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찾기 vs 땅굴 감추기, 땅굴 깨기vs 땅굴역대책. 과연 누가 이 전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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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땅굴 찾기 vs 땅굴 감추기, 땅굴 깨기vs 땅굴역대책. 과연 누가 이 전투에서 이길 것인가?
[잠언 26:26궤휼로 그 감정을 감출찌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모든 것을 다 통찰하는 눈을 가진다면 그런 군중 또는 국민이 있다면, 결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회는 투명한 사회가 될 것이다. 언어유희로 세상의 눈을 호리는 자들이 전혀 없을 것이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거짓이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眞僞(진위)를 가리는 빛의 明度(명도)의 차이에 있다. 인간의 세상은 전문가의 영역이 있고 그 전문가도 역시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다. 사람을 속이고 싶어서 속이는 것이 아니라 속일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속이게 되는 無知(무지)도 있다.
이를 過信(과신) 盲信(맹신) 迷信(미신)이라 한다. 이런 것에 속고 속이는 자들은 비과학적이라고 한다. 과학은 인간의 방법으로 하는 진리(참된 원리)추구이다. 전문가들의 세상에서 굳게 자리잡는 비과학성은 분명하게 있는 것 같다. 이는 무지의 공유다. 무지를 공유하는 회중에서 어떻게 무지가 드러나겠는가? 무지는 다만 무지와 통용할 뿐이다. 회중의 눈이 밝아서 앞에 나와 말하는 자들이 무지한 자들임을 즉각 알 수 있다면, 결코 그런 무지가 그 자리에서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곧 물리침을 당할 것이다. 어둠은 빛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가진 그 無知(무지)는 곧 빛의 밝기에 있다. 그 밝기는 그의 限界(한계)가 되는데, 모든 것 또는 모든 기회를 악용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악마의 흉기로 삼는다. 그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당국자들은 그 전문성의 권위에 무지를 악용하면 나라에 이적짓이 된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모르면 국민에게 그 일을 아는 자들을 찾는다고 공고하면 된다. 오늘 본문은 회중은 궤휼로 감춘 악을 드러나게 한다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미리 그 일을 할 자들을 국민 중에 준비해두셨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려 각성케 함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각성을 구하자고 강조한다. 성령의 각성을 구하면 하나님의 빛을 우리 국민 속에 부어주신다. 그 빛을 가지면 악마의 궤휼로 땅굴을 파고 감추는 짓을 다 적발할 수 있고, 간파 격파 분쇄할 수 있게 된다. 능히 이 모든 전투에 백전백승하게 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이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고 날마다 강조한다. 지혜를 오직 예수 안에서 주시든지 사람을 보내시든지 하신다. 그 때문에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방법에 성령의 각성으로 하자고 강조 또 강조한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 빛으로 행하는 투명한 세상의 기준이시다. 하나님의 빛을 인간에게 주시는데, 이를 지혜와 명철이라 한다. 한미군사동맹에서 분명한 빈틈은 남침땅굴이다. 남침땅굴은 분명히 존재한다. 세밀하게 말해서 거제도 곧 한반도 남단까지 땅굴은 존재한다. 하지만 국방전문가들의 무지를 악용하여 그것을 미신으로 몰아간다. 전 세계에서 다우징을 하는 자들이 누구고, 어느 나라가 그를 인정하고 있는지 모든 것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서 그것에 정확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그것을 자기들 무지를 핑계 삼아 미신으로 몬다.
대단한 유아독존식의 사고방식이다. 땅굴찾기와 땅굴깨기는 국가생존의 문제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가능하다면, 버럭 지하수 환기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것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이를 다각도의 전문가들이 한반도의 지형 곳곳을 절개하고 들어가서 실험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특히 다우징으로 주장하시는 분들의 高見(고견)을 달갑게 수용하고 이를 실험 탐구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국방전문가들의 해야 할 기본자세인데, 이를 거부한다. 이는 반역자이기에 그리하고 무사안일 때문이란다.
그 때문에 땅굴찾기와 땅굴깨기의 빛은 국방담당 전문가들의 無知(무지)라는 逆(역)대책에 당하게 된다. 반역 때문에 하는지 몸보신 때문에 하는지는 수사해봐야 하겠지만 우리 국방부에 등불은 적에게 놀아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낡고 구식된 무기와 사용할 수는 있으나 적을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병참의 의미와 방산의 부패는 하늘을 찌르니 구멍 뻥 뚫린 안보라 하겠다. 적어도 땅굴에는 캄캄한 밤이라 하겠다. 우리 국방부의 빛이 북괴의 빛보다 더 차원이 높아야 한다. 그 빛으로 우리 내부를 다 통찰해야 하는데 이를 감추는 궤휼이 거기에 서린다.
땅굴찾기와 땅굴깨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군의 빈틈을 막는 重且大(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등불이 없으니 어찌 찾아낼 수 있고 이를 깰 수 있겠는가? 기실 지하도시를 만드는 능력에 따라 그 땅굴은 전쟁수행의 차원 높은 하드웨어가 될 것이다. 高度(고도)의 소프트웨어를 받쳐줄 하드웨어로 구축되었다면 그렇다. 북괴의 땅굴건설 기술은 전 세계 최고라 한다. 이런 기술의 능력이 무엇인지 우리 국방담당자들은 자세히 알아야 한다.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百勝(백전백승)인데, 이 기술력의 대칭은 이미 없는 것 같다. 아찔한 상황이다.
고도의 용간策(책)과 땅굴구축 및 운영의 궤휼은 그들 나름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이다. 그 경지의 빛으로 그 지하도시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면 그 경지의 빛을 꺼야 한다. 이 빛이 꺼지면 그 도시는 無用之物(무용지물)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수렁 올무 족쇄 함정 덫이 되어 패망케 할 것이다.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빛으로 그 땅굴을 無力化(무력화) 하는 것이다. 빛이 더 강하면 약한 빛은 꺼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지금은 국방부의 무지로 인해 땅굴찾기의 민간집단이 나섰다. 하지만 그 빛보다 땅굴을 만들고 운용하는 북괴의 빛이 더 밝은 것 같다.
이런 빛의 차이로 인해 땅굴은 여전히 북괴 곧 남북빨갱이의 비밀병기가 된다. 문제는 그 빛을 꺼지게 하는 방법에 있다. 그 때문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구하자는 것이다. 사실 땅굴찾기 전문가들이 국민의 눈을 더 밝히는 성령의 각성에 주력해야 한다. 성령 각성은 국민의 눈을 밝히는 하나님의 빛의 힘이다. 하나님의 빛을 국민에게 공유케 한다면, 그만큼의 빛을 공유하는 것이다. 빛이 30촉 1만촉이면 무엇하나? 공유할 수 없으니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자성해야 한다. 과연 우리 국민의 눈을 밝힐 능력이 있는가?
적의 빛 곧 적이 그 땅굴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빛보다 더 밝은 빛을 가진 것인가? 정밀하게 엄격하게 비교해야 한다. 지혜는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빛이고, 명철은 그것을 파괴하는 빛이다. 그 지혜의 명철의 빛이 적의 지혜와 빛의 밝기보다 더 밝아야 한다. 땅굴찾기의 지혜와 땅굴 감추기의 지혜가 서로 맞서는 것이다. 땅굴깨기의 명철과 땅굴 유지운영 逆대책의 명철이 서로 맞서는 것이다. 이런 것은 결국 차원과 수의 싸움인데, 악마의 간교와 사특함 그 궤휼로 하는 북괴다. 그것이 저들의 절대 약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자고 강조한다.
적의 지혜와 명철의 빛이란 곧 땅굴을 만드는 지혜와 그것을 유지하고 응용하여 전쟁을 이기게 하는 명철이 그것이다. 적의 지혜와 명철을 능가하지 못하면 구국을 할 수가 없다. 전쟁에서 지게 된다. 생존에 걸린 문제인데, 그렇다면 할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는 국가의 생존이고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을 覺醒(각성)시키는 능력이다. 政府(정부) 곧 당국자의 눈을 밝히지 못하면 국민의 눈이라도 밝혀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역부족이라면 口頭禪(구두선)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북괴의 남침야욕을 이루는 결정적인 빈틈이 남침땅굴이고, 이를 운영하는 計巧(계교)라 한다. 이들의 지혜와 명철은 사실 악마의 것이기에 이를 詭譎(궤휼)(‘by deceit’ 원어로 mashsha'own{mash-shaw-ohn'}이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guile, dissimulation, deceit를 담고 있다.)이라 한다. 그들은 그 빛으로 모든 것을 모든 기회를 악용하여 乘勝長驅(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를 밝히는 분들의 수고를 언제나 逆(역)대책으로 무위로 돌려놓는다. 그만큼 더 밝다는 말이다. 하여 정부당국자들에게 미신이란 소리만 듣고 공감을 자아내지 못한다. 그렇게 속수무책이다.
국민적인 관심사와 국민적인 각성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결정적인 한방을 만드는 것이 곧 지혜와 명철인데, 적이 가진 차원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에 會衆(회중)이라는 의미가 적을 통찰해내는 모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 선택에는 구하고 찾고 두드림이 있다. 그때 그것을 주셔야 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준비하신다. 이를 여호와 이레라 한다. Jehovah-jireh="Jehovah sees"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다. 미래도 보신다.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구하면 그것을 주시려고 이미 준비하신다. 그 때문에 우리 국민 중에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받는 자들이 있다. 그분들을 널리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온유와 겸손이 없다면, 적을 이기는 차원의 빛을 지혜와 명철을 얻을 수가 없다. 현재의 빛에 묶여 더 이상 나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전쟁은 나고 敗戰(패전)을 하게 된다. 땅굴 찾는 수고의 보람이 없게 된다. 우리는 지금 會衆(회중) 속에 두신 하나님의 비밀을 논하고 있다. 국민 속에 두신 하나님의 비밀 "Jehovah sees" 을 강조한다.
그 때문에 골리앗을 이길 자를 널리 찾다가 다윗을 기용한 사울王(왕)과 나라의 미래를 알려주는 꿈 계시를 받아 그 비밀을 해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가진 인물을 구하는 그 파라오王(왕)을 본받아야 한다. 온유는 수용력이고 겸손은 적응력이다. 진정 애국을 원한다면 개인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적의 빛을 능가하여, 그 빛을 無力(무력)하게 할 지혜와 명철한 자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순수한 金(금)이 되고자 하는 固有性(고유성)의 결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결집이 적을 능가하는 지혜와 명철이라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들에게 그 지혜와 명철을 주시려고 그런 일을 해내는 자들을 미리 아시고 준비하신다. 그런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기다려야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때 그 즉시 도와주시려면 미리 준비하셔야 한다. 땅굴을 만들고 유지하고 이를 승전으로 응용하는 적의 지혜와 명철을 凌駕(능가)하는 지혜와 명철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께만 있다. 그 하나님은 "Jehovah sees"이시다. 다윗을 준비해오셨고 요셉을 준비해 오신 것이다.
<구국기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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