변호사에게만 일을 맡깁니다.
    이것이 만델라가 의도치 않았지만 결국은 훗날에 영웅이 되는 이유가 됩니다.
    인구비중으로 봐서 90%가 흑인이고 10%가 백인인데, 흑인변호사는 극소수였던 때입니다.
    흑인들이 만델라변호사에게 찿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변호사비 낼 여유가 안되니 달걀 2개 가지고 와서 하소연하고, 고구마 몇개 가져와서 하소연하고, 빈손으로 와서 하소연하고......
    가난한 흑인들은 상대해서 돈을 벌수 있는 구조가 못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료변론도 하고 닭 한마리받고 변론하고......
    자연히 인권변호사가 된 것입니다.
    당시 만델라로서는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순신장군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우리나라 역사상 그런 장군이 있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이 또한 박정희대통령의 뛰어난 업적입니다.
    내가 알기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순신장군을 만든 사람이 박정희대통령이라고 봅니다.
    박대통령이 이순신장군을 발굴 조명하고 업적을 부각시키고 동상을 만들고, 널리 선전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장군이 된 것입니다.
    한산도 제승당을 확장 보수하고 성역화시켜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강조한 것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서거후 지금 30년 지났습니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습니다만 세월이 좀 더 흘러 철인이 나타나면 박정희대통령을 영웅으로 부각시킬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전사후 우리 선조들이 인간 이순신의 단점과 잘못한점을 하나하나 들춰내어 난도질하려고 들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존경하는 이순신장군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박정희의 잘못과 실정을 확대하여 비난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이 마땅히 가져야 할 역사상 한 명의 영웅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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