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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의원을 위한 특별 개인강좌 (시스템클럽)
지만원글독자 4 318 2006-02-15 17:41:10
다음은 시스템클럽 홈페이지 http://www.systemclub.co.kr 에 있는 글임.


Name
지만원


Subject
원희룡의원을 위한 특별 개인강좌




“덜 떨어진 인간”,

“막돼 먹은 인간”,

“사고력이 정지된 좌익 또라이”

이런 표현이 필자가 원희룡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것들이다. “그래도 일국의 국회의원이요, 한나라당의 최고위원까지 하는 사람을 놓고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이런 인간이 정치무대에서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니 대한민국이 한심한 것 아니냐” 이렇게 대꾸하고 싶다.


왜 사고력이 정지된 또라이인가


작년 6.24일 오전 7:20분부터 30분간 SBS 라디오에 전화로 원희룡 의원과 전화대담을 했다. 원희룡 의원이 추진하는 “일제강점하 민족차별옹호방지법”의 타당성 문제에 대한 대질 인터뷰였다,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외움물들을 나열하는데 10분이나 걸린 듯 했다. 전에 CBS방송에서 그와 맞토론을 할 때에도 중간 중간 평소에 외워가지고 다니는 것들을 한참씩 외우곤 했다. 공부도 안하고 독서도 하지 않고, 고시방에서 외우는 연습만 해서 습관적으로 그러려니 했다.

원희룡은 일제 강점 하에서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민족차별을 한 것은 엄청난 죄이고, 같은 민족인데도 누구는 양반의 신분이고, 누구는 노비의 신분으로 차별한 것은 죄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링컨이 흑인노예를 해방시켜 준 업적으로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 됐다. 옛날 조선인의 95% 역시 미국의 흑인노예들과 별로 차별 없는 생활을 했다. 그래도 흑인 노예들은 먹을 게 많아 굶주리지는 않았다.

일본은 소수의 양반계급에 학대받는 95%의 조선인들을 해방시켜주었다. 한국의 링컨이 아니었던가? 원희룡의 조상이 만일 노비였다면 그 조상은 일본에 감사했을 것이다. 한승조 교수보다 먼저 "축복"이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일본을 욕하기 전에 조선의 못난 짓부터 욕을 하라는 것이다. 일본을 욕하기 위해 따지면 따질수록 우리만 더 창피한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도 이렇게 차별을 했던 세상이었는데 점령군이 식민지 사람을 차별한 것이 무슨 큰 이변이란 말인가? 당시의 사회현상들은 당 시대의 산물이다. 빨갱이들이 가장 숭배한다는 하버마스가 한 말을 원희룡이게 다시 들려주고 싶다. “나중에 태어난 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오만이다”

시쳇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있다.

“정지된 사고력을 거지고 먼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나 잘하라”

필자는 과거에 대한 증오의 늪에 빠진 원희룡 유의 편집증 환자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바로 이러한 인간들이 조정에 가서 설치는 바람에 일본에 먹힌 것이다. 먹힐 짓을 해서 먹힌 것이다.

6.24일 SBS 라디오방송에서 필자는 원희룡에게 세 가지 예를 말해주고, 이것들이 원희룡법에 걸리는 지를 대답해달라고 했다.


지만원: “일본이 한일 합방을 하기 전에 한국엔 학교라는 게 없었고, 마을 단위에 서당만 있었다. 일본이 한국에 학교를 짓고 사범학교 출신들을 보내 현대 교육이 시작됐다. 학교가 없었으니 역사 공부도 없었다. 따라서 5,000년 역사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우리 역사도 일제 하에 비로소 연구됐던 내용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본의 강점을 옹호하는 것 같이 들릴텐데 원희룡법에 걸리는가?”


원희룡: “그런 연구는 해도 된다”


지만원: "지금도 인도에는 망국적인 신분차별 제도가 있다. 일제 이전에 한국에도 양반 상놈 노비 등 망국적 신분차별 제도가 있었다. 같은 민족에 대해 신분을 차별한 것이다. 민족 내부에서도 상놈을 차별하던 주제에 무슨 논리로 당시 일본의 민족차별을 욕하느냐, 스스로 차별주의에 빠졌던 사람들이 왜 일본의 차별주의만 부각시키느냐, 소수의 양반, 다수의 상놈이 있었다. 이런 신분차별을 없앤 존재가 일본이다. 이 때 신분차별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고맙다, 축복이다 했을까 저주한다 했을까? 이렇게 말하면 일본의 강점을 옹호하는 것 같이 들릴텐데 원희룡법에 걸리는가?”


원희룡: “안 걸린다”

지만원: "일제 36년 동안에 한반도에 건설된 철로, 도로, 항만, 발전소 등이 건설됐는데 만일 조선조가 그대로 36년간 존재했다면 이런 사회간접자본이 건설됐을까? 이렇게 말하면 일본의 강점을 옹호하는 것 같이 들릴텐데 원희룡법에 걸리는가?”

원희룡: “안 걸린다”

지만원: 그러면 어떤 게 원희룡법에 걸리는가?“

원희룡: ”축복, 은장도, 먹힐 만 해서 먹혔다, 자발적 위안부는 80%이고 강제적 위안부가 20%였다 등의 말은 처벌해야 한다.

참으로 또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3가지 질문내용은 그야말로 일제강점을 옹호하는 그래서 민족차별을 옹호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위 세 가지는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축복', '먹힐만해서 먹혔다'는 말들은 사실에 대한 평가다. 평가는 위법이 아니다. 법을 배웠다는 국회의원이 “사실에 대한 평가”에 대해 처벌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필자가 김대중과 원희룡을 빨갱이라고 말하면 이는 “평가” 또는 “생각”에 속한다. 그래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 고시공부를 하지 않은 상식인들도 다 아는 것을 원희룡만 모른다는 말인가?

위안부 문제도 역사적 통계의 하나다. 통계를 다양하게 발굴해야 역사에 대한 평가를 더 잘 할 수 있다. 이런 통계자료를 내놓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하니 참으로 또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은장도 발언에 대헤서는 재판부가 SBS에 다음과 같은 정정-사과 취지의 방송을 하라고 명령했다. 원희룡은 이후 다시는 은장도 발언에 대해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SBS의 은장도 왜곡 방송 사과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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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방송사는 2005년 3월 13일 밤, 세븐데이즈 프로에서 약 10분간에 걸쳐 친일파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지만원 박사가 한승조 교수를 비호했다는 내용과 지만원 박사가

운영하는 우익모임에서 강연한 내용 중 일부를 촬영하여 방송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자칫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을 수도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진심이 통하는 건강한 분위기로 이끌 수 있도록 지만원 박사가 그 강연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바를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기를 권유하였습니다.

본 방송사는 법원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여 지만원 박사가 주장하는 내용을

방송합니다.

지만원 박사는 자신의 강연내용은 은장도로 성을 지켰던 시대에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거리에 내돌리지 말고 국가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죄를 졌으니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였음을 밝혀 왔습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있었다면 이러한 오해가 풀리기를 바라며, 진실되고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참으로 바람직한 사회를 가꾸어가게 되기를 본 방송은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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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이 친북-좌익이라는 평가는 의정활동에서 이미 드러나 있다


원희룡은 특히 국가보안법에 대한 고무찬양죄를 없애는데 앞장섰고, 한나라당에서 열우당 행세를 해온 이단아였다.


원희룡이 임금됐다면 고종이 됐을 것


필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국가를 팔아먹은 사람은 이완용이 아니라 고종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살해했을 때 고종은 “변장의 끔찍한 변고”라 했고, 이등 박문에 대해서는 “선지자로서 후지자를 깨우치니 진실로 현자로다!”는 극찬을 했고, 극진한 문구의 조문까지 보냈다.

1909년 11월4일, 도쿄 하비야 공원에서 이등 박문의 국장이 열렸다. 고종은 거기에 10만원 조의금과 함께 ‘문충공 영전에 바치노라’는 제하에 조문을 낭독하게 했다.

이등박문에게 ‘문총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충단 언덕에 박문사라는 절을 짓고, 경희궁 정문인 홍화문을 뜯어 옮기면서 “은혜는 친척보다 낫고 의지함이 깊고 두터워 대궐에는 근심이 풀렸네.”라며 찬양까지 했다 한다.

왕실의 이은공은 일본 육군 중장이었다, 왕과 왕실이 이러한데 하물며 주권이 없던 민초들은 어떠했겠는가?

조선조로부터 짓밟혀 살고, 수탈만 당해온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조선왕보다 더 잘해주는 일본을 상대로 목숨을 내놓고 싸우려 했겠는가?

당시의 주권은 고종에게만 있었고, 백성들에게는 없었다. 그냥 민들레 꽃씨처럼 조선 땅에 뿌려졌기 때문에 조선에서 말이 통하는 이웃과 오손도손 살아왔던 인간 풀(민초)에 불과했는데, 여기에 무슨 친일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고종이 지금의 노무현처럼 적장에 충성하는 판에 이완용이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하여 임금인 고종이 버린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을까?

이완용이야 말로 인도의 ‘간디’처럼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건지려 노력한 사람이 아닐까?

민비, 대원군, 고종을 포함한 왕실의 인간들이 경복궁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뒤엉켜 있는 동안 경복궁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문맹률 98%의 민초들은 조선왕조의 수탈행위로부터 해방이 됐던 것이 아니었을까?

노무현과 원희룡 등이 김정일에 충성하듯이, 고종황제 역시 일본 천황에 충성했다. 조선은 원희룡 같은 사람들이 조정안에 들끓어서 망한 것이다. 이 역시 역사에 대한 필자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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