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신고땐 1년치 임금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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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 국경을 가면 철조망이 없다. 오직 두만강과 압록강의 푸른 물결만이 1300km 국경을 가르고 있다. 보천보전투 기념탑이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강변을 따라 50m 간격으로 늘어선 북한의 초소만이 국경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7월이면 장맛비로 불어난 장백현과 북한 혜산시를 사이를 흐르는 강은 한가롭기만 하다. 아이들은 멱을 감고, 아낙들은 빨랫방망이질을 한다. 두만강과 압록강 줄기는 가물 때면 곳곳에서 깊이가 어른 정강이를 넘지 않는 실개천이 된다. 그래서 박창익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사람이 이 강을 넘는 것을 ‘탈북’이 아니라 ‘도강’이라고 표현한다. “십여년 전만 해도 양쪽 사람들이 강 건너 친척을 찾아 저녁 마실을 다니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색이 강한 탈북보다 도강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한 동포는 지난해까지도 동포가 운영하는 장백현 식당에 가면 강을 건너온 북한 사람들이 점심이나 저녁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두 달 동안 중국 동북삼성에 머물다 귀국한 김영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국장은 기획망명 여파로 “연변지역은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했다. 중국 도문과 북한 남양을 잇는 도문다리 부근에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손을 벌리던 꽃제비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한국 관광객들만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가게 주인은 “단속이 강화되면서 북으로 잡혀간 아이들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친 아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발 한파가 수천km를 날아와 조-중 국경을 덮친 것이다. 중국 공안은 탈북자를 신고한 사람에게 노동자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1000위안(15만원)의 상금을 주고, 탈북자를 보호하다 적발되면 3000위안 이상의 벌금형에 처한다. 연변에는 기획망명 이후 공안들에게 매달 2명의 탈북자를 잡아들이라고 할당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도문 검문소를 지난 고갯길에는 3m 높이의 담벼락이 둘러쳐진 탈북자 수용소가 있다. 이 수용소는 올 봄 완공됐다. 수용소에는 사나흘에 한번씩 공안차가 들어와 탈북자들을 옮겨놓고 가곤 한다. 한 주민은 “기차로 이틀 길인 헤이룽장성의 노인들이 탈북자 며느리와 함께 잡혀간 손자를 찾기 위해 수용소로 찾아온 적도 있다”고 전했다. 연길 시내의 시장·교회·공원·병원에서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 좌판을 벌인 재중동포 김조숙(36)씨는 “올 초 중국 공안들이 시장에 나와 호구조사를 하면서 탈북자들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이 노숙했던 연길 백산호텔 옆 다리 밑에는 빵봉지와 찢어진 옷가지, 스티로폼 조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밤에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5년 동안 불법체류를 하며 번 돈으로 다방을 차린 조상연(36)씨는 “아직도 새벽녘이면 일자리를 찾는 북조선 아가씨들이 드문드문 문을 두드린다. 받아주고 싶지만 벌금이 무서워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씁쓸해했다. 공안의 단속은 이들을 베이징, 웨이하이, 선양과 같은 대도시나 시골마을로 쫓아냈다. 연길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떨어진 왕칭은 탈북자들이 숨어들기 좋은 도시다. 단속이 무른데다 위험지대인 조-중 국경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왕칭에 있는 선교사 이홍(가명·43)씨는 “교회에 사나흘에 한명꼴로 찾아오던 탈북자가 요즘엔 하루 서너명씩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집중 단속으로 마지막 안식처인 교회도 이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 6년째 탈북 고아들을 모아 `미션홈'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요즘이 가장 힘든다. 시골 마을도 안전지대라 할 수는 없다. 왕칭에서 자동차로 30여분 들어간 왕칭현 하마텅의 한 마을은 이틀 전 탈북 여성 2명이 공안에 끌려갔다. 가까스로 체포를 모면한 탈북여성 리영화(가명·27)씨는 “집 밖에는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안에서도 문을 걸어 잠근 채 지낸다”고 불안해했다. 그러나 단속의 칼바람도 탈북 행렬을 끊지는 못했다. 두만강 접경도시인 화룽시 공안국에는 남루한 행색의 10대 탈북자가 “또 넘어왔어!” 하며 꾸짖는 조선족 공안의 추궁을 무표정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공안국 구치소에 송환을 기다리는 탈북자 3명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국경지역 동포 사회에서는 기획망명 후유증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았다. 박창익 연변대 교수는 “중국 당국은 그동안 ‘한쪽 눈을 감고’ 단속을 하는 방식으로 인도주의를 실천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획망명에 부정적이다. 4년 넘게 탈북자 지원활동을 펴다 중국 당국에 의해 추방된 ‘좋은 벗’의 활동가 한인봉, 문정우씨는 장길수군 가족의 사례가 다른 탈북 가족에게는 ‘희망의 증거’라기보다 ‘절망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기획망명의 성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의 도희윤 대변인은 중국 정부로부터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이끌어냈고, 한국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여 탈북자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기획망명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자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공이 있으면 과도 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현실성이 낮다. 이금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시 피난민’ 개념을 제안했다. “탈북자의 실질적 보호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강제추방 금지와 위협 소멸 뒤 자발적 귀환을 원칙으로 하는 일시 피난민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관련 당사국 합의 아래 잠정적 보호를 제공하는 일시 피난민 개념은 현지국(중국) 정부의 정치·사회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점점 촘촘해지고 있기에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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