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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日에게 도전장을 보낸 李英和 (이일삼 번역)
헌변홈피독자 0 305 2006-03-08 01:08:02
다음은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 홈페이지


http://www.law717.org 의 자유게시판에 있는 것임.


金正日에게 도전장을 보낸 李英和



피납자 전원 및 金正日과 교환하겠다는 조건으로 북조선의 引渡요구에 응하겠다

李英和/大阪大 교수, 재일교포 3세


번역 이일삼(재일교포)



2월 4일부터 8개월만에 再開된 日朝협의는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북측이 일본측에게 납치 실행범을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하는 역제의를 북조선국민 유괴납치범으로 日本人 범죄자 7명의 인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7인 중의 한 사람이 李英和씨이다.
李氏는 本誌에 북조선의 내부정보를 보고해 왔다. ‘북조선 민중의 救濟하자!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의 대표이며, 91년 일본에서 북조선으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유학생이었으며 그의 평양생활의 체험에 기초하여 귀국 후 93년 RENK를 설립하였다. 그 후 조총련으로부터 끊임없는 협박과 습격을 받아 왔는데 심지어 김정일로부터는 암살지령까지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그 李英和씨가 이번 북조선의 인도요구를 하게 된 북측의 내부사정을 분석하면서 김정일에게 도전장을 내던졌다.
“李英和를 아시지요?” 2월 4일 北京에서 8개월만에 재개된 日朝협의의 최종일 북조선측의 수석대표 宋日昊(日朝교섭담당 大使)는 기자회견석상에서 야릇한 웃음을 띠면서 내 이름을 거명하며, 7명의 身柄인도를 일본 정부에게 요구했음을 밝혔다. 그래서 지금까지 북조선이 납치해간 일본인 전원과 김정일을 일본에게 인도한다면 이영화는 기꺼이 북측의 引渡提議에 응해 줄 것이라 나온 것이다.
북조선의 김정일 정권이 일본정부에게 신변인도를 요구한 7인의 “북조선 국민납치, 유괴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탈북자를 한국이나 일본으로 망명시킨 인도주의적 救援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번의 협의가 성과없이 끝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해 오던 바였다(本誌 전전호, 3호 Sapio Eye 참조). 그러나 설마 이러한 奇策(愚策)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 밖이었다.
宋日昊의 말로는 북조선 형사 제69조 조선민족에 대한 적대행위 조항에 위반하였으므로 5년이상 10년이내의 노동교화형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북조선 형무소에서 5년이상의 징역이라면 사실상의 死刑이다. 식사도 잘 주지 않으면서 최고의 극도의 학대를 하는 것으로 3년도 못가서 반 수 이상이 사망하게 되어 있다.
내 경우에는 93년에 북측 비밀경찰, 곧 국가안전보위부 제13국으로부터 납치 살해지령(223호 작전)이 내려져 있다. 나의 사진이 실린 수배전단은 이미 배포되었으며 保衛部 산하의 ‘도망반역자 탐정처’인 41분국이 이미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인도하라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화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다. 93년의 RENK 결성 후 나는 북조선 민주화운동에 종사해 왔다. 세계 10대 독재자들 중 2위를 차지하는 김정일로부터 내가 대상자로 指名되었으니 이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이 정도는 가히 훈장감인데 그 죄목내용을 들여다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장군님의 ‘御(ご)亂心’(어지럽힘)이라는 것이고, 인도요구의 배경과 의도를 분석해 보면 김정일 정권의 강심장이 아니라 약한 마음이 드러났다. 북조선 공작기관에서 올라오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북조선 재외공민인 나에게 국가전복 음모죄를 적용하라!?

우선 혐의내용부터 따져보자. 나에게 걸려온 혐의는 다음 5건이다. ① 96년 오수용 이청미를 大阪으로 유괴했다. ② 91년 탈북자 7인을 북경의 국련난민고등판무관 사무실로 연행하여 大阪으로 납치했다는 것이다.
특히 웃기는 것이 ②의 납치사건이다. 이 사건에는 확실하게 내가 전면적으로 관여했다. 물론 납치가 아니라 脫北者들에 의한 史上초유의 “公館 뛰어 들어가기”사건이다. 그 후 2002년 2월의 瀋陽사건으로 알려진 한미양 一家 친족 7인이 7월 난민인정과 한국망명을 요구하며 북경의 UNHCRC(UN난민고등판무관)에 달려가서 농성하였다. 그 내용은 세계의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 외의 3건도 UN기관 일본대사관 中韓兩政府가 여러번에 걸쳐서 본인들의 망명의지를 확인했던 일들이다.
만일 중국으로 도망간 탈북자들을 돕는 것이 범죄가 되며 5년이상 10년이하의 징역에 해당된다면 김정일이 90년대 후반에 300만명을 굶겨죽이고 수십만의 난민을 만들어낸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현재도 연간 3만명 이상의 아동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죄는 만 번 죽여도 좋은 범죄가 아닌가. 하늘에 침뱉는 행위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엉터리라는 것은 일본인 7인이라고 하나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 엄연히 북조선의 在外公民(조선족 재일 3세)이다.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선거에도 투표한 나를 외국인에게나 적용되는 법령위반을 적용시키다니 너무나 서투른 짓이다. 나를 차라리 反體制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형법59조(국가전복음모죄, 최고 사형)를 적용한다면 말이 된다. 그런 나에게 납치나 유괴의 죄목을 쒸운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조선측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표면상의 이유와 내용상의 이유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교섭을 지연시키려면 苦肉之策이 아니겠는가. 군부나 당의 특수공작기관이 필사적으로 연명하려는 안간힘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교섭단절을 겁내는 북조선의 苦肉之策

본지 전월호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번 협의는 처음부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쌍방교섭단의 진용이 바뀜에 따른 相見禮밖에 안된다. 그러나 북조선을 둘러싼 상황이 크게 변해버렸다.
중국의 후진타오는 작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례적으로 가혹한 주문을 했다. “개혁개방정책을 채용함이 경제원조의 전제조건이며 그럴 결심이 섰을 때 중국을 방문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미국은 달러위조・가짜담배 사건을 끌어내어 금융제재를 내걸었다.
이런 美中합작의 압력으로 김정일의 체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무리 경제개혁을 결심해도 금융제재가 강화되면 소용이 없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그래서 후진타오가 결심이 서면 아무 때고 중국을 방문하라고하니 김정일도 엉겁결에 중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訪中으로 후진타오의 일정조정이 안되어 首腦회담이 최후의 날로 밀려났다. 그동안 김정일은 중국정부의 경제도시를 돌아다니며 시산을 허비해야 했다.
訪中을 결심한 이상 김정일은 경제개혁을 회피하는 방법이 없다. 마약제조・달러위조・가짜담배를 약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평양으로부터 특별 비행기를 세 번이나 불러들이며 군부와 당공작부의 중진을 동행시켰다. 경제개혁의 실시와 범죄행위의 재발방지를 위해 군과 당의 元老의 확약을 받아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감안하여 일본정부도 日朝교섭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이제 경제제재를 들먹이며 辛光洙를 비롯한 實行犯의 인도도 요구하는 등 공세로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이 단순한 의례적인 일로 간주하려는 북측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협상의 성과없음→교섭중단→제재발동으로 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납치범 인도요구를 급조하여 교섭에 나선 것이다. 말이 되던 안되던 교섭에 빛을 내서 교섭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속시키려는 그들의 고육지책임에 변함이 없다.


궁한 김에 납북자 납치사건을 조작해 냈던 공작기관

가련한 발상이긴하나 그들의 인도요구에는 그나름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전전호에서 나는 북조선의 교섭대표 宋日昊를 小物이라고 비아냥하였다. 그는 통역인 黃虎男보다도 한 수 아래이며 그 자가 나서서 日朝교섭을 손대는 한 아무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고 시사하였다. 이에 분개한 宋日昊가 나에게 보복하려고 내 이름을 들먹인 것이다.
또 하나는 宋日昊 등 공식대표단 뒤에서 조종하는 공작기관의 살아남기 작전이다.
교섭의 전면에 나서는 10명 남짓의 북측대표단과는 별도로 10명 가령의 배후집단이 회담장에 가까운 호텔에 진을 치고 있다. 이 그림자 집단이 日朝교섭의 주역이며 전원이 유력공작기관의 요원들이다.
이번의 서투른 引渡요구는 아마도 이들 공작기관의 발상인 듯하다. 그들은 현재 마약・달러위조 등의 문제로 괴로운 입장에 몰려있다. 그 중에는 實行犯의 처벌이나 일본으로의 인도는 그들 조직의 존망에 관련된 큰문제이다. 그들 공작기관으로서는 납치문제의 전면해결의 시나리오에서 실행범 책임자의 책임추구만은 면제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괴로운 김에 납북자 납치사건을 조작하여 상쇄해 보려고 드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공작기관은 제발 그것만은 눈감아 달라고 울어대는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납치피해자 전원과 김정일을 묶어서 나와 교환한다면 조선민주화를 위하여 기꺼이 인도로 수락하겠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을 종합한다면 이번의 日朝교섭은 무언가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면 앞으로의 진전을 예견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제 朝日교섭과 6자협의를 포기할 여유도, 선택의 여지도 없게 되어 있다. 金正日體制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대화와 압력, 지금까지 결여되어 있었던 압력을 강화해나 갈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제재도 효과가 있지만 일본정부는 人權문제로 정치적 압력을 추가해야 한다. 이번의 부당한 그들의 생트집을 기회로 하여 미국처럼 일본판 북조선인권법을 조속히 가결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 주간「사피오」, 2006년 3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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