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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군사동맹 강화 및 한미연합사는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
구국기도 0 228 2013-07-23 14:46:53

[잠언10:26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인간은 지적인 존재이고 시스템으로 거대 지성 집단 지성을 이루고 산다. 그것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군사동맹을 맺어 우리의 생존의 여지를 돈독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동맹으로 악마의 유혹과 인간의 욕심을 물리치고 이웃사랑을 이루는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동맹을 맺기를 강조한다. 하나님과 동맹을 맺는 다는 말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운영 운용 경영하는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 神妙(신묘)에 일체가 되어 하나처럼 움직이는 것이라면 완벽한 동행이라 하겠다. 그 정도로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 훈련을 받지 못하여 일체화습성이 되지 못한 자들은 언제나 행동이 굼떠서 黃金律(황금률)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훈련을 주시는데 이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한다. 한미 간에 군사동맹을 하고 그동안 많은 훈련을 해오다가 노무현 때에 이를 해체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젠 다시 재재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승만대통령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에 의한 한미군사동맹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명령체계에 그 장점이 있다. 양국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그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간격을 메우려고 해마다 많은 돈을 들여 그동안 훈련에 훈련을 해온 것이다. 지구상에서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는 없다. 함에도 자주국방이라는 현혹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유혹하고 혹세무민하여 우리 군사안보를 무너지게 한 것이다. 박근혜정부에 이르러 새로운 형태의 한미군사동맹체를 만들자고 하였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로 여겨 이명박 재임 시절에 연기한 것을 다시 더 연장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쌓아올린 훈련의 의미가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결코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훈련의 가시적인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동맹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지혜로 운용해야 한다. 물론 美(미)軍備(군비)가 함께하니 당연한 가치라도 훈련이 되지 못한 군대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좋은 병기나 군함이나 비행기를 수입해도 그것을 다루는 숙달된 병사가 없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숙달된 군사 잘 훈련된 군사를 얻으려면 적어도 25개월의 군대생활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못한 시간으로 어떻게 정병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선거의 표심을 잡으려고 국가안보의 중요한 가치 훈련된 정병을 만드는 시간을 Populism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開門納賊(개문납적)하는 짓이다.

 

그처럼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동맹도 그러하다. 반드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훈련하여 아름다운 동업자로 동행자로 만드는 ‘그리스도의 할례’란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신다. 그분만이 유일무이하신 창조주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케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미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8:3-4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하나님이 인간 속으로 오셔서 그를 훈련하여 그 요구를 만족케 하신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시기 때문에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할례를 베푸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게 된다. 오늘 본문에 게으른 자는 그를 부리는 자에게 눈에 연기 이에 식초와 같다고 한다. 이는 추악한 동행이다. 이런 조직으로는 생산성도 창조성도 이김도 생명도 자유도 행복도 없다. 게으름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거부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훈련의 가치를 인정치 않는 자들은 언제나 숙달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그런 조직은 막상 전투에 나가서 적의 공격을 받으면 궤멸 당한다. 한미연합사의 훈련의 축적의 의미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반드시 한미연합사는 복원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造化에 調和를 이루지 못하는 전투행위는 반드시 패전하게 된다. 그 때문에 하나님과 동맹이 먼저이다. 그 동맹으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장군들이 지휘관들이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그분들이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능력을 가지면 백전백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의 통치를 받아 이웃사랑을 행할 때 주시는 지혜의 지휘를 따라 하나님의 기준 하는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것으로 지구에서 살아야 하고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돈이나 권세나 명예를 얻는 것이 또는 그 여타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실현이고 자기구현이라고 하신다. 자기구현은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없다. 때문에 무가치한 것이다. 도리어 악마의 출구를 열게 되어 이웃사랑의 현저한 파괴로 득세케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가 된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고 그 지혜의 지휘를 받는데,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비로소 값이 나가는 존귀한 인간이 된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기준 하는 이웃사랑을 이루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 인본주의의 사랑이란 하나님의 기준 하는 사랑을 인간의 힘으로 구현하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신다는 원칙을 무시한 연고이다. 오늘 날 인본주의에 빠진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이웃사랑 완성의 요구를 인간의 힘으로 하는 마인드컨트롤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기 속의 욕심을 이길 힘도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도 그 사랑을 완성하는 지혜도 없다.

 

욕심을 이길 힘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의 모든 욕심과 악마의 혼미케 함을 이길 수 없다. 그 사랑을 이루는 지혜가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힘은 全無(전무)하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속으로 오셔서 그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요구하는 이웃사랑을 완성케 하시는 것이다. 인간 속으로 오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출구로 인간을 길들이신다. 훈련하신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드신 만물을(hardware) 善用(선용)하시는 造化(조화software)에 調和(조화)를 이루게 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능한 자가 되도록 훈련하는 길들임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한미군사동맹으로 얻어지는 힘보다 더 큰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공급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망은 이러하다. 오늘부터 앞으로 대한민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할례(훈련)를 받은 자들이 지도자의 반열에 서서 대한민국의 공복이 되어 섬겨주는 나라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김일성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코를 꿰고 노예를 삼아 오늘 날 같이 종북으로 곳곳에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훈련을 받는다.

 

현재의 그들은 일치되는 언행통일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잘 숙달된 일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나 패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造化에 不調和(부조화)보다 더 심한 相衝(상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악마의 요구하는 이웃파괴를 이루는 것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가지려고 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만 응하게 되어 있다. 그것들이 인간을 통해 함부로 만물을 흉기로 삼는 것에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붕괴 당한다. 그것들이 붕괴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공포에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세계도 일체화된 연고로 그 세계가 우선은 서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2:26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그만큼 그것들의 세계는 훈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잘 숙달된 국민으로 전쟁하는 것인데 국가는 이미 내란적인 상태에 있고 훈련은 거리가 멀다. 이런 때에 군대라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한미군사동맹을 맺어 축적된 훈련의 精練(정련)은 가치가 크다. 아무리 그런 정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 조화를 이루는 것에 아주 숙달된 精兵(정병)이 되어야 한다.

 

그 때만이 백전백승하는 것이다. 調和(조화)에는 harmony, accord, agreement, harmonize, be in harmony, keeping, with, match, accord (go, agree) with. 등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造化(조화)에 調和(조화)를 이루게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하면 부조화(不調和) 상태가 되고 불화(不和)의 상태가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조화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 상충(相衝)에 빠진다. 오늘의 본문은 시간差(차)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造化(조화)와 그 시간에 調和(조화)를 이루는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神妙(신묘)와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 요구하는 시간에 맞는 행동통일이 되어야 하고 언어와 표현의 통일을 해야 한다. 그 요구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에 식초와 같고 눈에 연기같이 고통을 준다고 한다. 그 요구되는 언행과 시간의 認知(인지)함에 흐릿하고 침침하고 오련하고 어슴푸레하고 흐리멍덩하고, 아득아득하고 어렴풋하고 흐리터분하고 아득하고 아련하고 완하고 아리송하고 아물거리고 우련하고 가물거리고 상막하다면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 神妙(신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이에 아픔이 된다.

 

하나님의 조화에 調和(조화) 혜화(諧和)의 의미는 ‘shrewdness’ 예민한, 날카로운, 영리한, 통찰력이 있는, 빈틈없는, 재빠른 인지능력과 조건반사의 행동으로 호흡일체가 되는 기민하게, 현명하게 언행을 하는 것에 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黃金律(황금률)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 神妙(신묘)를 이루는 황금비율을 찾아내는 그런 사람을 현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다. 그런 지혜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라는 의미다. 이런 완성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시간에 발을 맞추지 못하는 자들은 부리는 자에게 눈에 연기와 이에 식초와 같다.

 

[잠언 9:9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지혜로 번역된 wise에는 wise, wise (man), skilful (in technical work), wise (in administration), shrewd, crafty, cunning, wily, subtle, learned, shrewd (class of men), prudent, wise (ethically and religiously)을 담고 있다. 특히 subtle 미묘한, 포착하기 힘든, 난해한 영역의 의미들에 대한 것 적으로부터 미묘한 차이의 뉘앙스 미묘한 유머 속에 담긴 공격에도 이를 식별하고 이에 맞는 공격을 방어를 해서 적을 이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 용액 기체 따위가 엷은 희박한 희미한 유체공학적인 흐름도 즉각 알아보는 능력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흐름의 미세한 감지에도 調和(조화)를 즉각 이뤄야 한다. 그런 지각 감각 등이 예민한 明敏(명민)한 인지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치도 두뇌 등이 明晳(명석)한 회전이 빠른 예민한 지성의 소유자들이 되어 적의 교활한 공격 음흉한 수법에 놀아나거나 당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물리치는 것 같은 대응 대처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을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 솜씨가 하나님의 요구에 만족을 드릴 수 있는 교묘한 창의력이 풍부한 탁월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빛으로 무장하여 subtlety적이어야 한다. 희박함에 대응속도가 높아야 한다. 파악하기 어려움의 뜻들의 섬세 미묘한 것들을 다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미묘한 것들을 지각 감각하는 지성 등의 예민 민감 예리한 통찰력 眼識(안식)의 힘을 하나님의 힘을 갖춰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밀한 구별에 세밀한 추리에 세밀한 이론 등의 정치(精緻) 치밀함 정묘함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5: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16: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나님의 눈빛은 정묘하시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마태복음25: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누가복음 19:17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요한계시록3:8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 이론의 치밀함을 갖추는 것에 완벽해야 한다. 특히 微妙(미묘)에서 섬세(纖細) 현묘(玄妙) 정묘(精妙) 불가사의(不可思議) 미묘복잡(微妙複雜) 미묘(微妙) 복잡(複雜)을 다 讀解(독해)하고 그것에 걸 맞는 조화를 이루는 힘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높은 차원에서 이 모든 황금률의 세계 그 첩경을 다 파악하고 내려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다 독해하는 능력으로 숙달되어야 한다. 그 눈빛으로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 神妙(신묘)를 내려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극히 낮은데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그 시간차를 극복하겠는가?

 

[누가복음12:35-40.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그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 그 지혜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와 그 지혜의 지휘를 받으면 하나님이 요구하는 이웃사랑을 완성하고 그런 세계는 玄妙(현묘) 微妙(미묘) 巧妙(교묘) 絶妙(절묘) 奧妙(오묘) 精妙(정묘) 奇妙(기묘) 神妙(신묘)의 영역을 출입하는 권능을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습성이 되고 문화가 되는 세상에는 지혜로운 후손들이 가득하다. 후손들이 하나님의 지혜의 축복을 받아 상상할 수 없는 문명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인류 속에 하나님의 기준 하는 이웃사랑을 완성하게 한다. 그 때 비로소 대한민국 만세가 되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그리스도의 할례의 중요성을 안다면 그 선택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 지혜로 한미군사동맹을 운용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문명 첨단의 문명이라도 악마가 사용하면 이웃파괴의 흉기가 된다. 그 때문에 영적안보가 중요한데 하나님이 사용하는 이기들이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하나님의 손에 길들여지는 자들로 드려져야 한다. 그것이 잘 훈련된 정병과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안보에 잘 숙달된 정병 같은 국민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기준 하는 이웃사랑을 이루고 인류 속에 하나님이 기준 하는 이웃사랑을 완성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오늘 날 악마의 종자들이 이웃사랑을 파괴하는데 북한인권 유린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종북이 북괴와 더불어 우리 국가의 영적안보와 군사안보와 경제안보와 정치안보와 법치안보를 무너지게 하였다. 이 무너진 성을 회복하려면 이를 치료하는 하나님과 동행에 훈련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5:23-25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이처럼 우리 대통령이 하나님과 시간을 맞추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데.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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