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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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출신인 필자가 서울에서 집필활동을 하면서 범세계적 작가 모임인 ‘국제펜클럽’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이맘때다. 탈북자 출신 뮤지컬 감독인 고향 친구 정성산 씨를 통해서다. 그도 해외공연을 하면서 우연히 알았다고 한다. 1921년 영국 런던에서 만들어진 국제펜클럽은 세계 114개국에 143개 본부 및 센터(망명국가대표단체)가 있는 거대 문인 조직이며 국제기구다. 문학을 증진하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국제펜클럽은 정치적 검열을 반대하며 박해받고 투옥되거나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다가 살해된 작가들을 옹호한다. 1955년 국제펜클럽에 정식 가입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이 단체가 지향하는 집필과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양에서는 노동당의 폐쇄 정책 때문에 몰랐었고 서울에 와서는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서 이 단체에 관심이 없었다. 북한에서의 문학은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기본방향이 설정됐고 노동당의 철저한 문예정책에 의해 각인됐다. 문학이론의 토대는 주체사상이었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당의 정책 방침에 따라 왔다. 예전의 고상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관련된 인물형상을 강조한 북한문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수령형상 창조와 항일혁명문학 발굴에 집중됐다.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가 문예창작의 종자가 됐고, 문학의 중심에 당의 정치노선이 반영됐다. 1990년대 들어 민족적 형식의 주제창조는 완전히 사라졌다. 말로는 전통과 역사를 지킨다고 하면서 실제에 있어서 인민의 사상과 생활을 진솔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문학의 꽃이라 불리는 소설에도 혁명성이 삽입됐다. 대부분 김일성 김정일의 개인 역사와 일가에 대한 날조와 허위로 가득한 스토리다. 말이 소설이지 개인 사상 전집에 가깝다. 대중가요보다 혁명가와 군가가 많이 창작되고 서정시에서도 정치적 색채가 짙은 작품만이 신문과 잡지에 실린다. 북한사회에 처음부터 모두 혁명문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6·25전쟁 때 남한에서 월북한 이기영 홍명희 선생 등 유·무명의 작가들도 있었으나 1960년대 후반 사상개조를 빌미로 대부분 산골과 탄광으로 추방됐다. 여기서 사상을 바꾼 이도 있고, 자살로 문학도의 양심을 지킨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강제노역으로 숨졌다. 독재체제유지에 걸림돌이 된 양심적 작가는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문학의 ‘문’자도 모르는 독재의 야심가 김정일의 지시로 정의의 펜은 모두 부러졌으니 노동당 체제 비판의 글은 차치하고 자유와 진실의 표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하늘이 열두 번 갈라져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던 북한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폭압 독재, 인권 유린의 사회에서 오로지 노동당체제 유지의 홍보수단으로, 정치선전 도구로 전락된 북한의 작가들이고 인민들이다. 70년 가까이 이어지는 잔인한 김씨 일가 독재체제하에 티끌만 한 정의의 생각조차 못하고 진실과 자유의 펜을 들 엄두도 못 내는 북한의 작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국제펜클럽 ‘망명 북한펜센터’ 승인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오늘부터 열리는 국제펜클럽 제78차 경주대회에 참가한 143개국 회원국과 세계의 양심 있는 문인들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144번째 회원국으로 ‘망명 북한펜센터’가 설립돼 지구상 유일한 공산독재국가 북한에서 잔인한 총칼에 묻힌 정의의 펜을 대변할 수 있도록 탈북 작가인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달라. 림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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