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종보고서(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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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종보고서(요약 5.18 당시 광주에는 오직 하나의 시위대만 존재했다. 10.26이후 축차 침투한 살인기계 북한특수군 600명이다. 광주에서는 이들을 연고대생 600명이라 불렀다. 살벌했던 5.17계엄이 선포되면서 광주의 운동권 및 대학생들은 잡혀갔거나 사태기간 내내 숨어있었다. 생각 없는 10대와 넝마주이, 껌팔이, 철공 등 59개 직종의 개념 없는 사회불만 계급이 부나비 되어 소모품 노릇을 했다. 600명은 4시간 만에 44개 무기고를 털어 광주군과 계엄군간의 전쟁을 유도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광주교도소를 점령해 수용자들을 이용하려다가 또 실패해. 26일 밤 안개처럼 사라졌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형을 받은 12명의 대부분은 겨우 5월 26일 하루 동안 ‘결사항전’을 선포해 계엄군 작전을 불러들인 죗값을 치른 ‘무개념 부나비들’이었다. 이 ‘600명의 북한군’을 놓고 1997년 대법원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 했고,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게 조기에 진압한 전두환 등을 내란범이라 판시했다. 1981년의 대법원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600명이 저지른 가공스런 살인-파괴 행위에 대해 처벌할 자를 찾지 못했다. . <XMP>2014.9.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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