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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조선중앙TV에도 언급된 채널A ‘이만갑’
United States 대남공작 0 771 2014-04-09 22:43:04

北 조선중앙TV에도 언급된 채널A ‘이만갑’

 기사입력 2013-05-20 03:00:00 기사수정 2013-05-20 09:32:12

재입북 탈북자 “조선족 동원한 조작극”
탈북자 출연프로 주민에 영향 우려

탈 북 여성들이 참여하는 종합편성TV 채널A의 간판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 대해 북한이 “전문 연예인과 중국 조선족을 활용한 조작·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탈북 여성들이 북한 생활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이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탈북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강경숙 씨는 17일 북한 조선중앙TV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주민들과의 좌담회’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공화국을 비방하는 탈북자 미녀단의 연예활동이라는 광대극이 벌어지고 있다. 동아일보 유선방송에서 방영되는 6명의 탈북 여자 편집물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기 나온 여성이 함북 경원군 출신이라는데 경원군에서 온 탈북자에게 물으니 ‘그런 여성은 없다’고 했다”며 “방송에 등장하는 사람은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전문 연예인이거나 중국 조선족 출신인 가짜”라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주민들은 휴대용저장장치(USB 메모리)로 한국 방송을 광범위하게 돌려보고 있다. 특히 이만갑은 북한 주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있을 것”이라며 “파급효과가 크다고 보고 이만갑에 대한 비난을 일부러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갑은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있다는 공로로 통일부장관상, 통일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30520/552619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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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부자 ip1 2014-04-09 23:19:31
    영화감독 정성산, 자신 때문에 북쪽에서 공개 처형 당한 아버지 사연 공개
    [세계일보]|2013-05-06|00면?|50판?|1122자
    북쪽 출신 정성산 영화감독이 6일 오전 방송된 C채널의 ‘최일도의 힐링토크 회복’에 출연해서
    탈북을 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솔직하게 전했다. 정성산 감독은 영화 ‘실미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의 시나리오를 각색했으며, 영화 ‘량강도 아이들’을 직접 연출했다. 그리고 대하소설 ‘장백산’의
    1∼3부 집필과 KBS 드라마 ‘진달래 꽃 필 때까지’도 집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정 감독은 다양한
    경력만큼이나 학업에 대한 열정도 많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 연극영화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와서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북한에 대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계속적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정 감독은 뮤지컬 ‘요덕스토리’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탈북한 자신 때문에 북쪽에 있는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서 돌에 맞아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로 참담하고 괴로웠던 심경을 토로했다. 자포자기로 운둔생활을
    하며 한을 삭이던 중 세상에 이러한 소식을 알리자는 생각이 들어 미친 듯이 이 작품을 썼다고 고백했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정 감독은 전했다. 당시 ‘요덕스토리’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한국의 레미제라블’ ‘지저스크라이스트’와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서특필 됐다.
    하지만 2006년 초연 이래 국내외에서 300회 이상 공연, 35만명이 관람했지만, 초기에 투자가 무산되어
    자신의 비용과 대출을 받아 진행하다보니 빚더미에 오를 수밖에 없었으며, 현재도 그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는 어려운 현실도 고백했다. 정성산 감독은 방송을 통해 자신의 2013년의 비전과 꿈에 대한 계획도
    전했다. 정 감독은 현재 NK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으며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69년 11월 평양 출생▲85년 평양 연극영화대학TV연출학과 수료▲86년 인민군 제2군단 정치부 시나리오작가▲94년 정치부 예술선동대 대장겸 연출가,북한여성들의 성상태 연구▲95년 제3국을 통해 귀순▲동국대 연극영화과 입학. KBS TV 「인민군 동작그만」에 출연.▲저서 「평양 무공해 섹스 모르디요
    탈북인들의 자립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지원하고 있다.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매일경제]|1996-11-29|33면?|기획,연재?|2389자
    ◎「인민군 동작그만」 대본집필 히트/정착금 1,700만원으로 서울생활/이젠 연극·방송으로 바쁜 나날95년
    1월 스물여섯살의 북한 젊은이가 대륙을 돌아돌아 홀홀단신 남한에 왔다.귀순 일곱달만인 지난해 8월 보호시설을 벗어난 그는 귀순자에게 지급되는 정부보조금 1천 7백만원을
    받아들고 혼자 맵고 추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담당형사에게 꾼 2백만원을 합친 1천9백만원으로 방 한칸을 달랑 얻어놓고 그 방에 드러누워 입에
    풀칠할 궁리만 하던 그 젊은이. 하지만 서울생활 2년이 되어가는 지금 너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남한사람이 되어 있다. 귀순자 정성산(27)씨.동국대 연극영화과 96학번, 코디미작가 겸 배우, 라디오 진행자, 영화시나리오 작가, 강연가, 세차장 일꾼
    , 맥주 배달부, 극단 대표 겸 연극배우….정씨는 북한에서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과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문선대에 해당하는 북한군
    선전대에서 작가겸 연출가로 활동하던 꿈많은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넘치는 끼와 자유에 대한 동경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는 네형제와 부모를 남겨두고 혼자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 귀순후 몇달간 정부 보호를 받다가 나온 그가 처음으로 남쪽에서 얻은 일자리는 세차장에서
    차닦는 일. 세차장일과 전국의 기업체 를 다니며 귀순강연회로 얻는 수입으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했다.하지만 그의 타고난 끼는 어쩔수 없었나 보다. 어느날 TV코미디 프로를 보다가 북한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며칠만에 대본을 하나 만들었다.「인민군 동작그만」이라는 엉뚱한 자작 코미디 대본을 완성해 들고 무턱대고 안면도 없는 모방송국
    코미디 제작부장의 집을 찾아 마냥 기다리기를 수차례.우여곡절끝에 정씨의 코미디 대본은 마침내 방송이 되었고, 첫회 방송중에 온 스텝들을 포복절도하게
    웃게 만들정도로 히트를 쳐그의 대본은 자그만치 4주치로 연장 방송이 됐다.거기다 자신이 쓴 코미디 프로에 직접 출연하는 흔치않는 기회까지 잡으면서 그의 남한생활은 승승장구
    순조롭게 풀려나갔다.자신을 얻은 그는 귀순한지 3년은 지나야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는 담당형사의 충고를 듣지 않고
    1년만인 올 초 대학에 들어갔다.그것도 전국에서 개성 강하기로 유명한 사람들만 모인다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96학번 새내기로
    말이다.『자신감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막상 학생들을 보니 용기가 나지않아 조선족 유학생이라고 하고 다녔습니다.
    1학기가 끝날 무렵 과 전체 행사에서 처음으로 귀순자라고 밝혔더니 모두들 놀라더군요.』학비는 정보 보조를 받고 다녔지만 생활비를 벌기위해 그는 오토바이를 장만해 틈틈히 맥주 배달도 다녔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너무 자유로와보여 처음엔는 어안이 다 벙벙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이곳 학생들처럼
    수업을 가끔 빼먹기도 하지만 북에서는 수업을 빼먹으면 그날치 쌀 배급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상도할 수 없던 일이죠.』학교에서 처음에는 물에 뜬 기름 처럼 겉돌던 그는 요즘은 한참 동생뻘 되는 동기들과 너무 죽이 잘맞아
    고민이다.입학 초기에 동기들과 노래방에 가서 「장녹수」와 「칠갑산」을 부르던 그는 자신의 노래를 들은
    동기들이 앵콜을 요청하지 않는데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그래서 맹연습끝에 「스피드」와 개다리 춤을 섭렵, 열렬한 앵콜요청을 받은 것을 뿌듯한 자랑거리로
    꼽고 있는 순진한 청년이기도 하다.『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 게 어려웠죠. 남쪽 사람들은 싫으면 대놓고 싫다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거절당하는게 두렵기도 했었거든요. 동기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저에게는 재미가 없어
    솔직히 처음에는 공부하는 심정으로 연습을 했지만 이제는 정말 저도 좋아하는 노래가 됐지요.』대학수업중에서 컴퓨터와 영어 철학이 어렵고, 전공은 북에서도 했던것들이라 크게 어렵지 않다는
    그는 올 가을에는 귀순자들을 중심으로 극단 오마니를 창단해 연극 「코리랑」을 성황리에 선보이기도 했다.『북한의 현실을 바로 알려주고 싶은 욕심으로 만든 연극이었습니다.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너무 왜곡되어 알려지고 있다는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종의 「북한 바로 알리기」 연극이라고
    할 수 있죠. 출연진들도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들이라 다들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서 좋은 평을
    얻었습니다.』요즘 그는 KBS에서 매주 월요일 밤 12시부터 1시간동안 「남과 북 함께 가는 길」이라는 라디오프로를
    진행하고 있고 별도로 「정성산의 북한이야기」라는 코너도 마련하고 있다.북한 소식도 전하고 실향민의 아픔도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그가이런 프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북한 바로 알리기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때문이다.북한 젊은이들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영화 작업에도 관여하고 있고,내년 3월쯤에는 이념을 배제한
    무겁지 않은 북한 소재 코미디 연극도 선보일 예정이라 남한에서의 24시간은 그에게 늘 분주하기만 하다.<반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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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니까 ip1 2014-04-09 23:39:30
    망명자 극단 ‘오마니’ 창단 주도 정성산씨
    [한겨레]|1996-08-26|06면 |기획,연재 |1255자
    ◎“북한 실상 연극 통해 알리고파”“지금까지 남한은 북한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그 곳 사람들이 못살고 못먹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하게 봐달라. 거기도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극단 오마니 대표단원이자 연출자인 정성산(27)씨는 귀순자들이 극단을 만든 까닭을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난 6월17일, 북에서 온 10명의 망명자들은 이렇게 극단을 만들고 그리운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마니’란 이름을 붙였다. 창단을 주도한 정씨가 이 일을 벌이게 된 것은 방송국에서 코미디 구성작가로 일하면서 느낀 괴로움 때문이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코미디나 방송은 그곳 사람들을 남한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바보로 보여준다. 통일을 대비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민족을 찾아 왔는데 우리들이 왜 이땅에서 소외돼야 하는가.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 남고 싶다”는 이들의 심정이 이 일에 더욱 매달리게 했다. 망명자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의 존재의식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의 연극 〈코리랑〉(8월15일∼9월 30일 대학로 강강술래소극장) 무대엔 분단을 암시하는 철조망이 쳐있고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을 상징하는 인형들이 우리민족을 현혹하고 있다. 연극은 〈어머니〉 〈반갑습니다〉 등 북한가요를 들려주기도 하고, 관객과 자유토론을 주고 받으며 마음의 경계를 허문다. “북에서 연애는 어떻게 하는가”, “김일성에 대해 그 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객석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평양출신인 정씨는 남으로 내려오기 전 북한군 2군단 선전대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일했다. 부대에서 몰래 남한 방송을 들은 것이 발각돼 추궁을 받게 되자 부대를 탈출해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귀순자에 대해 쉽게 동정하지만 동정은 곧 식고 멸시와 차가운 시선, 어려운 생활만이 남는” 자신들의 처지가 괴로웠다.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한 끝에 그는 이제 서태지 김건모의 노래들을 멋들어지게 부를만큼 이 곳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내가 노력한 것처럼 이 곳 사람들도 북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하는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통일에 대비해 남북의 노래, 영화 등 문화를 자유롭게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성산씨는 반드시 통일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아직 말이 통하고 민족의 감정이 같지 않은가. 그 때문에 여기서도 마음을 터놓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마음을 열면 만사는 통하는 것, 통일도 그런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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