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발맞추어 찾아온 전염병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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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들어 대한민국과 중국사이에 사건화 되고있는 식품에서유발된 기생충 문제의 논란을 접하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저희가 북한에서 살던 사고 방식대로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작은 문제지요.. 그리고 그렇구나하고 넘길수 밖에 없는 극소수의 사건이라 생각할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이사회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고 있는 이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다시금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저와 같은 탈북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잊지 못하는 북한의 인권실태를 악몽처럼 머리에 떠올리군 할것입니다 저희가 북한에서 살때 굶주림 만큼이나 가난한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던 전염병이 악마처럼 인간의 생명문을 사정없이 두드렸습니다 1995년 후기부터 찾아온 급성 설사증 (콜레라) 의 공포는 그러잖아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허약해질대로 허약한 사람들의 몸을 사정없이 병마속에 휘말려끌어들었습니다 금방 저녁까지 두눈이 시퍼래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다음날 아침에는 병에 걸려 병원에 업혀 갔다합니다.. 병원에 업혀 간들 어찌 하겠습니까 열악한 북한 병원들의 처지는 병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고 병자를 감옥에 처넣는 수용소의 역활을 할뿐입니다. 콜레라라는 병은 당시 변을 통해서도 감염율이 아주 높다고 북한 위생보건 부문에서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하여 화장실의 방역및 위생관리는 엉망이고... 그상황이라면 건강하던 사람도 화장실을 사용하면 도리여 병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뒤를이어 경마를 하듯이 찾아온 "파라 티브스, 장티브스, 발진티브스"의 전염병들은 가난에 허덕이는 불쌍한사람들을 겨냥하여 큰입을 벌리고 마구 쳐들어오는 죽음의 사자와도 같았습니다 1997년 초여름 저는 그때 고향 아오지에서 양부모님들이 다 돌아 가시고나니 텅빈집에 혼자있기 너무 고독스럽고 무서워 새별에 있는 언닌 집에 가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당시 북한의 철도 사정은 말이 아니였습니다 한달에 몇번있을가 말가하는 열차편은 몸이 허약한 사람과 노인 어린이 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간만에 지나치는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생결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서식하는 맹수들이 먹이를 보고 뒤쫓는 하나의 무리와도 같이 무서운 기세들이 였습니다 그틈에 끼워 만약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면 그야말로 압사는 바로 시행 되는것입니다 그나마도 간신히 열차에 오른 사람들은 안도의 숨과 미소가 잠깐 스쳐지날뿐 ..열차의 몸체 어느곳에나 사람이 붙잡고 버틸수 있는 자리면 사람이 다붙어 있었습니다 승강대에는 물론이요 열자 지붕위에도 사람사태가 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기차가 가는지 사람으로 묶어진 한덩어리가 가는지 가늠이 안갈 정도였습니다 마치도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인파를 그려보는듯 하였습니다 이런 철도사정을 잘알고 있지만 어쩔수 없어 길을 떠나 아오지 역에 도착하니 그날도 예외가 될수 없이 기차는 미정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 하여 역전에서 걸어 한시간은 실히 걸릴 거리를 돌아 들어 갈수는 없었습니다 가는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사이 어느시각에 열차던 화물차던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그냥 역 대합실한켠에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들러 보니 눈에 보이는 사람들 마다 먹지 못하여 얼굴이 누렇게 뜨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구석 구석 꽃제비들이 움추리고 앉아 눈뜰 기력마저 없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 들이는 불쌍한 모습들을 바라 보느라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고 또 언젠가는 나도 저들의 모습이 되지 않을가 하는 위기의 공포가 저를 몸서리치게 하였습니다 자기들옆에서 숨진 시신을 치울 기력도 없는지 이미 싸늘히 식어져 있는 시체와 함께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은 산사람이라 말하기에는 이미 그표현이 상실되였었습니다 그리 쓰러져있는사람들의 머리와 옷섶으로 쌀알만한 이들이 벌벌 기여 다녀도 그들은 그것을 인식 하지 못하는듯 하였습니다 그런속에 저는 아오지 역 대합실에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사흘만에 언니 집쪽으로 가는 석탄을 싫은 화물열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 부랴 그차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기관사와 승무원들이 저와 같은 사람들을 사정없이 발로 차서 내치는것이였습니다 하여 전 기회를 보다 기관사에게 술 1리터를 제꺽 건네 주어 화물 차에 타는것을 승낙 받았습니다 드디여 언니 집에 도착하여 마음의 긴장을 플고 보니 저의 주제가 정말로 말이 아니였습니다 저의 눈앞에서 누워있던 꽃제비들의 모습이나 저의 모습이나 피차 일반이였습니다 언니가 내여주는 옷을 갈아 입고 보니 옷에 다닥 다닥 붙어 있는 밥알 만한 이들을 보고 저는 기절 초풍하였습니다 역 대합실 의자와 시멘트 바닥으로 기여 다니던 이들이 저의 몸에도 사정없이 묻어 있었던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상하게 몸이 오싹 오싹 추워나고 열이오르고 감기 기운이 들면서 토하기 까지 하는것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언니와함께 먹을 것을 찾아 들에 나물캐러 제 몸집보다 큰 누더기 배낭을 들러 메고 길을 나섰습니다 저녁이 되여 풀이 잘 안보일 즈음이 되여 집으로 향하였지만 웬지 몸은 자꾸만 비틀거리게 되고 눈앞이 흐려지고 식은 땀이 줄줄 흘러 도저히 집으로 갈수가 없어 얼마를 못가서 푹 꼬꾸라 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언니가 저를 돌아 보고 당황하여 왜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힘이 없어 가만히 쓰러져 있는데 언니가 다가와 저의 이마를 만져 보고 깜짝 놀라는것이였습니다 몸이 불덩이라는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만히 생각하느라니 이대로 쓰러져 일어 못나면 온 하루종일 애써 뜯어낸 나물이 너무 아깝기도하여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죽을 힘을 다하여 일어나 한치 한치 언니 집을 향하여 걸었는데 그길이 얼마나 멀어 보이던지... 드디여 언니집에 거의 도착하게 되니 인젠 도저히 더 갈수가 없어 그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 .... 눈뜨고 보니 제가 병원에 누워 있는것이였습니다 그때 저를 내려다 보며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언니가 하는 첫마디가 "너 발진 티브스에 걸렸대" 이러는 것이였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정신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보니 제가 누워 있는 병실에 성냥곽 마냥 빼곡히 누워 있는 저와 같은 환자들과 그들이 뱉어 내는신음소리는 마치도 내가 지옥에 와있지않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이 병원에 입원이지 하루 링겔 한통과 약하루 세번 그것도 1~2알씩 (무슨 약인지 모름) 먹는것외 병원에서 해주는 것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어는 환자 복도 없이 그냥 입고 간옷을 걸치고 있었고 하루 세끼 식사도 병원측에서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습니다 집들에서 가져다 주는 죽물이나 시래기 밥같은것을 받아 먹어야 하였고 그마저도 먹을것이 없어 못가져다 주는 환자들은 그냥 누워서 굶는 것이였습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안하고 죽물도 나누어 먹으며 병과의 싸우 는 모습은 정말로 눈물을 자아내었습니다 이렇게 몇일을 고열과 싸우고 나니 차츰 열이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다른 난감한 문제가 또 생기는 것이였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것입니다 저 자신이 열에 들떠 아플때는 다른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히 스쳐 보냈지만 정작에 인제는 저의 차례가 된것입니다 저처럼 그런 여러 가지 "티브스" 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열이 내리니 하나 같이 귀를 잘 듣지 못하는것이였습니다 귀에서는 윙윙 전선줄에서 나는 소리같은것이 들리고 상대 방이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뭐라 하는지 알아 듣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는 서로가 자기 좋은 소리를 하고 또 상대방의 입놀림을 보고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자 간병으로 있던 가족들은 너무 기가 막혀 웃음보를 터뜨리고.. 어느덧 퇴원을 하였지만 심한고열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릴수가 없었습니다 밖에 용변을 보러 가자 해도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중풍에 걸린 사람마냥 한참을 서서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 겨우 한발자국씩 내디디면서 다녀 와야 하였습니다 ... ... ... 이것이 어찌 저한사람만이 당한 아픔만이겠습까 착하고 순진한 우리의 백성들은 김정일이 정치 깡패의 손끝에서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고 총구 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갔습니다 어제만이 아니고 지금 이시각도 수많은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언제면 우리도 잘살날이 올가 하고 실날같은 희망을 김정일이 인간 살인마한테 기대하고 살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속고만 살아온 백성들 아니 지금도 매순간 순간들을 속히우면서 살고 있는 저 불쌍한 백성들에게 김정일은 자기가 어떤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과연 알기나 하고 있을가 하는생각을 하여봅니다 수천만의 저주가 자기의 머리위에 떨어지고 있지만 자기의 그 더럽고 간사한 목숨을 부지하려고 깡패의 근성을 못버리고 썩어 빠진 군사 독재를 유지하려는 인간말종의 발악은 아직도 끊이질 않으니 살이 떨리고 치가 떨립니다 수백만의 주검으로 만들어진 무덤위에 호화로운 궁전을 짖고 여색을 탐하고 있을 인간의 탈을 쓴 악마는 아직도 불룩 튀여 나온 배를 내밀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김정일이가 저승으로 갈 열차는 이미 대기 중이건만 아직 그를 태우지 못하여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해도 멀리 서쪽으로 기울어 지고 있습니다 이추운 겨울날 다 꿰진 동화를 신고 추위에 떨며 열심히 안깐힘을 쓰며 살아가고 계실 고향의 혈육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 집니다 저희는 이좋은 사회에서 옷하나에도 타발을 붙혀가며 고르고 팅겨 가건만 음식도 먹다 남은음식 쓰레기통에 들어가지만 그것이 없어,그것을 얻기위하여 정처없이 삶을 찾아 헤매일 우리 형제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집니다 혼자 이땅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자니 그것 또한 죄악처럼 생각됩니다 제가 누리는 행복 제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 일부분이라도 그들에게 나누어 드릴수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남북의 길이 열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 병마와 굶주림에 뼈만 남은 그들의 몸에 제가 입은옷을 저의 체온그대로 입혀주어 차겁게 얼어붙은 그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달려가 하얀 쌀밥을 지어 굶주린 그들의 입에 떠넣어 드리고 싶습니다 설날이 와도 쌀밥 한사발 떠올려 가족이 오붓한 명절을 보내기나 하겠는지.. 추운데 집에 불이나 뜨끈뜨끈히 지피고 있는지..물이나 제대로 길어 먹는지... 올해겨울도 가물어서 우물물이 다말라 물통들고 한시간씩 줄을서서 기다려야 되는지.. 아프면 약이라도 제대로 먹는지... 근심과 걱정은 저의 몸에서 피를 말리우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굳세어집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야 언젠가 서로가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면 다시 만날 형제들에게 저만 욕심스레 가지고 있던 행복도 자유도 웃음도 깡그리 나누어 드릴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부디 이추운 겨울날 앓지말고 건강히 잘보내고 김정일이 망하는그날까지 억세게 살아주길 천번 만번 간절히 바라고 기도할뿐입니다 어둠이 가시면 반드시 해가 떠오르는 법, 김정일의 군사 독재도 어느덧 종말이 올것이고 그러면 고향의 형제분들께도 희마의 빛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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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들은 이 지구상에서 이제 그만 사라질 때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북한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쳐 무너질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동안 실력을 쌓고 내공을 단단히 길러 막강한 한반도 나라를 건설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이런 꿈은 불현듯 현실로 닥아 올 것입니다.
남한에도 70년대까지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은 힘들었어도 인정이 있었고 순수한 인간적 냄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저도 삶에 지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회충,이,부스럼 같은 것만 빼고는 엣날이 좋았다고요.
그러나 이런 생각도 따지고 보면 다 배부른 생각이지요.
아무려면 그 때와 지금의 생활을 비교할 수 있을라구요.
대한민국은 앞으로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여러 문제에 있어서 더욱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는 이북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 층에서 그런 문제가 염려되고 있습니다.
제 배 부르면 남의 사정은 자연히 무관심해 지기마련이지요.
하루속히 북한 정권이 무너져 그 힘든 북한백성들의 삶과 남한의 부요한 삶이 조화럽게 평형을 이루는 날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