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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저격수가 털어놓은 ‘살인의 추억’
Korea, Republic o 모차자 0 378 2012-01-27 01:22:46

"내가 죽인 자들은 모두 나쁜 자들…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저격수 심리는 복잡…트라우마 더 겪기도


 장거리 소총의 망원조준경에 '표적'이 들어왔다. 이라크 주둔 미군 해병대 쪽으로 다가오는 군중 틈에 차도르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손엔 수류탄을 쥐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려던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다른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머릿 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맨 먼저, 여자다. 다음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정당한가? 일이 끝난 뒤 집에 돌아갈까? 변호사들이 내게 '넌 여자를 죽였다. 감옥에 갈 작정이냐'라고 묻는다면?"

 저격수는 그러나 이런 질문에 시간을 오래 빼앗기지 않았다. 지휘관이 "쏴"라고 거듭 명령했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멀리서 여자가 쓰러졌고, 손에서 떨어진 수류탄이 폭발했다. "그녀가 내게 이런 결정을 하도록 했어. 동료 병사들이 죽느냐, 내가 그를 제거하느냐의 문제니까."

 미국 해군 최정예 네이비실 소속 저격수였던 크리스 카일(37)이 25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밝힌 첫 '살인의 추억'이다. 미국이 대량파괴무기 제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봄날의 일이었다.

 카일은 최근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의 자서전'이란 부제가 달렸다. 미 국방부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카일은 160명을 표적사살해, 종전의 미군 최고기록(베트남전 당시 109명)을 갈아치웠다. 카일은 255명을 저격했다고 주장한다.

 카일은 1999년 미 해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고향 텍사스주 오데사의 카우보이였다. 8살때 처음 손에 총을 쥐었고, 취미 삼아 사냥을 했다. 카일은 입대 후 네 차례 이라크에 파병됐다. 2009년 퇴역하기 전까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라크 저항세력과 미군이 가장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던 2004년 팔루자에선 40명의 '반군'을 사살했다. 그 때부터 카일은 미군들에게 '전설'로 통했고, 현지인들에겐 '라마디의 악마'로 불렸다. 이라크 저항군은 카일의 목에 2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라마디는 이라크 중부의 도시로, 저항세력의 핵심거점이었다. 이라크 저항군은 카일의 목에 2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평범했던 농장 청년이 어떻게 '냉혹한 살인기계'가 됐다가 다시 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자녀의 아빠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는 책에서, 자신의 행위에 죄책감은 없으며 '야만인'들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내가 죽인 모든 사람들은 모두 '나쁜 자'들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내가 신 앞에 마주 섰을때 설명해야 할 게 많겠지만, 그들을 죽인 건 해당되지 않는다." 희생자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는 확신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인류학자 네타 바르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저격수들은 표적을 이런 식으로 비인격화하는 경우가 다른 전투병들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저격 살인은 매우 원거리에서 이뤄지지만, 동시에 매우 사적인 상황이어서 (저격수가 표적에) 친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상대를 똑똑히 볼 수 있는데다, 오랜 시간 관찰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르는 2002~2003년 이스라엘군 저격수 30명을 인터뷰했다. 많은 전투병들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테러리스트'로 여긴 반면, 대다수 저격수들은 저격 대상을 '인간' 또는 '합법적인 전사'로 인식했다. "(표적도)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나도 (표적이)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보면, 저격은 상대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예방하는 행위이므로 미안함을 느끼진 않는다." 주변 사람과 사회의 지지를 받는 것도 저격수들이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거의 느끼지 않는 한 이유라고 바르는 말했다.

 그러나 1988년 옛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투입돼 영웅이 됐던 한 저격수는 "우리가 아프간 민중을 보호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행위를 수치스럽게 여긴다"고 털어놨다. 전장이 아닌 사회에서 작전을 하는 경찰 저격수들은 군인 저격수보다 이런 의심이나 트라우마를 훨씬 빨리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미군 저격수 크리스 카일은 지난 24일 고향 텍사스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정말로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 모든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나를 멋지게 만들어준 주변 동료들에게 찬사를 바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저격수 최고 공식기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옛소련군의 침공을 받은 핀란드의 저격수 시모 헤위헤가 세운 505명이다. 옛소련군들은 정체 모를 이 저격수를 '하얀 죽음'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헤위헤가 눈덮인 설원에서 흰색 위장복을 뒤집어쓰고 활약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저격수들 중에는 여성들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도 조준사격은 역시 여성이 정확합니다.-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투사격말고.

조준사격의 특성상 섬세함이 요구됨으로.

제가 현역시절에 사격 측정에서 무의탁으로 10발 또 10발 또 10발 모두 명중시키는 여군을 저는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무의탁으로 9발 밖에...쩝!  ㅠㅠ

대대 ATT때 그 여군땜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전역을 했을 것 같은데...

무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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