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한 남북빨갱이의 核(핵)공갈협박에 눌려 대북전단지 보내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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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핵무장한 남북빨갱이의 核(핵)공갈협박에 눌려 대북전단지 보내지 말라는 心理戰(심리전)의 패배심리 彭排(팽배), 이 非對稱(비대칭)을 극복해야 한다.
[잠언 29:25.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이해치 못하는 남북대화의 의미는 自繩自縛(자승자박)의 길로 가게 한다. 모처럼 생긴 대화분위기를 깨지게 하는 것은 대북전단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酷評(혹평)한다. 늘 그런 식으로 북에 자유와 진실을 보내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민복단장이 이 때문에 의정부지원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으나 그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고 데일리안은 보도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의 충돌이라는 의미에서 적의 보복이 두려워 국민의 안전 핑계로 굴복한 것이다.
적의 공갈협박에 진실 자유를 보내는 일에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는 오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통치로 배웠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지도자들의 각 심령 속에서 그를 통치하였다면 이 지혜의 말씀으로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란 지구와 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부음 곧 하나님의 사랑의 통제를 성령으로 받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줄여서 그리스도의 통치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은 그가 곧 여호와를 의지하여 안전한 자이다.
대한민국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자유와 진실을 담아 폭정에 시달리는 이웃을 구출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강도만난 이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29.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의 속에 있으면 강도만난 이웃을 돌아본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통치이시기 때문이다. 「의정부지법 민사9단독 김주완 판사는 판결문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휴전선 인근 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북전단을 보내지 못하게 하는 법리적인 분위기를 판사가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헌법상의 국민이 폭정에 적에 포박된 상태에서의 해방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판결이 도리어 헌법 3조를 유린하고 있다 하겠다.
특히 판사가 적의 공갈에 고개를 숙이라는 판결을 낸 것은 마치도 강도가 무서우니 피해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판사는 국가에게 강도를 제압하라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 제압을 하지 않는 연고로 그만큼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해야 옳은 판단이다. 북괴는 핵무장한 집단이다. 그것으로 늘 劫迫(겁박)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괴가 그 해커를 통해서 우리 원전을 가지고 장난친 후에 대북 대화분위기가 나온 것은 우연일까? 두려워서 굴복하고 대북 대화분위기 어쩌고저쩌고한다면 이는 참 가증스러운 대국민 欺瞞(기만)이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의 차이를 무엇으로 기준하나? 우리는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를 구분하자면 적의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 곧 국민의 안전을 현저히 깨는 짓이라 하겠다. 이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올무에 걸려 질식함이다. 심리적으로 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적과 싸워서 이긴다. 도리어 공갈협박에 꼬리를 내리면 나라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 헌법상 우리 국민을 敵(적) 치하에 놔두고 다만 그것들의 실효지배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적과 싸움에서 패전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국민을 적 치하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국가의 사명을 망각한 판결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세대의 판사들이 이렇게 유약하고 비겁한 것이 다 시류에 영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시류는 극한 이기주의이다. 악어에 잡혀 먹히는 동류를 놔두고 이를 피해 자기만 살고자 도망치는 것을 국민의 안전이라고 하는 판결문에 담는다. 어찌 그것이 국민의 안전인가? 국민에게 올무를 덧씌우는 것이지. 진정한 국민의 안전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데서 나온다. 그것들의 겁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강조하신다. 국가의 안전 국민의 안전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오직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여 굴하지 않고 이기는데서 나온다고 하신다. 대한민국의 법치구현은 인질범에 잡혀 그것들의 공갈협박에 굴하는 국민으로 몰아가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년 말에 원전을 해킹하여 원전을 파괴하는 의도성 겁박에 우리 정부가 손을 들었다면, 5.24조치를 무색하게 하는 고구마지원을 보내고 있다면 이는 千不當萬不當(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 하겠다. 사실 모든 정확한 사실을 늘 감추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적의 겁박을 공개해야 한다.
KBS TV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지난해 말 한 대북지원 민간단체가 정부의 승인을 얻어 5천 2백만원 상당의 고구마 20톤을 북한 신의주로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신의주 지역의 애육원 등 영유아를 위한 영양식 목적의 인도적 차원에서 고구마가 제공됐다고 밝혔습니다.」 「임 대변인은 이어 고구마는 오래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전용할 가능성이 적어 지원을 승인했다며, 이를 곡물 지원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고구마도 식량임을 안다면 그것이 주민에게 돌아갈 확률은 너무나 낮다. 군대로 가지 주민에게 가지 않는다.
거기다가 의정부지원의 김주완 판사의 기준은 헌법을 깡그리 무시한 정치적인 판결로 보여 진다. 『헌법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 의미는 「영토의 범위를 한반도 전체와 부속도서(附屬島嶼)로 규정. 대한민국을 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간접적 선언.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제국의 영토를 기초로 확정되었으며, 대한민국은 이 지역에서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유일한 국가임을 내세우는 의미를 갖는다. 영토의 범위를 확정함으로써 이 이상의 영토적 야심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천명한다.(워키백과)」이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저들의 공갈에 굴한 정부가 아닌가 하는데 있다. 북한땅도 우리땅이고 그 주민도 우리 국민이다.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폭정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을 구출하라고 판결을 내려야 할 판사의 본분이다. 그 공갈에 굴하여 국민이 가질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김판사의 판결을 偏向的(편향적)인 판결이라 한다. 이러한 천부당만부당의 판결을 내린 이면에는 이 판사의 고무줄 잣대가 있다는 의미이고, 이런 판사의 判示(판시)로 인해 이 나라 국민이 심각한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악마와 그 종자들이 온갖 짓으로 국민을 위해하고 있는데 이에 굴하는 국가가 되라는 것이고 국민이 되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보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한다면, 적에게 악마의 종자들에게 범죄단체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해야 한다. 굴복한 그것이 곧 국민의 안전을 현저하게 깬 것이다. 우리가 노예인가? 그것들의 눈치보고 행동하게? 그 때문에 김일성敎示(교시)로 장학금 받은 판사들이 결초보은하는 짓을 한다고 하는 소리가 설득력을 갖게 한다. 그가 그런 장학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偏向的(편향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유성근(전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 노무관)의 경우를 볼 때, 남조선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되기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앞으로는 검열된 학생들 가운데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은 데모에 내몰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열 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된다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그러니까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1973년 4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이런 자들인지 그것들의 공갈협박에 눌린 것인지는 몰라도 이치에도 맞지 않는 판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적은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이다. 우리가 지금 핵무장할 수 없는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북전단지를 보내는 것이다. 북에 자유와 진실을 보내는 그것은 그들의 핵무장보다 더 강력한 무기이고, 그것으로 그들의 핵무장을 무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대칭의 위기에서 인질로 잡혀있고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그리스도의 통치로 자유를 내야 한다.
[갈라디아서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말씀은 이승만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훈이다. 눈앞에 안전에 어두워서 적의 공갈에 굴하는 올무에 잡히는 것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연고이다. 그 판사가 그 속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았다면 결코 우리 국가를 국민을 북한주민을 올무에 잡히게 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과 내통?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의 위세에 눌려? 그런 이치에 맞지도 않는 판결을 ‘국민의 안전’을 핑계 삼음이다.
그런 미명하에 포장지로 싸서 내린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결코 올무에 걸려서는 안 된다. 적의 공갈 협박에 악마의 집단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과연 정부는 원전해킹의 공갈에 굴한 것인가? 이런 공갈협박에 미국의 對應(대응)과 우리 정부의 대응은 차이가 있는가? 한미共助(공조)를 하고 있는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지난 19일)"그들은 많은 피해를 입혔고, 우리는 그에 상응해 적절한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골라 대응할 것입니다." '相應(상응)하는 대응'의 첫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향후 추가 보복조치가 있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오바마는 적의 공갈협박에 굴하지 않고 대북제재의 내용을 담는 고강도 제재조치를 내렸다고 채널 A는 보도했다. 「대북 제재 내용을 담은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 문서입니다. 소니 영화사에 대한 사이버 공격 대응 차원에서 북한에 추가 제재를 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행정명령 이행을 위해 재무장관에게 북한과 관련된 개인과 단체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단체 3곳과 개인 10명을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는데, 이번 해킹사건에 직접 관여했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 정찰총국을 1순위로 포함시켰습니다.」
이러한 보도를 보면서 우리는 지도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한미공조로 대북제재를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 정부는 이에 관해 침묵하고 있다. 대화분위기를 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악마와 그 종자들과 남북빨갱이의 모든 공갈협박에 굴하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리더십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리더십은 곧 지도자들이 그 속에 그리스도의 통치,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 하나님의 리더십을 공유하라고 강조한다.
[이사야 32:1.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2.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 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4.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이 인용한 말씀은 곧 모든 공갈협박을 잠재우는 하나님의 힘으로 국민의 합법적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이 진실을 자유를 강도만난 이웃에게 보낼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 힘을 공급받는 유일무이한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이런 리더십의 힘을 가진 우리 대통령이기를 바라고 있다. 적의 공갈협박에 굴하면 굴할수록 더 큰 요구를 할 것이다. 우리는 신년에 남북대화관계를 강조하는 그 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원전해킹에 원자로가 녹는 재앙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들고 나왔다면 이는 굴복한 것이다. 핵무장한 적을 이기는 길은 진실과 자유의 소리를 소식을 유감없이 전하는 것이다. 어차피 전쟁상황이고 그 상황을 상정하여 늘 心理的(심리적)으로 이겨야 한다.
심리적 전투에서 늘 이겨야 비로소 적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mowqesh{mo-kashe'} or moqesh{mo-kashe'}라 발음하는 올무는 bait, lure, snare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갈에 먹히면 劫縛(겁박)당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지도자들이 되니 악마의 힘에 눌려 그 종자들인 김정은의 지시 지령을 품는 자들의 겁박에 눌려버린다. 그것이 우리 국가를 망하게 하는 올무이다. 아무리 호랑이라도 그 올무에 발이 걸리면 잡힌다. 잡히면 망한다. 그 때문에 이번에 대한민국 정부는 5.24조치를 해제하지 말고 도리어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
그때만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 선제공격 심리적인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은 적의 어떤 도발과 겁박에도 굴하지 않는 심리적인 優位(우위)를 점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과 그것들의 지령을 품는 자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대단히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자기들 나름대로 다 잘난 사람들이고 그들이 다 운전대를 잡고 각기 기준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지만 국가의 안전 국민의 안전은 사람을 두려워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데서만 나오는 것임을 직시하자!
공포의 확산은 적의 겁박에 굴복하는 길을 현명하게 여기게 하는 굴절이 늘 따라다닌다. 이런 사고의 굴절은 결국 그 정권의 올무이고 국민에게 올무를 덧씌우는 共同正犯(공동정범)이 될 뿐이다. 악마의 포학이 폭우 폭풍 폭설 폭서 폭양 광풍 태풍 허리케인 등등으로 몰려와서 굴종을 요구하는 것에 결코 굴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이루게 한다. 그것들을 찻잔 속의 微風(미풍)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적의 공갈협박을 무력하게 하는 그 힘을 하나님에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받아서 누려야 한다. 하여 적을 심리전에서 완전 연승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통치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힘을 공유하여 삼팔선 전체에 걸쳐 대북방송을 시작해야 한다. 전단지를 민간인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보내야 한다. 이를 방해하는 모든 자들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현행범으로 간주하여 의법 조치해야 한다. 적의 도발의 호시탐탐을 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힘으로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남한에 있는 남로당과 북괴에서 보낸 자들을 모조리 다 잡아들여야 한다. 미국이 대북제재에 환영을 표하고 근시안적인 신경질적 방해로 미국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극 함께 해야 한다. 어차피 북한을 해방해야 할 것이다. 대화로는 결코 안 된다. 무력으로 굴복시켜야 할 적들일 뿐이다. 적은 핵무장을 했고 남한에 종북세력이 氣高萬丈(기고만장)한다. 전쟁의 실제적인 전투로 굴복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心理的(심리적)으로 굴복시켜 그 정권을 붕괴케 할 것인가? 전쟁불사의 기조가 하나님의 힘으로 강력하지 못하면 적들이 심리적인 붕괴가 오지 않는다. 도리어 지금처럼 심리적으로 굴복하면 적들에게 의기양양의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한건을 세워 역사에 남고자 하는 대통령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 조급함이 결국 국가와 국민을 그것들의 겁박에 놀아나는 수준의 국가로 국민으로 만들어 갈 뿐이다. 세상의 모든 적들의 공갈협박에 놀아나지 않는 국가의 수준 국민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려면, 만유를 만드시고 이를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힘을 공급받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 의지함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통치를 받는데 있다. 만일 우리 국민이 그 힘을 구해 받으면 이와 같은 공갈협박에 놀아나지 않는 국민이 될 것이고, 도리어 그것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을 하나님께 받아 국태민안을 이루게 하였을 것이다.
그 국태민안이 곧 북한을 해방시키는 힘인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들의 겁박에 놀아나는 나무에서는 올무라는 열매만 맺힌다. 그것들의 겁박을 찻잔 속의 미풍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힘에서는 국태민안이라는 열매를 내고 그 열매가 북한해방 자유평화통일 국리민복이라는 번영을 낸다. 그 때문에 대통령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들여 그 힘으로 어서 이성을 차리고 대북제재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공갈협박에 결코 굴하지 않는 하나님의 힘으로 적들의 심리전에 놀란 가슴으로 힘들어하는 국민을 安頓(안돈)시켜내야 할 것이다.
마침내 국민을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목회자들은 이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확산으로 적의 겁박에 굴복하지 않게 하는 도리어 그것들을 이기고 다스리게 하는 응징하는 하나님의 힘을 누리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전하지 않는다면 이는 악마에게 먹힌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하나님만 경외케 한다. [마태복음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와 같이 우리 속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결코 적들의 겁박에 굴복하여 올무에 잡히지 않게 된다.
도리어 적들을 붕괴시킨다. [이사야 37:36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열왕기하 19: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곧 그리스도의 통치의 힘으로 강해지면 악마의 힘으로 기를 쓰던 적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그 체제는 붕괴된다. 북한은 해방된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이기는 것 보다 심리전으로 적을 붕괴시키는 것은 더욱 좋은 전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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