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효성 군은 미주 탈북자 협회 마영애 회장님의 아드님이며, 현재 버지니아 신학대학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효성군의 어머니, 마영애 씨는 북한에서 해외를 드나드는 정치보위부 공작원으로 일을 하다가
99년도에 숙청대상이 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공작원들이 당하는 일이 자신에게도 닥치자,
효성 군의 어머니는 가족에게 상황을 알리지 못한 채 급히 북한을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효성 군은 현재 24세이며, 먼저 북한을 탈출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2002년,
14살에 탈북 하여 서울 송파구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평양이 고향이었던 효성군은 다행히 한국의 문화에는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효성 군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탈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북한이 조국이었고,
누군가가 김정일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거부감마저 일어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도에 합법적으로 미국에 온 어머니가 북한의 실상을 알린다는 이유로 햇볕정책을 내세우던
한국 정부의 정보원에게 구타를 당하고 여권을 뺏기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2005년 4월에 효성군은 어머니를 찾아 멕시코를 통해서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게 됩니다.
그러나 텍사스에서 미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엘파소 불법 입국자 수용소에서 2개월 동안 수용당해 있다가
어머니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호소로 정부의 가석방 혜택을 받아
6월, 어머니를 만나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8월11일 뉴저지 뉴왁 이민국에서 추방 명령을 받았으며,
이 소식에 접한 한인 커뮤니티는 효성 군의 추방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006년, 북한과 한국 정부 양쪽에서 협박을 받고 있던 효성군의 가족은
미국에의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져서 뉴저지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과 아픔을 겪으며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효성군은
태극기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성조기를 대하면서 또 다른 혼란에 부딪쳐야만 했습니다.
효성군은 출석하던 뉴저지 소재 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고나서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간증을 하러 다녔는데, 때마침 하와이에 있는 열방대학에서 간증을 할 때였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에 그곳 목사님 한 분이 효성 군을 데리고 화산 관광을 간 자리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네가 지금 여기에서 화산 폭발로 죽게 된다면 너는 어디로 가게 될 것 같으냐?
천국 아니면 지옥?”
“저는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천국에 갈테고 죄가 많으면 지옥에 가겠지요.”
하지만 그 질문은 계속해서 효성 군을 따라다녔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FBI에서 인민군 장교로 있던 아버지가 이미 2004년에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효성 군은 아버지에게 인사도 못한 채 북한을 떠나왔습니다.
효성 군과 아버지는 어머니의 탈북 사실을 모른 채 실종된 줄만 알고 애타게 찾아다녔습니다.
4년 동안 그렇게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동네에서 몇 가구가 굶어 죽어 나가는 시련 중에도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효성군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효성 군 가족은 어머니가 탈북한 일로 북한 정보부의 감시 속에 있었습니다.
쥐를 잡기 위해 올라간 천정에서 도청장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보위부 사람들이 들이닥쳤어도 아버지가 깊은 사랑으로 돌보아 준 덕분에
효성 군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효성 군은 아버지를 잃은 고통 때문에 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낙천적인 것 같아 보여도 속에서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습니다.
효성 군에게는 이제 좋은 일도 없고 의미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L.A로 옮겨가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효성 군은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로 인해 방황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북한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았던 효성군은 삶의 방향을 잃고 마리화나와 마약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탈색하고 얼굴에는 피어싱을 하고 해골이 프린트 된 셔츠를 입고
마약 때문에 온 몸은 땀에 젖고 또한 아파왔습니다.
북한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가르칩니다.
준전시 태세이고, 그래서 국가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효성군은 북한에서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태평합니다.
효성 군은 너무 다른 두 세계 사이에 끼어서 극도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더욱 큰 고통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예수를 4대 성인 중의 한사람이라고 가르치고,
복음은 들을 수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데,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몰라서 지옥 간다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런 북한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렇다면 아버지는 지금 지옥에 계시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복음을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효성 군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분노에 가득 찬 효성 군은 교회와 하나님을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효성군의 어머니는 탈북자를 돕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미대륙 횡단을 7번이나 하며 공연과 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효성 군이 어머니의 여행에 동행해서 텍사스를 지날 때였습니다.
벌써 열 네 시간을 운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텍사스에서 유난히 산이 많은 지역을 지나고 있는데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이 그날따라 높고 푸르렀습니다.
산 보다 높은 하늘, 하늘보다 높은 우주, 우주보다 높은 하나님.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죄를 안 짓고 선하게 산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무한히 높은 곳에 계신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인가…
그러자 문득 하나님 밖에는 선한 분이 없고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 사건이 효성 군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했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또한 성경을 다시 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전서 2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도 실제 생활은 달라지지 않고 죄의 문제는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서면 다시 죄를 짓고 또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반복 되었습니다.
효성 군은 가족의 생계와 탈북하시는 분들의 정착 기금 조성을 위해 하루에 200kg의
순대를 만드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 양을 다 만들려면 무려 10시간이 걸립니다.
긴 시간인만큼 순대를 만들 때는 성경을 듣습니다.
“그 날은 시편 51편을 듣는 순서였습니다.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로 인하여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무슨 일인지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51편만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손에 낀 장갑을 벗을 수도 없어서 할 수없이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동안 연속으로 시편 51편을 듣고 있는 동안 제 마음속에서는 의문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런 죄를 짓고 하나님께 죄악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의문이 떠나지 않은 상태로 순대를 배달하고 나오다가 길에서 우연히 전도지를 주웠는데
거기에는 시편 32편에 대한 설교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즉시 눈에 들어오는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아무 일도 안했는데 죄가 가려졌다고 하셨습니다.
은혜 속에서 믿음으로만 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제야 그동안 접했던 성경말씀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조명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넘어지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용서와 성령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성화의 여정을 계속해서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앞에서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어머니가 거짓말하면 자식들은 변태하고 퇴폐적이라는것은 불보듯
번한 이치이다.
탈북여성 중 카나다가서까지 이중중첩생활을 일삼는 어미에 대한 항거로 자살한 사례가 바로 그 증거이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는 양심도 올곧고 행실도 올곧고 품행도 바라야 한다.
이제야 최효성이놈이 미국명문대학생이라고 사칭을하고 여기게시판에서 마영애을 적극 비호하는 이유를 알겠네
마영애에 대해 요약해서 소개해 드림니다.
마영애는 2000년 하나원 9기생이고 평양출신이였으며 그때 아코디언을 다루는것을 보았고 3개월 하나원 졸업이후 그는 서울로 갔었습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의 일상은 활달하였고 성격은 최악의 난폭녀 였습니다.
그는 하나원에서 40대 중반의 남자와 이성교재를 했고 그때 남자의 이름은 변상호 였습니다. 지금은 어떤 가명으로 사는지는 알수 없으나 남한 정착 3년만에 변상호 씨와 마영애와 함께 교회의 도움으로 미국에 갔었습니다.
역시 포악한 성격은 보자기속의 송곳이라고 비이성적으로 살아온 그의 패턴은 미국가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인터넷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습니다.
마영애는 가장 저렴한 포유동물이고 이성사회의 뇌를 가졌을뿐 인간의 륜리 이성 도덕 품격 대화 교제가 완전 반대대는 생명체이며 그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굉장히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교정이 안되는 세살버릇이 있기때문에 수명 다하는 날까지 그는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것입니다.
마영애와 인연을 만들지 마세요.
같은 탈북자로써 한반도의 망신이며 미끄락지 한 마리가 한강물을 더럽히는 몰골을 계속 10여년간을 넘게 봐 오다가 글을 올린것입니다.
마영애야 말로 사람 자체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육성되고 성장하였으면 저렇게 인간 말종이진 않을 겁니다.
그게다 북한의 생활 패턴이고 약육강식의 생존원리중에 하나를 선택 하다 보니 저렇게 저질적인 인간으로 되여 버린것입니다.
북한도 할말이 없는것이 원래 북한 사회 자체가 마영애 방식대로 안살면 살아나가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진국의 패러다임과 구천에사무친북한의 환경패턴은 극과 극을 초래 하였습니다.
물론 북한 의 룰은 그렇치만 모든 사람이 다 저렇게 마영애 방식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어떤이는 고지식하게 운명하고 어떤이는 북한의 세뇌속임수에 충성맹세하다 맑은하늘 한번 못보고 하직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영애 방식이 북한에서 생존하기에는 정치범수영소 가기전 까지는 앞선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왜냐 어떤 방법이든간에 드두러지고 생존하면 되니까요.
문명은 모든것의 총체이니까요.
하여튼 마영애 같은 사람은 다시 포악한 기질로 사회의 악이 되면 국제 재판소에 넘겨 사형을 선도 받아야 합니다. 이상 ....
마영애에 대해 요약해서 소개해 드림니다.
마영애는 2000년 하나원 9기생이고 평양출신이였으며 그때 아코디언을 다루는것을 보았고 3개월 하나원 졸업이후 그는 서울로 갔었습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의 일상은 활달하였고 성격은 최악의 난폭녀 였습니다.
그는 하나원에서 40대 중반의 남자와 이성교재를 했고 그때 남자의 이름은 변상호 였습니다. 지금은 어떤 가명으로 사는지는 알수 없으나 남한 정착 3년만에 변상호 씨와 마영애와 함께 교회의 도움으로 미국에 갔었습니다.
역시 포악한 성격은 보자기속의 송곳이라고 비이성적으로 살아온 그의 패턴은 미국가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인터넷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습니다.
마영애는 가장 저렴한 포유동물이고 이성사회의 뇌를 가졌을뿐 인간의 륜리 이성 도덕 품격 대화 교제가 완전 반대대는 생명체이며 그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굉장히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교정이 안되는 세살버릇이 있기때문에 수명 다하는 날까지 그는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것입니다.
마영애와 인연을 만들지 마세요.
같은 탈북자로써 한반도의 망신이며 미끄락지 한 마리가 한강물을 더럽히는 몰골을 계속 10여년간을 넘게 봐 오다가 글을 올린것입니다.
마영애야 말로 사람 자체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육성되고 성장하였으면 저렇게 인간 말종이진 않을 겁니다.
그게다 북한의 생활 패턴이고 약육강식의 생존원리중에 하나를 선택 하다 보니 저렇게 저질적인 인간으로 되여 버린것입니다.
북한도 할말이 없는것이 원래 북한 사회 자체가 마영애 방식대로 안살면 살아나가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선진국의 패러다임과 구천에사무친북한의 환경패턴은 극과 극을 초래 하였습니다.
물론 북한 의 룰은 그렇치만 모든 사람이 다 저렇게 마영애 방식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어떤이는 고지식하게 운명하고 어떤이는 북한의 세뇌속임수에 충성맹세하다 맑은하늘 한번 못보고 하직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영애 방식이 북한에서 생존하기에는 정치범수영소 가기전 까지는 앞선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왜냐 어떤 방법이든간에 드두러지고 생존하면 되니까요.
문명은 모든것의 총체이니까요.
하여튼 마영애 같은 사람은 다시 포악한 기질로 사회의 악이 되면 국제 재판소에 넘겨 사형을 선도 받아야 합니다.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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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호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4-03-16 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