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홍콩 중심의
빅토리아 파크.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주부들과 학생, 교사, 민주화 운동가들이 “세뇌 교육 반대” “사상의
자유를 지키자” 등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9만명이 넘는 시위대(주최측 추산)는 정부 청사까지 행진하며 정부의 중국식 국민교육
도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고 <명보>를 비롯한 홍콩 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홍콩 시민들
사이에 친중국 ‘홍색 세뇌 교육’에 대한 반대 여론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발단은 최근 홍콩 정부가 9월 새학기부터
국가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한 ‘도덕·국민교육’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7월1일 취임한 친중국계
렁춘잉 행정장관이 이끄는 홍콩 정부는 국민교육이 중국의 현재와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학부모와 교사 단체들은 아이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세뇌 교육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년 50시간씩
‘국가적 화합, 정체성, 단결’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들어야 한다. 홍콩 당국은 9월부터 초등학교에서, 내년부터는 중·고교에서
국민교육을 시행하고 3년 안에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특히 교재로 쓰일 <중국모델>이라는
제목의 소책자가 공산당을 “진보적이고 이기적이지 않고, 단결된 정당”으로 묘사하고, 다당제나 미국식 정치제도의 문제점들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살 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시위에 나온 샌드라
웡은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것은 노골적인 세뇌 교육이다. 학부모로서 분노한다”며 “공개된 커리큘럼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장밋빛 그림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셜리 청(17)은 “국민교육을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편향된 식으로 교육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지금까지 공개된 커리큘럼에는 톈안먼 시위 진압이나 (중국의 반체제 인사)
아이웨이웨이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이 교육이 독립적 사고에 도움이 될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색 세뇌
교육’ 반대 운동은 최근 홍콩인들의 대중국 여론 악화 현상과 맞닿아 있다. 중국 반환 15주년을 맞은 홍콩에서는 부유한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집값이 폭등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법치와 민주적 시스템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올
들어 중국 당국이 좌지우지하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됐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홍콩 정부는
국민교육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는 여론을 달래기 위해 광범위한 계층이 참여하는 감독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교사노조와 학부모들은 여기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교원노조는 정부가 계속 여론을 무시한다면 9월 개학에 맞춰 수업 거부에 나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명보>는 전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