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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탈북자의 사랑
United States 국경을넘어 0 234 2014-04-25 12:45:23
 북한 탈북자의 사랑

북 한에 관해 우리는, 가혹한 정권, 강제수용소, 무채색 거리, 선전구호, 끊임없는 굶주림, 로봇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듣는다. 물론 이런 모습이 사실이지만 그곳에도 사랑이 존재한다. 어둠 속에 숨은 검은 고양이처럼 종종 보이지 않을 뿐이다. 탈북자인 영남과 은경(가명)은 오랜 값비싼 대가를 치른 여정 후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비록 한 커플의 이야기이지만, 이는 고장난 한 국가의 이야기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고통을 회복시킬 수 있다.

영남
만약 다시 생을 살게 된다면, 당신은 같은 선택을 할 것이가? 영남은 절대 그렇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팔과 다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로 의자에 앉아있는 그는, 가족을 남겨두고 돈과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떠난 것이 끔찍한 실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탈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꽤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을 알았기에 중국에 있는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북한에 있을 때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왔다. 기독교인들이 집 안으로 초대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단지 돈만 원했다. 그들이 자기를 속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문 앞에서 떨며 기다렸고, 기독교인들은 그가 요구하는 것을 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영남은 공안요원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나는 살아남아야만 한다. 나는 살아남아야만 한다. 살아남아야만 해.’ 영남은 살아남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불현듯 지난번 탈출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교도관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빼앗은 후 그를 놓아주었다. 영남은 다시 중국으로 도망쳤지만 또 다시 체포되어 이제 같은 감옥,  같은 교도관 앞에 끌려온 것이다. “왜 돌아온 거지? 나에게 돈을 주려고 온 건가?” 라고 그 교도관은 소리를 질렀다. 영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교도관은 신문지에 싸인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영남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군인과 권투선수를 지낸 경험들이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방망이는 이마를 향해 날아왔다. 영남은 눈을 감지 않고 그 1000분의1초의 순간에 집중했다. 그는 살짝 머리를 돌려 정면타격을 피했다. 죽이거나 뇌손상을 입히려는 교도관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영남은 몽둥이에만 집중해야 했다. 아내인 봉자와 아들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한참을 얻어맞은 후, 영남은 간수들에게 이끌려 초만원인 감방으로 갔다. 감방은 50센티미터 높이의 입구로 기어들어가야만 했다.

은경
은경 역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은경은 남편에게 네 살된 딸과 세 살된 아들을 맡기고 구리 무역을 하기 위해 북부 도시로 떠났는데, 동업자가 배반하고 그녀에게 빌린 돈과 구리를 가지고 도망쳤다. 그녀는 돈 한푼 없이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아마도 광산에서 죽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잠시 중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후에 은경이 말했다. “돈 없이는 아이들을 부양할 수 없으니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했으니까요.”
은경은 자기가 인신매매 당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와 다른 많은 여자들이 어떤 방에 갇혔다가 중국으로 끌려갔다. 여자들은 한 명씩 중국남자와 결혼하도록 팔려갔다. 은경은 “남편을 잃은지 얼마 안됩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도록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항의했다. 인신매매범들은 그 말을 듣고 그녀를 농장으로 보냈다. 농장에서 그녀는 가정부 일을 했고, 가족들은 그녀에게 매우 친절히 대해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마치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어요” 그 결정으로 그녀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중국 경찰관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북한으로 송환했다. 은경은 영남이 몇 주 전에 잡혀온 바로 그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고문은 받지 않았지만 작은 노동수용소에서 몇 달 동안 “재교육” 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풀려나자마자 가족에게 돌아간 그녀는 아이들이 없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식구들이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거예요. 고아원 아이들은 죽는다는 걸 누구나 알아요. 저는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어요. 그러나 저는 여행허가를 받을 수 없어서 결국 열일곱살 된 제 여동생이 갔어요.” 동생은 한 아이만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허약해진 딸을 데리고 왔다. “딸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 없었어요.”라고 은경은 말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간청하여 음식을 얻어다 딸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의 몸 상태가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죠.” “엄마, 너무 피곤해요”라고 은경의 딸이 말했다. “이리 오렴, 엄마 무릎 위에 누워서 좀 자거라”라고 은경은 딸에게 말했다. 딸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내 마음이 정말 너무나도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이것이 은경이 그 순간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이다. 얼마 후에 그녀는 세 살 된 아들이 장교의 집에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경은 아들이 그 집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나을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떠났고 결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만남과 소망
영남은 은경과 같은 식당의 부엌에서 일했다. 영남은 교도관에게 또 잡혀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고 다시 풀려났다. 감옥에서 불과 몇 백마일 떨어진 곳에 가족이 있었지만, 만약 그가 살아남으려면, 유일한 선택은 중국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서 영남은 은경을 만났다. 둘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게 있었다. 그들은 그 기간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비밀리에 성경공부를 했고, 또 비밀리에 결혼을 했다. 얼마 후 베이징의 상황이 탈북자들에게 위험해지자 식당 주인은 위조여권을 마련해서 영남과 은경을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현재 영남과 은경은 한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제 아기의 눈매 말고는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상기시키는 것은 거의 없다. 아기의 눈매는 비참한 나라에 두고 온 아들의 눈매를 닮았다.
중 국에서 탈출한 후, 영남과 은경은 목사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실제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셨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셨고, 인도해 주셨으며, 아기도 주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참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두고 온 자녀들 또한 언젠가 북한을 빠져 나오도록 도와주시라고 기도드립니다. 지금 십대가 되었을텐데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영남과 은경에게, 새 아기는 하나님의 소망과 사랑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우리 얼굴에 흐르는 모든 눈물이 씻겨질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셨기에 하나님은 자녀를 잃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신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겁니다. 그분은 사랑이시니까요.”

http://www.opendoors.or.kr/persecution/north-korea/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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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성아 ip1 2014-04-25 16:01:53
    어린놈자식이 가지가지하네 효성아 너 네편네 달아나ㅆ다며,???
    너 사내구실 못하는거 옳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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