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종자, 남북빨갱이가 국가운전대를 잡아 망하게 하려 한다. |
---|
제목:악마의 종자, 남북빨갱이가 국가운전대를 잡아 망하게 하려 한다. 국가운전대를 아가페 사랑이 잡아야 한다.
[잠언 1:1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우리 인생에서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여호와를 깨닫는데 理性(이성)의 노력에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속여 망하게 하는 악마와 그 종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담 하와 이래로 각기 나름의 깨달음을 터득하여 생존을 도모하려고 한다. 밑에서부터 위로 추구해가는 이런 추구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없게 하신 것을 알지 못함일까? 성경 속의 잠언書(서)를 人本主義(인본주의)나 敵(적)그리스도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여 독해하려는 악마적인 수법에 세상이 속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잠언서의 진정한 의미는 적그리스도의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유대敎(교)의 잠언이 결코 아니다. 유대교 식의 잠언서 접근式(식)은 적그리스도적인 사고의 念(염)이다. 다만 하나님의 지혜만 강조하는 것과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강조하는 잠언으로만 국한시키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가, 이미 오신 메시야를 부정하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사고방식에 있다. 그 때문에 아직도 그들은 잠언을 읽으면서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성경 독해능력은 인간의 遺傳的(유전적)인 것과 그 讀解(독해) 理性(이성)의 능력에 우선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조상의 전통적인 讀解(독해)에 갇혀서 나오지 못한다. 그들의 조상시대에도 그들 중에 선지자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지만 그 세대에서도 선지자들을 대접한 적이 별로 없다. 이는 말씀을 인간의 육적인 이성의 힘으로 풀려는 접근법에 의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글이니 하나님의 힘으로 그 비밀을 열어 하나님의 기준으로 독해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힘이 없고 하나님의 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각기 나름의 힘으로 구약을 해석하려고 하는데, 오랜 조상의 해석의 힘을 이길 수 없는 틀 속에 갇힌다. 그 아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성령의 각성으로만이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기준을 망각하고 祖上(조상)의 기준과 魂(혼)의 각기의 기준을 우선하여 하나님의 기준을 멸시 방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해석해야 비로소 그 뜻이 풀린다고 하는 이 원칙을 무시한 연고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 곧 聖靈(성령)으로 하신 말씀 기록하신 말씀을 풀어주시는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에게만 풀리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조하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이는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과 同一(동일)하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저들은 적그리스도의 길로 간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우리나 이를 否定(부정)하고 對敵(대적)하는 저들이나 하나님을 여호와라 한다. 하나님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모세는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자,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答(답)하신 이름이다.
[출애굽기 3:13-14.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THAT I AM’ ‘THAT I AM’은 히브리원어로 hayah{haw-yaw}라 발음한다. Yehovah{yeh-ho-vaw'}는 Jehovah="the existing One"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 動詞(동사) ‘하야’(hayah)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to be, become, come to pass, exist, happen, fall out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셨다. 영원히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이름이시다. 즉 과거 언젠가 다른 신으로부터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며, 결코 창조된 적이 없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사야 41:4.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hwhy 본래 자음에 ynda 대체 모음을 넣어 여호와’(yehowah)로 부르게 되었다.
모세에게만 여호와로 밝힌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에게도 밝히신다. [창세기 15:7.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창세기 28: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물론 모세가 성령에 의해 창세기를 기록했기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받들었을 것이지만, 위에 소개한 두 구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밝힌 것이 분명하다.
[출애굽기 6:2.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3.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JEHOVAH=Yehovah{yeh-ho-vaw'} Jehovah="the existing One") God Almighty에서 하나님은 el{ale}이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god, god-like one, mighty one과 全能(전능)한은 Shadday{shad-dah'-ee}라 발음하고 그 안에는 almighty, most powerful라는 의미를 담는다. 출애굽기 6장 3절의 의미로 고찰하자면,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그때도 이미 밝히셨으나, 이제는 완전하게 밝혀서 대대로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표호로 삼는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라 하겠다. [출애굽기 3:15.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시기 전에 홀로 계셨다. 하나님을 능가할 존재가 없으니 스스로 섬기셔야 한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스스로를 섬겨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름으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시기에 스스로를 섬겨야 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의 원칙을 영원히 세우신 것이다. 신약에 계시된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 하나님이 만물을 명하여 창조하시고 이에 만족하신다. 다 만드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는 만족을 보이신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하시는 절대 原則(원칙)이다.
[이사야 41:4.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누가복음 22:70.다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마가복음 14:6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비밀의 원칙으로 삼으신 바다. 그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를 받지 못하면 그 무엇도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할 수가 없다. [로마서 8:3-4.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되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요구를 滿足(만족)케 하는 분이시다.
[마태복음 11:24-27.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에게만 讀解(독해)되는 분이시다. 그 때문에 계시주권을 하나님이 장악하심을 의미한다. 그 이치를 알지 못하면 오류에 빠진다.
[고린도전서 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곧 성령이 독해하게 해야 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성령의 도움을 거부하고 인간의 讀解力(독해력)으로 理性(이성)의 能力(능력)으로 이를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적인 혈통의 傳統(전통)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식이 곧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3:14-18.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舊約(구약)을 읽을 때에 그 手巾(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主(주)는 靈(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自由(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유대인들은 성령의 깨우침을 받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길로 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잠언書(서)를 해석하고 우리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자고 강조한다. 적그리스도적인 유대인의 해석방법에 근거하지 말고 이미 오사 신약에 기록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통치를 그 심령 속으로 받아들여 성령의 항구적인 각성으로 성경을 해석하자고 잠언을 대하자고 우리는 강조한다. 성령의 해석을 통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되나, 인간 혼으로 해석하면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깨닫자고 우리는 매일같이 강조한다. 이를 성령의 각성이라고 한다. 성령의 각성을 一時的(일시적)으로 받으면 잠시 하나님의 영광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데, 이 때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곧 그 각성의 빛이 멀어지고 계시의 문이 닫힌다.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 성령의 항구적인 각성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기독인들이 일시적인 성령의 각성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나, 그 통치를 거부하니 곧 어두워진다.
그 때문에 여전히 악마경제에 빠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經濟(경제)를 한다. 몸 하나로 세상을 응용하려고 모색하는데 그 운전대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여호와께 바치는 것을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경제하자고 강조한다. 잠언은 결국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치자는 의미이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의 잠언이라 하셨는데 이는 곧 운전대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바치게 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잠언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만족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섬기셔야 한다.
이 이치에서 인본주의의 의미가 얼마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 성령으로 깨달은 바울은 인본주의를 排泄物(배설물)로 비유한다.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독해할 수 없다. 그분이 육체로 오셨으나 이성은 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인본주의와 적그리스도의 길로만 간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이 방자하게 행하도록 만드신 분이 아니신데, 인간은 자기 생의 운전대를 잡고 자기 멋대로 운전하다가 망한다. 이것에 국한하지 않고 지도자로 자칭하여 세상을 호리고 운전대를 잡아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잠언서의 의미는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친 자들,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자들의 받을 복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 사람은 인간의 운전대를 잡아 영원히 망하게 하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난다. 만일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성령의 각성을 받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이 만물과 지구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다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들여 그 운전대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결국 국가의 운전대를 하나님의 사랑이 잡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나라를 운전하시면 생명과 평안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능력의 지극히 높은 차원의 은총을 입기에 그 누구의 추월도 허용할 수 없는 국제경쟁력을 갖는다. 경쟁력의 제고는 곧 그리스도의 통치의 일상화이다. 잠언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을 지혜라 한다. 물론 계시문학이니 각 용어마다 그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곧 인간 각인과 집단과 국가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자유와 행복과 모든 가치를 하나님의 기준으로 부요하게 한다. 그 통치는 악마와 그 종자들과 악마의 경제를 척결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언書(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통치 아가페 사랑의 통치를 받는 가치를 성령으로 각성하자고 날마다 강조한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인용하여 이 말씀의 가치를 소개하겠지만, 지금처럼 사공이 많은 나라는 배가 산으로 가듯 망함으로 간다는 것에 우리는 경악하고 경고하는 바이다. 남북의 빨갱이가 대한민국을 어거하여 가고자 하는 곳은 피바다이다. 인간 피에 굶주린 악마의 입을 채우려는 짓이다. 우리 국가 운전대를 그 종자들이 잡으면 결국 악마의 의도대로 그 敎唆(교사)대로 가게 되는 것이니 그彼岸(피안)은 永滅(영멸)이다.
<구국기도생각> http://onlyjesusnara.com
신고 0명
게시물신고
|