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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창조경제의 창의성의 풍성을 원하시면 빨갱이를 척결하십시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242 2013-05-27 13:10:21

[잠언8:20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웃사랑을 행동하는 本質(본질)의 의미가 오늘의 본문의 의미를 알게 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고 그 사랑의 통제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통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지혜로 통제를 받는 자들은 언제나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하나님의 요구에 洽足(흡족)하다 하겠다. 하나님의 요구를 흡족하게 하는 길을 義(의)로운 길이라고 하고 누구든지 그 길로 가야 하나님이 흡족히 여기시기 때문에 공평한 길이라고 한다.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라 하는데, 그 지혜는 惡魔的(악마적)이고 세상的(적)이고 인간적인 지혜를 全部(전부) 拒否(거부)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서 행동하는 거룩함을 기반으로 삼는다. 그것을 하나님의 義(의)라고 한다. 이 義(의)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름이다. 누구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의 길을 가는 자들은 ‘공평가운데’라는 의미의 길을 가게 한다. 이 길로 가야한다는 것에서 모두가 똑같이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공평한 길이라고 한다.

 

그 공평의 길에는 ‘공평 가운데’ 라고 하는 黃金律(황금률)의 비밀인 균형의 接點(접점)이라는 의미가 포함되고 있다. 균형의 접점이라는 것은 神妙(신묘)한 길이고 奧妙(오묘)한 길이고 奇妙(기묘)의 길인데 이는 만물의 造化(조화)의 神妙(신묘) 調和(조화)의 奧妙(오묘) 親和(친화)의 奇妙(기묘)의 의미이고 그것의 차원은 인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간격을 가진 차원이다. 그 때문에 언제나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踏襲(답습)할 수 없는 境地(경지)를 가진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받아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지혜로 행하는 길인 의로운 길이다. 그 의로운 길은 또한 공평의 길이다. 그 공평의 길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공평 가운데’라는 秘密(비밀)의 문을 두신다. 이는 창세로부터 인간의 눈에 감춰졌던 창조와 생산의 능력의 보배가 들어 있는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공평 가운데’로 인도하고 그 문을 드러나게 하여 그 문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그때만이 창조경제 생산동력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그 열리는 문으로 들어가면 그 신묘 오묘 기묘가 가득한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그것을 누리게 된다. [골로새서2:2-3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잠언24:3-4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이사야33:5-6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is his treasure’ 'owtsar {o-tsaw'} treasure, storehouse]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라고 하신 의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받아 이웃을 사랑함의 완성에 따라 주어지는 감춰진 보고를 열어주심을 의미한다. 이는 그분에게서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욥기37:14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wondrous로 번역된 原語(원어) pala' {paw-law'}는 to be marvellous, be wonderful, be surpassing, be extraordinary, separate by distinguishing action등을 담고 있다.)] [욥기 37:16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평평하다는 의미는 the balancings으로 번역된 원어 miphlas {mif-lawce'}는 swaying, poising, balancing을 담고 있다. 이는 균형의 접점의 신묘를 의미한다.

 

[사사기 13: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seeing it is secret?’의 원어는 pil'iy {pil-ee'}로 발음하고 그 안에는 wonderful, incomprehensible, extraordinary를 담고 있다)] [이사야 28:29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奇妙(기묘)와 神妙(신묘)와 奧妙(오묘)의 길을 간다는 것은 교묘 공교함의 의미인 장인의 영역을 내포한다. 이런 영역으로 나가는 것은 모방과 복사경제를 포기하는 것에 있다.

 

남의 지적재산을 盜取(도취)하는 것은 不義(불의)함이다. 착취 갈취 강취 약취 탈취의 도취는 그 나라의 경제를 망하게 한다. 그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사는 빨갱이들과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가 사는 길이다. 박근혜式(식)의 창조경제를 빨갱이와 더불어 하려는 것인지 몰라도 그것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그 때문에 박근혜式(식)의 창조경제의 의미를 분명하게 闡明(천명)해야 한다. 그것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것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의구심을 일게 한다.

 

창조경제는 신용경제사회에서 빛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당성을 얻고 인정을 얻어 품격 높은 경제행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目下(목하) 악마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이 세상이고 그것에 약한 것이 인간이다. 악마적인 방법은 詐取(사취) 갈취 강취 약취 탈취 도취로 사는 것이다. 강탈 수탈 약탈 겁탈 억탈類(류)로 사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다. 이런 것은 다 악마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악마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에서는 결코 이웃을 사랑하는 지혜가 생각이 뜻이 마음이 나오질 않는다.

 

악마의 본질이 인간 속으로 注入(주입)되면 인간은 ‘자기만사랑’에 눈을 뜬다. 그것에 눈을 뜨는 자들은 악마의 충동을 받게 되고 악마의 충동을 받게 되면 사취 갈취 강취 약취 탈취 도취로 산다. 강탈 수탈 약탈 겁탈 억탈 등으로 사는 인간이 된다. 그들이 법을 잘 안다면 법망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巧妙(교묘)하게 해먹는다. 이를 간교하고 간사하고 공교하다고 한다. 그들이 무력이 강하고 완력이 강하면 그것으로 권능을 삼아 법을 짓이긴다. 그 때문에 이를 바로 잡을 지혜를 솔로몬이 구했던 것이다.

 

그들이 다수의 힘으로 결집하여 떼 법을 만들고 떼거리를 쓰는 짓을 한다. 소요나 민란이나 폭동을 야기하는 것으로 법을 무력화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 및 死守(사수)한다. 그런 시체파리(팔이)의 感性(감성)의 호소도 마다치 않으면서 무법 불법을 자행한다. 그들이 그런 짓으로 正義(정의)의 기준 그 잣대를 점령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正義(정의)를 기준하고 잣대질을 할 수 있다고 强辯(강변)한다.

 

그것이 그 시대의 正義(정의)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本性(본성)에서 이런 짓에 대한 심각한 嫌惡(혐오)가 일어난다. 羞恥(수치)스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마의 正義(정의)’이지 인간에게 본성을 주신 ‘하나님의 正義(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그 형상을 입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 아무리 타락했어도 그 기본은 남아 있다. 그 본성은 악마의 짓을 결코 嫌惡(혐오)하고 미워하게 되어 있다.

 

특히 그 짓거리들이 이웃을 망하게 하는데 어찌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 날 한반도에서 빨갱이들이 남북에 걸쳐 있고 그것들이 핵무장을 하고 여러 군사작전을 가능케 하는 人的(인적) 物的(물적) 인프라로 뭉쳐서 正義(정의)를 기준 하는 잣대를 가진 듯이 행동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正義(정의)는 저들의 首領(수령)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강요한다. 그 정의는 ‘악마의 정의’이다. 사취 탈취 갈취 약취 착취 도취로 사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심히 혐오하고 환멸 하는 짓만 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악마의 본질로 사는 것이기에 언제나 강탈 수탈 약탈 억탈 겁탈 등으로만 사는 자들이다. 인류는 인간 본성에 근거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행위로 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신용은 착취 사취 갈취 약취 탈취 도취로 사는 것이 아니다. 신용은 강탈 수탈 약탈 억탈 겁탈 등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그 이웃을 부자 되게 하는 노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사랑인데, 이 이웃사랑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의 것이 있고 하나님의 것이 있는데, 인간의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한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은 한계가 있고 인간의 본성은 이미 타락했기에 악마의 본질의 침해에 無防備(무방비)상태이다. 결국 한계에 도달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 때만이 ‘공평가운데’라는 출구가 열리게 된다고 이미 前述(전술)하였다. 그 열린 문으로 들어가야 창조경제가 이뤄진다. ‘공평가운데’로 가는 첩경에 이르게 하는 것은 이웃사랑이다.

 

인간적인 이웃사랑도 그 길로 가게 하나 그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밖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경제를 한다. 그것도 눈부신 문명을 이루게 한다. 하지만 악마의 도구로 흉기로 전락될 위험을 언제든지 안게 된다. 이는 인간적인 이웃사랑의 길이가 그리 길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타락하면, 그 타락이 대세가 되면 어느 문명이든지 악마의 도구가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이웃사랑을 행동으로 옮겨 사는 것에 대세가 되어야 한다.

 

그 때만이 그 숨겨두신 神妙(신묘)의 문이 恒久的(항구적)으로 열리게 된다. 모든 이웃사랑의 그 나름의 의는 균형의 접점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의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神妙(신묘)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사실 인간적인 이웃사랑은 신묘의 문 앞으로 이르게 하는 힘이 微弱(미약)하다 하겠다. 모름지기 신묘 곧 ‘공평가운데’ 균형의 접점 거기서 모든 부요가 나온다. 부요를 이루게 하는 신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공평가운데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를 균형의 접점이라고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것이 黃金律(황금률)이라는 비율로 조화되어 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신묘, ‘신의 비율’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비로소 그 속에서 국제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것에서 소비와 구매의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것에서 국가의 부요를 창출해낸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언제나 모방을 하게 되는 것인데,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든가 아니면 악마의 방법으로 모방 복사경제를 해야 한다는 것에 있게 된다. 그런 나라는 품격이 낮아진다. 不義(불의)한 경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 북괴가 범죄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것들은 생존을 위해 온갖 불법 무법을 자행한다. 위조달러를 찍어내는 슈퍼노트가 너무나 정교하여 위폐여부를 감식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한다. 그것을 마약과 함께 해외 공관에서 세탁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악마적인 것으로 사는 체제이다. 이런 체제는 악마의 방법이 아니면 결코 유지될 수 없는 집단이다. 그 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배운 게 도적질이라는 말이다. 빨갱이는 결코 창조적인 생산성에 이르는 신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신묘의 문에서 나오는 상품을 模倣(모방)하고 複寫(복사)하는 짓을 하여 신용사회를 파괴는 하여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경제를 의로운 경제를 품격 높은 경제를 할 수가 없다. 악마의 경제는 타인을 죽여 자기들의 이익만 추구한다. 품격이 현저하게 낮은 것이라 하겠다. 모든 인류가 지탄하는 경제를 하면서 사는 것이면 한국인은 천하에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북괴로 인해 한민족의 이름이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북한인권은 전 세계의 인도주의적인 잣대에서 경악의 대상이다.

 

이런 세력과 내통하는 종북이 대한민국에서 득세하게 방치한다는 것은 지성인의 비겁함이다. ‘노예지식인’의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묻게 되는 것이다. 착취 사취 갈취 강취 약취 도취에서 창조경제가 나오는가? 강탈 수탈 약탈 겁탈 억탈에서 신용경제가 구축되어 생산적인 경제가 나올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나라의 지도자들이 왜 침묵하고 이를 방치하는가? 이는 악마의 경제에 그 영혼을 팔아 버렸기 때문이거나 악마에게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악마의 경제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망쳐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악마의 경제를 우리는 ‘빨피아’로 이미 定義(정의)하였다. 빨갱이와 마피아를 합친 말인데, 대한민국의 지하경제를 6대 4정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지하경제는 빨피아의 세력과 연결된 것이니 대한민국 경제를 40% 정도를 잠식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니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000.1%만 있어도 문제가 큰데 40%의 경제를 잠식하고 있다면 이는 대수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나날이 성장 동력이 다운되고 있는 것이다.

 

애써서 많은 연구비를 들여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착취 사취 약취 강취 탈취 도취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강탈 수탈 억탈 겁탈 약탈하는 빨갱이와 손을 잡고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난공불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市場(시장)의 가격 결정권은 이미 ‘빨피아’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이다. 이런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망하게 된다. 그 때문에 전쟁이고, 그 전쟁의 시작은 북한 인권부터 다뤄야 한다. 이웃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결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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