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8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환난 곧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기에 빠진 인간은 그 위기관리를 누가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하나님의 의인들은 하나님의 관리를 받게 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관리를 받아들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지혜로 위기관리를 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자기 꾀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수많은 환난이 있고 재난도 있다. 그런 것을 헤쳐 나가려면 사는 수(수와 手와 手順과 數(段數))를 찾아내고 읽고 응용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깊고 넓고 길고 높아야 하고 살 틈을 찾아내는 높은 차원(상대적으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혜안을 가지고 살아야 비로소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일본은 그 위기를 다루는 혜안에 따라 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나름대로 비판하고 비평하는 자들이 예저기서 나오고 있다. 바둑판에서 하수가 고수 훈수를 두듯이 정확한 정보도 모르고 나름의 소신을 밝히는 용기는 가상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푼수에 가까운 짓을 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 하겠다. 그런 푼수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지만 결국 그 수에 걸려 그 차원에 걸려 망하게 된다.
위기에서 살 수를 찾는 것은 길게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읽고 연결해야 한다. 깊이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읽고 길어내야 한다. 높은 안목으로 정확하게 읽고 달아내려야 한다. 넓은 안목으로 다양한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읽어내고 동시에 담아내야 한다. 살 수를 찾아내는 깊고 높고 넓고 긴 독해력의 의미와 그것을 담아내는 응용력의 의미다.
임기응변에 능한 자들은 주어진 여건을 요리조리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그 임기응변의 수와 차원이 낮으면 결국 된통 당하게 된다. 일본의 위기를 해결하는 수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 높이는 얼마나 되고 그 길이는 얼마나 되고 그 넓이는 얼마나 되는가? 그 수의 공간의 의미에 담겨지는 것은 사는 수일까? 죽는 수일까?
위기를 다루는 차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차원이라는 말은 위기에서 빈틈(살 틈)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그것에서 응용하여 살길을 정확하게 찾는 안목이라고 해야 한다. 1차원부터 지극히 높은 차원이 있다면, 일본의 위기는 몇 차원으로 이를 풀어 가는가? 우리는 그런 것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그 나라의 국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일본인의 저력이고 그것이 지도자들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수와 차원을 찾아 누리는 것에 인간의 한계는 있다. 이를 위기관리 능력이라고 한다면 각 나라마다 그 능력은 각기 다르다. 생존의 수를 찾는 능력, 생존의 안목을 찾아내는 차원의 의미는 그 차원에 그 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차원의 그 수라고 하는 것에서 주목할 이유가 있다. 일본으로 현장취재를 간 기자들의 수와 차원으로 읽고 담아내어 기사를 보낼 것이고, 그것에 대중이 갇혀 버린다면 그보다 더 높은 수와 더 높은 차원을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기자들의 수와 차원이 일본보다 더 높아야 한다. 일본보다 낮다면 그것으로 비평을 한다면 푼수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그 수와 그 차원이 하나가 되어 있고, 그것이 만일 지극히 낮은 수와 차원이라면 그것이 만일 권력을 잡았다면, 그것이 수령독재처럼 군림하여 다른 수와 차원을 모조리 죽인다면 침묵으로 만들어낸다면 그 수와 차원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니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살 수의 낮은 차원은 극한 이기심이고 지극히 높은 차원은 아가페의 이타심이다.
나만 사는 수와 차원을 가진 자들은 0이하의 지극히 낮은 차원의 자들이다. 그것들이 마이너스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악마의 수와 차원이다. 우리는 그것들에게 묶여 하나님의 수와 차원을 누리는 것에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 이는 낮은 수와 그 차원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는 세상에게 고한다. 세상의 각기 권력을 가진 자들의 수와 차원에 갇혀 살지 말 것을. 오로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수와 차원을 공유하여 그것으로 살기를 권면 강조한다. 악한 자들의 수에 갇혀 있으면 결국 망하게 된다. 김정일은 지금 죽을 수에 망할 차원에 걸려 있다. 그것들은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대한민국은 그것들의 수에 걸리는 그것들의 차원에 묶이는 자들을 지도자로 모시고 있다. 그것이 이 나라의 불행이다. 악마의 수와 그 차원에 묶인 것이다. 악마의 수와 그 차원은 대한민국을 피바다로 만들고 김일성일가만 주지육림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들에게서는 한민족과 더불어 사는 수와 차원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악마의 수와 차원을 악마의 궤휼이라고 한다. 그런 궤휼한 자들을 우대하는 대한민국의 수치를 벗겨내야 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수와 차원으로 운전대를 잡는 자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가 사는 길인데, 국민의 수와 차원이 높아야 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수와 차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 누리자.
[이사야 32:5-8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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