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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 돌하르방 탄생설화" 1
Korea, Republic o 서생 0 217 2013-01-12 22:38:42

평범한 민초의 삶을 살아온 저는 이곳에서 눈을 떠가고 있습니다. 한분 한분마다 겪어 오신 처절한 Life Story들... 실로 놀랍고도 용맹무쌍한 그 개척정신.

존경스럽습니다. 사소한 것에 부대끼며 보내온 제 시답잖은 일상을 돌아보게 해준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만일 운영진에서 허락해 주신다면 - 진솔한 곳이라는 점 알지만... 이따금씩 휴식도 필요하시지 않을까 해서 - 중편소설을 하나 연재하고자 합니다. 일단 첫 회분을 올립니다.

 

1. 탐라 아이들  

탐라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사면팔방의 바람이란 바람은 죄다 이 섬에 들러 한라산 기슭을 한바탕 휩쓸고 간다.

봄이 오고 있다고 재잘대며 우도를 넘는 살바람은 봄의 전령사다. 이리저리 함부로 부는 변덕쟁이 왜풍倭風, 살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봄을 시작하는 기지개를 켜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유채 밭 과부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오키나와에서 여름의 끝 무렵을 알리는 건들바람이 불어오면 가을걷이 준비가 시작되고, 광활한 몽골초원에서 일어나 황해를 휩쓴 하늬바람이 천군만마의 기세로 쳐내려오면 남정네들은 낚싯대를 손질한다. 갈바람에 살찐 감성돔을 잡으러 테우(떼배)를 몰아 추자도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왜국과 대마도의 검은 비구름을 품은 샛바람을 맞은 바다가 음산하게 그르렁대면 어부는 서둘러 뭍에 끌어올린 고깃배를 말뚝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이따금씩 산갈치도 몰고 오는 큰 파도가 꿈틀대기 시작하면 잠녀들은 해변 본향당에 모여 영등 할망께 비나리를 올린다. 탐라사람들은 그렇게 바람과 어울려 살아왔고 바람 속에서 억센 탐라기질 또한 여물어갔다.

 

어둥개 마을 덕우와 비바리 잠녀 서순이도 그런 봄날의 살바람 속에서 맺어졌다. 한갯목 포구에서 바우 엄마와 함께 테우를 타고 나간 그들은 변덕스런 살바람에 떠밀려 우도까지 흘러갔다. 세찬 바람과 파도를 넘나들며 살아온 섬사람들의 목청은 절로 커져 예사로운 말도 싸우듯 시끄럽다. 거센 파도에 맞서 힘겹게 노를 저어가던 덕우는 파도가 잠시 잦아들자 돛 마딧줄을 잡고 바람과 씨름 중인 서순을 향해 뭔가 왁왁 대기 시작했다.

 

" 무사 마씀? 시방 내가 좋다는 거우꽈?"

복스럽게 도톰한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귀를 기울이던 서순이는 어이가 없어 벙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당에 꺼낼 말은 아니었다. 기가 탁 막힌다.

"그러엄"

얌전하기만 하던 덕우는 평소답지 않게 영 뻔뻔스럽게 나온다. 바다가 되쏘는 강렬한 햇빛과 드센 해풍에 다져진 표정이 백척간두에 선 듯 비장하다. 탐라사내 특유의 꺽진 고집을 직감한 서순은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테우부터 어디 대놓고 찬찬히, 나중 찬찬히 얘기하우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당장 대답 안 하문 난 노 안 젓는다."

아예 노질을 멈추더니 턱 버티고 서서 구리 빛 얼굴을 도리도리 한다. 느닷없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장면에 벙 찐 바우 엄마가 번갈아 쳐다보다가 드디어 버럭 했다.

"이것들아, 시방 사랑타령 할 때냐. 노나 빨리 저엇!"

 

서순은 어둥개의 소문난 미인이다.

마을 총각치고 서순을 마음에 두지 않은 녀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덕우는 심성 좋고 솜씨 있는 보재기(물질도 하는 어부)지만 작은 덩치로 늘 또래들에게 꿀렸다. 비록 마음에는 품고 있었지만 늘 그녀 주변을 얼쩡대는 또래들에 밀려 평소에 말 한번 제대로 못 붙여봤다. 그러던 녀석이 지금 작심한 듯 들이대고 있다. 서순은 망설였다.

‘짜아식, 기래도 소나이라고 보는 눈은 있어 개지구-- ,’

지분대는 또래들은 늘 많았다.

하지만 이토록 대놓고 들이댄 녀석은 처음이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소꿉동무로 함께 자라온 그들은 서로를 이성보다는 동무로 여긴다. 그래서 막상 혼사는 한 동네보다 이웃마을과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제법 당찬 데도 있고 덩치가 작아 혼인해도 언감생심 자기를 함부로 때리지는 못할 터이다. 게다가 보재기란 탐라를 통 털어도 흔치 않은 재주라고 들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하루 낮과 하룻밤을 우도에서 보내고 어둥개로 돌아올 때쯤 그들은 이미 장래를 약속하고 있었다. 한 조각 테우로 파도를 넘나드는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 살바람의 축복으로 맺어졌다. 바우 엄마까지 증인으로 세운 덕우는 입이 귀에 걸렸다.

테우 위의 서순이 나지막이 소근 거렸다.

"얼망큼 날 좋아 하우꽈?"

분위기라고는 도무지 모르는 목청 큰 덕우가 의기양양 소리 지른다.

"저 우도 앞 바당(바다)만큼."

붙어 앉은 둘은 내내 속살거렸다. 그리고 참다못한 바우 엄마에게 결국 한소리 들었다.

"이것들아, 웬만큼 좀 해라. 산갈치 본 거 매로 독(닭)살 올라 내가 몬 살겠다."

 

그렇게 혼인한 둘 사이에 태어난 아기가 빌레였다. 금실 좋은 부부를 당신堂神이 시샘했던가? 아이가 열 살 되던 해에 물질 나갔던 서순은 풍랑에 휩쓸려갔다. 몇 날을 지새워 바다를 뒤지던 덕우는 퉁퉁 불은 시신을 찾자 넋이 나가버렸다.

‘게메(글쎄) 그날 어째 산갈치가 보이더라니까.’

차츰 말수 적은 사람이 되어가는 덕우가 안쓰러운 동네 아낙들은 혀를 차며 수근 댔다.

 

산갈치는 탐라 해역의 물고기 중 가장 신비스러운 존재다. 열 발 넘는 크기도 크기지만 머리에 닭 벼슬 같은 분홍 볕을 단 특이한 생김새는 예로부터 진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길보다 흉이 많은 애물단지라며 어부나 잠녀들은 반기지 않았다. 산갈치를 본 잠녀들은 아예 그날 물질을 접어버린다. 흉악망측하게 큰 물고기가 겁도 나지만 재수 없다며 더 이상 물질을 않으려 했다. 다행히도 산갈치는 흔한 물고기가 아니었다. 1년 가야 몇 마리도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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